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하심과 그 증거들 /삼상9:1-27/ 양인국목사
2022-09-07 10:19:18
1. 본문은 이스라엘이 왕을 구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 사울을 택하시고 선지자 사무엘을 통하여 그에게 기름을 붓도록 하신 내용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내용을 통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 증거들에 대하여 교훈 받을 수 있다.
2.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선택으로부터 시작된다. 선택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일로서 우리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하셨기 때문에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고, 모세를 애굽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는 지도자로 선택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방의 사도로 택하셨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택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움을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 역시 하나님의 택하심과 무관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택해 주신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인도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삶의 방향을 보다 더 분명히 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이웃들을 보다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삶의 방향을 분명히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택하심이 자신이 살아야 할 삶이라는 것을 안다는 의미이고, 이웃을 보다 더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이웃의 삶이 자신의 모습과 다를지라도 그것을 하나님의 선택과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언제나 영혼의 구원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이웃들에게도 그 중요성에 대하여 말하지만, 가르치는 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항상 배우고 확신하는 일의 중요성을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은 선교사로 부르지 않으셨고, 또한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자로 부르지 않으셨다. 우리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언급한 것처럼 이웃의 삶이 자신의 삶의 모습과 다를지라도 그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지만 이와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할 때 이웃에게 자신과 동일한 삶을 살 것을 강요하는 우(愚)를 범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실 때 환경과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신다. 우리는 이와 같은 예를 사울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사울의 아버지는 나귀를 잃어버렸고 사울은 아버지의 나귀를 찾기 위하여 길을 떠났다. 이 일은 어느 가정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이지만 하나님은 이와 같은 일을 통하여 사울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다.
사울은 나귀를 찾아 이곳저곳을 두루 행하였지만 찾지 못했다. 사울은 집을 떠난지 사흘이나 되었음으로 부친이 잃어버린 나귀보다 자신에 대하여 더 염려할 것을 생각하고 사환에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지만 사환은 사울에게 하나님의 사람에게 물어봄으로 잃어버린 나귀를 찾기 위하여 한 번 더 노력해 보도록 요청했다. 사울은 사환의 말을 좋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갔다.
그가 찾아간 하나님의 사람이 바로 사무엘이었는데, 그는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지기 위하여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이처럼 사람과 환경을 통하여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질 수 있도록 인도하신 것이다. 우리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지금 여기에” 허락해 주신 환경을 소중히 여기고 그 환경에 대하여 믿음으로 응답할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지금 허락해 주신 환경을 통하여 어디로(목적지) 인도함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환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인도함을 받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사울을 인도하고 계실 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사무엘을 부르시고 그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하셨다.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9:16)” 다음날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대로 사울을 만날 수 있었다. 사무엘이 사울을 만났을 때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 하시니라(9:17)” 하나님은 사울에게는 자신을 숨기셨지만 사무엘에게는 나타내셨다. 그래서 사울은 자신의 계획대로 그리고 자신의 일을 위하여 사무엘을 찾아왔지만 사무엘은 그가 올 줄을 미리 알았고 또한 그가 바로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 사람인 것을 알았다.
이처럼 동일한 시간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을지라도 사울처럼 인도하심을 의식하지 못할 수 있고 또한 사무엘처럼 인도하심을 분명하게 인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인도하심을 받고 있을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도하심을 통하여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식하고 있든지 그렇지 못하든지 언제나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해 준다.
사무엘은 자신을 찾아온 사울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사흘 전에 잃은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9:20)” 여기 “사흘 전에 잃은 나귀를 찾았다”는 것은 사울의 부친이 이미 그것을 찾았다는 뜻이다. 어떻게 사무엘은 사울이 잃어버린 나귀를 찾는 자인지 알 수 있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의 아버지가 이미 나귀를 찾은 것을 알 수 있었을까?
