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모음/여호수아 설교 모음

여호수아 14:6 - 15절 설교 모음

Jessi J 2025. 4. 2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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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비전 그리고 분명한 대가 /14:6-12/ 김병삼목사

2024-11-18 15:51:42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7

8

9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10

11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오늘은 두 주 전에 나누었던 갈렙의 이야기를 가지고 비전에 대한 말씀을 더 풀어가 보려고

.

‘ ’

합니다 사실 요즘 사람들에게 비전이라는 말은 잘 어울리지 않는 말처럼 보입니다

‘ ’

.

소위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미래의 비전을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

포기하거나 유보한다는 것이 그렇게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비전을 품은 사람들을 통해 이 세상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비전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이 쓰신다는 사실입니다.

묵상팀의 한 권사님이 아주 좋은 포인트를 잡아 주었습니다.

‘ ’, ‘ ’

비전을 가진 품은이라는 표현 보다는 비전을 받은이라는 표현이 더 올바르지 않을까 비전은

‘ ’

.

?

방향이 없으면 갈 수 없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히 가다가 예수님을 강렬하게

,

만나 바뀐 것처럼 선명한 비전으로 올바른 방향을 찾아간 사람이 아닌가

또 다른 권사님은 이렇게 비전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

‘ ’ ,

하나님의 비전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신다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

하나님의 비전을 심어주신다가 맞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비전을 알지 못한다 어떤 경우

어떤 상황을 통해 그것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

, - 1

,

명심해야 할 것은 이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꿈을 꾸는 단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 알려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

,

안산에 가면 유명한 교회가 있습니다 지금은 은퇴하신 김인중 목사님이 사역하시던 동산

교회인데 요즘은 동산 고등학교로 인하여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언젠가 그분의 간증을 들은

.

.

20

적이 있습니다 여 년 전 사모님과 갓난아이를 업고 개척을 시작하던 당시 꾸었던 꿈을

.

지금 실현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안산의 볼모지에서 고등학교에 대한 꿈을 꾸었고

,

영적으로 척박한 그 곳에서 영적 부흥의 역사를 꿈꿨던 그 목사님의 비전이 하나님께서

,

주셨던 놀라운 소망이 오늘의 동산 교회를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꿈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섭고 두려운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입으로 시인한 것을 누군가 들었다면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니 말입니다

,

,

비전을 선포하는 순간 나의 삶이 이제는 사적인 영역을 넘어 공적인 영역으로 넘어가는

.

것이니 말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나의 비전선포를 들으셨다면 더욱 떨리는 일이

아닐까요?

,

,

우리의 가슴에 비전이 심겨지고 그 비전을 선포하는 순간 우리에게는 두 가지 결과 중

하나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선포된 비전으로 인해 명확한 삶을 살든지,

선포된 비전이 있으나 그렇게 살지 못한 것으로 인해 비난의 대상이 되든지.

비전의 선포는 우리의 삶을 아주 래디컬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꿈은 단지 몽상에 불과합니다

‘ ’ .

오스왈드 챔버스는 주님은 나의 최고봉 월 일 묵상에서 이런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

[ ] 5 9 .

,

이상입니까 비전입니까

?”

이상과 비전은 다릅니다 이상은 영적인 영감이 없지만 비전에는 영감이 있습니다 이상에 빠진

.

.

사람들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신을 정의하면서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

의도적으로 이행하지 않도록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께 불순종을 하면서도

.

하나님이 공의와 자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

.

하나님에 관한 바른 개념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개념으로 의무를 수행하지 않을 근거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전이 있는 곳에는 올바른 삶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비전은 순종하고자 하는

.

( )

도덕적 영적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

이상은 파멸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충만해져서 당신에게 이상만 있는지 아니면 비전이

.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 ’

챔버스에 의하면 이상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나

.

,

자신의 판단에 의해 행위가 결정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영감이 분명하다면 이것은 순종과 관계된 일입니다

,

‘ ’

. - 2

- 3

확실한 비전을 붙드는 방법

여호수아 장 절 말씀에 보면출애굽 당시의 열두 정탐꾼 중 하나였던 갈렙의 14 6-12 ,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는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했던 유일한 인물이었으며헤브론 땅을 기업으로 ,

받은 것은 그가 가졌던 신앙의 열매 때문이었습니다.

년 동안이나 꿈꾸어 오던 약속의 땅을 기어코 자신의 것으로 소유한 사람그가 바로 45 ,

비전의 사람 갈렙입니다.

갈렙에게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늘 비전을 품고 살았기 때문입니다목적이 있는 .

한꿈이 있는 한그리고 비전이 있는 한그에게 나이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비전을 , , , .

품었던 갈렙은 헤브론 땅을 기업으로 얻는 것이 더 이상 환상이 될 수 없었으며마침내 이 , “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사실 비전이라는 것은 무엇을 이루어 내는 결과보다무엇을 이루어야 한다는 꿈이 ,

사그라지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갈렙의 경우그가 무엇을 이루어야 비전을 이룬 . ,

것이라고 생각했다면년의 시간들을 견디는 것이 가능했을까요, 45 ?

제가 자주 이야기 하는 것 중에 하나인데,

비전이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과정가운데 끊임없이 반복되는 ‘ ’ , ‘ ’

믿음의 고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하죠.

내 인생의 전성기는 언제고언제 쇠퇴기를 맞이하는가, ?

그런 면에서 오늘 갈렙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여호수아 장 절14 11 .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11.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진짜 갈렙이 년 전이나 지금 그의 힘이 똑같을까요중요한 것은 그 . 45 ?

때 주신 꿈을 간직하고지금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나아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

말입니다.

제가 광야에 관한 설교를 참 많이 했습니다그리고 직접 이스라엘 백성이 걸었던 광야를 .

짧게나마 걸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아무리 생각해도이스라엘 백성들은 . ,

광야에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행동들을 많이 했습니다‘ ’ .

그런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비전이 .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광야를 지나며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하는 비전을 주시는데,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광야를 벗어나는 비전을 가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 4

즉 그들의 이상과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이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이 아니라자신의 이상을 이루는 것이 목적이 될 때수단을 정당화하는 일들이 , , ‘ ’

얼마나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왔는데당장 눈에 보이는 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하나님의 ,

형상을 금송아지로만들어 버리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 .

이 부분에 대하여 이진희 목사가 쓴 가나안에 거하다에 보면 정리가 아주 잘 되어 있습니다[ ] .

광야를 벗어나야만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가나안에 들어가야만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광야를 . .

벗어나지 못할지라도 광야를 감사함으로 견디고 이겨 내면그 사람은 광야에서 승리한 것이다, .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갔다 할지라도 원망과 불평과 불신과 불순종으로 그곳을 지난다면그 사람은 ,

실패한 것이다광야를 벗어나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만이 성공은 아니다. .

모세는 평생 광야를 벗어나지 못했다광야에서 태어나 광야에서 살다가 광야에서 죽었다가나안에 . .

들어가지 못했다그러면 모세는 실패한 사람인가아니다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실패한 . ? .

것이 아니다.

그의 목표는 광야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었다가나안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다자신에게 주어진 . .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그리고 그는 그 목표를 이루었다. .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광야에서 실패했다그러나 모세는 가나안에 .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광야에서 승리했다. . .

어렵게 순종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다면 괜히 순종한 것일까결과가 좋아야 성공한 것이고 순종한 ?

보람이 있는 것일까결과가 좋지 않으면 실패한 것일까순종에는 실패가 없다성공하기 위해 ? ? .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와 상관없이 순종하는 것이다순종하는 사람은 이미 승리한 사람이다. .

비전은 우리를 결과중심적인 사람이나 사건중심적인 사람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줍니다.

지금 일어나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좀 더 크고 명확한 것을 보게 합니다, .

주 전에는 제가 선명한 비전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2 ‘ ’ .

선명한 비전이 있을 때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명확해지는 것입니다선명한 비전이 , .

사라지면 우리의 삶이 쉽게 타협을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비전이 사라진 사람의 특징은 .

육신의 만족을 위해 산다는 것입니다‘ ’ .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삶에서 자꾸 육신의 만족을 추구하고자 하는 생각이 든다면선명한 ,

비전이 사라졌다는 증거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선명한 비전이 사라지는 것에 , ‘ ’

대한 염려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가 오늘 살펴보고 있는 여호수아 장의 말씀을 보세요과연 년 광야를 지나는 동안 14 . 40

누구나가 겪어야 했던 장애물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피해갔을까요‘ ’ ?

- 5

그렇지 않습니다동일한 광야에서 동일한 장애물을 경험하고 살았을 것입니다비전이 있는 . .

사람의 눈앞에도 문제는 늘 존재합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비전의 사람은 그들의 비전을 가로막는 문제를 기꺼이 감당하고 ,

해결한다는 것입니다그 어떤 것도 대가를 치루지 않고 이루어지는 것이 없습니다우리의 . .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 어떤 집사님의 고백을 들었습니다목사님 제 삶이 바뀌었어요저도 제 자신이 . “ .

그렇게 달라질 줄 몰랐어요제 변화는 성경을 읽으면서 시작되었어요번 성경을 통독했을 . . 3

때남편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소망이 생겼어요제 삶이 간증거리가 되는 소망 말입니다, , . .”

그분은 지금까지 신앙생활도 하고 봉사도 했습니다그러나 그 내면에 일어나지 않던 변화가 .

성경을 읽으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말씀을 읽으면서 내 인생이 바뀌었어요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 ?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바꾸어 주셔서 내 삶의 우선순위가 이렇게 바뀌었어요라는 결단이 “ !”

뒤따라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이렇게 결단을 하고 나니제 삶에서 이렇게 헌신하며 살 수밖에 없게 , “ ,

되었습니다라는 결과가 찾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

마태복음 장 절8 28-34에 보면 예수님은 가다라 지방에서 귀신들린 자 두 명을 만나셨고그 ,

귀신들을 쫓아내시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그런데 예수님은 귀신을 그냥 내쫓은 것이 .

아니라돼지 떼에게로 귀신을 몰아내고돼지 떼는 바다에 들어가서 몰사하게 됩니다, , .

예수님이 귀신 들린 자들을 고쳐준 사건은 사람들에게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지만자신들의 ,

재산인 돼지를 잃는 것은 달갑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귀신 들린 자들은 사납기도 했고때로는 벌거벗은 채로 마을 사람들을 해치기도 했습니다, .

그들의 문제를 예수님께서 해결하셨지만 기뻐할 수만 없었던 이유는그들이 치러야 하는 ,

대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광야를 가로질러야

했습니다그리고 그 땅을 차지하고 있는 백성들과의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

그러나 그들은 광야에서의 목마름을 참지 않고 불평했습니다그들은 애굽에서 먹을 수 .

있었던 고기를 먹지 못했을 때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습니다분명한 것은 이 과정을 지나지 .

않고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하나님 주시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신실한 .

신앙인이 되기 위하여 끊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아주 익숙한 일들을 포기하고새로운 결심을 해야 할 것입니다, .

사실 그동안 성령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에서 많은 변화를 요구하셨지만 우리들이 미루어 왔던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방해의 요소들이 극복되어야 합니다.

.

잘 알아야 합니다 꿈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방식을 포기하고 문제를

.

해결해야합니다 오늘도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설 수 있으면 그

,

음성을 따라 살 수 있다면 우리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한다면

제가 언젠가 번역했던 책에 나왔던 예화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헤비급 권투 챔피언이었던 진 터니

.

