사도행전 1:12 - 14절 설교 모음
부흥의 우물을 파라 /행1:12-14/ 유기성 목사
2016-08-05 15:05:27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저는 오늘 부흥을 위해서 우리가 뜨겁게 기도하자고 하는 호소와 같은 설교를 여러분에게 드리려고 합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로 가시면서 남아있는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큰 부흥을 약속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라” (요14:12) 또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모든 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큰 부흥, 권능의 삶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부흥을 경험하지 못하는 교회나 성도도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실제로 부흥을 경험하지 못하는 교회나 성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부흥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있는지 의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다 부흥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큰 권능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을 받았던 제자들이 그 다음에 어떻게 해서 그런 권능을 받았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오늘 분문에서 부흥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제자들은 어떻게 하였는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다리라”고 하셨는데, 이 말은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2장은 교회가 생기는 과정을 기록한 부분입니다. 교회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고 올라가면 사도행전 1-2장인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따르던 성도 120명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예루살렘에 모여서 전혀 기도하기에 힘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심으로 교회가 생긴 것입니다. 교회의 산실은 기도였습니다. 모여서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중에 성령이 임하시고 그리고 교회가 생긴 것입니다.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사실 열흘에 불과한 짧은 시간이지만 자기 생업을 모두 제쳐두고 예수님의 약속만 믿고 기도하면서 기다렸다는 것은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하루 기도했는데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틀을 기도해도 삼일이 되어도 아무 일이 없어요. 어지간한 사람은 포기하고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120명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이 임할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한 마음으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120명이 한 마음이 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간절히 기도했던 것입니다.
드디어 열흘 째 되던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불같은 하나님의 영이 충만히 임하더니 제자들의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방언이 터졌습니다.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구원받고 몰려 들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 원리가 우리의 교회 생활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지금도 모든 교회 일은 기도에 전혀 힘쓰는 데서 시작되어야 하고,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항상 기도하는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모든 교회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 부흥을 약속해 주셨는데 드러난 부흥이 차이가 있는 것은 기도에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흥의 복은 2천여 년 교회 역사 동안 언제나 우리에게 동일하게 효력이 있었습니다. 모든 성도에게 부흥의 약속 위에 우리는 신앙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흥의 물줄기가 우리 밑에 흐르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우물을 파기만 하면 강과 같은 성령의 역사가 터져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파지 않으면 물줄기 위에서 목말라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부흥의 우물을 팝니까? 기도로 파는 것입니다.
120문도가 마가 다락방에서 오로지 기도에 힘썼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기도에 힘쓰기를 원하십니다. 2천년 교회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기도가 준비될 때, 초대 교회와 같은 성령 강림의 역사가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1700년대 영국에서 있었던 존웨슬리에 의한 부흥도 기도의 결실입니다. 거의 같은 때, 미국 장로교 목사였던 조나단에드워드에 의해 제 1차 영적 대각성운동, 챨스피니를 중심으로 한 제 2차 대각성 운동도 기도로 터진 부흥의 우물입니다.
항상 부흥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기도의 우물을 파는 사람들이 있으면 부흥이 임하였습니다.
지금은 더욱 그러한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전 세계적으로 부흥을 부어주시는 때입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만 바라보면 살 때가 아닙니다.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가 다급하다고 생각해서 지금 내게 주어져 있는 일들에만 온통 마음을 쏟고 살기에 하나님께서 지금 어떤 일을 이루시는지 모르고 지날 때가 많습니다.
눈을 들어 전 세계에 일어나는 성령의 파도를 보아야 합니다. 요엘서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하였는데, 지금이 그 때입니다.
지난 100년 간 기독교 역사 이래로 가장 큰 부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령이 마가 다락방에 부어진 이후 지난 1900년간 예수 믿었던 사람보다 최근 100년간 예수 믿었던 사람들이 더 많다면 믿어지십니까?
1800년까지 전 세계 기독교인은 99%가 미국인, 유럽인이었습니다. 1900년에도 91%가 미국인, 유럽인이었습니다.
그러나 1960년에는 70%, 1980년에 50%, 1995년에는 28%로 줄었고, 대신 비유럽 사람들이 72%가 되었습니다. 2001년 80% 그리스도인들이 비 서구 지역 사람들입니다.
한 100년 동안 엄청나게 기독교인 분포가 바뀌었습니다.
그 말을 복음이 전 세계 모든 민족에게 급격하게 퍼져가고 있었고 전 세계 모든 지역으로 하나님의 부흥이 일어났다는 이야기입니다.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는 성경의 예언이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지 않습니까?
1970년대 이전 전 세계 공산국가는 복음의 사각 지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동구, 중국, 몽골, 캄보디아, 베트남, 북한까지 엄청난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30여년 동안 중국 교회 안에는 사도행전에서 일어났던 모든 기사와 이적이 생생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도자들이 중국 마을마다 다니며 전도를 하고 대여섯 명이 전도되면 처소 교회를 세웁니다. 그러나 예배당도 목회자도 성경도 없습니다. 전도자들이 떠나면 대책이 없습니다.
전도자들이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들은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고 떠납니다. 그런데 그 5명이 50명이 되고 500명이 되고 5천명이 되고. 향이 전체가 다 예수 믿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선교를 많이 하는 나라입니다. 40년 전에는 선교사가 와서 선교하던 나라입니다. 제 기억에 아버님이 목회할 때, 미국 선교사의 도움을 많이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20년 전에는 선교사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아프가니스탄 사태 때 한국 교회는 대단히 어려운 때를 보냈지만, 그 사태를 통해서 전 세계에 한국이 선교대국이라는 사실이 다 알려졌습니다. 지금 한국 선교사들이 전 세계로 나가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이 전 세계에서 대량의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는 영적 인적 물적 자원을 가진 나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바뀔 수 있습니까?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전하려 합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부흥을 위하여 기도의 우물을 파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성령의 파도가 한국에 임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능력으로 증거되는 복음이 필요합니다. 우리 한국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매우 영적으로 위기에 있습니다. 지금 한국 안에서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심각할 정도로 조롱과 비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어떻게 받으실지가 두려울 정도입니다.
마귀는 교회 안팍에서 기가막힌 일들을 일으키면서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귀를 막아 놓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상상할 수 없는 조롱과 저주의 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영적으로 메말라 있는 동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음란한 나라가 되어 있습니다. 임박한 심판이 두려울 정도입니다. 이렇게 가면 심판 밖에 없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권능이 나타나는 부흥이 필요합니다. 부흥이 아니면 심판입니다.
지금 한국을 향하여 경고하는 예언의 메시지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문제를 절대로 간단하게 보면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한국에 권능과 함께 나타나는 능력의 역사, 부흥을 반드시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부흥을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비난하고 조롱하는 많은 사람들 앞에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것이 증거되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 부흥을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말하는 것이 너무 조심스럽지만, 제 설교가 이러한 예언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기도가 없다면 이 부흥이 저절로 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기도하는 무리를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를 기도하는 자리로 몰아가고 계십니다. 우리가 지금 겪는 어려움은 어쩌면 기도의 자리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역사인지 모릅니다. 바로 분별해야 합니다. 어려움 앞에서 당황해 하지도 말고 분주히 돌아다니지도 말고 사람 환경을 원망하지도 말고 기도의 우물을 파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대단히 어려운 처지에 빠져있습니다. 그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같고 사회적인 문제같고 가정적인 문제같고 가정적인 문제같고 자녀들의 문제같고 건강의 문제같지만,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내모시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흥의 우물을 파는 기도자들이 서야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기 때문에 우리를 기도하는 자리로 내모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 혹시 경제적인 위기가 닥쳤거나, 가정에 위기가 왔거나, 건강에 위기가 왔다면 ‘아, 하나님이 나를 기도의 자리로 내모시는구나.’ 깨닫게 되기시를 축복합니다. 두려워하고 낙심하고 사람들을 찾아서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사람들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환경을 탓하면 진짜 망하는 것입니다.
부흥은 하나님께서만 이루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기다리고만 있으면 결코 임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권능을 주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은 500명이 넘었지만 그들이 모두 성령강림을 경험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모여서 간절히 기도했던 사람 120여 명에게 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행전 1장 4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명령은 당시상황으로 보아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없는 예루살렘에 머물 이유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처형했던 사람들이 세력을 잡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제자들은 가급적 빨리 예루살렘을 떠나야 안전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20명이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 어머니의 2층집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그곳은 예수님의 제자들 대부분이 갈릴리 사람이어서 그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올 때마다 머물던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최후의 만찬을 나누셨던 장소였습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도 120명이 어느 집에 모였다면 금방 드러나지 않습니까? 예루살렘에 있더라도 다 뿔뿔히 흩어져 있었다면 오히려 안전할 수도 있겠는데, 120여명이 마가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신 것은 바로 마가 다락방에 모여 있으라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곳에 성령을 부어주시기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장소였습니다. 지금의 교회와 같은 곳입니다.
그곳에 모여서 오로지 기도에 힘썼던 이들만이 우리 주님이 약속하신 부흥을 경험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있었어도 마가 다락방에 함께 모이지 않았던 이들은 부흥을 구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여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기도하되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것과 교회로 모여서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가 다릅니다. 개인적으로 개인적으로 은혜를 받겠지만 이 세상을 뒤집는 진정한 부흥의 역사를 위해서는 모여서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모이는 일은 그 당시 제자들도 그랬지만, 우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여서 열흘 동안 전심으로 기도했다는 것은 생업을 전폐하고 열흘 동안 기도한 일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하루를 기도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고 이틀을 기도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사흘을 기도해도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들 중에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런데도 120명이 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할 때 비로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부흥이 임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똑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하는 자리에 모여야 합니다. 나라가 걱정이 되고 한국 교회가 안타까울수록 정말 모여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한국의 영적인 분위기를 바꾸십니다. 그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제가 설교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나중에 하나님께서 이 땅에 부흥을 주실 때 하나님께서 이미 예언을 주셨다는 증거가 되기를 원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은 한국에 부흥을 주십니다. 문제는 어디서부터 그 기도의 우물을 파는 이들을 통하여 부흥이 터져나오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흥의 구경꾼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역사에 한복판에 있기를 축복합니다.