사무엘이 말한 것은 이적에 해당한다. 이것은 사무엘이 선견자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으로서 이런 것을 말해 준 것은 사울로 하여금 믿음을 갖도록 해 주기 위함이었다. 사울이 이런 일들을 통하여 사무엘을 선견자로 믿는다면 사무엘이 다음에 해 주는 말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를 인도하실 때 섬세하게 인도해 주신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이적을 행하심으로 사울에게 믿음을 갖게 하신 후 “온 이스라엘의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네와 네 아버지의 온 집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심으로 그의 부르심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나타는 일들 가운데 하나는 삶의 여정에서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이 해결 된다는 것이다. 사울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사무엘을 만났고 그와의 만남을 통하여 현재 직면한 문제뿐만 아니라 그의 삶 가운데 있던 본질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었다.
사울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잃어버린 나귀를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울은 사무엘을 통하여 자신의 부친이 이미 잃어버린 나귀를 찾았다는 것말을 들음으로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울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까지 해결되었다. 21절은 사울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말해 주고 있다. “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9:21)”
사울의 이 말은 자신에게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연약함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통하여 행하실 일을 말씀해 줌으로 이 문제도 해결해 주었다. 우리가 삶의 여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 수 있으나 하나님이 인도하심에 따라 행할 때 그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나타나는 일들 가운데 다른 하나는 열매다. 하나님은 사무엘로 하여금 사울에게 기름을 붓도록 하심으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택하시고 세우실 것을 말씀해 주셨다. 이후에도 사무엘은 사울에게 마땅히 행할 것을 가르쳐 줌으로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도록 지도해 주었다. 이처럼 사울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 때 결국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세워졌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산다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우리 가운데 성취될 것이고 그것 자체가 우리에게 열매가 될 것이다.
3, 함께 기도하자,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주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살게 해 주시고 이로 인하여 우리의 삶 가운데 풍성하 열매를 맺게 해 주옵소서. 아멘
사울이 만난 새 길 /삼상9:15-27/ 박 일우목사
2022-08-17 10:22:36
(새번역) 사울이 오기 하루 전에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알리셨다. “내일 이맘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온 한 사람을 너에게 보낼 것이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워라. 그가 나의 백성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해 낼 것이다.” /사무엘이 다시 사울에게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 드리겠으니, 잠깐 서 계십시오.”하고 말하였다.(삼상 9:15,16,27)
오늘 본문의 사울은 사무엘 선지자에 의해 왕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아 나중에 이스라엘의 왕이 된 그 사울입니다. 그러나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기 전의 사울은 평범한 한 가정의 청년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기스는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서 유력한 사람이었습니다. 기스의 아들 사울은 빼어나게 잘 생긴 젊은이로서, 키도 보통 사람들보다 어깨 위만큼 더 큰 장신이었습니다. 사울은 효성도 지극하여 아버지 심부름도 충성스럽게 하고, 데리고 다니는 종과도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 상담할 때에는 적당한 선물도 준비해 가야 한다는 마음을 가질 정도의 교양 있고 훈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왕이 된다는 생각이나 야망은 전혀 없는 그저 평범한 일상인이었을 뿐입니다. 그런 그에게 갑작스레 놀라운 일이 발생합니다. 그 일은 그의 삶을 새로운 인생의 길로 인도하는 전환점이 됩니다. 사울이 만난 새 길은 오늘 우리에게 몇 가지 메시지를 던져 줍니다. 예수를 몰랐던 우리가 예수를 만나게 되었고, 그리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만난 새 길은 어떤 길인지 돌아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난 새 길은 공동체의 유익을 나의 유익보다 우선시하는 삶의 길입니다. 사울에게는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공동체가 그의 사명의 대상으로 갑자기 주어졌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시달림과 고통을 받고 있던 동족입니다. 하나님이 펼쳐 주신 새 길은 그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착취와 수탈의 손아귀에서 건져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이 사울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실 필요가 있으셨습니다. 이렇게 하시기까지에는 주님의 가슴을 울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비명이 쌓여 있었습니다. “나의 백성”이라고 네 번이나 거듭 표현하시는 주님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타는 가슴이 있었습니다. 블레셋 때문에 울부짖는 고난의 탄식, 살려 달라고 절규하는 주님의 백성의 문제를 안타까워하시는 주님의 자비와 사랑, 이로 인한 주님의 단호한 구원의 계획이 있으셨던 것입니다(삼상 9:15-17).