(Gene Tunney)

,

. . .

1

라는 사람은 차 대전 중에 양 주먹이

부서졌습니다 더 이상 권투 선수로서 강펀치를 휘두를 수 없었던 그는 그의 주치의이자 매니저였던

사람에게 더 이상 권투를 할 수 없을 거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삶의

.

.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전 시합에서 쓰던 권투의 패턴을 바꾸기로 마음먹은

.

,

것입니다 늘 강펀치로 이겨왔는데 이제는 기술적으로 머리를 쓰는 권투를 구사하기 시작한

.

,

것이죠 바삐 움직이면서 점수를 따내고 요리조리 교묘히 빠져나갔습니다 그러한 새로운 작전으로

그는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었습니다.

.

그가 바꾼 것은 작전 기술이었지 그의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

구원과 성공을 향한 삶의 목표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바뀌는데 있습니다 우리

.

주변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핸디캡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극복하고

,

성공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음을 보게 됩니다.

때로는 우리의 강펀치만을 가지고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나의 강점인 주먹이

.

.

부서질 수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인생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가끔 어려운 삶의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해도 인생이 잘

.

.

풀리지 않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때로는 건강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서 신앙을

.

,

소홀히 하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마치 돈을 잃으면 인생의 모든 가치를 잃어버린 것처럼

실망하고 주저앉는 경우들도 봅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불평을 늘어놓았던 것처럼

.

불평하는 신앙인들을 보게 됩니다 문제는 누구나에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비전의 사람은

.

.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갈 뿐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어려운 순간이 닥칠 때 포기하기를

.

원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피해 가라고 속삭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은

.

.

우리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환경 때문에 절대로 우리의 비전을 버리지 말라고 삶의

고통 때문에 사단에게 굴복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로마서 장 절

5 3-4의 말씀을 보세요.

3

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

.

인내와 연단 환란을 겪고 나온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소망입니다 믿음의 사람 욥은

.

자신의 고난을 이렇게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 6

욥기 장 절

23 10 의 말씀,

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

저와 깊은 교제를 하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지금 그분은 아주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지만

,

젊은 시절 그 목사님은 어느 정도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술과 담배를 빼고는 삶을 이야기

.

.

할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어느 날 이분은 하나님을 만나 서원을 하고 목회자의 삶을

.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신실한 목회자로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분과 대화를

.

,

하면서 들은 놀라운 사실은 현재 술과 담배를 끊었지만 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을

,

.

참고 살아간다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은혜로 술과 담배를 끊었다는 많은 간증을

.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분의 말을 듣는 순간 매일매일 참으며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더 큰

은혜의 삶을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있다면 얼마나 굉장한 일입니까? 고린도전서 장 절

9 27을 보세요.

27

내가 내 몸을 쳐

두려워함이로다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위대한 사도인 바울도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늘 자신을 복종케 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성취해 나가기 위해 여러분들은 매일 매일 어떤 인내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 인내의 삶을 위해 당신이 치러야 하는 대가는 무엇입니까?

비전은 우리들의 삶을 향한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

.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발견하라는 말입니다 이는 내가 무엇이 될 것인가 에

.

,

대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가 에 관한 신앙적인

?’

물음입니다.

당신에게 분명한 비전이 주어졌습니까?

.

?’

그렇다면 인생의 차선책을 두지 마십시오 우리가 흔히 배수의 진 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

물러설 곳이 없기에 목숨을 걸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차선책만큼 강력한

.

.

적이 없습니다 차선책을 생각하는 사람은 늘 최선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끔 이런 표현을 씁니다 비상구를 두지 마십시오

.

오늘 당신의 삶에 주어진 문제를 가지고 진지하게 씨름하십시오.

오늘 최선의 삶을 사는 사람이 매일매일 최선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오늘 신실한 사람이 매일매일 신실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

!”

오늘 여러분들은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어떤 결심을 하셨습니까?

그 결심에 대하여 차선책이나 비상구를 두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명의 비전을 주실 뿐만 아니라 감당할 힘도 주시는 분이십니다. - 7

이사야 장 절

41 10 의 말씀을 잘 아시지요.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문제를 해결하며 나아가는 당신의 삶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삶에 무엇이 문제입니까? 말라기 장 절

4 2의 말씀을 보세요.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

하나님 앞에 의로운 비전을 가지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에 치료의 광선을 발하실

.

것입니다 기꺼이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헌신하며 맡길 준비를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총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

오늘도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비전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 ,

이진희 목사의 광야에 살다에 보면 약속의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이

극복해야 할 문제를 몇 가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으로 우리 각자 각자의

.

삶에 적용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1.

탐욕이 문제다

광야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아니라 살고 싶어 하지 않는 곳이다 광야에서는 자기의 뜻대로

.

.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야를 싫어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

,

가나안에 들어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광야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이다

.

.

광야에서는 탐욕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가나안에서는 탐욕 때문에 광야로 다시

,

.

. .

쫓겨나게 되었다 광야를 지날 때만 탐욕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가나안에 살 때는 더욱더

.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

탐욕만 내려놓으면 광야에서도 감사하며 만족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탐욕을 내려놓지 못하면

.

가나안에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다. . .

?

가나안에 살면서 제일 좋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매일 아침 만나를 거두러 나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 .

.

광야에서는 오늘 먹을 것밖에 없어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가면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가나안에서 쌓아 놓고 살아도 바알을 섬기며 살아가면 광야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2.

축복이 아닌 은혜를 구하라

.

은혜와 축복은 다르다 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누릴 수 없다

.

그러나 축복은 얼마든지 노력해서도 얻을 수 있다 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다 그러나 축복은

.

.

. - 8

.

.

아래에서 나온다 위로부터 내린 만나는 은혜다 그러나 아래에서 나온 오곡백과는 축복이다 축복

.

받으면 성공하고 출세하고 부귀를 누리고 형통한다 그러나 은혜 받으면 사랑과 행복과 기쁨이

.

.

넘친다 감사와 평안이 넘친다

. . .

.

은혜는 생존과 관련된 문제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반면 축복은 불편함과

.

.

관련된 문제다 축복을 받지 못해도 살 수는 있다 다만 좀 불편하게 살아야 할 뿐이다 광야는 살

.

.

.

수 없는 곳이 아니다 광야에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다만 불편하다 그래서 광야에서 살고

.

.

.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가나안에서는 편안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편안하다고 평안한 것은

.

.

.

아니다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은 축복이다 그러나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은 은혜다

.

은혜는 하나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지만 축복은 하나님에게서 더 멀어지게 만들 수도 있다.

. .

우리를 살리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은혜다.

3.

바알을 제거해야

. . .

가나안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알을 척결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양날의 검과 같았다 잘하면 복을 받을 수도 있지만

.

.

잘못하면 벌을 받았다 그러나 바알은 그런 것이 없었다 바알이 자신의 배만 부르게 해 주면

.

.

?

되었다 그러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런 신에게 넘어가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

.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차지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데는 실패했다.

,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에서는 성공했지만 바알을 몰아내는 영적 전쟁에서는 패배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교회 환상과 비전은 다르다9 /14:6-12/ 김병삼목사

2024-11-18 15:44:06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6.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내 나이 사십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내 7.

마음에 성실한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8.

좇았으므로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9.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 오년 10.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 오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11.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12.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찌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현실 인식은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하나는자신의 능력과 위치가 어떠한지를 자각하는 능력이고, ,

다른 하나는하나님께서 자각하게 하시는 위치는 어디인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카일 , .

아이들먼의 책 오늘제자로 살기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 ] .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화면에 가장 먼저 뜨는 질문은 현재 위치에서

출발하겠습니까이다?” .

답은 뻔하다그렇지 않은가당연히 현재 위치에서 출발해야 한다내가 예를 터치하면 곧바로 . ? . “ ”

내비게이션이 내가 처음 출발했던 곳이 아니라조금 더 가서가 아니라현재 내가 있는 곳에서부터 , ,

경로를 다시 계산한다.

물리적으로는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답이 왜 영적으로는 힘든 것일까가만히 보니 사람들이 ‘ ’ ‘ ’ ?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가장 흔한 이유는 먼저 자신의 삶부터 챙기기 때문이다먼저 자신의 주변을 .

좀 정리하고 나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올바른 순서처럼 보인다그렇게 우리는 현재 있는 곳이 .

아닌 다른 어딘가에서 출발하기를 원한다.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는가그분의 능력을 의지하라죄의 굴레에 갇혔는가그분의 끝없는 긍휼 ? . ?

속에서 자유를 얻으라전에도 이 길로 가봤지만 결국 실패했는가그분은 당신이 돌아오기를 참고 . ?

기다리신다혹시 길을 잃었는가그분의 인도하심을 믿으라예수님은 우리에게 현재 있는 곳에서 . ? .

지금 당장 따라오라고 말씀하신다놀라운 여행이 될 테니 기대해도 좋다. .

자신의 능력과 위치만을 가지고 현실을 인식하면 무력감에 빠질 수 있습니다하지만이러한 . ,

인식이 필요한 이유는이러한 인식에서 참다운 비전이 출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현실 인식!

년 설교 우리가 꿈꾸는 교회

9

2023-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갈렙은 두 가지 인식이 분명합니다 여호수아 장 절

.

10.

14 10-12 .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 오년

11.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 오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12.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찌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갈렙이 처음 하나님의 비전을 선포한 때로부터 년이 흘렀습니다 이미 그의 나이가 세에

45

.

.

85

이르렀습니다 누가 봐도 전쟁에 나가 싸워서 땅을 차지하리라고 생각할 수 없는 나이입니다

,

하지만 그에게 또 하나의 인식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

그들을 쫓아내리라는 것이죠.

,

비전을 잘못 이해하는 것 중에 하나는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며 허황된 것을 생각하는 것을

.

비전과 착각하는 것입니다 비전이란 환상이나 신기루가 아닙니다 비전이란 실제적인 것을

.

그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실제적이라는 말이 현실 가능성한 타당성에 기초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눈을

.

,

가지고 바라보며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현실을 넘어서는 능력입니다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신 선명한 비전을 갖는 것이

‘ ’

.

중요합니다 우리는 흔히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축복의

,

시작은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라는 말씀에서 시작합니다

.

’ .

출애굽기부터 여호수아서에 이르는 동안 수없이 많은 전쟁들이 있어왔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

.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도 승리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

잠시 성공을 맛보았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늘 넘어지고 타락하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광야를 벗어나 가나안으로 가는 목표는 있었지만 선명한 비전이 없었기 때문은

‘ ’

아니었을까요?

오늘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가 적용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선명한 비전은 무엇인지 그리고 여러분들의 인생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비전이 무엇인지를 보는 것입니다.

,

오늘 우리들에게 두 가지가 확실하게 보여야 합니다 현재의 우리 모습이 어떠한지 그리고

.

,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그러고 선명하게 선포할 비전이

,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눈앞에 닥친 난관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 인도하시는 - 2

,

년 설교 우리가 꿈꾸는 교회

9

2023-

선명한 비전을 우리의 눈과 믿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

이전에 말씀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기로 한 땅은 약속의 땅이 아니라

‘ ’

‘ ’ .

약속하신 땅입니다 그 땅에 가서 온갖 우상이 난무한 이방의 신들을 몰아내야 약속의 땅이 될

.