새벽에 성도들이 모여 기도하는 자리에 여러분이 힘을 합하여 모여야 됩니다. 100명이 기도하는 것과 5백명이 기도하는 것과 천명이 기도하는 것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기 위하여 부르시는 자리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모여 성령을 사모하며 기도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를 놓지지 말기를 바랍니다.
금요 성령집회가 매주 열립니다. 직장 ,가게가 늦게 끝나 시간에 맞추지 못하는 분도 많습니다. 빠질 핑계가 좋지 않습니까? 그래도 오시는 이들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며 늦은 시간이라도 와서 한 시간이라도 기도하고 갑니다.
그들이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밤에도 얼마나 뜨거웠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강하게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교회가 떠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하에 튼튼하게 지었으니 망정이지 웬만한 건물 같으면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강하게 기도할 자리로 우리 교회를 지으신 모양입니다.
부흥의 우물을 파는 기도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흥이 아니면 파멸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예언하고 있습니다. 요엘서 2장에 “말세에 성령을 만민에게 부으신다.”고 했습니다. 부흥과 심판이 동시에 임합니다.
성도 여러분, 둘 중에 하나입니다. 어느 편에 설 것입니까? ‘오늘 목사님 설교는 제 신앙 유형과는 너무 다릅니다.’ 그렇게 마음 문을 닫고 계신 분이 혹 있으시다면, 정말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간절히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부흥도 파멸도 아닌 중간 지대는 없습니다. 마지막 때가 될 수록 더 그렇습니다. 부흥과 심판은 같이 옵니다. 여러분은 부흥의 때에 서셔야 됩니다.
1906년 미국 LA 아주사 거리에서 시작된 성령 부흥이 미국의 영적 판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미국 교회도 유럽 교회처럼 말라 비틀어진 교회가 될 뻔 하였습니다.
유럽 교회는 성령의 역사를 보고도 거부하였던 교회입니다. 20세기 초, 웨일즈와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에서 성령의 강한 임재를 통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독일 교회 지도자들은 그 성령님의 역사에 대하여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성령과 관계된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교회는 쇠퇴하고 자유주의 신학의 온상이 되었을 뿐 아니라, 독일 안에 사탄의 영이 역사할 때 바로 1930년대에 독일에서 나치가 권력을 쥐었을 때 독일 교회는 나치의 배후에 적그리스도의 마귀 세력이 역사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마귀의 세력과 싸울 능력이 없었습니다.
미국도 그렇게 될 뻔 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국 교회는 1900년도 성령의 부흥을 통하여 다시 부흥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부흥의 약속을 믿고 기도의 우물을 팠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주사 거리]라는 책을 쓴 프랭크비틀맨은 당시의 일을 기록하면서 “나는 주님께서 주님의 방법으로 부흥을 주시도록 간구하였던 우리 기도가 응답되고 있다는 깊은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LA 아주사 거리에 부흥의 열기가 일어나던 그해 1906년에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 있었습니다. 프랭크비틀맨 목사는 이 일을 “천국과 지옥이 이 도시에 동시에 임한 것처럼 보였다.”고 했습니다. 부흥과 심판은 같이 임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흥과 심판은 같이 임합니다.
부흥 아니면 심판입니다.
저도 죄의 유혹과 갈등 속에 힘든 내적 싸움을 싸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죄의 힘이 강해서가 아니라, 죄에 대한 나의 태도가 단호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부흥과 심판에 대하여 깨닫고 난 다음 어느 날 새벽 기도회 때 하나님께서 ‘너는 죄와 결별할 마음이 분명한가?’를 물어 오셨습니다. “이제는 붙잡고 있는 유혹의 끈 놓으라!”는 메시지가 너무 강하게 들려왔습니다.
전에도 여러 번 그런 메시지를 들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듣지 못하고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젠 무슨 낙으로 사나?’ 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정말 눈이 뜨였습니다. 임박한 심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죄의 유혹 앞에서 한가하게 갈등할 때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 제가 이제는 죄의 유혹의 끈을 놓겠습니다.” 하였습니다.
그 다음부터 죄와 싸움은 차원이 달라졌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에게 동일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언제까지나 죄와 유혹의 끈을 붙잡고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할 수 있는 때가 아닙니다. 여러분도 이미 몇 주간 동안 다 겪어보셨지 않습니까? 지금 한 순간에 우리가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해야 될 때가 올지 모릅니다.
한번 하나님께서 은혜를 거두시면 무슨 일이 우리에게 닥칠지 모릅니다. 여러분, 언제까지나 망설이고 주저할 여유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그동안 하나님 뜻대로 바르게 살지 못했던 죄를 회개하고 이제는 단호하게 죄를 청산하고
“하나님, 제 심령에 우리 가정에 우리 한국에 이 민족에 계획하신 부흥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우리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권능을 우리에게 부어주셔서 하나님, 이 민족을 살려주십시오. 한국 교회를 살려주십시오.”
부흥의 우물을 파는 기도의 자리로 여러분이 나오셔야 합니다. 이제는 죄와 결별해야 합니다. 마음에 유혹의 끈을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흥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발 아래 부흥의 물줄기가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기도로 부흥을 경험한 교회입니다. 초창기 선교사들도 한국 교인들이 기도에서는 그들을 능가하고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한 선교사가 어느 지방에 갔을 때 새벽에 기도 집회가 있음을 듣고 참석하기 위해서 5시에 나가보니 세 사람이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기도회는 그가 오기 전에 끝났던 것입니다.
새벽 기도회가 공식적으로 처음 시작된 날의 기록을 보면 새벽 2시부터 400명의 신자가 밖에서 기도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매일 700명이 모였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때는 시계가 없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이런 기도가 있었기에 상상할 수 없는 부흥이 있었습니다.
1910년 10월 어느 한 주의 평양 교회 통계를 보면 그 주에만 평양 시내에서 4천 명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시골 곳곳에도 많은 교회가 생겨났고 심지어는 선교사나 전도자가 방문한 적도 없는 곳에도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어떤 사람이 도시에서 복음을 듣고는 고향으로 성경을 가지고 돌아가 그것을 이웃에게 계속하여 읽어주었고 결국 그 마을에서 50명이 넘는 사람이 믿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교회를 이루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으나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고민하다가 신약성경에서 교회의 시작이 물 세례라고 추측하고는 각자 집으로 가서 목욕을 하고 다시 모여 교회를 설립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일이 지금 다시 이 땅에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이삭이 우물을 팔 때마다 우물이 터졌습니다. 그 우물들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들이었는데, 원수인 블레셋이 메꾸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 바로 그 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부흥을 갈망하며 기도하는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은 다시 이 땅에 부흥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성령의 권능이 지금 우리에게 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우리는 감리교단이나 나라, 이 민족이 어려움에 처한 것을 보지만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성령의 권능이 임하면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생애에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들을 부어주십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고, 기쁨이 없는 사람은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 되고, 불화한 사람은 화목한 사람이 되고, 조급한 사람은 오래 참는 사람이 됩니다.
냉정하고 정이 안 가는 사람은 따뜻한 사람이 되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은 충성스런 사람이 되고, 오만불손한 사람은 온유한 사람이 됩니다.
도시가 변화되고 나라가 바뀝니다. 과거 유럽이 미개한 야만인 나라라는 말을 들었으나 세계 가장 앞선 문화를 가진 나라들이 된 것처럼 변화됩니다.
처음에 복음이 영국에 전해질 때는 이 민족에게는 도무지 복음을 전할 수가 없다고 하는 보고를 당시 복음 전도자들이 바티칸에 보고서를 썼을 정도입니다. 하나님의 부흥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바꿉니다.
통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생각해 보면 걱정 밖에 안되고 통일의 물꼬가 터져도 과연 감당할 수 있겠는가 싶지만, 성령의 권능이 임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 일을 이루어내십니다. 통일을 위한 권능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매일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어가고 있음을 봅니다.
여러분, 한번 교회에 나와 보십시오. ‘이 큰 예배당 언제 채우나?’ 그랬는데 예배당을 완공하고 난 다음부터 이 예배당은 정말 가득 가득 모여서 기도하는 장소로 하나님이 쓰시고 지금도 매일같이 모여서 뜨겁게 기도하는 예배당이 되었습니다.
어제 토요일 교회에 나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8천 평이 넘는 예배당이 어제는 이 큰 예배당에서도 모임 장소를 구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부흥의 우물을 파는 교회로 만드시기로 작정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집에서 모이는 속회도 그렇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집에서 선교회가 모이고 기도하는 처소가 되어 마가 다락방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에 유명해지기를 축복합니다.
마가 다락방이 바로 마가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사모하는 마음을 가시세요. 우리 집이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안됩니다.
우리 집이 마지막 때 하나님 앞에 부흥의 우물을 파는 기도 처소로 사용되어서 우리 집에서 모이는 모임 속에서 하나님의 부흥이 임했다고 하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 유명한 집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교회로 다니는 것에만 만족하면 안됩니다.
이렇게 말씀드렸는데.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없기를 원합니다.
부흥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죽은 고기는 막대기로 찔려도 반응이 없습니다. 그러나 산고기는 막대기로 찌르면 살아납니다. 사람이 정말 산 영이 되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던졌을 때 반응을 보입니다.
오늘 저는 이 시간 여러분에게 기도에 대해서 강권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부흥의 자리로 초청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부흥을 구경하고 소식을 전해 듣는 사람이 아니고, 그 부흥을 직접 경험하는 자리에 그 중심에 서기를 초청하는 것입니다. 정말 기도하는 자리에 모여야 합니다.
기도하기에 이미 늦은 사람은 없습니다. 부흥에 제외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흥에 대한 약속을 믿지 못하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만 있을 뿐입니다.