우리에게는 어떤 새 길이 주어진 것입니까? 성도는 하나님이 불러내신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빛이신 주님이 구별하여 거룩하게 택하시고 불러내신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먼저 죄와 사망의 고통 가운데서 불러내신 주님의 업적을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게 하시기 위하여 먼저 세워진 영적인 지도자들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빛의 자녀들입니다. 빛의 일꾼들이요 군사들입니다.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한다는 의미에서 빛의 일꾼들이요, 어둠의 세력과 한판 승부를 펼쳐 간다는 의미에서 빛의 군사들입니다. 주님이 이 모든 일에 든든한 보호자가 되시고 인도자가 되시고 아버지가 되신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빛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처럼 어두운 세상에서 빠져나와 주님의 빛 앞으로 장차 모여들 하나님의 백성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인도자들이요, 이들을 섬기기 위하여 이들을 돕기 위하여 헌신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유익보다는 이런 사람들의 유익, 형성되는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를 이렇게 높이 세우시는 하나님의 계획, 큰 그림, 분명한 비전을 모두 가슴에 선명하게 담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런 영적 지도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의 삶을 살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내가 먼저, 우리가 먼저,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하며 말씀의 지도를 받는 삶의 길을 꿋꿋이 가는 일입니다. 주 하나님은 주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 주의 일을 펼쳐 가실 때, 늘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담고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사울에게 선지자 사무엘과의 친밀한 교제의 기회가 주어진 것은 이 때문입니다. 사울이 소아적인 삶, 개인적인 일상적인 삶에서, 대아적인 삶, 이스라엘 전체를 바라보며 생각하는 삶의 지평을 열어가게 된 것은, 사무엘을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이끄는 저녁 만찬에 초대됩니다. 그리고는 가장 상석에 앉는 명예를 입으며 가장 화려하고 융숭한 최고의 대접을 받습니다.
특별히 간수해 두었던 고기의 넓적다리 요리를 대접받습니다. 사무엘 앞에서 최고의 식탁 교제의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성읍으로 자리를 옮겨 지붕 침실에 사무엘과 함께 누워서 잘 수 있는 감미로운 휴식의 밤을 보내게 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무엘과 깊고 따뜻하고 친밀한 교제의 시간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사울을 높이 기름 부어 세우는 이 일을 위해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충분히 접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삼상 9:19-10:1).
오늘 우리에게도 주님은 말씀의 식탁 교제와 지붕 동행의 기회를 끊임없이 열고 계십니다. 우리에게는 날마다 성경을 펴서 읽고 묵상할 수 있는 말씀 묵상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늘 기도하시면서 가장 힘쓰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시편이나 이사야 등 구약 성경을 가슴 속에 완전히 새기는 엄청난 시간을 가지신 것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늘 보좌에서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들으셨던 모든 이야기를 늘 구약 성경을 펴시며 확인하고 되새기는 귀하고 중요한 시간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회당에 서실 때에는 그 성경을 펼쳐 드시며 회중들에게 말씀을 전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메시아로서의 일거수일투족도 그 성경에 기반을 둔 것임을 자타가 확인하도록 하시는 놀라운 행보를 보이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나라, 주의 나라를 펼쳐 가며 살아가는 우리 사명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일입니다. 주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맡은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공급하여 주십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를 대처하고 해결하는 온갖 다양한 지혜들을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계를 다스리며, 세상에서 우리를 대적하는 악한 권세를 무찌르기 위해서는 성령의 검, 말씀이 우리에게 날마다 새롭게 준비되고 일마다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매일의 큐티, 주일 말씀, 또 우리가 함께 행진하는 “믿음의 삶, 성령의 검을 사용하라,” 책자에 정리된 200개의 성구는 우리 모두에게 일평생 전가의 보도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숙독하시고, 완전히 이해하시고, 우리들의 삶에 적절하게 민첩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다 암송해 버리세요. “나의 묵상/고백/감사/결단” 부분도 나의 말로 적어 보세요. 하루 두 개 정도씩 꾸준히 쌓아 보세요. 블레셋의 세력을 정복하고 이기는 놀랍고 고마운 성령의 검이 될 줄 믿습니다.