것입니다 이것이 약속하신 땅을 약속의 땅으로 만드는 것이죠

‘ ’ ‘ ’ .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갈렙이 가지고 있었던 선명한 비전을 이루기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있었다는 것이죠 절에

.

.

12

나와 함께 하시면그 땅의 백성들을 내쫓을 수 있다는

,

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그들이 하는 일은 잠시의 성공에 지나지 않을

.

[

것입니다 이진희 목사가 쓴 가나안에 거하다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

.

하나님은 가나안이 거룩한 땅이라서 그곳을 택해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이 아니었다 그 땅의 죄악이

.

하늘에까지 사무쳐서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심판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그 땅에 보내어

진멸시키라고 하셨던 것이다. . .

그들이 가나안 거민들의 죄악을 심판했듯이 이번에는 그들이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자신들의

,

죄악을 심판받게 되었다 가나안 거민들이 그들의 땅을 빼앗기고 쫓겨났듯이 이스라엘 백성도

.

,

가나안 땅을 빼앗기고 그 땅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가나안 거민들이 당한 일을 그들도 그대로

.

당했다. . .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들을 진멸하라는 이야기가 신명기고 명령대로 진멸하지 않는 이야기가

.

,

여호수아다 그들을 진멸하지 않음으로 인해 고생당하는 이야기가 사사기고 그들과 관계를 맺고

,

동화되어 가면서 저지른 죄악상의 기록이 역사서다.

예언자들이 그들에게 죄악 된 길에서 회개하고 바알 신에게서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라고 선포하지만

소 예언서 그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바알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가나안에서

,

( ) . .

쫓겨나는데 이런 이야기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서에 기록되어 있다

,

,

,

. . .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불평불만 불순종함으로 년이면 갈 수 있었던 가나안을 년이

2

,

걸려서 들어간 이야기는 주야장천 하지만 가나안에서 실패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40

.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 것까지에 대해서만 이야기 한다 우리의 관심이 어떻게 광야를 벗어나

.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가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간 후의

.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비전은 단지 환상에 불과합니다.

,

끝까지 선명한 비전을 붙잡지 못하는 한 이들은 가나안 땅의 거민들처럼 내쫓기게 될

.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들에게 말하는 것은 끝까지 하나님의 비전을 붙들라는 것입니다

선명한 비전을 소유하려면. . .

.

조금 더 자세히 본문 속의 주인공 갈렙을 통해 선명한 비전을 갖기 위한 몇 가지 단계를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여호수아 에 보면

14:7

,

내 나이 사십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내 - 3

7.

년 설교 우리가 꿈꾸는 교회 2023- 9- 4

마음에 성실한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갈렙은 첫 번째 시각적 단계에서 비전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부족의 대표로 뽑혀서 가나안을 침투하게 되었고그 땅이 어떤 땅인지를 두 ,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그리고 그는 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 7

있습니다.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

이 이야기는 민수기 에13:26-33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명의 . , 10

정탐꾼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고 하며

자신들을 메뚜기로 비유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라고 보고 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보아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성실한 대로“ ”무엇에 성실한 대로

보고 하였을까요성경에 의하면 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즉 믿음의 ? NIV “conviction" .

눈으로 보았을 때하나님께서 주신 확신대로 보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

그가 믿음의 눈으로 보게 되었을 때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이 무슨 차원인지 아시겠습니까비전은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있습니다똑같은 현실 가운데서 명이 정탐을 하러 갔으나오직 ‘ ’ . 12 ,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다른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열매 맺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바라보는 .

눈이 달라져야 합니다.

자신의 눈을 가지고 보면 자신의 판단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자신의 판단의 근거는 늘 환경일 .

수밖에 없습니다현재의 자신의 능력을 보는 것입니다그러나 믿음의 눈을 가지고 보면앞으로 . . ,

이루실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게 됩니다하나님께서 나에게 붙여주실 귀한 믿음의 .

사람을 기대하게 됩니다하나님께서 펼쳐주실 놀라운 일들을 기대하게 됩니다. .

갈렙은 자신이 정탐꾼으로 들어가서 보았던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년 동안 가슴에 , 40

품고 살았습니다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능히 이기리라는 믿음을 품고 년을 살았습니다. 40 .

대다수의 사람들이 회의적이고두려움에 떨었기에 들어갈 수 없었던 그 땅그러나 갈렙은 , ,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들어갈 수 있다는 비전으로 세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넘쳐 80

있었습니다나이 세에 갈렙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85 .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 요한을 기억하십니까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당신의 육신의 어머니 ?

마리아를 부탁했던 사람 말입니다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제자들이 초대교회에서 소위 . ,

이름을 날리고 있었습니다대부분의 사람들이 순교의 명예를 안고 역사 속에서 기억 될 .

동안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부탁을 받고 마리아가 죽을 때까지 잘 공경한 사람이었습니다, .

얼마나 뛰쳐나가고 싶었을까요?

년 설교 우리가 꿈꾸는 교회 2023- 9- 5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그 사역을 끝까지 지키며 년의 세월을 지났을 때그는 정말 30 ,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주옥같은 요한 서의 사랑의 말씀을 기록할 만한 . 1, 2, 3

사람으로밧모섬에서 계시록을 기록할 수 있는 위대한 사람으로 쓰임을 받았던 것을 보게 ,

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뛰쳐나가는 사람이 아닙니다하나님께서 , .

가슴에 선명하게 새겨주신 비전을 품고 기다리며 준비하는 사람입니다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그 .

일이비전을 이루어가고 있음을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

우리 인생의 최선은 무엇일까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일을 위해 헌신하며 ,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주위에서 인생의 문제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을 누르는 것은 진정 그들의 문제가 아닙니다그들의 문제는 비전이 결여되어 .

있다는 것입니다우리 교회가 꿈꿔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입니다지금 우리가 . .

안고 있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이 교회를 통해 이루실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을 미리 보는 ,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사업과 자녀들에게 보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 비전의 문제입니다야고보서 .

기자는 말하기를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약라고 했는데이것은 우리가 4:2)” ,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들이 간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믿음을 가지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환경의 장애로 인하여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

기도하는 것입니다이것을 보기 시작할 때꿈꾸는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 .

이년 전 우리가 함께 묵상했던 오스왈드 챔버스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월 일 글에 보면 [ ] 7 6

하나님의 비전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 .

비전은 공중에 떠 있는 멋진 산성이 아니라 당신이 어떠한 사람이 되는가에 있습니다.그분으로

하여금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당신의 삶을 빚도록 하십시오그때서야 비로소 당신은 그 비전에 잘 .

어울리는 사람으로 변화될 것입니다그 과정에서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정말로 하나님의 비전을 . .

갖고 있다면당신이 영적으로 낮은 차원에서 만족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결코 당신의 안일함을 ,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아주 멋질 날이죠비전의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인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

용기를 가지고 확신을 가지고 가슴 속에 주신 것을 선명하게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비전을 소유하기 위한 다음 단계는우리가 품은 비전을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

바로 갈렙은 언어적 단계의 비전을 가졌던 사람입니다갈렙은 자신이 본 것을 가슴에 묻어 .

둔 사람이 아니라여호수아 장 절에서 보는 것처럼그는 . 14 7 , “내 마음에 성실한대로

년 설교 우리가 꿈꾸는 교회

9

2023-

보고하였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어 단어에 보면

.

,

.

“report"

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본

.

것을 자신의 확신을 그대로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비전을 외적으로

고백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제주 신문에 이런 아티클이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소리 내어 읽기 전략의 놀라운 힘

.

<

>

뇌 전문가들은 소리 내어 읽는 훈련을 많이 경험하면 광범위한 영역의 뇌가 활성화된다고 말한다.

자기가 내뱉은 소리를 들으며 재 표현하는 내용은 기억하기도 쉽다고 한다 하나의 감각을 쓰는

.

것보다 여러 개의 감각을 동시에 쓰기 때문에 뇌를 더 많이 자극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책을

.

소리 내어 읽은 내용을 더 오랫동안 기억하는 효과도 있지만 읽기 부분에 집중하기 때문에 집중력도

커진다.

일본 도호쿠대학교 가와시마 류타 교수는 어떤 행동이 뇌 활성화에 영향을 주는지 연구하다 소리

내어 읽기의 중요성을 발견했다 소리 내어 읽기를 할 때는 생각하기 글쓰기 읽기를 할 때보다

.

,

,

월등히 많은 뇌신경 세포가 반응했다고 한다 평균적으로 전체 뇌신경 세포의

.

,

반응했는데 이는 묵독이나 그저 외우기 등을 했을 때보다 훨씬 높은 수치였다

70%

.

이상이

따라서 기초 읽기의 방법을 학습 중인 초등 저학년 학생에게 글을 소리 내어 읽는 훈련은 뇌의

영역별 활성화와 함께 집중력 향상 문자와 소리의 연계를 통한 음가를 익히는 효과를 얻을 수

,

.

있다 특히 정확하고 빠르게 혀를 놀리면서 다음에 읽을 것을 미리 보고 준비하는 과정 등은 뇌의

활성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저는 청년들과 사역을 하면서 비전을 많이 이야기 했습니다 예배시간마다

sharing"

.

“vision

이라는 시간을 만들어서 제게 주시는 꿈을 나누었습니다 이 꿈을 입으로 시인한다는

.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아실 것입니다 입으로 시인하는 순간 책임을 져야 합니다

.

그리고 그 책임은 우리의 삶을 채찍질 합니다.

.

꿈을 입으로 시인하는 사람의 삶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과 질적인 차이를 가지게 됩니다.

이 꿈이 자신의 생각이라면 일이 풀리지 않을 때 금방 실망하겠지만 하나님의 주시는 꿈을

,

이야기 하는 사람은 소망을 잃지 않고 노력하며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만나교회 성전을 이렇게 크게 건축을 했습니다 돌아가신 원로목사님이 늘 이 자리가 차지

.

않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워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지요 하나님께서 주신 생각이 조급해

.

,

하지 말아라 버스가 출발하면 정거장을 지나서 차는 것이지 처음부터 차는 것이 아니라 고

.

말입니다 저는 아들로서 아버지가 너무나 무모하게 성전을 건축해서 고생만 하셨다고 생각을

.

했습니다 그러나 요 몇 년 사이 우리 교회에 일어나는 일을 보십시오 특별 행사를 하거나

.

,

,

크리스마스 송구영신 때는 방송을 연결하고 아래층까지 서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결국

우리는 몇 년을 내다보지 못하고 꿈을 이해하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

,

누군가 꾸었던 꿈을 우리의 시각과 지금의 상황에서 판단하지 않기를 그 때 보았던 꿈 그

( , ,

때 하나님이 주셨던 비전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6

년 설교 우리가 꿈꾸는 교회 2023- 9- 7

그 꿈과 확신이 하나님이 주신이 확신이라면 우리는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report' .

제가 처음 청년부를 맡았을 때명 정도의 청년들이 예배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그 , 70-80 .

때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예배에 대한 비전과 선교에 대한 원대한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한 , .

번도 시작해보지 못했던 해외 단기선교에 대한 비전을 이야기 할 때아무도 나의 말에 귀를 ,

기울이는 사람들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새로운 예배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형식을 . ,

바꾸고새로운 찬양과 기도가 시작됐을 때비전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 .

그 당시 저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인 용어로 이라는 말을 “contemporary worship"

제안 했습니다처음에는 이 용어자체가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그러나 요즘은 제가 이 . .