카메론페리 박사라는 분이 30세에 목사가 되어 60세까지 30년간 목회를 하면서도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병이 들었습니다. 그는 아내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성경을 연구하다가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기도하면 고쳐주신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남들이 잠든 시간에 한 시간씩 하나님과 고요한 시간을 갖는 겁니다. 어디를 가든지 그 시간만큼은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렇게 4년을 지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고 신유의 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기쁨이 충만해서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성령 충만의 능력을 받고 두 달 동안 전도한 것이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고 전도한 30년 보다 더 많은 성과를 올렸습니다.”
우리 성찬을 받겠습니다. 우리가 성찬을 받으면서 기도의 사명자로 서기를 결단합시다.
“성령의 권능으로 제게 역사해 주시고 우리 가정에 역사해 주시고 한국 교회에 역사해 주시옵소서.” 성찬을 받으면서 꼭 그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동안 하나님 앞에 기도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 제가 이제는 부흥의 우물을 파는 자가 되겠습니다. ” 하나님 앞에 약속을 드리고 성찬을 받겠습니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부어 주시옵소서. 오순절에 사도들이 경험했던 그 성령을 오늘 이 시간에 내려주셔서 내 생애에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전에 성령을 받았던 사람에게는 더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셔서 능력있게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다락방 /행1:12-14, 행2:1-4/ 이동원 목사
2014-11-28 14:48:24
신학자들은 성경의 역사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곧 ‘구속사’(Salvation History)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구속사에서 사도행전 2장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이 강림하고 신약 교회가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2장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세기 11장을 함께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11장에서 인류가 경험하게 된 문제의 해결의 희망이 비로소 사도행전 2장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1장에서 인류는 바벨탑을 쌓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무너져 전 세계로 흩어져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들이 되고 민족과 민족 사이에는 벽들이 쌓여지고 언어와 마음이 소통되지 않는 갈등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이 강림하고 성령을 체험하자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그들이 사용하는 다른 언어에도 불구하고 한 마음이 되어 한 메시지를 듣고 민족과 언어의 벽, 유대인과 이방인의 벽을 초월하여 한 공동체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 교회의 탄생이었습니다.
이런 성령의 강림 그리고 교회의 탄생이 이루어진 곳이 예루살렘 옛성 시온 문을 나와 100m 지점 시온의 언덕에 자리 잡은 2층 다락방이었습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이제 예수의 제자들은 감람산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13절에 보면 그들은 그들이 유하고 있던 다락방(방 한가운데 3개의 기둥이 주위 벽에 서있는 기둥들과 연결되어 아름다운 아취 형상을 이루며 천정을 받치고 있는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의 다락방)으로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이 다락방은 평소 예수님과 제자들이 자주 모이던 마가 요한의 집(행12:12)에 있던 다락방이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함께 했고 여기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바로 그곳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 곳에서 그들은 성령의 강림을 경험했고 성령에 충만하여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 세계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여기가 바로 신약의 교회가 탄생한 요람이 된 곳입니다. 이 예수의 처음 제자들이 경험한 역사적 성령 충만의 비밀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어떻게 해서 성령의 충만을 경험할 수 있었을까요? 오늘의 우리도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 시대 우리에게 맡겨주신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령 충만의 비밀-무엇일까요?
1.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선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시 예루살렘 이 다락방에 모인 것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다락방 성령 체험의 시발점이 된 행1:4을 다시 읽겠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리고 우리는 이 분부의 말씀이 주님이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이미 눅24:49에서 분부된 말씀이었음 또한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그리므로 이 처음 성령 충만의 자리는 순종의 자리였던 것입니다. 누가 성령 충만을 받습니까?
순종하는 제자들입니다. 주께서 예루살렘에 머물라고 하니까 머물고, 모이라고 하니까 순진하게 모인 것입니다. 순종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순종의 사람들에게 성령이 부어 진 것입니다. 행5:32을 읽겠습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저는 지금까지 목회를 하면서 매사에 계산에 빠르고 매사에 비판적이고 매사에 부정적인 성도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사모하신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한 순종을 결단하십시오. 주께서 모이라고 하면 모이십시오.
기도하라고 하면 기도하십시오. 가라고 하면 가십시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순진한 순종을 어리석음으로 매도하고 있습니다만, 성경은 순종이 신앙의 기본임을 구구 절절이 강조하지 않습니까?
성경은 불순종이 초래한 불행을 또한 구구 절절이 보여 주지 않습니까? 그래서 앤드류 머레이는 “우리가 신앙에 입문하는 순간, 순종의 학교에 입학한다”고 말합니다. 지난 해 베이징 올림픽의 국가적 영웅이었던 역도 장미란 선수는 그녀의 역도 선수로서의 성공의 비밀을 아버지에게 순종한 결과라고 말한 바가 있었습니다.
자신은 한때 역도하기가 죽기보다 싫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네가 갈 길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결국은 순종하기로 결심한 것이 그녀의 역도 인생의 성공의 비밀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미란의 아버지는 그녀의 딸을 강압만 한 것이 아니라, 꿈을 동시에 주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무명의 선수 시절에 미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싸인을 만들어 주고 연습해 보라고 했답니다.
“제게 무슨 싸인이 필요해요?”라고 말하면 “그 때가 곧 올 것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유명한 싸인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 전체는 모두 하나님 아버지께서 명령하시는 말씀으로 가득차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된 우리에게 이 말씀을 따르는 것이 곧 우리의 복이라고, 우리의 성공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성도 여러분, 이제 순종의 자리에 서시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성령 충만의 첫 스텝입니다.
2.성령의 능력을 사모해야 합니다.
자, 주께서는 이미 처음 제자들에게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그들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성령의 권능을 받기 위해 그들이 얼마간 예루살렘에 머물러 성령의 능력으로 입히도록 기다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약속하신 성령의 능력을 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그들이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기도로 성령의 능력을 구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자, 그래서 제자들이 어떻게 했다고 본문은 증언합니까?
1:13-14절입니다.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다 거기 있어 (14)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그래서 그 다음 절(15절)에 보면 120명이 모여 다락방에서 기도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며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가롯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선출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12사도와 그들이 함께 하는 공동체가 주의 부활의 일치된 증인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열흘 가까이 집중적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교회 공동체가 이만한 집중력을 가지고 전적으로 한 열흘만 온 교회 온 교우가 함께 모여 기도에 몰입하고 기도에 올인하여 성령의 능력을 사모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상상해 봅니다.
기도는 단순히 우리의 욕심을 이루는 통로가 아닙니다. 모든 치열한 기도는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통로가 됩니다. 행2:1은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저는 이 대목이 오순절 성령 강림이 오순절이라는 명절의 타이밍을 맞추어 주께서 이루신 일임을 강조하려는 사도행전의 저자의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의 타이밍이었던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오순절은 이스라엘 3대 명절(유월절, 초막절과 함께)의 하나로 유월절이 지난 50일째 날에 시작되는 추수의 첫 열매를 감사하며 바치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이 절기는 처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에게 그 날은 예수님 부활 후 40일을 이 땅에 계시다가 승천하신 후 몇 날이 경과된 날입니다. 오순절(pentecost)이란 말의 뜻이 본래 50일 이라는 뜻입니다. 그 날 성령이 강림하시고 교회가 예수 부활의 새 생명의 열매를 안고 탄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일에 초대 교회 성도들의 기도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은 오시기로 작정된 것이지만, 그냥 오신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는 무엇입니까?
기도는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통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로 일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기도로 일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사역 이전에 성령의 능력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문제를 만드는 분들을 보면 자신의 고집과 자신의 소견만으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내 모든 고집도 소견도 내려놓고 그냥 성령의 능력으로 채워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성령의 이끄심으로 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진정한 사역의 시작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성령 충만의 자리인 것입니다.
3.성령의 임재를 체험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시작은 역사적 사건을 사실적으로 체험한 데서 비롯됩니다. 그것이 바로 오순절 사건입니다. 참된 기독교는 단순한 하나의 사상이 아닙니다. 이론도 아닙니다. 교리도 아닙니다. 물론 교리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본질은 교리이상의 사건이요 사실이요 체험 곧 ''''''''''''''''reality''''''''''''''''(실제)라는 말입니다. 2절에 보면 급하고 강한 바람이 온 집에 가득하였습니다. 3절에 보면 불이 혀같이 갈라져 임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4절에 보면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방언으로 성령의 메시지를 말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방언이 요즈음 말하는 소위 영음 방언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고유 언어들인 여러 외국어를 말하는지는 학자들의 공통된 결론이 없습니다.
대체로는 본문의 문맥상 여기선 외국어를 뜻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사도행전 2장 6절이하에 보면 오순절 예루살렘에 모여 든 사람들이 제자들의 증거를 각각 자기의 방언(자기 언어)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고 9절 이하에 보면 그 여러 나라와 지역의 이름들이 열거 되어 있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자기 언어로 주님의 복음을 알아듣고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이 성령의 놀라운 ‘표적과 기사’(signs and wonders)를 동반한 것입니다. 바람과 불이 동반된 것입니다. 성령이 바람과 불로 임하여 복음의 진정성을 입증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표적은 하나님이 거기에 함께 하시고 거기에 임재하시는 증거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임재의 체험은 사람마다 다르게 경험되었습니다. 때로 우리는 신앙의 체험을 지나치게 보편화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심지어 그 날 오순절의 다락방에서도 체험은 사람마다 달랐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바람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불을 보고 또 어떤 사람은 혀같이 갈라지는 불을 보았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배우지도 않은 다른 언어를 말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꿈을 꾸고 어떤 사람들은 환상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갑자기 지루한 일상을 깨는 뜨거운 희망이 불덩이처럼 가슴에서 솟아남을 경험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눈으로 나타난 가시적 체험은 없었을지라도 의식의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강력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다 성령의 임재 체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소심한 다락방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날개를 펴고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으로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순절 사건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독수리 새끼를 잡아 집안에서 닭장에 넣고 병아리, 닭들과 함께 길렀습니다. 이 독수리 새끼는 자신이 독수리라는 정체성을 상실하고 한 마리의 닭이 되어 얌전하게 닭들의 세계에 적응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다른 닭들과 마당에서 닭 모이를 먹고 한가롭게 걷고 한가롭게 산책하다가 해가 저물면 닭장에서 다른 닭들과 함께 곤히 잠들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가을이 되어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던 날 갑자기 닭장위에 독수리 몇 마리가 나타나 닭장 위를 비상 하며 가을바람을 타고 비상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독수리 새끼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합니다.