날마다 승리하고 언제나 승리의 개가를 부르려면, 우리는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내 삶의 우선순위로 끊임없이 재조정하는 삶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용수철처럼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죄의 본성, 이기적인 체질이 여전히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언제 언제는 내 삶의 우선순위가 주님이시고 주님의 나라였는데, 하고 회고하지 마세요. 물론, 그때는 참 잘 하셨어요. 그러나 지금은 어떠신가요? 그러므로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내 삶의 변함없는 우선순위로 확정시키는 작업이 날마다 일마다 꼭 필요합니다. 우선순위를 바뀌게 하는 위기는 파란만장한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 늘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사무엘을 만나기 전에는 그의 종과 더불어 아버지의 잃어버린 암나귀 몇 마리를 찾는 데 온 힘을 경주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효성스러웠고, 부지런했고, 종과도 편하고 좋은 관계였고, 찾는 시간이 오래되자, 기다리는 아버지를 걱정하는 그런 가정적인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을 만나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면서는 사울의 우선순위가 달라져야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울에게는 아버지가 잃어버린 암나귀들의 행방을 걱정하는 일이 아니라 이제는 온 이스라엘에 대해 영도자로서의 관심을 가져야 할 입장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우선순위의 문제는 주님이 직접 다루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마 6:31-33). 우리의 우선순위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입니다. 우리가 염려하던 의식주 생활의 모든 필요는 하나님이 어련히 알아서 보장해 주신다는 확약인 것입니다. 이걸 믿는 것이 믿음이요, 이걸 체험하는 것이 기쁨인 것입니다.
자, 이제 주님이 맡기신 일이라면 순종하며 수행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할 바에야 잘 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할 바에야 기쁨으로 철저히 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세심하게 준비하여 충성스럽게 수행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팍팍 밀어주실 것입니다.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 주님의 뜻을 따라 사무엘은 철저한 순종으로 나아옵니다.
사무엘로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달라는 것이 잘못된 일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고 계신데, 이방 사람들처럼 왕을 달라는 것이, 심히 불안하기도 하고, 주의 뜻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사무엘의 이 못마땅해하는 마음을 아시고 위로하시며, 세속적인 왕권이 생길 때의 폐해를 백성들에게 교육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막무가내입니다.
주님의 허락이 내립니다. 사무엘로서는 내키지 않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주님의 최종적인 뜻을 받들어 사무엘은 일합니다. 사울을 왕으로 기름부어 세우는 일입니다. 이 일이 성취되게 하고자 세심하고 철저하게 준비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내 생각하고 다르더라도, 주님의 최종적인 뜻이 분명해졌을 때에는, 우리도 사무엘처럼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에 보내셨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맡기셨습니까? 최선을 다합시다. 충성합시다. 세밀하게 준비하며 열정적으로 추진합시다. 주님이 동행하시며 우리를 응원해 주실 것입니다.