예배에 관한한 가장 잘 알고 설명할 수 있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 예배에 대한 비전을 이야기한지 년이 지나지 않아서명이 넘는 청년들이 필리핀으로 1 , 60

단기선교를 떠났습니다그리고 그 다음해에는 몽골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고직접 교회를 . ,

세우고 돌아왔습니다그리고 그 다음해에는 지경을 넓혀 일본으로 선교여행을 떠났고. ,

우상의 나라에서 우리는 주를 머물면서그들의 언어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돌아왔습니다2 , .

제가 예배에 대한 비전을 이야기 하고 채 년이 지나지 않아우리는 많아진 예배인원 때문에 2 ,

예배실을 옮겨야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꿈을 이야기했을 때늘 불만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곁에 . ,

있었던 것을때로는 비전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때로는 시련을 통해 나의 비전을 더욱 . ,

굳건히 하기 위해하나님은 비전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가까이에 두게 하셨다는 사실을 ,

말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을 사용하시기 위해 년의 광야의 훈련과 시험을 거치게 하셨던 것처럼 40

말입니다그 때의 이스라엘 백성도제가 보았던 비전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도 모두가 . ,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과거를 추억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과거에 집착하므로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

비전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옛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언어는 꿈을 포기한 사람들의 언어입니다우리가 꿈꾸는 교회는 .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말하는 교회여야 합니다주변에서 아무리 우리의 기를 꺾으려 해도 .

꿋꿋하게 비전을 포기하지 않는 교회를 언젠가는 하나님이 들어 쓰시게 되어있습니다비록 .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꿈꾸는 교회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저는 믿습니다, .

꿈꾸는 자들에게는 환경도 나이도 문제가 되지 않음을 믿습니다.

을 통해 우리는 년전 비전 에서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것이 강점으로 바뀌어 (M Vision 10 2020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자료. )

세 번째 비전을 소유한 사람에게는 믿음의 행동이 수반됩니다.

갈렙은 믿음의 행동으로 그의 비전을 이루었으며그 땅을 취했습니다우리가 비전을 , .

년 설교 우리가 꿈꾸는 교회 2023- 9- 8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이유는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려 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중직자들의 훈련 프로그램이나 성경공부를 통해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목회자들이 교회에서 어떤 일을 할 때실수를 용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 , .

여러분들이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면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고아무것도 , ,

시도하지 못하는 교회는 이루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목회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을 합니다.

무엇이든지 시도하십시오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실패하지 않는 자는 “ . .

성공하지도 못합니다비전이 있는 사람의 실패는 끝이 아닙니다단지 성공으로 나아가는 . .

장애를 한 가지 제거한 것에 불과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행동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은 하나님께서 .

이루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아직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막으실 .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늘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에 신실하게 반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면 어떤 .

행동을 취하는 것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짐 푸트먼의 교회는 팀이다라는 책을 보면참다운 교회의 모습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 , .

많은 교회들이 교인에게는 초보 수준의 봉사만을 허용한다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모든 사람들로 .

하여금 예수님의 제자로서 온전한 역할을 감당하게 하는 것이다.

당신은 스포츠에 열성적인 친구와 로 미식축구 경기를 본 적이 있는가그는 를 향해 소리를 TV ? TV

질러댄다번에게 패스해그쪽 길이 열려 있어그쪽이 열려 있다고그러나 선수가 공을 빼앗. “84 . ! !”

기고 비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잃는다친구는 몹시 실망한다저런 멍청이번 쪽이 열려 . . “ ! 84

있었는데.”

그 선수가 번을 보지 못할 수 있음을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자신을 뒤쫓는 의 거구들과 84 . 140kg

앞을 막아선 의 수비수에 막혀 보지 못했을 수 있다우리는 정작 자신이 경기에 뛴다면 어떻게 2m .

될지 모르면서 선수들을 쉽게 비판한다.

관중석에 앉아 비판만 하다가 경기에 직접 참가하게 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실수하기 쉽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리더도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 긴장하여 엉뚱한 말을 할 수 있고최선을 다하고도 실패. ,

할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실패를 용납하는 교회에서는 이해와 관용의 분위기가 풍성하다. .

갈렙은 세의 나이에 행동을 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절 말씀을 보세요85 . 12 .

주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에입니다“ ” .

저는 우리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비전을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비유하여

이야기하곤 합니다우리의 하드웨어는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이것은 바뀌어 질 수 없는 . “ ” .

부분입니다우리 교회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복음을 전하는 선교공동체가 되었기 .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복음을 전하는 수단인 소프트웨어는 끊임없이 되어야 합니다더 좋은 up-grade .

프로그램이 나온다면 언제든지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사용해 보지 않는 다면 좋고 나쁜 것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삶의 문제는 실패에 있는 것이 아니라시도하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

년 설교 우리가 꿈꾸는 교회

9

2023-

오늘 여러분들에게 주신 꿈을 향하여 움직이십시오 때로 우리가 꿈꾸는 교회가 실수하지만

.

.

그 실수가 용납되는 교회입니다 믿음의 행동을 따라 나아가는 비전 공동체는 절대로

.

실패하지 않습니다 단지 실수할 뿐이지요

.

여러분들의 삶이 지금 광야를 걷고 있는다 할지라도 절대로 실패한 인생이 아닙니다 아직

.

광야의 학교에서 실수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뿐이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받고

,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14:1-15/ 유기성목사

2021-08-31 11:33:54

 

성도 여러분, 어려운 일이 많을수록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이 기뻐하실 일에만 힘쓰시기 바랍니다. 축복, 축복만 구하지 말고 사명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갔지만 나이가 많이 들어 각 지역을 다 점령하는 일은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가나안 땅을 배분하여 각 지역을 점령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은 우리나라와 달리 지역마다 좋고 나쁨이 너무나 분명한 지역입니다.

그러니 당시 각 지파들은 얼마나 예민했겠으며, 그런 상황에서 땅을 배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겠습니까? 그래서 여호수아는 제사장과 각 지파의 우두머리들을 모아 제비뽑기로 각 지파의 땅을 배분하였습니다.

 

그 때 유다 지파의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12 이제 주님께서 그 날 약속하신 이 산간지방을 나에게 주십시오.

이런 행동은 이스라엘 지파들이 서로 좋은 땅을 차지하겠다는 갈등을 촉발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미 르우벤과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강 동쪽 지역을 자기들에게 달라고 하여 모세를 곤란하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전 지파가 모두 힘을 합하여도 가나안 땅 정복이 될까 말까인데 세 지파는 요단 강 동쪽을 차지하고 거기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축복만 바라는 신앙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땅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도 아니었고 많은 침략을 받게 될 지역이었고 결국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눈앞의 복에만 매달리는 세 지파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어 모세는 함께 요단강을 건너가 가나안 정복을 완성한 후 돌아와 그 땅을 차지하는 조건으로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나 갈렙이 헤브론 산지를 요구하였던 것은 좋은 땅에 대한 욕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헤브론 산지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부담스러워하는 기피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헤브론 지역은 45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무너뜨렸던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데스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을 보내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했을 때, 돌아온 정탐꾼 중 10명이 보고하기를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충격과 낙심에 빠져 이젠 우리 모두 다 죽었다며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그 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나서서 옷을 찢으며 외쳤습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그러나 불신으로 기울어버린 백성은 오히려 여호수아와 갈렙을 죽이려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나서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내어 모셨습니다. 40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다가 하나하나 다 죽고 여호수아와 갈렙만 살아남아 광야에서 태어난 2세대들과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 때, 10명의 정탐꾼들을 낙심시키고 메뚜기 타령을 하게 만들었던 지역이 바로 헤브론이었습니다.

 

그러나 45년이 지나서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헤브론 땅은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렵고 부담스러운 땅이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85세 된 갈렙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하며 나선 것입니다.

 

이 요청은 좋은 땅을 먼저 차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제일 나쁜 땅을 내게 주소서.” 그 말인 것입니다. 헤브론 산지를 가지려면 강한 아낙 자손과 전쟁을 해야 되고 피를 흘려야 되고, 승산이 희박한 땅입니다.

 

이처럼 갈렙이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요청한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소알 땅으로 보내고 하나님께 단을 쌓은 곳이 헤브론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삼았던 땅도 헤브론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유일하게 소유했던 땅이 바로 헤브론 땅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리브가, 레아, 야곱 등 믿음의 조상들이 묻혀 있는 곳입니다.

 

헤브론은 후에 다윗 왕이 맨 먼저 도읍으로 삼아 7년 동안 다스렸던 곳입니다.

그러므로 헤브론 산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적으로 성지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점령해야 하는 땅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갈렙은 여호수아와 같은 반열의 사람이었습니다. 출애굽 1세대에서 남은 두 사람 중 한 명이었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고 외쳤던 정탐꾼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얼마든지 가나안에서 가장 좋은 땅, 정복하기 가장 쉬운 땅을 분배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런 갈렙이 헤브론 땅을 자원하였으니 서로 좋은 땅을 가지려고 눈치싸움을 하던 다른 지파들이 조용해지지 않았겠습니까?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뜨거운 마음으로 갈렙을 축복하였던 것입니다.

:13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축복하고, 헤브론을 유산으로 그에게 주었다.

 

목회하다 갈렙처럼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가장 어려운 일을 자원하는 분을 만나게 됩니다. 서로 자신만 생각하고 어려운 일을 외면하려 할 때, 주님의 마음을 품고 교회와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며 희생을 자원함으로 교회를 은혜롭게 이끄는 이들을 보았습니다.

 

그 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갈렙이 그런 역할을 한 것입니다.

저는 여호수아가 갈렙을 축복할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충분히 공감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할 때, ‘어떤 일이 네게 유익한가?’ 하는 기준으로만 판단하면 안 됩니다. 어떤 것이 주님이 기뻐하실 일인가, 어떤 것이 사명인가? 하는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갈렙은 헤브론 산지가 얼마나 정복하기 힘든 땅인지 잘 압니다. 아낙 족속들이 얼마나 거인들인지 잘 압니다. 그런데도 헤브론 땅을 달라고 요청한 것은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갈렙은 8914절에서 거듭거듭 자신은 하나님께 충성하였다고 말했습니다.

:8 ...나는 주 나의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따랐습니다.

그는 동료 정탐꾼들이 부정적인 보고를 하는 그 살벌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따랐습니다.

 

14:9 그래서 모세는 그 날 '네가 주 나의 하나님께 충성하였으므로, 너의 발로 밟은 땅이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유산이 될 것이다' 하고 맹세하였습니다.

동족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으로 40년을 광야 길을 헤맬 때 갈렙도 함께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은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 85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도 끝인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도 나이가 많아 가나안 정복 전쟁을 각 지파에게 맡기라 하신 상황입니다.

 

그러나 갈렙은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저 믿음만 가진 것이 아니라 광야를 지나는 중에도 철저히 준비하고 살았습니다.

:11 모세가 나를 정탐꾼으로 보낼 때와 같이, 나는 오늘도 여전히 건강하며, 그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힘이 넘쳐서, 전쟁하러 나가는 데나 출입하는 데에 아무런 불편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을 정복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12 이제 주님께서 그 날 약속하신 이 산간지방을 나에게 주십시오. 그 때에 당신이 들은 대로, 과연 거기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은 크고 견고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만 한다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는 그들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도 어거지가 아니어야 합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목사님, 세워만 주십시오” “왜 나를 믿지 못합니까?”