잠시 후 나래를 편 독수리는 자신들의 동료를 따라 창공으로 높이 치솟아 오르더니 그들과 함께 수평선 저 너머로 여행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닭장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처음 제자들에게 일어났던 사건이라고 믿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를 믿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났지만 그들은 아직도 세상의 자녀들과 다름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모여 기도하던 예루살렘 다락방에 한 순간 성령이 바람처럼 임한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능력의 날개를 펴고 비상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불이 임했습니다. 그들의 혀는 불을 토하며 예수의 생명과 소망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이제 성령의 사람, 복음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지금이야 말로 당신의 인생을 하늘로 들어 올릴 이 거룩한 바람에 당신의 현존을 맡길 때가 아닙니까? 지금이야 말로 내 춥고 외로운 인생의 마당에 거룩한 불이 임하여 나의 실존을 능력의 불로 태울 때가 아닙니까? 지금이 바로 성령의 능력을 사모할 시간이요, 지금이 바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할 시간입니다
행1:12-14/ 행2:1-13/ 교회부흥의 비결 / 한경직 목사
2014-08-23 06:24:31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四․六)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스룹바벨에게 주신 말씀이올시다. 스룹바벨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을 재건할 때에 정치적 지도자이었습니다.
대 제사장 여호수아와 같이 민족의 부흥과 재건을 위해서 노력하던 분이올시다. 그 때에 그들의 앞에는 허다한 문제와 난관이 가로 놓여 있었습니다. 실제 생활 문제, 의식주에 관한 문제도 새로이 돌아온 피난 생활로서 재건해야 했습니다.
더욱이 미약한 힘으로 큰 열심을 가지고 성전 재건을 시작하였는데 여러 가지 부족한 것도 많지마는 원수들이 또한 많이 방해함으로 말미암아 부득이 성전 공사도 임시 중시할 수밖에 없는 형편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스룹바벨은 자연히 마음 가운데 번민(煩悶)이 일어나고 상심 가운데 있을 줄 생각합니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때의 선지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스가랴에게 한 환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눈앞에는 큰 등대가 보였습니다. 그 등대 위에는 일곱 등잔이 있었습니다. 일곱 등잔에는 물론 일곱 불이 켜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곱 등잔에 기름을 공급하여 주는 주발이 있었고 또한 그 주발은 죄 우에 선 생생한 두 감람나무에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두 감람나무에서 쉴새 없이 흘러내리는 기름은 등대 위 주발에 모여들어 갔고, 그 주발에서는 일곱 등잔으로 기름이 내려가서, 일곱 등잔의 불빛은 꺼지지 아니하고 기리 성전 안을 빛나게 비취인 것입니다. 이 환상은 별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줄 생각합니다.
여기 보인 등대는 하나님의 신령한 교회를 상징한 것입니다. 그 등대 위에 서 있는 일곱 등불은 교회를 중심해서 나타나는 빛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이 진리의 빛이 끊임없이 빛나는 그 이유는 오직 하나 밖에 없는데, 하나님께서 친히 세워주신 사자들을 통해서 그 잔 위에 기름이 간단없이 성신의 역사가 있는 까닭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대로『하나님의 일은 힘으로 죄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내 신으로 되느니라.』 이 말씀을 환상을 통하여 여러 가지 상징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줄 생각합니다. 여기 힘이라고 하는 말은 다 인간에 속하는 힘과 인간에 속하는 능을 가리킨 것입니다.
인간에 속하는 육체의 무슨 힘, 완력, 혹은 군사의 힘, 혹은 기억의 힘, 혹은 정치적인 권세, 혹은 경제적인 힘, 인간에 속하는 어떠한 힘이라도 교회의 빛을 밝힐 수는 없고 오직 교회를 부흥시켜서 교회를 통하여 진리의 등대에서 밝은 빛이 어두운 세상에 비취게 하는 그 유일의 힘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내려오신 성신의 능력이라고 하는 말씀이올시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이처럼 많이 모인 것은 보통 주일로만 아니고 특별히 오순절 주일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이 날은 특별히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五十일째 되던 첫 오순절에 성신께서 제자들과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강림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첫 오순절에 성신께서 강림하신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경륜이 배후에 있었고 인간의 협력과 순복이 또한 따른 것입니다. 우리가 다 기억하시는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에 모든 말씀으로 위로도 하고 부탁도 하실 때에 한 가지 약속도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장차 그들을 떠나지마는 그들로 하여금 고아와 같이 외롭게 두지 아니할 터이며, 예수가 가면 반드시 보혜사 성신을 그들에게 보낼 터이오, 이 보혜사는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고 항상 계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시고 三일만에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시기 바로 전에도 열 한 제자를 따로 청하여 놓고 분부한 말씀이 계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그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하시는 말씀이『성신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능력을 얻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서 내 증인이 되리라.』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제자들은 예수님의 약속을 그냥 믿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분부한 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아니했습니다.
어떠한 다락방에 같이 모였습니다. 계속해서 열흘 동안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열흘만에 오순절 아침을 당하였는데 갑자기 이상한 급하고 강산 바람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습니다. 또한 혀와 같은 불이 모든 사람 위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상한 자연의 현상과 같이 그 당시에 모였던 모든 사람 마음 가운데는 성신의 임재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열 한 사도만 아닙니다. 모든 평신도까지 꼭 같은 성신의 충만함을 입었습니다. 여자도 꼭 같은 성신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기 보면 성신께서 임재 하실 때에 특별히 성신의 성격을 분명히 가르치기 위해서 몇 가지 상징을 보여 주신 것이 있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바람이라고 하는 말은 숨결이라고 하는 말과 같습니다.
사람에게는 숨결이 있을 때 생명이 있습니다. 성신은 하나님의 숨결이올시다. 성신은 하나님의 생명이올시다. 성신을 우리가 받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직접 받는 것입니다.
또한 바람은 능력과 감화력을 의미합니다. 부드러운 봄바람은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합니다. 강한 바람은 나무를 꺾고 산을 옮기고 바다 물결을 움직입니다. 강한 능력을 의미합니다. 성신은 능력을 의미합니다.
성신이 임할 때에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성신이 임할 때에 우리의 마음에 새로운 힘이 임재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불의 혀 같은 것이 보였다고 말씀했습니다. 전 성경을 보면 불은 언제든지 세 가지 뜻을 의미합니다. 불은 빛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진리의 빛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 줍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더욱 분명히 나타내어 주셨고, 십자가의 구속의 오묘한 진리를 사도들을 통해서 더욱 분명하게 우리에게 계시하여 주신 것입니다. 또한 불은 언제든지 열을 의미합니다.
성신이 우리의 마음속에 임재 할 때에 우리들의 심령은 새로운 열을 체험합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불은 언제든지 정결(淨潔)을 의미합니다. 더러운 것은 태워서 깨끗케 하는 힘이 있습니다. 성신께서 우리 심령에 임재하실 때에 온갖 더러운 생각을 불살라 없이 하여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정화해서 거룩하고 깨끗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불이 나타날 때에 혀로서 나타나고 그 때에 모였던 사람은 이방의 말을 능히 할 수 있는 일시적이지마는 기적이 나타난 것을 우리가 또한 볼 수 있습니다.
혀는 언제든지 말을 의미합니다. 혀가 풀리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이 성신을 받기 전에는 혀가 있었지마는 말을 못하였습니다. 성신을 받은 후에 베드로의 입이 열렸습니다. 혀가 풀려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각국 방언에 대한 이적은 장차 요한 계시록에 계시된 것과 같이 복음이 온 세계에 확보되어서 모든 나라, 모든 족속, 모든 방언 가운데서 택한 자를 구원해 낼 예표(豫表)가 된 줄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성신의 역사가 一二0명에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생명이 임했고, 그들에게 능력이 임했고, 그들에게 진리의 빛이 되었고, 그들에게 정결을 의미했고, 그들의 마음이 정결해졌고, 그들의 입이 열렸고, 혀가 풀렸고, 그들의 방언을 통해서 온 세계에 복음 전도는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결과는 여러 가지로 나타났습니다. 베드로가 한번 입을 벌릴 때에 三천 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오순절은 밀을 하나님께 드리는 맥추절이라고 하는데 이 날 문자 그대로 신령한 곡식을 많이 거두어서 하늘의 곡간에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와 같은 성신의 역사가 있었음으로 말미암아 그들 마음 가운데는 기쁨이 가정에서도 떡을 때어서 기쁨으로 먹으며 언제든지 하나님께 찬송을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즉 오순절에 된 일입니다. 이것이 성신을 받은 교회의 모습이올시다. 이 날로서 교회가 탄생하였습니다. 이 날로서 신약의 교회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날로서 성신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성신께서 이 날에 그친 것이 아닙니다. 교회와 항상 같이 계셨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교회는 성신의 검이었습니다. 믿는 사람의 육체마다 성신의 전이었습니다. 성신은 교회와 같이 교회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항상 동재(同在) 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세우실 뿐더러 교회를 지도하여 주셨습니다. 일곱 집사를 택한 것도 성령의 지도로 택하였고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은 택하였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 내려가 전도한 것도 성령이 지도한 바입니다. 구수내시(內侍)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된 것도 성령의 지도로 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유대 사람으로서 이방 사람의 집에 담대히 들어가서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한 것, 다시 말하면 로마 사람 백부장 고넬료에게 담대히 들어가 전도한 것도 성신의 지도에 의지해서 이 일을 함으로 이방 사람과 유대 사람의 장벽을 철폐하였습니다.