새찬송가 312장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새 길을 열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성도로 불러내어,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빛의 자녀, 빛의 일꾼, 빛의 군사로 세워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맡겨진 크고 작은 공동체를 위하여, 그 유익을 위하여 헌신하게 하옵소서. 나의 유익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더 헌신하게 하옵소서. 이를 위해 날마다 변함없이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게 하옵소서. 말씀의 힘을 통하여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늘 유지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우선적으로 애쓰고 달려가게 하옵소서. 의식주의 필요, 일상적인 환경은 변함없이 채우시는 주님의 은혜의 손길에 전적으로 맡기게 하옵소서. 때로 내 생각과는 다르더라도, 머뭇거리지 말고, 순종하게 하옵소서. 맡은 일, 작은 일, 현재의 일에, 최선을 다해 충성하게 하옵소서. 세심하게 준비하고, 뜨겁게 일하게 하옵소서. 주의 나라가 이를 통하여 펼쳐질 줄 믿습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삼상9:1-27
2017-08-25 06:20:11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 선지자가 연로하자 그의 두 아들을 사사로 세워서 아버지를 돕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뇌물을 받고 부당한 판결을 내리는 등 불의를 행하였다. 이에 이스라엘 장로들은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이방나라처럼 우리에게도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를 했다.
사무엘은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백성들이 왕을 요구한 것은 하나님을 버린 것이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직접 다스리시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라고 하시면서 섭섭한 마음을 표현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백성들이 원하는 대로 왕을 세우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는 왕과 왕이 통솔한 강력한 군대를 의지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리석은 마음을 아시고 서운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선택을 받아들이시고 허락하셨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삶에서 선택권을 주셨다. 그것이 선과 악의 길이 아니라면 우리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이제 이스라엘 12지파 모든 백성 가운데서 최초의 왕이 될 만한 사람을 두루 살피시고 한 사람을 선택하셨다. 그 사람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울이라는 청년이었다. 사울의 아버지는 기스라는 사람으로서 그는 베냐민 지파에서도 유력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울은 외모로 볼 때 보통 사람보다 키가 머리 하나가 더 클 정도로 컸다. 또한 외모도 준수하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눈에 보이는 왕의 존재를 간절히 원하였기에 외모적으로 볼 때 누가 보더라도 왕의 풍채를 느낄 만한 외모를 가진 사울을 세워주셨다.
우리는 사울이 처음에는 훌륭한 왕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나쁜 왕, 악한 왕, 타락한 왕이 되어서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사울은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이 왜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웠겠는가? 그는 초대 왕이 될 만한 좋은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들어 쓰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의 어떤 면을 보시고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는 영광과 축복을 주신 것일까? 그 이유를 함께 살펴보자. 그리고 만약 나도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사울의 장점을 잘 기억하여 본받기를 원한다.
1. 하나님은 효도하는 사람을 쓰신다.
사울은 효도하는 사람이었다. 하루는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자신이 기르는 암나귀들을 잃어버렸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나귀는 주요한 운송 수단이었다. 사람이 타기도 하고 주로 물건을 운반하는 데 사용하였다. 게다가 암나귀는 나귀 새끼를 낳을 수 있으니 숫 나귀보다 비싸고 귀한 재산이다. 그런데 암나귀들을 여러 마리 잃어 버렸으니 재산의 피해가 컸다.
기스는 아들인 사울을 불러서 지시했다. “너는 한 종을 데리고 가서 암나귀들을 찾아오너라.” 이에 사울은 아버지의 명을 받들어서 한 종을 데리고 암나귀를 찾기 위해서 주변 지역을 두루 찾았다. 거기서 더 나아가 먼 지역까지 두루 찾았으나 결국 찾지 못하였다.
사울은 집에서 한참 멀리 온 후에 아차 싶은 생각에 종에게 말하였다.
(삼상9:5) 돌아가자 내 부친이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본문을 보면서 사울의 심성을 알 수 있다. 사울은 아버지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는 효자였다. 또한 사울은 맡겨진 일에 열과 성을 다하는 충성된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삼상9:4)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니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니되 없고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다니되 찾지 못하니라
이 말씀을 보면 사울은 암나귀들을 대충 찾은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부터 먼 곳까지 최선을 다해서 샅샅이 돌아보며 찾아다녔다. 또한 암나귀들을 찾다가 너무 멀리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다보니 아버지가 자신의 안위까지 걱정하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압축해서 표현하자면 사울은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었다. 이런 점 때문에 하나님이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셨다.