믿어달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믿어지도록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그 사람의 일상의 삶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 갈렙과 같은 성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누구나 여호수아일 수는 없습니다. 지도자는 한 사람 뿐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갈렙일 수는 있습니다. 축복이 아니라 사명을 위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산지가 어디인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주신 산지는 한국 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생 때 도서관에서 기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학기말 과제물을 위하여 한국 교회 역사 자료를 찾다가 한국 교회 부흥의 시대 기록을 읽었을 때였습니다. 한국 교회에 부흥이 임하던 때, 된 일들을 읽고 울었습니다.

 

19051117일은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가장 비극적인 날일 것입니다. 을사보호조약으로 우리의 국권이 일본에게 넘어가는 날이었습니다. 비통에 젖은 민영환은 조국이 사라졌는데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어졌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많은 애국지사들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그런데 1906년 봄부터 우리나라에 이상한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하디(Robert Hardie) 선교사가 봄 학기 부흥회를 이화학당과 배재학당에서 열었는데 학생들 사이에 죄를 자복하는 회개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부흥운동은 연동교회, 상동교회, 정동교회, 자교교회 등으로 이어집니다.

 

19062월의 자교교회 신년 사경회 기록에 의하면 아침 예배 중에 갑자기 한 남자가 일어나 나는 술꾼에다 노름꾼, 사기꾼이라고 자백하였는데, 온 회중이 성령의 강력한 임재 아래서 회개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 불길은 선천, 개성, 원산, 목포로 이어졌고, 19071월 소위 평양 대 민족 부흥이 폭발한 것입니다. 나라는 망했는데 교회와 교인들의 심령은 점점 뜨거워졌습니다.

 

일제 치하 우리 민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준비해 주신 처방이 교회의 영적 부흥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지금 이 부흥이 우리나라에 임하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제 생애에 이런 부흥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예수동행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 모든 목회자와 성도들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까, 도무지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포기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여러분 중에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이 믿어지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실제가 되는 꿈을 꾸는 분은 없습니까? 그러면 함께 합시다.

 

여러분에게 주신 산지는 어디입니까?

이스라엘 각 지파들은 가나안 땅을 축복의 땅으로만 여겼습니다. 그래서 갈등하고 싸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갈렙은 가나안 땅을 사명의 땅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갈렙에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 일터와 삶의 모든 현장은 축복의 장이 아니라 사명의 장입니다. 성공하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놀라운 복이 하나님 나라의 사명입니다.

 

여러분에게도 헤브론 산지가 있습니다.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는데 주님을 바라보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기도할 때 가슴이 뛰는 것입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계속 성령이 주시는 소원이 이 산지입니다.

그것은 가정의 구원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일터, 직장의 복음화일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와 선교지일 수 있고 우리나라와 민족일 수 있습니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 “좀 쉬게 해 달라” “자신이 없다” “시킬만한 사람 찾아보시라말하는 것은 사명이 힘든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동행하는 은혜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오히려 하나님께 사명을 주시기를 사정할 것입니다.

이사야처럼 나를 보내소서.” 할 것입니다.

거룩한 욕심이 생깁니다. “주여 더 어려운 일을 제게 주소서.”

주님 앞에 설 때 그것이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갈렙과 같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기도합시다.

 

찬양: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송구영신예배 -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14:6-15/ 김형익 목사

2021-05-14 10:01:59

 

이 본문은 많이 알려진 본문입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는 갈렙의 말은 노래로도 널리 알려졌고 선교와 관련해서 많이 인용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신년 첫 주일의 예배를 드리면서, 갈렙의 이 말이 한 해 동안 우리의 기도가 되고 경험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황

먼저 이 본문의 정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45년이라고 하고 갈렙이 85살이라고 말한 점에 비추어(10)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지 5년 이상 지난 시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5절 마지막에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고 한 것을 보면,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정복전쟁을 수행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시간이 약 5~6년 정도 된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그 땅은 그저 밟고 차지한 것이 아니라 전쟁을 통해서 가나안 백성들을 몰아내고서야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었기에 내내 전쟁을 벌였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직 평화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아있는 과업은 정말 점령하기 버거운 고지, 산지들 그리고 가나안의 거인 족속들 중에서도 강한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85세된 노인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나옵니다. 그리고 45년 전 가데스에서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누가 이 일을 기억하겠습니까? 성인으로서 그 일을 경험한 사람은 단 두 사람 밖에 없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열 두 사람의 정탐꾼들이 가나안에 갔다가 와서 그 땅을 악평할 때에 오직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믿음으로 반응을 했었습니다. 그때 모세는 갈렙의 믿음을 보고 한 가지 약속을 했었던 모양입니다. 이 내용은 사실 민수기의 그 본문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갈렙이 그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그에게 주어졌던 약속임에는 분명합니다. 9절입니다.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85세가 된 갈렙은 45년 전의 약속을 기억하고 주장합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12).”

 

이런 내용으로 볼 때, 갈렙이 45년 전의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 날이 이루어질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이제 그 때가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여호수아는 갈렙을 축복하고 그 땅을 취하라고 말합니다.

 

갈렙?충성된 사람

갈렙이라는 인물, 그 사람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한 마디로 충성되다는 것입니다. 8~9절에서 자신의 말로 그는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다고 말하고 모세도 그것을 인정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4절에서는 그가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다고 말합니다. 이 사람의 특징은 충성됨, 온전함입니다.

 

갈렙이 요구한 곳은 산지였습니다. 이 헤브론 산지는 아낙 사람 중에서도 가장 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볼 때(15) 그동안 5~6년의 가나안 정복 전쟁을 통해서도 정복되지 않은 소위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갈렙은 지금까지 지켜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곳이 정말 어려운 곳인가? 어느 곳이 정말 무서운 도전이 있는 곳인가? 45년 전에 자기들을 삼킬 것이라고 악평했었던 그 땅, 그들 앞에 자신들은 메뚜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던 그 거인들이 어디에 있는가?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라고 12절 하반절에 기록된 갈렙의 말은, 45년 전 자기가 했던 그 말을 실제로 입증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그 옛날 갈렙이 했던 말을 보지요. 14:8~9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갈렙의 충성됨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45년 전 젊었던 한 때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젊음이고 패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신앙이었습니다. 그는 지금 85세의 노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그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충성된 사람입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갈렙이 요구한 곳은 산지였습니다. 산지를 우리 식으로 정리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어려운 과업, 우리가 쉽게 정복할 수 없는 인생의 과제,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영역을 의미할 것입니다. 물론 선교적 의미로 이것을 해석하는 것은 합당합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있어서 그 산지가 아직도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 미전도종족이거나 미전도지역일 수 있지만, 본문은 그런 선교적 의미로만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믿음의 여정을 위협하고 움추러들게 하는 난제들도 산지입니다. 인생의 난제들은 다양하고 우리가 처한 형편과 상황에 따라서 각기 다를 것입니다.

 

저는 먼저 이런 관점에서 2017년 첫 날이자 첫 주일에 이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산지가 존재합니다. 산지가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하고, 무릎 꿇게 하는 산지는 본질상 재앙이 아니라 평안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안에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이라는 그들이 믿음으로 넘고 믿음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영적 산지 앞에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29:11).”

 

갈렙에게 이 말씀이 정확히 적용됩니다. 갈렙은 지난 45년 동안 그 산지를 기다려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산지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인정할만한 산지가 나타났습니다. 헤브론입니다. 그리고 갈렙은 그날의 약속을 기억하고 여호수아에게 나아와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라고 요구합니다.

 

우리의 산지들

2017년을 시작하면서 여러분이 직면한 산지는 무엇입니까? 2016년에 해결되지 못하고 남겨진 산지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여러분이 직면한 그 산지가 여러분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재앙이라고 여겨지십니까, 아니면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하신대로 평안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라고 여기십니까? 절망입니까, 아니면 미래의 희망을 주는 것입니까?

 

만일, 그 산지가 여러분으로 2017년에 엎드리게 하고 무릎 꿇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필사적으로 구하게 하는 것이라면 분명히 그것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변장한 은혜입니다.

성경에는 산지라는 도전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적지 않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 한 이야기를 보려고 합니다. 역대하 20장에 기록된 경건한 왕 여호사밧 때 남왕국 유다가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모압과 암몬 그리고 마온의 연합군이 유다를 쳐들어왔습니다. 여호사밧은 자신의 병력으로 상대할 수 없는 대군이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간구합니다. 역대하 20:12이 그의 기도 가운데 아주 유명한 기도입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산지를 마주 했을 때 믿음의 사람들이 취하는 태도가 여호사밧의 이 기도에 잘 나타납니다. 이것이 본문에서 갈렙이 보여준 태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12b).” 산지는 거인들이며, 크고 견고한 성입니다. 그리고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난제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그들을 감당할 수 있고 정복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적들이 많았고 장벽이 높아보였습니다. 그들에게 이것은 산지였습니다. 이때 선지자 스가랴가 말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4:6).”

 

산지는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에게 산지는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산지 앞에서 움츠러들고 한 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십시오. 신자는 그런 산지 앞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8~9).” 혹시라도 산지를 영적인 면에서만 생각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여기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거꾸러뜨림을 당하는 이 모든 상황이 산지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 산지는 곳곳에 있습니다. 어떤 인생은 정말 첩첩산중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은 연약합니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이 산을 넘을 수 조차 없습니다. 이것은 현실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고백하듯이, 신자는 싸이지 아니하며..낙심하지 아니하며..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망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신자의 삶에서 나타나고 경험되는 바, 놀라운 신비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질그릇 뿐임을 알게 하시고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고후 4:7). 이게 다가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6:9~10을 봅시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산지를 점령한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산지가 나를 점령하지 못하고, 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평안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상태, 산지가 더 이상 나를 움츠러들게 하고 위축되게 만들지 못할 때, 산지는 점령된 것입니다.

 

믿음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다.

종종 우리 삶에서 믿음과 막연한 기대가 섞여서 구분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이 믿음일까요? 긍정적 사고와 믿음은 같은 것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믿음은 대상을 가지는 것이고, 특별히 내용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내용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갈렙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십니까?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9).” 이것이 산지를 달라고 요구하는 갈렙의 전제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냥 저기 저 산지를 달라고 말하지 않고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직면하는 산지들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말씀하실까요?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에 대해서 무지하면 무지할수록 우리가 산지를 달라고 주장할 수 있는 우리의 근거와 믿음도 설 자리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왜 여러분에게 지난 15개월 동안 말씀, 말씀, 말씀을 강조해왔는지 아시겠습니까? 막연한 기대, 긍정적 사고로는 산지를 점령할 수 없습니다. 잠시 잠깐 되는 것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45년 동안 그 약속을 붙잡고 살아왔다는 사실, 이것이 갈렙의 충성됨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충성되다(faithful)는 것은, 믿음이 충만하다는 말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믿음은 언제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신뢰이며, 그 약속의 내용을 믿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10:11).” 또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10:17)”고 말씀했습니다. 믿음은 막연한 기대가 아닙니다.

 

그 땅에 전쟁이 그치니라.”