또한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떼어놓아서 그 머리 위에 안수하고 기도한 후에 외지의 선교사로 파송(派送)하게 된 것도 온전히 성령의 지도에 의지해서 외지 선교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교회를 세우실 뿐더러 교회 안에 계시고 교회 안에 계시고 믿는 사람의 마음 가운데 계속해 계셔서 교회를 지도해 주시고 믿는 사람의 사랑의 사생활도 지도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성령은 어떤 때에는 교회를 깨끗케도 하였습니다. 유무상통(有無相通)하는 그 현상이 매우 아름다웠지마는 이와 같이 아름다운 일을 통해서 어떤 사람에게는 시험이 들어왔습니다. 아나니아라고 하는 부부는 다른 사람을 모방해서 자기의 토지를 팔기는 팔았지마는 탐심을 억제하지 못해서 베드로의 앞에 와서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베드로는 아나니아를 내려다보면서 어찌하여 성령을 속이느냐고 책망을 할 때에 아나니아는 그 자리에 엎드려져 혼이 떠났다고 말하였습니다. 조금 후에 그 아내 삽비라가 들어와서 같은 거짓말을 하다가 역시 꼭 같은 형벌을 받았습니다.
초대 교회를 지도하시던 이 성령께서는 초대 교회를 또한 깨끗케 하였습니다. 더러운 죄악이 들어오려고 할 때에 깨끗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교회를 계속해서 확보되게 하시고 도처에 교회가 설립되게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에게 능력을 주어서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을 뿐더러 이적과 기사를 행하게 했으며, 스테반도 성령이 충만해서 담대히 그리스도를 증거 하였을 뿐만 아니고 천사의 얼굴과 같은 얼굴로서 주를 위하여 순교의 면류관을 받게 하셨으며, 또한 이 순교가 있은 후에 모든 교인들로 하여금 사방으로 퍼지게 하여서 요원의 불과 같이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계에 퍼지도록 한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 가운데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은 사도행전을 사도행전이라 말하지 않고 차라리 성령의 행전(行傳) 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겠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성령의 역사는 초대 교회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二세기 교회도 그러했고, 三세기 교회도 그러했고, 세기를 내려오면서 언제든지 참으로 교회의 부흥 운동이 있을 때에는 오로지 성령이 같이 한 것을 우리는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저에게 적은 책자를 하나 보냈는데 받아 보니 일찍이 중국에 초대 선교사로 가서 오래 선교하던 요나단 고크드라고 하는 박사가 지은 작은 책이었습니다. 그 책을 보니 표지에 영어로 된 작은 책인데「성령의 불이 한국을 휩쓸 때에」이런 제목의 책자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흥미를 가지고 제가 그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이 책 가운데는 一九0五년과 一九0六년, 一九0八년 그 동안에 어떻게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를 축복해서 큰 성신의 역사가 있어서 한국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하던 그 일을 - 제가 어릴 적에 되던 그런 일을 - 자세히 기록한 책이었습니다. 그 때에 나온 선교사들, 장로교 선교사들이나 감리교 선교사들이 꼭 한국에 하나님의 은혜가 내리기 위해서 교파를 초월해서 때때로 모여서 기도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기도의 준비가 일년 이년이 거의 되었습니다. 또한 한국 교역자 가운데도 기도를 하는 분이 점점 많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평양 장대재 교회에 어떤 알 저녁에 큰 성신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해서 그 때에 길선주 장로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죄를 통회 자복하고 그 때부터 전부 일어나서 온 한국 장로교나 감리교를 불구하고 온 나라에 복음이 전파되어서 여러 곳에 교회가 설립되었다고 하는 기록이었습니다.
아마 나이 많으신 분들은 이 현상을 친히 체험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교회가 이만큼 발전하고 축복을 받은 것도 오로지 성신의 역사의 결과입니다.
교회의 부흥은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아니합니다. 사람의 재주로 되지 아니합니다. 사람의 어떤 권력으로 되지 아니합니다. 하물며 사람의 어떤 권모(權謀)나 술수로 되지 아니합니다. 어떤 사람이 모여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결의 서를 발표한다고 교회가 부흥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부흥은 오직 성신의 역사로만 되는 것입니다.『울어도 못하고 눈물로도 못하되 오직 내 신으로 되느니라.』하나님의 성신의 능력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오순절 주일을 당해서 이 사실을 다시 생각할 때에 특별히 몇 가지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제일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의 일에 대하여 성신의 역사를 잊어버리면 안 되겠습니다. 성신을 무시하지 맙시다.
성신을 멸시하지 맙시다. 성신을 위해 주고 내 재주와 내 생각으로 하나님의 교회 일을 하려고 하지 맙시다. 성신의 지도가 분명한데 그 지도대로 하지 않고 내 고집과 내 편견과 내 신앙심과 내 어떤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교회 일을 하려고 하지 맙시다.
성신을 근심하게 하지 맙시다. 교회도 성신을 근심하게 하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 하나 하나가 성신을 근심하게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성신의 지도가 분명한데 내 정욕과 내 욕심을 그냥 따라 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성신을 소멸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성신의 지도가 계속해서 있지마는 우리가 그 지도를 계속해서 거부할 때에는 마지막에는 지도를 그치게 되겠습니다. 그것은 성신의 소멸이라는 것 같습니다.
전에 사울 왕이 젊어서는 성신의 능력을 받아서 모든 나라 일을 바로 하더니 점점 나이 많아 가면서 시기하는 마음이 생기고 교만한 마음이 생겨서 성령의 역사를 거스르게 되니, 마지막에는 성령이 아주 사울 왕에게서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그 말로가 어떻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성신을 떠난 신자의 말로가 어떻게 될 겁니까? 성신의 지도를 소멸하는 교회의 말로가 어떻게 될 것입니까? 한국교회는 이 이상 더 성신을 근심하게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성신을 소멸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언제든지 성신께 순복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오순절 주일을 당해서 특별히 할 일이 몇 가지가 있는 줄 생각합니다.
첫째는 우리 하나 하나가 내 자신을 스스로 살피면서 내 생활 가운데 성신을 근심하게 하는 것이 없는가 살펴 볼 것입니다. 내 생활 가운데 내 가정에서 하는 일 가운데 성신을 근심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까?
내 교회서 하는 일 가운데 성신을 근심하게 하는 것이 없습니까? 스스로 살펴서 근심하게 하는 것이 있으면 그 죄를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죄를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성신의 역사가 다시 우리 마음 가운데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언제든지 성신의 지도에 순복 할 수 있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내 편견대로 하지 말고, 내 고집대로 하지 말고, 성신의 지도에 순복 하도록 은혜 받기 위하여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나 개인뿐만 아니라 또 우리 영락교회뿐만 아니라 온 한국교회가 새롭게 성신의 충만하심을 받기 위해서 오늘 오순절 주일에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성신을 받은 증거가 어디 이상한 데 있는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항상 갈라디아서 五장 二十二-二十三절을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성신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喜樂)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良善)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올시다.
성신 받은 교회는 다른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신 받은 교회는 온전히 한 성신의 감화로서 하나가 되어서 화평한 교회입니다. 성신 받은 교회는 한 마음 한 뜻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입니다. 성신 받은 교회는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님을 봉사하고 우리 사회를 봉사하는 교회인 것입니다.
이 오순절 주일에 우리 각자가 성신의 충만한 은혜를 받고, 우리 가정이 이와 같은 은혜를 받고, 온 한국교회가 이와 같은 은혜를 받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admin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쓰라 /행1:12-14
2012-12-28 15:04:22
날씨는 무덥지만 우리를 시원하게 해 주는 런던올림픽이 있어 다행이다.
계속되는 잘못된 판정 때문에 화가 나고 열심히 훈련한 선수들의 눈물을 봐야 했다.
유도 66㎏급의 조준호는 8강전에서 심판 3명의 전원일치로 승리의 기쁨을 안았다.
하지만 곧 심판위원장이 판정을 멈추라는 사인을 보냈고, 승리를 번복했다.
박태환은 남자 자유형 400m 예선에서 실격 처리됐다가 번복되어 결승진출했다.
신아람은 독일 헤이더만과의 준결승에서 연장접전에서 5-6으로 아깝게 졌다.
이미 경기 시간 종료됐지만, 심판진이 연장전 1초를 주어 헤이더만이 3번의 공격을 했다.
하지만 감동적인 승리를 거두는 선수들을 보며 이런 아쉬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특히 남자 유도 81kg 이하급에 출전한 김재범(27·한국마사회)의 경기는 감동적이다.
월등한 경기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그의 몸은 결코 승리할 수 없는 상태였다.
왼쪽 어깨, 팔꿈치, 손가락까지 왼팔을 거의 쓰지 못하는 상태였다.
훈련을 거의 하지 못했다. 오른쪽 무릎도 좋지 않아 전날까지 뛰지도 못했다.
정훈 대표팀 감독도 "엑스레이를 찍어보면 성한 데가 없었다. 의사가 어떻게 이런 몸으로
올림픽에 가느냐고 말할 정도였다. 그래도 지옥훈련을 잘 버텨줬다."며 웃었다.
김재범은 신실한 크리스찬이다. 그는 매일 알람을 맞춰놓고 기도를 한다.
그는 "1등을 너무 해보고 싶어서" 기도 시간을 매일 11시11분으로 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늦다고 생각해 지금은 10시4분(1004)으로 바꿨다고 한다.
그는 정신적, 신체적 어려움이 많았지만 기도로 극복했다.
"고난없는 축복은 없다고 생각했다. 다칠 때마다 확신이 섰다.
1등하려고 이러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고백하는 그의 믿음에 마음이 뜨거워진다.
매 경기 시작 전 두 손 모아 기도하고 두 손을 하나님께 향하고 경기를 시작한다.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 하늘 향해 두 손 높이 들고 "주여"라고 외쳤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하나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진짜... 최고의 은인이시구요”
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금메달을 받자마자 바로 오른손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렸다.
나는 김재범 선수의 경기를 보고 많이 부러웠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모습이!
도저히 불가능한 몸으로, 자신은 죽고 하나님이 일하셔야 된다는 그의 믿음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그의 믿음이...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 메달을 단 선수들의 숨은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감동이 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그들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훈련을 잘 견뎠고 목표를 이루었다.