사람이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자기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조차 모르는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면 얼마나 많은 문제를 일으키겠는가?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사람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데 가장 기초가 되는 윤리요 도덕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계명 가운데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지켜야 할 윤리 가운데 첫 번째 계명으로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셨다.
(엡6:2,3)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주신다고 하였다. 반대로 부모에게 불효를 하고 패륜을 행하는 사람은 사형을 시키라고 율법에 명시하였다. 그 만큼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셨다.
구약 성경에서 대표적인 효자하면 이삭이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신을 모리아 산 정상에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고 밧줄로 꽁꽁 묶고 제단 위에 올려놓을 때에도 아버지에게 왜 그러시냐고 묻거나 반항하지 않고 잠잠히 있었다. 또한 이삭은 아버지가 가나안 여자를 아내로 삼지 말라고 한 말씀에 순종하여 나이가 40이 되도록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구해 온 리브가와 결혼을 하였다. 이삭은 평생을 아버지 말씀에 순종한 효자 아들이었다. 그런 이삭에게 하나님은 평강과 형통과 장수의 복을 주셨다.
신약 성경에서 대표적인 효자는 누구일까?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30살에 공생애의 삶 즉 메시아의 삶을 살기 전까지는 평범한 한 가정에서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의 아들로서 부모님을 공경하며 사셨다. 특히 아버지 요셉이 일찍 돌아가신 후로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목수의 일을 하시면서 집안의 가장 역할을 감당하셨다. 어머니를 도와 동생들을 돌보셨다.
(눅2:51)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 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예수님은 메시아의 삶을 마치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육신의 어머니의 여생을 위해서 자신의 제자이면서 사촌동생인 사도 요한에게 자기를 대신하여 마리아를 봉양해줄 것을 당부하셨다.
이번 주에 어버이날이 있다. 평소에도 부모님께 잘 해드려야겠지만 특별히 이번 주에는 부모님께 기쁨을 드리도록 힘쓰자. 부모님께 선물이나 돈을 드리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부모님께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최소한 세 가지를 표현해보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왜 초대 왕으로 세우셨을까? 그는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었다. 우리도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한다면 부모님을 공경하는 사람이 되자. 또한 맡겨진 일에 성실한 사람이 되자. 한 마디로 말하면 효성을 다하는 사람이 되자.
2. 하나님은 주의 뜻을 구하는 사람을 쓰신다.
사울은 주의 뜻을 구하는 사람이었다. 사울이 사환과 함께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열심히 찾았으나 결국 실패했다. 집에서 너무 멀리 오랫동안 떠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아버지가 암나귀보다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하실까봐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 때 사환이 사울에게 제안을 했다.
(삼상9:6) 보소서 이 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의 갈 길을 가르칠까 하나이다
사울은 사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에게 빈손으로 갈 수는 없는데 과연 드릴만한 예물이 있느냐고 걱정하였다. 사환은 사울에게 여비로 가져온 은 한 세겔의 사분의 일이 있으니 그것을 드리면 좋겠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사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서 갈 길을 묻자고 제안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울은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자는 제안을 적극 받아들였다. 이것은 그가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울이 나중에 타락해서 사람의 뜻대로 행하기는 하였지만 그가 처음에는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구약의 인물 가운데서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다윗이다. 다윗은 특히 전쟁을 앞두고 항상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다. 적군과 비교해서 우세한 전력인가 아니면 열세한 전력인가를 기준으로 전쟁을 한 것이 아니었다. 항상 하나님께 이 전쟁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여쭈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알려주셨다.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올라가라.”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에 순종하였을 때 아무리 강력한 적군일지라도 백전백승하였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움직였기 때문이다.