오늘 본문에서 가장 제 마음을 끄는 구절은 15절 하반절입니다.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산지가 점령되자, 전쟁이 그쳤습니다. 이 말씀은 가나안 족속이 다 쫓겨났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제는 전쟁을 치러야 할만큼 강력한 대적들이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전쟁이 그친 상태를 뭐라고 하지요? 샬롬입니다. 세계사에는 로마제국의 힘이 강력해서 아무도 전쟁을 일으킬 수 없었던 상태, “로마의 평화(Pax Romana)”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평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샬롬입니다.

 

우리들의 샬롬!

2017년 여러분과 저의 삶에서 이런 샬롬이 경험되기를 저는 기대합니다. 여러분이 직면하고 있는 산지는 무엇입니까?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그 산지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약속을 이미 주셨는지 성경을 면밀히 살피십시오. 그리고 갈렙이 했듯이 구하십시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금년 새해에) 내게 주소서.”라고 말입니다.

 

산지는 우리를 엎드리게 하고 무릎 꿇게 하고, 우리를 낮추시려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그것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입니다. 2017년이 그 산지를 주 앞에 구하며 엎드리는 해가 되기를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과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실 것인데,

이 일에 우리의 기도는 중요합니다. 그 기도는 믿음의 기도가 되어야 할 것이고,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빚어 가십니다.

 

사실, 눈 앞의 산지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산지가 없는 것입니다. 산지가 없는 인생이 교만과 영적 해이함으로 치닫지 않을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산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엎드리라고, 겸손하라고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장래의 은혜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 밝은 전망은 선하신 하나님께 대한 신뢰로부터 나옵니다. 2017년이 여러분의 생애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엎드리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 인생에 산지도 많습니다. 지난 한 해, 저를 움츠러들게 하고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던 산지들이 있습니다. 2016년과 함께 사라지지 않은 채, 여전히 2017년의 벽두에도 제 마음을 누르는 산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과 함께 2017년이 우리 인생의 산지를 넘는 해가 되기를, 하나님의 선하심을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이 경험하는 해가 되기를, 산지를 점령하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는 복된 선언을 듣고 평화를 누리는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희돈 박사님 옥스퍼드 유학 간증 /14:9

2015-09-01 15:40:23

 

그러자 그날 모세가 내게 맹세했습니다. ‘네가 마음을 다해 네 하나님 여호와를 따랐으므로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유산이 될 것이다. 여호수아14:9

 

세계무역센타 수석 부총재 이희돈 박사님의 간증 중 녹취

*출처: http://video.google.com/videoplay?docid=439621594918011792&hl=en

 

 

제가 청년 때, 옥스퍼드 대학교에 공부하게 된 사연을 말씀드리려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지금 나는 옥스퍼드 대학교 종신교수가 되는 영예를 갖게 되었는데,

사실 처음에는 피눈물 나는 이야기였다.

 

 

무일푼으로 떠난 유학생활

내가 한국에서 유럽으로 유학 올 때, 부모님이 편도 비행기 표만 끊어주셨다.

그리고 비행기 타고 떠나는 날, 공항에서 부모님이 봉투를 한 장 쥐어주셨다.

 

저는 이 봉투 안에 돈이 얼마나 들어있을까, 매우 궁금했다.

그래서 기내 좌석을 찾아서 앉아마자, 봉투를 열어서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거기엔 정성어린 글씨가 적힌, 달랑 종이 한 장 뿐이었다.

너의 조상의 하나님이 너를 도우시리라!”

딱 이 문구가 적힌 종이 한 장 뿐이었다. 돈이나 수표는 단 한 푼도 없었다.

 

저는 그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유학 떠나는 자식에게...!

 

나는 혹시 여행자수표가 봉투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나 해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사방을 샅샅이 뒤져 보았다.

그러자 JAL항공 스튜어디스가 몇 번이나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 매라고 야단 쳤다.

 

믿음의 부모는 정말 무섭다!

여기 미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이여, 부모님들이 돈 안 보내준다고 불평하지 마시라.

그리고 부모들이여, 자식에게 돈이 없어 못 보내준다고 한탄하지 마시라.

결단코 하나님께 맡기시라. 돈 없이 키운 자녀들이 더 잘 된다! (날 보시라)

 

이렇게 무일푼으로 비행기에 탔으니, 할 게 기도 밖에 없었다.

그렇게 공중에 떠서 절박하게 기도하니, 주님과 더 가까이 있음을 느꼈다.(공중이라서)

 

나는 거기서, 마치 하란으로 떠나는 야곱처럼 기도 드렸다.

하나님, 저를 무사히 돌아오게 하시면...’

 

그렇게 무일푼으로 시작된 나의 유학생활은

일단 친구 집에서 신세를 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옥스퍼드 대학교 유학 생활

 

저는 한국의 감리교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요한 웨슬리, 옥스퍼드 대학교의 홀리 클럽, ‘캠브리지 세븐등에 익숙했다.

*캠브리지 세븐 : 19세기, 명문 캠브리지 출신 7명이 선교사로 자원, 해외선교운동 촉발.

 

그래서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이 단순한 학문의 요람일 뿐만 아니라,

거기가 해외선교운동의 원천이 되었다는 사실에 늘 감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찍부터 나도 그 대학에 가서, 과거에 그들이 한 것처럼,

나도 그 장소에서 그들처럼 한 번 해외선교를 위해 기도해 보고 싶다.’는 소원이 있었다.

요한 웨슬리가 학생신앙운동을 펼치던 그 예배당에 한 번 꼭 가보고 싶어 했었다.

 

가난한 유학생이 무슨 돈이 있으랴!

거기 가는 차비만 어떻게 겨우 마련해서, 옥스퍼드(세인트 엔써니)대학을 찾아갔다.

 

 

학비를 해결하게 된 사연

그날따라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먼저 존 웨슬리 기념교회에 가서, 거기서 무릎 꿇고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마침 그 대학에 내 전공과 같은 과가 개설되어 있었다.

당연히 그 학교(옥스퍼드 세인트 엔써니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은 소원이 생겼다.

 

하나님은 먼저 마음에 소원을 주시고, 그 다음에 이루어 주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다음에 크리스천들이 잘 하는 것이 무엇인가?

도는 것’(땅밟기) 아닌가!

 

그래서 이틀 동안 여리고성 돌듯이 계속 그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기도드렸다.

당연히 길바닥에서 잤다.(숙소 잡을 돈도 없었고)

 

 

그리고 이틀 후에, (비장한) 기도를 한 번 드린 다음에,

교수님을 만나러 올라갔다.

 

거기 비서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무슨 목적으로 왔습니까?”

이 학교에 들어오기 위해서 왔습니다!”

 

지금은 입학 시기가 아니라서 안 됩니다.”

아니, 나는 멀리서 고생하고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학장님을 만나서, 왜 입학이 안 되는지, 그 이유라도 직접 확인하고 싶습니다!”

 

면담이 거절당하자, 할 수 없이 나는 또 학교를 돌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비서는 나이가 60이 넘게 보였는데, 애처롭게 창문 밖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오전도 돌고, 오후가 되어서도 (삼일 째) 계속 교정을 돌았다.

그러자 그 비서가 나를 들어오라고 불렀다.

드디어 학장님과 면담이 이루어졌다.

 

학장님, 제가 특별히 옥스퍼드에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옥스퍼드는 대단히 비싼 학교다. 그리고 우선 여기서 공부할 실력이 되느냐?”

 

실력은 있지만, 만약 모자라더라도, 학생이니까 배우러 온 것 아닙니까!”

학장님은, 저를 그냥 돌려보낼 수 없다는 것을 느끼신 모양이다.

 

그러면 공부할 돈은 있느냐?”

이 학교에서 제게 장학금을 주면 되지 않습니까!”

 

장학금은 줄 수 없다. 네 실력이 증명이 안 되었는데, 장학금은 안 된다!

설령 우리가 장학금을 준다 해도,

보아하니 너는 여기 잘 데도 없다던데, 잘 곳도 없는 학생에게 장학금은 못 준다

 

만약 제가 잘 데가 확실히 보장되면, 학교에서 장학금을 줄 수 있습니까?”

그럼 <내일까지> 여기서 확실히 먹고 잘 곳을 마련했다는 증명서를 가져 오게,

그렇다면 장학금을 주겠네!”

 

그리고는 냉정하게 나가라!”고 하셨다.

기숙사만 정한다면, 그것도 내일까지, 학교에서 장학금을 준다는 약속을 받았다.

(아마 무일푼 학생이, 하루 만에 숙식할 곳을 정하지 못할 줄 알고서...)

 

 

숙식을 해결하게 된 사연

이제 나는 기숙사 정하는 일이 남았다.

그렇지만 옥스퍼드에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데, 수중에 돈도 한 푼 없는데,

어떻게 먹고 자는 것을 마련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단 하루 만에!

 

그래도 하나님께 일단 감사드렸다. 그리고 옥스퍼드에서 빠져나왔다.

런던브리지를 걸어가는데, 왜 그렇게 강바람이 센지..?

배도 고프고, 길에서 누가 감자를 먹고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

 

그런데 갑자기 제 앞에 한 사람이 헬로~!” 하면서 나타났다.

그러면서 종이 한 장을 내 앞에 딱 내밀었다.

쳐다보니 중국어로 耶蘇天堂(예수천당)’ 이라고 적혀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Jesus Paradise?”(예수천당) 라고 말했다.

 

그는 깜짝 놀라서 내게 말했다.

너는 이 글자를 읽을 줄 아니?”

아무리 한자가 서툴러도, 한국인은 누구나 그 정도는 알지 않는가!

 

사연을 들어보니, 자기가 <캠브리지 미션>에서 나왔다고 한다.

요즘 중국인들이 런던에 많이 오니까, 중국인들을 전도하고 싶은데,

자기 선교회원들 가운데, 중국말을 아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나마 중국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도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전도하며 돌아다니다가, 중국어를 읽을 줄 아는 나를 만나서

그렇게 반가워하는 것이었다.

 

참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하나님의 일은 늘 이렇게 익사이팅하고 놀랍다.

그가 내게 이런 제안을 해 왔다.

우리 선교회에서 네게 숙식을 제공해 줄 터이니,

너는 여기서 중국인들에게, 이 중국어 전도지를 전해 줄 수 있겠니?”

 

나는 중국 사람도 아니고, 중국어도 못 하는데?”

아냐, 그 정도 알면 됐어!”

 

생긴 것도 중국인처럼 생겼고, 영어도 할 줄 알고,

중국말도 그 정도 알면... 그런 사람을 우리가 어디서 구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거기서 숙식할 수 있는 보증서를 얻게 되었다.. 단 하루만에!

 

참 지나간 과거 일이지만, 생각해보면 너무 익사이팅한(흥분된) 일 이었다!

 

나는 그 숙식제공 보증서를 들고, 다음날 아침 일찍 옥스퍼드로 달려갔다.

학교에서는 그것이 진짜인지, 전화를 걸어서 확인을 했다.

그래서 약속한 장학금을 받아서, 제가 옥스퍼드 대학을 다녔다. (우레와 같은 박수)

 

 

옥스퍼드의 종신교수가 된 사연

 

작년에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를 세운 집안의 공작 한 분이 돌아가셨다.

그래서 학교운영회의board of Regent가 열렸다.

이제 옥스퍼드 대학교가 전 세계로발전해 나가야 하는데,

교수진을 서구권에서만 뽑아서는 안 되겠다고 해서

그 돌아가신 공작 대신에 '대학 평의원foundation fellowship'으로

참신한 인물을 끌어들이자고 결정했다.