나는 이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한 말이 새롭게 다가왔다.
펜싱 여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깜짝 금메달의 주인공이 된 김지연(24)이다.
그녀가 금메달을 딸 줄은 아무도 몰랐다. 펜싱 대표팀 감독, 심지어 자기 자신도….
대한체육회의 런던 올림픽 전력분석 자료는 김지연의 예상 성적을 8강으로 평가했다
아무도 예상치 않던 그녀가 금메달을 딸 수 있는 비결이 그녀의 말에 들어있다.
고된 훈련 끝에 정상에 선 금메달 리스트들은 모두 "쉬고 싶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김지연은 "그냥 빨리 휘두르고 싶어요. 펜승은 제 전부니까요."고 말했다.
빨리 검을 잡고 싶다는 그녀의 말은 힘들고 고된 훈련이었지만 즐겼다는 뜻으로 들린다.
지금 내가 하는 그 일이 즐겁지 않다면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일을 바꾸든지, 내 마음을 바꾸든지 분명한 변화가 필요하다.
오늘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는 김재범 선수처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휴가를 떠난다. 그런데 휴가를 다녀온 후, 더 일하기 싫다면 큰 문제다.
휴가를 통해 충전을 받고, 다시금 비전과 열정으로 달려가라고 휴가를 준 게 아닌가?
이전보다 더 큰 기대와 소망을 갖고 내 삶의 자리로 돌아가길 축복한다.
내가 돌아갈 가정이 있고, 직장이 있고, 삶의 목적이 있음으로 인해 감사하길 축복한다.
오늘 말씀에 보면 제자들도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디로?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루살렘,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간 함께 하셨다.
40일후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시며 승천하셨다.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약속한 성령을 기다리라고 부탁하셨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성령받기 위함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제자들이 실패한 도시이지만 주님께서 그곳에서 꼭 하실 일이 있었다.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아는가? 13절을 보라.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13절상)
그들은 누군가의 집에 있는 다락방으로 돌아갔다.
그곳은 15절에 보면 120명이 모일 정도로 큰 다락방이었다.
큰다락방이 있다는 것은 부자집인 것을 말해 준다. 누구의 집일까?
바로 최후의 만찬을 가진 마가의 집에 있는 다락방이었다.
마가는 마가복음을 기록했을 뿐만아니라 바나바, 바울과 전도여행을 같이 떠나기도 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마가의 다락방으로 모은 중요한 이유는 최초의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다.
제자들이 돌아간 곳은 마가의 다락방이라기보다 교회였다.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두 개의 공동체가 있는데 바로 가정과 교회이다.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둘이 하나되는 가정을 이루게 하셨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예수를 구주로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세워졌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이 세우신 두 기관, 가정과 교회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가정과 교회가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지면 세상은 병들고 무너진다.
한국의 위기라 하는 이유는 이혼률 증가로 가정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1년 한국인의 이혼율은 47%를 기록했다.
이는 세계 3위의 높은 이혼율이다. 우리 가정은 건강한가?
건강하다는 것은 5대1 법칙이 적용되는 부부관계를 말한다.
행복한 부부는 대화를 들어보면 긍정적, 부정적 반응의 비율이 5대1이다.
거꾸로 이혼한 부부에게도 5대1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이혼한 부부는 부정적 반응과 긍정적 반응의 비율이 5대 1이다.
여러분의 부부관계는 어떤가? 자세히 살펴보라. 몇 대 몇인지?
어쨌든 실망하지 말고 내가 긍정적, 부정적 반응을 5대1로 만들면 된다.
상대방이 나에게 하는대로 하는 것은 누구나 그렇게 한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네가 하나님의 자녀냐? 그러면 너는 용서하고 용납하면 안되겠니?
너는 믿음의 사람 아니니?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기다리며 섬기면 반드시 되리라.
한 번 실수할 때마다 다섯 번 정도 다정한 말과 애정표현을 해야 건강한 가정이 된다.
나는 우리 가정을 건강하게 세우라고 보냄받았다. 내가 죽어야 가정이 산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 뿐만아니라 교회도 건강하게 세워가야 한다.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한 교회가 두 패로 나뉘어 싸우고 예배드리는 모습은 낫설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교회들의 약점을 비판하고 손가락질하지 말고 처음 세워진 교회를 회복해야 한다.
처음 세워진 초대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였다.
마음에 드는 사람만 모이지 않고 서로 다르고, 연약하지만 그들은 함께 모였다.
거기에는 남자만 있지 않고 여자들까지 함께 했다.
심지어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한 예수님의 아우들 까지 모여 교회는 만들어졌다.
누가 모였느냐를 본다면 손가락질하고 비난하겠지만 우린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봐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오점 투성이지만 그들이 모인 교회는 오로지 2가지를 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행1:14)
마음을 같이 했다. 그들은 기도에 힘썼다. 이게 교회를 소개한 최초의 표현이다.
교회의 표지는 무엇인가?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에 힘쓰는 것이다.
예수님은 교회를 기도하는 집이라 부르셨다. 교회는 기도할 때 사명을 감당한다.
교회는 기도할 때 세상을 향해 영향력을 미치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중남미의 변방국 과테말라가 세계적인 관심 국가로 떠오르고 있다.
과테말라는 인구 1천2백만에 면적이 우리나라보다 약간 커다란 중미의 작은 나라이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중남미 국가로는 보기 드물게 기독교 인구가 50%를 넘었다.
또 하나는 기독교인의 비율이 0%였던 한 도시가 92%로 복음화 되었다.
이 기적의 도시는 과테말라 시내에서 4시간 정도 떨어진 알모롱가(Almolonga)이다.
알모롱가는 불과 십년 전만 하더라도 범죄와 부정부패, 알콜 중독과 우상숭배로 가득했다.
척박한 지형으로 인한 농산물이 부족했고 찢어질 만큼 가난했다.
이 버려진 도시에 복음이 전해지면서 30여 개에 이르는 술집 유흥업소가 문을 닫았다.
각종 범죄로 인하여 수형자들이 넘치던 네 곳의 교도소가 문을 닫았다.
대대로 물 부족으로 허덕이던 이 곳에 기적같이 지하에서 샘물이 터져 나왔다.
특히 당근은 세계 최대를 자랑할 만큼 크기와 맛으로 유명한 도시가 됐다.
과거에는 한 달 수확물이 고작 트럭 6대 분량 이었으나
하나님의 영광스런‘터치’이후 땅은 축복을 받아 하루에 50대를 수확하게 되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
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 7:14)
교회가 살아나 기도하면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고 땅까지 고치고 새롭게 하신다.
교회가 기도에 힘쓸 때 과테말라 알모롱가에서 일어난 기적은 계속 재현된다.
지금 제주도에서도 이런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복음화율 6%의 땅에서 G12사역으로 5년만에 200명이 1000명으로 부흥되었다.
G12사역은 예수님이 12제자를 키우듯이 모든 성도가 12명의 제자를 키우는 거다.
이번에 포스트 엔카운터를 다녀왔는데 제주열방교회 이영근 이수진 집사가 강사였다.
목회자 이상으로 탁월한 그들의 강의와 사역을 통해 많은 도전을 받았다.
그들의 배후에는 금식하며 기도하는 제자들이 있었다.
나는 다섯 번째 강의 시간에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에 대한 갈망과 사모함에 눈물이 빗물처럼 흘렀다.
교회의 중요한 표지는 기도에 힘쓰는 것이다.
기도한다는 것은 주님앞에 항복하는 것이며 주님밖에는 나의 도울 자 없다는 뜻이다.
기도하지 않고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내 맘대로 살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걱정되는 일이 있는가?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 있는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가? 문제가 생겼는가? 미래가 불투명한가?
어떤 상황에서든지 기도하면 된다.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들고 있으면 승리가 보장된다.
여호수아가 열심히 싸우는 것 보다 모세가 두 손을 올리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삶을 살 수 없다.
두려운가? 혼란스러운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길 원하는가?
문제에 대한 답이 필요한가? 지금이 기도할 때이다.
한 두 번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계속하여, 지속적으로 기도를 쌓으라 하신다.
김재범 선수가 사람들 앞에 반짝 기도를 한 게 아니다.
그는 지속적으로 기도에 힘썼고, 그 결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깊이 경험했다.
기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길 바란다. 기도제목을 적고 구체적으로 기도하길 바란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교회의 기초/행1:12-14
2007-02-08 14:56:57
처음 세상은 어떠하였을까요?
더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동산에서 처음 사람과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함께 걸었습니다.
아담은 하와를 보면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 자기 몸처럼, 자기의 분신으로 소중히 여기며 사랑하였습니다.
아름다운 동산에는 온갖 짐승들이 뛰어 놀고 있었는데, 아담과 하와는 모든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코가 길어서 코끼리, 목이 길어서 기린, 까악 울어서 까지, 깡깡 뛰어 다녀서 캥거루 - 아담과 하와가 부르는 것이 그 동물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사자와 표범과 호랑이와 함께 놀아도 해가 없었습니다.
사자와 호랑이도 풀을 뜯어 먹었습니다.
어린양과 사자가 함께 놀았습니다.
하나님의 동산에는 생명수가 흐르는 강이 있고, 생명나무에 생명열매가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생명수를 마시고, 생명열매를 먹었습니다.
하나님의 동산에는 해함이 없고 상함이 없이,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없었습니다.
더 없이 행복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나님처럼 되기 위하여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아름다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있는 세상,
모든 짐승들이 먹느냐 먹히느냐의 생존경쟁, 약육강식이 있는 세상,
늙고 병들고 한 번 죽는 것이 정해진 세상에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동산을 잃어버린 채, 이 세상에서 잠간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 땅에 세워진 처음 교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세상에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40여 일 후에 주님께서는 구름을 타시고 하늘로 승천하였습니다.
감람산에서 승천하실 때에 주님께서는 모인 500여 성도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아니하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고 찬양하며 한 주간을 보냈습니다.
이것이 처음 교회입니다.