신약의 인물 가운데서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한 사람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과 동등한 지위를 가지셨지만 이 땅에서는 철저히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서 기도에 힘쓰셨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많은 기적을 행하실 때일수록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서 기도에 힘쓰셨다. 항상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다. 그리고 그 뜻에 순종하셨다. 예수님은 당신의 양식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하실 정도였다.
(요4:34)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우리도 예수님처럼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되자.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찾으시고 들어 쓰신다.
(잠3: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지도를 받아서 평강과 형통의 삶을 살게 된다. 또한 하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요긴하게 들어 사용하신다. 주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자.
3.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쓰신다.
사울은 겸손한 사람이었다. 사울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여 연약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한다.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좋은 의견을 받아들일 줄 안다. 그런 사람은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사울의 그런 모습을 보시고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셨다.
사울은 사환이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가서 암나귀들을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지 인도를 받자고 하는 제안을 받아들여서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갔다. 그가 말한 하나님의 사람은 사무엘 선지자였다. 두 사람이 사무엘 선지자를 찾아갈 때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미리 말씀하셨다.
(삼상9:16)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사무엘이 사울을 만났을 때 하나님은 바로 이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인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면서 곧 찾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사울에게 이렇게 말했다.
(삼상9:20) 사흘 전에 잃은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온 이스라엘의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비의 온 집이 아니냐
이 말을 들은 사울은 아직 사무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직감적으로 사무엘이 자신을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겸손하게 말하였다. 특히 자신의 개인적인 능력도 부족하지만 자신의 집안이나 소속된 베냐민 지파도 이스라엘을 대표할 만한 자격이 없다고 본 것이다. 지극히 겸손한 모습이다.
(삼상9:21)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 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하나님은 바로 이런 사람을 찾으신다.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잘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사람을 찾고 찾으신다.
(벧전5:5)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성경에서 겸손의 대명사는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겸손의 모든 것을 보여주셨다. 하나님과 동등한 지위를 가지셨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 땅에 오시어 우리를 섬겨주셨다. 예수님의 겸손은 하늘 저 위에서 이 땅 가장 낮고 낮은 곳까지 자신을 낮추신 겸손이었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렇게 자신을 낮추시고 겸손에 처한 예수님을 하나님은 당신의 보좌 우편에 앉히시고 그에게 지극한 영광을 주셨다. 겸손한 자에게 주시는 상급이다.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사울도 그러하지 않은가? 사울은 남들보다 키가 머리 하나가 더 크고 인물도 훤칠하고 누가 보아도 왕이 될 만한 외모를 가졌다. 그러나 그는 자신은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라고 생각을 했다. 하나님은 사울의 그런 점을 보시고 그를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셨다.
우리도 사울처럼 예수님처럼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잘 아는 사람이 되자. 그래서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그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사람이 되자. 하나님은 바로 이런 사람을 쓰신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 되자.
말씀을 정리하자.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쓰시는가? 청년 사울을 통해서 배우자. 하나님은 효성을 다하는 사람을 쓰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을 쓰신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쓰신다. 하나님은 지금도 온 땅을 두루 살피시어 이와 같은 사람을 찾으신다. 하나님께 발견되어 요긴하게 쓰임 받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사울과 사무엘의 만남/삼상9:11-17
2008-06-09 10:44:18
우리는 때때로 자신도 모르게 우상숭배를 범할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예배당 건물을 우상화하여 섬긴다든지, 강대상을 지나치게 신성시 한다든지, 재물을 지나치게 의존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UN 사무총장을 지닌 함마슐트는 스웨덴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중년에 이르러 생의 무의미성과 무력증에 빠져 자살하려고 했다.
그러던 중 존재의 의미를 깨달았는데 “나에게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시다 따라서 나는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하며 사회봉사에 헌신적인 활동을 하며 살았고 결국 세계적인 인물이 된 것이다.