 

유럽과 미국을 알고, 거기에다 아시아까지 영향력을 미칠 사람을 물색하고 있는데,

약 한 달을 섭외해 보았지만, 적당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

그 때 그 노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옛날에 옥스퍼드에서 공부한 이상한 한국학생을 알고 있는데,

그가 요즘 세계무역센타에서 고위직에 있다는데,

그 사람이 어떨까요?’ (그가 바로 옛날에 나를 입학시켜준 학장이었다)

 

그래서 옥스퍼드에서 대표단이 나를 만나러 미국으로 찾아왔다.

결국 나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종신교수로 임명되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종신교수 임명식은 영국 여왕의 초청으로 이루어진다.

그 임명식에서 나보고 수락연설을 하라고 했다.

원래 그런 자리에선, 종교에 대해 발언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연설했다.

 

나는 이 학교가

진리를 탐구하고, 자유를 탐구하는 목적으로 세워진 학교인 줄 확실히 믿습니다.

그런데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진리를 가르칠 수 없습니다.

내가 확신하건데, 그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순식간에 장내에 적막이 흘렀다.

 

제가 느끼는 바는, 제가 실력으로 옥스퍼드의 종신교수가 된 것이 아니었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놀라운 일을 이루셨다.

부디 여러분께도 저와 같은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14:6-12/ 옥한흠목사

2014-11-09 17:58:38

 

첫 주를 맞으면서 우리가 가져야 될 좋은 생활 태도는 기대감을 갖는 것입니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내일이지만, 불안해 하거나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보다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합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매일매일에는 놀라움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대하고 있을 때만 그 놀라움을 볼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다." 놀라움에 대한 기대감, 이것을 가지고 금년 한 해를 시작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기대감이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분명한 꿈, 다시 말하면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도전할 때, 기대감이라는 것이 생기는 것입니다. 목표가 없습니까? 그래서 도전할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적당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삽니까? 그런 사람은 내일에 관한 기대감을 갖기 어렵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 가운데 간혹 운명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섭리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하고 자주 이야기하지만, 그 사고의 밑바닥에는 운명론이 깔려 있는 것을 봅니다.

 

"아이고, 내 팔자. 더 이상 뭘 기대하겠어요? 그저 내가 태어날 때부터 피할 수 없는 숙명인데요. 내가 어떻게 합니까? 이젠 어쩔 수 없어요." 이런 말 자기도 모르게 내뱉는 것을 봅니다. 이런 운명론은 우리를 보이지 않는 감옥에 처넣는 무서운 손입니다. 일단 그 감옥에 갇히면 우리는 자포자기해 버립니다.

 

세월 가는 데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목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기대감을 가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아직도 이런 운명론에 끌려 다니는 흔적이 있습니까? 신년 벽두부터 성령의 권능으로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잠재 의식들을 깨끗이 불태워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안 믿는 사람들이 가지는 태도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절대로 용납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운명에 끌려 다니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믿음의 사람은 목표를 정하고 도전할 줄 압니다. 디트로이트에 있는 헨리 포드 자동차 회사의 한 모퉁이에 헨리 포드 부부의 사진이 걸려 있고, 그 옆에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고 합니다.

 

'남편 포드는 믿음으로 꿈꾸는 자이고, 아내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믿음의 사람은 자기의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한평생 추구해야 될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살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도전한 사람들이었음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으며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중 한 사람인 갈렙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의 주인공인 갈렙을 통해 우리가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도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00년이 넘도록 종살이 하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기적으로 해방되었습니다.

 

이제 광야를 거쳐 가데스바네아라는 곳까지 왔습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눈 앞에 활짝 펼쳐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저 겁부터 집어 먹었습니다.

 

이미 가나안 땅에는 수백 년 동안 뿌리를 내리고 사는 거대한 족속이 있었기에 섣불리 들어갔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탐을 먼저 보내 모든 지형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정보를 입수한 후 진격합시다." 하고 제안을 했습니다. 결국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 각 지파마다 한 사람씩 유능한 젊은이들을 뽑아 열두 명을 가나안 땅에 먼저 들여보냈습니다.

 

그들은 몰래 다니면서 40일 동안 온 땅을 정탐했습니다. 성이 얼마나 높고 큰지, 백성들이 얼마나 무장을 하고 있는지, 지형이 어떻게 생겼는지 다 조사해 가지고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수고대하면서 그들의 정보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떠한 정보를 얻느냐에 따라, 어떠한 보고를 듣느냐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결정되기에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열두 명이 40일 동안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열두 명 중 열 명은 다음과 같이 보고했습니다. "틀렸어. 그곳에 사는 아낙 자손들은 굉장한 거인들이야. 그들 앞에서 우리는 마치 메뚜기 같았어. 성곽들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쌓여 있고 말이야. 그러니 어떻게 우리가 그 땅을 정복할 수 있겠어?

 

우리 힘으로는 안 돼."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간담이 녹아 내린 것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으로 보고했습니다. "아니야. 그 성이 굉장히 높고 튼튼하지만, 게다가 백성들마저 크고 장대하지만, 그런 것을 겁내선 안 돼.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신 땅이다.

 

그것은 우리의 땅이야. 올라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싸우시고, 우리는 반드시 그 땅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두 사람은 믿음을 가지고 보고하고, 열 사람은 불신앙을 가지고 보고 했습니다.

 

사실 불신앙이라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모욕하고 분노케 하는 행동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 광야 길을 걸어올 때 모두 하나님의 능력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복하는 것만은 마치 자기 힘으로 할 것 같이 불신앙으로 보고 했으니 이 얼마나 하나님에 대한 도전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열 명을 징계하셔서 전부 그 자리에서 즉사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광야로 들여보내시고는 열 명의 보고를 듣고 하나님을 원망했던 20세 이상의 사람들이 지면에서 사라질 때까지 40년을 유리 방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40년이 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가나안 땅을 밟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여리고 성을 정복했습니다. 그리고 차근차근 주변 성을 정복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넓히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진격하기 쉬운 지형, 정복하기 쉬운 성읍들은 이제 거의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 놓고 살만한 땅은 확보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손에 쥘 땅이 많이 남아 있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 전쟁에 지치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만 싸웠으면 좋겠다. 이 정도 차지했으면 우리도 살만한데 전쟁을 그만 했으면 좋겠다." 이처럼 사람들의 마음이 많이 풀어져 버렸습니다.

 

이런 시점에 갈렙이 여호수아 앞에 나왔습니다. "내 나이 85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45년 동안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나에게는 힘이 있습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여기에서 산지란 유대 나라 가나안 땅의 남방부에 있는 산과 언덕으로 구성된 산악지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곳은 굉장한 요새일 뿐 아니라 땅도 비옥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신장이 크고 힘있는 족속인 아낙 자손들이 그 지역에 포진하고 있었으며, 헤브론과 같은 큰 성을 만들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수년 동안 전투를 해왔지만 그곳은 아직 감히 도전하지 못했습니다. 슬슬 피하면서 지금까지 남겨 놓은 땅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갈렙이 그 땅을 여호수아에게 요구한 것입니다. "저 산지를 내게 주소서. 내가 올라가서 저 산지를 취하겠나이다. 저 땅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땅이니 내가 소유하겠습니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갈렙에게 그 땅을 허락했습니다. 성경을 조금 넘기다 보면 드디어 갈렙이 그 땅을 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지역에서 가장 신장이 크고 강한 아르바 족을 쫓아 내어 헤브론 성을 소유한 것입니다. 그 성은 나중에 다윗 왕이 유대 나라를 통치할 때 7년 동안 왕도로 사용하던 성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갈렙으로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 당시 갈렙의 나이가 85세였습니다. 아무리 옛날이지만은 그때나 지금이나 85세면 노인입니다. 아무리 체력이 좋고 싸움도 할 수 있고 칼도 쓸 수 있다고 하나 역시 노인은 노인인 것입니다. 오늘 특별히 이 자리에 50, 60대 이상 되시는 분들은 이런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교훈하시는 지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50대를 넘어서면 대부분 무기력해지고, 인생의 목표를 상실한 채 하루하루를 살기 쉽습니다. 일에서 손을 떼고 무엇을 해야 할지 막연한 채로 앞으로 20~30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갈렙과 같은 사람을 통해서 무언가를 배우고 도전 받아야 합니다.

 

맥아더 장군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단순이 오래 산다고 해서 늙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늙어가는 이유는 목적과 이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세월은 피부를 주름지게 할 뿐이지만, 목적이 없는 무관심한 생활은 영혼을 주름지게 만든다.

 

당신은 믿는 만큼 젊고, 의심하는 것만큼 늙는다. 당신은 자신감을 갖는 것만큼 두려워하는 것만큼 늙는다. 당신은 희망을 갖는 것만큼 젊고, 절망하는 것만큼 늙는다." 매우 뼈가 있는 말입니다. 갈렙은 나이가 들었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목표를 상실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할 것인지 잊어버린 일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세월이 피부는 주름지게 할지는 모르지만, 그 정신은 늙도록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다음은 워너세이 박사라는 분의 주도로 연구한 시애틀 연구 자료 입니다. 60~80세까지의 30년 사이에 해당되는 노인 2,000명을 조사한 결과, 60세에 은퇴를 했지만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정해놓고 날마다 능동적이고 활동적으로 사는 사람은 70대가 되어도 그 지능이 거의 쇠퇴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마땅히 뚜렷한 직업이 아니더라도 사회에 나가 이런저런 자원봉사를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퇴 후 무엇을 해야 될지 몰라 하루하루 세월을 보낸 사람은 70대에 들어서자마자 급격하게 그 지능이 떨어지고 급기야 치매까지 야기합니다.

 

우리가 갈렙에게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나이가 많던 적던 인생의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리라고 약속하신 산지가 어디인지 기도하면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도전해야 될 목표가 무엇인지 각자 하나님 앞에 질문해 보십시오.

 

나이에 관계없이 금년에 내가 도전해야 될 목표가 무엇인지, 나의 남은 생 몇 년 동안 도전해야 될 목표가 무엇인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분명히 찾으십시오. 찾고 나면 거기에 도전하십시오. 그럴 때 우리의 삶이 활력을 되찾는 것입니다.

 

목표를 분명히 찾으면 분명히 도전하게 됩니다. 갈렙처럼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정복하겠다는 도전 의식이 생겨 납니다. 갈렙은 높고 안전한 성곽에서 진을 치고 있는 강한 아낙 자손과 위험한 도박을 벌린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 지역을 점령하려면 얼마나 많은 인명 피해가 있을는지 모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을 갖고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땅이다. 내 발로 밟는 땅은 다 내 것이 된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어. 그러므로 내가 가서 밟으면 그것은 내 땅이야.' 확신이 분명했기에 값을 지불하는 것쯤은 두려워 않은 것입니다. 그 결과 자신의 믿음대로 그 땅을 손에 넣었던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구원을 받고 성령을 마음에 모시고 있는 사람은 내가 도전해야 될 산지가 어디에 있는지 보게 합니다. 빌립보서 16절 말씀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성령이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이 착한 일이란 산지요, 목표입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인도해 주세요." 하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주여, 금년에 어떻게 해야 될까요?"라고 물으면 성령의 사람의 마음 속에 무언가 하고 싶은 착한 일이 생각이 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10분이든 30분이든 조용히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에 있는 생각을 간절히 아뢰면, 뭔가 내가 하고 싶은 착한 일이 눈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이 주시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막연히 내가 생각했다고 그럴지 모르지만, 우리는 나 혼자 존재하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과 함께 존재합니다.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계십니다. 그 주님을 모시고 살면서 성령의 감동함을 받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이것은 해보고 싶다'는 착한 일이 생각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산지요, 목표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꽉 붙들어야 합니다.