첫째로 처음의 교회는 모이는 교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부는 고기 잡는 사람입니다. 고기 잡으러 가야 합니다.
농부는 농사짓는 사람입니다. 농사를 지으러 가야 합니다.
세리는 세관에 앉아 있어야 합니다. 세관으로 가야 합니다.
다 자기의 일터로 가야 하지만, 주님 말씀 때문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주님 말씀 때문에 마가의 다락방에 함께 모였습니다.
교회는 모이는데서 시작됩니다.
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입니다. 이는 "하나님으로 부터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 라는 뜻입니다.
동창들이 모이면 동창회, 마을 주민들이 모이면 반상회, 놀기 위하여 나가면 야유회, 좋은 사람들이 모이면 친목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때문에 함께 모이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 즉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교회는 세상의 많은 민족 가운데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고, 부르심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애급에서 종살이 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불러내셔서 구약교회로 세우셨습니다.
신약교회도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우리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고, 부르심을 받아서 오늘 이렇게 함께 예배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된 것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배드리고 있는 이 건물은 정확하게 말하여 교회당입니다.
교회당 안에 있는 우리가 교회인 것입니다.
마18:20에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는 말씀처럼 몇 사람이라도 교회는 모이는 가운데 시작되고, 모임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모임을 통하여 하나님은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되기 위하여 첫째 모여야 합니다.
교회가 든든히 서려면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교회가 약해지는 때는 잘 모이지 않을 때입니다.
그래서 히10:25에서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인데, 모이지 않으면 교회가 아닙니다.
유럽의 어느 교회 목사님이 한국을 방문하셨습니다.
한국교회를 부러워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도 교회에서 음악회도 하고 싶고, 구제도 하고 싶고, 봉사도 하고 싶고, 전도도 하고 싶은데 사람이 없어서 못합니다. 교인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입니다.”
유럽의 교회들은 아주 훌륭한 건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당이 텅텅 비어 있는 것입니다.
20년 전 보다 모이는 횟수가 1/10로 줄어들었답니다.
칼빈의 고향인 프랑스의 푸에티에라는 중세에 유명한 종교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주일예배에 30명 정도가 출석하는데 7명이 한국유학생이고 10명이 아프리카 흑
인 유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잘 아는 선배 목사님이 호주를 여행하셨습니다.
주일이 되어 예배드리기 위하여 눈에 보이는 큰 교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교회당에서는 찬양대원들 10여 명이 찬양을 연습하고 있었답니다.
예배 시간이 되었는데 큰 교회당에 노인 몇 분이 앉아 계셨답니다.
찬양대원과 몇 명의 사람이 모여 주일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교우들의 믿음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분은 참 믿음이 좋아? 그 분은 믿음 생활을 참 잘해?”
무엇을 보고 이야기 합니까?
첫째가 되는 판단 기준은 성수주일입니다.
사람들에게 진실하다고 칭찬을 듣고, 교회에 봉사를 많이 한다고 하여도 주일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결코 믿음이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는 첫째 조건이 성수주일입니다.
모이기를 힘쓰는 사람이 훌륭한 교인입니다.
모이기를 힘쓰는 사람은 결코 믿음을 버리고 세상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모이기를 게을리 하는 사람은 신앙이 결코 성장하지 않습니다.
모이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이제 새로운 해, 월산교회가 100주년 되는 새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1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교회의 교인처럼 새해에 우리 모두 한 가지만 더 잘하기로 약속합시다.
모이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지금보다 딱 한 번 만 더 모입시다.
주일 낮 예배 만 출석하는 교우께서는 찬양예배까지 출석하시고
주일 찬양예배까지 출석하는 교우께서는 삼일예배까지 출석하시고
삼일예배까지 출석하시는 교우께서는 꼭 사랑방 모임에 참석하시고
또 한 가지 1주일에 한 번은 새벽기도회에 나오시고
새벽기도회 1번 2번 나오시는 교우께서는 3번 4번 나오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모이는데 한 번 더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모이는 가운데 주님의 큰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모이는 가운데 우리 월산교회는 아름다운 교회, 든든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둘째 처음 교회는 신앙고백이 있는 모임이었습니다.
120명의 인원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는데 그들은 믿음 때문에, 신앙 때문에 모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성자 하나님이시며,
하늘의 영광 자리를 내어 버리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으나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고,
지금은 하늘로 승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고
장차 승천하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하는 믿음 때문에 모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시고 가이사랴 빌립보 지경으로 가시다가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는 유명한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칭찬하시며 "네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주겠다." 말씀하셨습니다.
이 해석에 대하여 천주교회와 우리 개신교회는 해석을 달리합니다.
천주교회에서는 “네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하는 말씀을 베드로 위에라고 해석합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 베드로의 후예인 교황, 신부 위에 교회를 세웠다고 믿습니다.
천국 열쇠도 교황 신부가 가지고 있습니다. 신부에게 사죄의 은총이 있습니다. 신부가 없으면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프로테스탄트 개신교회에서는 베드로가 고백한 믿음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고 믿습니다.
믿음으로 구원함을 얻듯이 믿음 위에 서 있는 교회에 천국열쇠를 주셨다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신앙고백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믿음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열심이 모이는 일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분명하고, 확실한 신앙고백을 모일 때마다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고백이 없는 모임은 사람의 모임입니다.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모임입니다.
신앙고백이 없으면 결코 하나님의 교회는 될 수 없습니다.
외국에 있는 한인교회는 고국을 떠나 이역만리 객지에서 동포가 그립고, 김치가 먹고 싶고, 사람들을 통하여 직장을 얻고 싶어서 등 등 신앙과 관계없이 이런 저런 이유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렇게라도 모이는 것이 안 모이는 것 보다 낫겠지만 신앙이 없이 모이면 온전한 교회의 식구가 될 수 없습니다.
신앙 없이 모이면 교회가 아니기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임이 믿음 때문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고, 주님을 사랑하여 모이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예배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과 정성과 시간을 드리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배 가운데 우리 주님의 보혈의 피로 나의 죄와 허물을 다 용서하여 주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간절히 사모하며 드리기를 바랍니다.
오래 전 영생교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교주가 사기 혐의로 구속이 되었습니다.
교주의 비리가 밝혀지면 다 돌아설 것 같고, 교주가 구속되면 따르던 교인들이 다 흩어질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더 열심히 모였습니다. 찬송도 힘 있게 부르고, 기도도 간절히 하고, 주위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전혀 아랑 곳 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영생교 교주는 성경을 보는 것 같으면서도 정감록이나 불경 같은 것을 들먹이며,
자신이 정도령이고 재림 예수라고 말하고,
집을 팔아서라도 돈을 가져오라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데
교인들이 그렇게도 많이 몰렸고, 열정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가!
그런데 나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 성경에 있는 말씀을 통하여 생명과 구원의 말씀을 전하는데,
오히려 사이비 이단보다도 적게 모이고, 사이비 이단 교인들보다도 열정이 없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러면 “나도 교주가 될까?”
- 이러한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헛된 말에 미혹되어, 헛된 것을 믿으며, 헛된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도 저런 열심이 있다면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며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믿으며 예수님의 거룩한 피로 세운 교회를 섬긴다면 우리는 헛된 것을 믿는 사람들 보다 더 열심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모일 때 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신앙과 사랑을 고백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찬송도 열심히 부르고, 말씀도 마음을 열고 열심히 경청하며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기도도 정성으로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배드리는 이 한 시간이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신앙고백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처음 교회는 마음을 같이하는 힘 있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는 말씀을 믿고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신앙고백을 하고, 사랑의 고백을 드렸습니다.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을 기다렸습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하였습니다.
주님이 승천하실 때에 500여 성도가 보았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하는 주님의 말씀을 500여 성도가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고기 잡으러 가고, 어떤 이들은 장사하러 가고, 어떤 이들은 놀러가고, 어떤 이들은 하루 이틀 기도하며 기다렸지만 아무 것도 받지 못해서 실망하여 집에 가고, 어떤 이들은 주님의 약속을 믿지 못해 집에 갔습니다.
반 이상, 380여 명이 이렇게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굳게 잡은 120여 명의 성도들은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하루를 기도해도, 사흘을 기도해도, 닷새, 엿새를 기도하며 기다려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받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약속하셨는지 알 수 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주간이 지났을 때에,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린 사람들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께서 오셔서 강하게 역사하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통하여 세워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교인들이 채워져야 하고, 교인들은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도 기도로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에 대하여 의심하고, 내가 기도한다고 하나님이 들으실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못된 계모 밑에 자라는 아이는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사 달라고 조르지 못합니다.
사주지 않을뿐더러, 심하게 야단을 맞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예 사달라고 이야기조차 꺼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아이들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엄마 아버지에게 사달라고 이야기 합니다.
사주지 않으면 떼를 씁니다. 크게 보챕니다.
결국에는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신 하나님,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7:9-11)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또 말씀하셨습니다.
“(마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기도하는 것을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 말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이 왜 죄입니까?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죄이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죄이고. 하나님 없이 살기 때문에 죄입니다.
우리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하는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을 죄인 것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은 비좁고 누추한 곳입니다. 그러나 간절한 기도가 있는 마가의 다락방은 주님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작은 다락방이 세계를 위한 구원의 약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도 없이는 힘 있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도 없이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도는 교회의 심장입니다. 기도가 멎는다면 살아 있다고 하나 죽은 교회, 생명력을 잃어버린 교회,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없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기도합시다.
우리 교회를 기도로 채웁시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하심,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은혜 주심을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처음 교회는 일치가 있었습니다.
모인 사람들을 보게 되면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를 제외한 모든 사도들과 주님을 사랑하던 여인들,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 그리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 등 120명쯤 되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였지만 그들은 하나를 이루었습니다.
사도와 평신도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도 없이 평신도만 있거나 혹은 평신도 없이 사도만 있어서는 정상적인 교회가 되지 않습니다.
성직자와 평신도가 함께 섬김으로 아름답고, 조화 있고, 건전한 교회를 세웠습니다.
오랜 제자와 새로운 제자가 함께 있었습니다.