 

어떤 조사 내용에 의하면, 겉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분명한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인생을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로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100명 중 5명 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그냥 되는대로 산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래선 안됩니다. 어떤 목표를 정하고 도전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질이 결정됩니다. 확실한 목표를 갖고 있습니까? 그 삶의 질은 분명히 높을 것입니다. 모호한 목표를 갖고 있습니까? 그 삶의 질은 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반드시 두 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적인 목표요, 다른 하나는 현실적인 목표입니다. 영적인 산지와 현실적인 두 가지 입니다.

 

영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이라면 똑같이 적용되는 목표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끝까지 추구해야 될 목표가 하나 있는 데,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최종적인 목표입니다.

 

사도행전 132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신약 성경에서는 그 말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라고 바꾸어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자가 되는 것,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되는 것, 예수님을 닮은 제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예수 믿고 구원을 받은 다음, 생명이 남아 있는 동안 끝까지 추구해야 될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조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처음 창조하실 때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자 그 목적에서 이탈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며, 우리를 중생 받은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래적인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오늘도 성령과 말씀을 통해 우리를 계속 인도하고 계십니다. 곧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존재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는 성화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닮은, 예수님을 닮은 정말로 고귀하고 아름답고 거룩한 존재로 계속 다듬어가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창조 목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자마자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할 만한 다윗과 같은 사람에게서 질투를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다른 것은 질투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을 보면 질투해야 합니다. '어쩌면 저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는데....' 하는 거룩한 질투,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언젠가 신문에서 본 내용입니다. 역사상 세계적으로 아주 위대한 일을 한 인물들을 전부 조사한 결과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12만 명을 상대로 아주 광범위한 조사를 했는데, 역사적으로 어느 정도 공적을 남긴 위대한 인물들 대부분이 장자가 아닌 아우나 동생, 막내라는 것입니다. 참 희한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 동생 되는 사람들이 특별히 성공하는 확률이 많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동생들은 자랄 때부터 부모들에게 형만큼 인정을 못 받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항상 형만 위해주므로 그 밑에서 치어 자기가 인정을 못 받는다는 콤플렉스를 갖고 자랍니다. 따라서 어떻게 하든지 남들이 알아주는 존재가 되겠다는 본질적인 질투 감정이 있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계속 가지고 살면서 그 질투의 감정이 창조적인 자질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형보다 나아질 거야.", "나는 형보다 성공할거야."라는 몸부림이 그로 하여금 더 많이 노력하고 도전하게 만들어서 결국 훌륭한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아우 콤플렉스가 결국 성공의 지름길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동생 중에서도 형편없는 막내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뭔가 도전하는 바가 있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질투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목사를 보고 '하나님이 참 기뻐하시는 목사구나. 나는 왜 저렇게 못 되지?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어야 되는데...' 하고 질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좋은 장로님들, 좋은 순장들을 보십시오.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진 않지만 은밀히 보시는 주님 앞에 신실하고, 주님이 항상 기뻐하겠다고 느껴질 만한 형제 자매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볼 때 질투하십시오. 나도 저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표를 정하고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작년에 비해서 새해에는 하나님의 마음에 더 드는 자가 되어야지.' 이것처럼 거룩하고 아름다운 목표가 어디에 있습니까?

 

분명히 우리는 어제보다 오늘 더 주님을 닮아가는 자리로 올라가야 합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인생의 승자는 다른 사람보다 더 우월한 자가 아니고, 과거보다도 오늘 더 우월한 자입니다." 작년보다도 오늘, 더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가 되고 주님의 마음에 더 기쁨을 드리는 자가 되었다면 그가 승자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은 지 20년이 되었지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별로 발전이 없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요소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벌써 패자입니다. 지금까지 목적 없는 신앙생활을 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것을 목표로 세웠으면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놓고 도전하십시오. 각자가 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실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나는 성경에 대해서 무식해서 탈이야. 1주일 동안 성경을 한 장도 제대로 안 읽어. 그저 설교 듣는 것이 전부야. 하나님께서 날 보실 때 이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실 거야.' 이처럼 마음에 어떠한 가책이 오면 이에 대해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찾으십시오. 이것이 도전입니다.

 

첫날부터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런 식으로 읽겠다고 각오하고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고자 하는 사람이 그런 도전도 없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들 수 있겠습니까?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마음에 꼭 들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것이 뭐가 있어요? 기도입니까? 하루에 5분도 제대로 기도를 안 합니까? 그러면서도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합니까? 사탄이 시험할 때 100% 넘어지는 신앙생활 이라면 하나께서 기뻐하실 리가 없습니다.

 

'내가 기도 좀 해야 되겠다. 작심하고 기도 좀 하자.' 했으면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교회로 달려오든지, 아니면 골방에 들어가 적어도 20, 30분 엎드려 기도한다든지 뭔가 각오를 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 물질에 애착이 있어 제대로 헌금하지 못합니까? 십일조도 안 합니까? 헌금하라고 하면 나도 모르게 인상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좋아하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 그 동안 제게 많이 주셨는데, 금년의 목표는 제가 가진 것을 좀더 내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 좀 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헌금을 어떻게 해야 되겠다. 자선사업을 어떻게 해야 되겠다. 선한 일에는 어떻게 써야 되겠다.'는 나름대로 실천사항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실천사항을 가지고 우리가 도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주일을 철저히 지키지 않습니까? 남이 모르는 죄를 계속 용인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말씀으로 그것을 지적하고 책망할 때 귀를 막아버립니까? 그런 태도를 가지고는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 업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설교하는 제게 물을 것입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기 위해 금년에 어떤 도전을 하려고 합니까? 먼저 이야기해주세요?" 그러면 전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몇 달 전부터 제겐 도전해야 될 분명한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이것만은 해야겠다는,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내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게 있어서 실천 사항입니다. 대형 교회 목사가 되어 지금 제 마음에 쓸데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이 쌓여 있습니다.

 

없어도 될 것들이 쌓여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제 됐어. 그 정도면 됐어. 내 마음에 쏙 들어." 하고 말씀하실 때까지 마음을 비우려고 합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해 주시리라고 믿고 도전하려 합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마음을 비워야 될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쓸데 없는 잡동사니를 가득 넣고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비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자가 되길 사모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를 주십니다. 기쁨을 주십니다. 만족을 주십니다.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이 찬송처럼 우리가 이런 목표 가지고 새해를 살도록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현실적인 목표를 정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 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할 일을 주셨습니다. 다양한 일이 있고, 다양한 직업이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 일해야 될 장소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할 일이 있고 소명이 있는 이상, 해마다 각자가 성취하고 달성해야 될 목표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막연한 꿈이 아닙니다. 당장 노력하고 준비해서 일정한 시간 안에 성취해야 되는 현실적인 목표를 말합니다.

 

채용정보 사이트 파워잡(www.powerjob.co.kr)이 지난 달 직장인 1,407명을 조사한 결과, 신년에 원하는 목표 1위가 이직으로 나타났습니다. 10명 중의 4명이 대우나 근무환경 면에서 좀더 나은 직장으로 옮기고 싶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자기 개발, 세 번째로는 봉급인상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입니다. 남편입니다. 아내입니다. 어머니입니다. 회사의 팀장입니다. 학생입니다. 우리는 각자 사회에서 여러 가지 역할과 일을 맡아서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 따라 우리가 바라는 꿈과 소원도 다양합니다. 그러나 막연한 꿈이나 목표를 가지고 도전하면 안됩니다. 다시 말해 측정 가능하고 달성 가능한 목표를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 들고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놓고 도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목표를 바로 알면 삶이 단순해집니다. 확실한 목표는 내가 해야 할 행동과 내가 하지 말아야 될 행동을 분별해주는 기준이 됩니다. 성령의 사람은 반드시 설정해야 할 목표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구체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 도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목표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열심히 기도하면서 도전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1등 집착증을 가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1등이 아니면 마음이 풀리지 않는 잘못된 태도를 가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 사람은 금메달을 따지 못하고 은메달을 따면 그것으로 눈물을 펑펑 쏟는 세계 유일의 민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금메달도 소중하고 은메달도 소중하고 동메달도 소중한 것입니다. 그것은 울 일이 아니라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도 1등이 아니면 못 견디는 악성 바이러스와 같은 병에 걸려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분수가 무엇인가를 인정합니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분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릇이 똑같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그릇을 놓고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의 분수를 지킬 줄 아는 슬기를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모자람을 아는 슬기를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모자람을 아는 슬기, 이것이 필요합니다. 이럴 때 내 분수 안에서 분명한 구체적인 목표를 찾고 그 목표를 달성하고자 도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 후 한두 번 실패한다고 해서 주저앉으면 안됩니다. 계속 도전해야 됩니다.

 

한 예를 들겠습니다. LA에서 여객기가 떠서 태평양을 건너 열 몇 시간 만에 서울로 온다고 합시다. 그런데 여객기가 열 몇 시간 동안 날면서 지정된 항로대로 나는 경우는 전체 10% 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나머지 90%는 항로를 벗어난다고 합니다. 본래 항로를 벗어났다가 제자리에 돌아오고, 벗어났다가 또 제자리에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나중에는 목적지 공항에 도착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때는 목표에서 벗어나고, 실패하고, 주저 앉기도 하지만, 계속 그 목표를 향해 믿음으로 도전하면 결국은 그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의 구체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만일 돈을 많이 벌어야 되겠다는 목표를 하나님께서 주셨으면 구체적으로 실천사항을 정해야 합니다. 얼마를 벌기 위해서 서비스를 어떻게 업그레이드를 시켜야 하는지 구체적인 사항을 놓고 하나님께 도전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의 경우 금년에 토플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면 목표 점수가 얼마인지 정해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금년에 이 점수가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날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열심히 할 것입니다. 도와주세요.' 이럴 때 그의 도전의식이 항상 활활 타오르고, 하나님 앞에 문을 두드리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목표가 희미해서는 뜨거운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금년에 도전하고 싶은 현실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잘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목표를 분명히 정하면 최선을 다해서 도전하십시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기도하십시오.

 

주님께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7:7)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될 사실은 실패해도 또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주저 앉거나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십시오.

 

이렇게 1년 동안에 우리가 달려가야 될 길, 우리가 손에 넣어야 할 산지를 분명히 확인하면서 달려가면 금년 한해 동안 우리를 통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가 우리 눈 앞에 펼쳐질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목표, 곧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열심히 뜁시다. 또 내 삶에 있어서 반드시 얻어야 되는 목표를 설정하고 하나님께 구하면서 열심히 도전합시다. 그래서 아말렉이 있는 산지를 우리의 소유로 만드는 한 해가 될 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갈렙처럼 우리에게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하는 분명한 목표와 도전 의식을 가지고 새해를 시작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 성도들에게 성령께서 함께 하시오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착한 일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 주옵소서.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주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일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분명히 알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 가정, 직장, 사회생활에서 우리가 분명히 달성하고 성취하고 싶은 목표가 무엇인지 알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확실한 목표를 주셔서 금년에는 반드시 성공하는 한 해가 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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