오래된 제자가 텃세를 하여 새 제자들을 소외시키거나, 새로운 제자들의 무례함으로 오랜 제자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함께 섬김으로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120명의 성도들 가운데 예수님의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증거 하실 때에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미쳤다는 생각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을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함께 기도할 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요, 형제라는 이유로 120명의 사람들 가운데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사람들 모두가 우러러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족이라고 하여 교회를 좌지우지 하려 하지 않았으며,
모인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예수님의 가족을 무시하지도 않았습니다.
처음 교회에는 일치가 있었습니다. 하나 됨이 있었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함께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처음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었습니다. 더 없이 행복한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처음 교회는
모이는 일에 열심인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신앙고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가 있었습니다.
모든 이들이 하나가 되는 함께 섬겼습니다.
우리교회도 모이는 일에 열심히 없다면, 뜨거운 신앙고백이 없다면, 간절한 기도가 없다면, 함께 섬기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동산을 잃어버린 것처럼 - 주님의 교회라고 하지만 처음 교회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을 보면
사데 교회를 향하여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말씀하셨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부자라 하지만 가난하고, 가련하고, 눈멀었고, 벌거벗었다.”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교회가 100년이라는 긴 역사를 가졌지만 늙은 교회가 되어서도 안 되고, 죽은 교회가 되어서도 안 되고, 가난하고, 가련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처음 교회처럼 모이는 일에 힘쓰고, 예배 때마다 분명한 신앙고백을 하고, 기도하는 일에 힘쓰고, 함께 섬기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성령의 충만함이 이 교회 위에, 이 교회에 속한 우리 모두 위에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마가 다락방 교회(1)/행1:12-14
2003-02-25 16:12:43
어느 덧 12월이 되었습니다. 7년전 12월은 우리 샘물교회가 시작된 날입니다. 사실 12월 3일에 모여 처음 예배를 드렸고, 16일은 창립예배를 드린 날이었고, 1년 후 12월 14일은 교회 설립예배로 드린 날입니다. 감격스런 7주년을 바라보며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서 마가의 다락방 교회와 같이 뜨거운 기도와 사랑과 헌신 그리고 예배로 충만한 역사가 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가의 집에서는 신앙의 대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성령을 기다리기 위하여 120명의 백성들이 그 집에 모여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 주의 약속을 믿고 바라보며 기다렸습니다. 그 곳은 예배의 장소요, 기도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마가 다락방 교회라 불러봅니다.
1. 마가의 가정은 믿음의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크게 헌신한 가정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입니다.(행12:12) 마가의 이름은 두개인데, 유대식 이름은 요한이고, 로마식 이름은 마가입니다. 그래서 마가 요한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마가 요한의 집은 매우 부유했습니다. 왜냐하면 120명이라는 사람이 모여서 거처할 수 있는 다락방이 있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해 줍니다. 대단히 넓은 집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주택의 크기가 생활력과 관계가 깊습니다. 그 생활력으로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는 주의 일에 헌신한 것입니다. 120명이 10일간 숙식을 하며 기도하도록 협력하였습니다. 이것은 귀한 일입니다. 그때 당시 많은 물질을 가진 사람이 그 집 말고도 많이 있었겠지만 오직 마가의 다락방만 크게 사용된 것입니다. 그의 헌신이 영원히 기억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을 갖고 계십니까? 주를 위하여 사용되면 이렇게 빛이 납니다. 성경에 이름이 올라갑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마가의 다락방은 많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입니다.
슈바이처는 철학, 음악, 의학 박사 등 몇 개의 박사학위를 가진 분입니다. 유럽의 많은 대학에서 그를 교수로 초빙했지만 그는 거절하고 아프리카의 람바네데에 가서 90평생을 나병환자를 치료하면서 보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금도 그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당시 유럽에 유명한 대학교수가 많았을 것이지만,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알지 못합니다. 오직 주 예수님이 주신 사랑을 실천했던 자, 슈바이처를 주님께서 기억하십니다. 우리들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의사 누가는 바울 사도의 주치의였습니다. 바울 사도가 선교여행을 가는 곳에는 항상 누가가 있었습니다. 바울 곁에서 그의 건강을 점검해 드렸습니다. 바울은 안질, 간질 때문에 고생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의사인 누가가 항상 바울과 함께 하며, 하나님의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드렸습니다. 바울의 큰 사역 뒤에는 누가와 같은 좋은 협력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도 예수님의 12제자는 아니었지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고, 일생을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입니다. 이처럼 내게 있는 것들이 주를 위해 드려질 때 소중하게 되고, 하나님의 손에 붙들렸을 때 위대한 일들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을 갖고 있습니까? 재물입니까? 우리는 욥처럼 "내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왔사온즉 또한 벌거벗고 가올지라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오 취하신 자도 하나님이시라"라는 고백을 바탕으로 주신 것으로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고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확실히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습니다. 갈 때도 빈손으로 갈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인간들이 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탐욕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재물을 마가와 같이 잘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멋있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그의 집을 몽땅 예배당으로 하나님께 헌납하였습니다. 그것이 오늘 지구상에 있는 모든 교회의 모교회(母敎會)가 된 것입니다. 그 교회는 예수 믿는 우리 모두에게 기억되는 소중한 교회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물질을 바르게 써야 합니다. 보람 있게 써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더 큰복을 받게 됩니다. 재능이 있습니까? 이 재능을 하나님을 위하여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십니까? 그 건강을 하나님을 위하여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는 말없이 봉사하고 수고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이런 분들은 시간이 남아돌고, 물질이 남아서 그렇게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일을 가장 우선으로 여기는 믿음 때문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이미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고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과 같은 분명한 신앙고백을 해야 합니다. "내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사나 죽으나 내가 다 주의 것이로다"(롬14:6) 이것이 신앙인의 바른 삶의 모습입니다. 죽어야 사는 것입니다. 자꾸 나를 살리려 하니 문제입니다. 내가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안에서 내가 바르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마가의 가정은 믿음이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주님께 드려지는 가정, 쓰임 받는 소중한 가정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마가의 다락방은 처음 교회가 되었습니다.
본문 14절에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교회는 무엇입니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사람은 500명입니다.(고전15:6) 그 중에 120명이 마가 다락방에 모여 성령을 기다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전혀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이 마가 다락방이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배당의 범위를 좁혀서 생각하면 여러분 가정이 예배당이 될 수 있습니다. 가족끼리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가 될 때 예배당이 되는 것입니다. 금요일에 구역끼리 모여서 구역 예배를 드리면 그것도 예배당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우리들 하나, 하나가 교회입니다. 교회의 생명력은 건물이 아니라 예배입니다. 예배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예배를 실패하지 말아야 합니다. 늘 드리는 예배가 그저 가인의 예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아벨의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얼마나 예배를 드리십니까? 구역 안에서 마가의 다락방처럼 모여 얼마나 기도하고, 친교에 힘쓰십니까? 많은 예배 속에서 우리의 영이 빈곤해진다면 무엇인가 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영이 늘 새롭고 풍성해져야 합니다. 마가의 다락방이 처음 교회가 되었듯이, 우리의 마음 성전이 예배로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도, 모이는 곳곳마다 뜨거운 예배의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가 살면 신앙이 삽니다. 즐겁고 행복한 신앙생활의 비결은 바로 예배 성공에 있습니다.
3. 마가 다락방 교회는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마가 다락방 교회에서 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일꾼을 세웠습니다. 자살해 죽은 12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의 후임을 선출했습니다. 요셉과 맛디아를 추천하여 제비뽑아 맛디아를 12제자의 수에 보충하였습니다. 마가 다락방에서 두 번째 한 일은 기도입니다. 모여있던 120명은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전혀 기도"에 힘썼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 말은 첫째, 세상의 많은 일들이 있지만 그 일을 미루어 놓고 기도하는 일을 우선 순위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둘째,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 되게 할 수 있는 소중한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를 잃은 성도, 기도가 없는 교회는 어떤 소망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심령 안에서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말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는 누구나 기도해야 하겠지만, 특히 창립 7주년을 맞이하면서 샘물교회 처음 일군으로 임직을 받게 되는 여러분, 무엇보다 기도하십시오. 임직 받고 변질되는 사람 있으면 불행합니다. 기도하는 일에 앞장서고, 봉사하며 섬기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혹시라도 권사 행세, 항존직 행세하려고 하면 결코 주님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샘물교회 또한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크게 후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소 기도의 본을 보이며, 섬기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임직과 더불어 충성하므로 "과연 저 분들은 주님께 영육간에 복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바랍니다.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을 기다리며 뜨겁게 기도한 사람은 120명이었습니다. 그들도 생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미루어 놓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10일간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이들은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3일 금식하며 기도한 것처럼 간절하고, 결사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 불같은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였습니다. 120명 전부가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성령 충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령께서 내 마음을 100% 지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께서 내 인생 전부를 지배하는 것이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충만은 곧 예수 충만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기쁨이 넘치고, 입에서 예수가 증거 됩니다. 담대하게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며 살게되는 것입니다.
마가 다락방에서는 뜨겁게 기도한 후 성령을 충만하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일어서서 주의 일을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전도였습니다. 그들은 모이면 기도했고, 예배드렸습니다. 흩어지면 전도했습니다. 또한 서로간에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고, 이웃을 구제했습니다. 주님 주신 사랑을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이렇게 변화된 모습을 본 불신자들은 믿는 자들을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교회는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은 오늘날 우리들의 가정입니다. 오늘날 우리 샘물교회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은 믿음의 여인 마리아의 헌신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믿음이 그 아들 마가 요한에게 이어졌습니다. 120명은 성령을 기다리며 뜨겁게 기도하다가 성령 충만함을 얻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은 기도하는 장소였고, 예배의 장소였습니다.(행12:12) 이처럼 여러분의 가정이 마가의 다락방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뜨거운 기도가 있기를 바랍니다. 살아있는 예배의 감격이 있으며,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섬김과 사랑이 실천되어지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예수를 담대하게 증거 하는, 오늘의 마가 다락방 교회와 같은 우리 샘물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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