기스의 아들 사울이 아버지의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는데 도움을 얻을려고 하나님의 종이 있는 성으로 들어가던 길에서 만난 소녀들의 안내를 받아 산당을 향해 가다가 마침 산당으로 올라가려던 하나님의 종 사무엘 선지를 만나게 된다.
1. 제사 드리러 왔던 사무엘을 볼 수 있다.
本文 12절 가운데 쯤 보면 “오늘 산당에서 제사 드리므로”하면서 “산당”이란 말이 나온다.
산당을 뜻하는 원어를 보니까 (빠마/the high place)인데, 그 원뜻은 “배후” 또는 “산등성”이다.
구약성경에서 이 말은 보통 산이나 언덕에 위치한 “예배처소”라는 특별한 의미의 용례로 사용되었는데 흔히 우상숭배와 관련되는 거짓 종교의 산당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
또 주로 이 산당은 산과 같은 지리적으로 또는 물리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했는데(민21:28, 렘26:18, 겔36:2), 이렇게 산당을 높은 곳으로 세운 이유는 예배자들로 하여금 자기가 관계하고 있는 속세로부터 떨어져 있게 할뿐만 아니라, 그가 예배하는 대상이 거하고 있다고 믿어지는 하늘에 보다 좀 더 가까이 접할 수 있다는 심리적인 작용 때문이었다.
또한 산당은 이스라엘 족장 시대의(아브라함, 이삭, 야곱) 종교적 유산으로 계속 전해 내려오다가 점차적으로 정죄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성전의 성결성”이 강조되었을 뿐 아니라 거기서 드리는 제사의식이 자연숭배로 하락되고 타락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죄악이 왕국 분열 후에도 지속되었으나 신앙개혁을 일으킨 히스기야와 요시아 王의 종교개혁으로 산당의 거짓 선지자들과 음탕한 의식이 근절되고 거짓 선지자의 무덤까지 파서 그 뼈를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날려 버리기까지 완전한 신앙개혁과 회개 운동을 벌렸다(왕하22:2~23:10).
이와같이 성경은 의식과 예식이 남용되고 왜곡되어 그 결과가 악으로 치달을 때, 그것이 변경될 수도 있고 폐지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본문에서는 여호와께 제사드리는 산당을 말하고 있고, 그후 솔로몬 시대까지도 성전이 건축되기 전에는 산당에서 여호와께 제사드리며 예배를 드렸던 것이 허다했다.
사무엘이 활동할 당시는 아직 예루살렘의 중앙 성소가 확고한 위치에 서기 전이며, 예배 장소가 여의치 않을 때였기에 개인 또는 가족단위로 하나님과의 교제의 터를 마련했었다.
이스라엘은 유목민 생활때부터 개인적인 제단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예배의 장소를 갖출 여건이 안되어 예배가 중단되었을 경우에 허용되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신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항상 교제의 장소를 허락하셨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당신의 백성들과 기도와 말씀, 경배와 찬양, 예물과 헌신으로 끊임없이 진정한 교제를 나누시기를 원하신다.
사울이 잃어버린 아버지의 암나귀를 찾아서 “라마”까지 왔을 때 마침 사무엘도 그 성으로 제사를 주관하러 와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예정되고 섭리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에 의한 것이다.
허다한 인간의 자유 의지적인 행동에, 인식되지 않은 하나님의 사역이 관여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그 활동을 방해하지 않고 인간사를 주관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성령으로 임재하셔서 우리를 위해 역사하시며 주관하신다는 사실은 매일의 생활에서 큰 확신을 얻는 것은 복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울은 제사를 드리러 온 사무엘 선지를 만나는 은총을 입었다.
2. 사무엘에게 예고하시는 하나님이시다.
本文 15~16절 “사울이 오기 전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 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만나기 하루 전날 하나님의 종 선지자 사무엘에게 그를 알게 계시하셨는데 그것은 마치 귀에 대고 속삭이듯이 사무엘의 마음에 대고 부드럽게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 15절 “알게 하다”라는 말은 “여호와께서 사무엘의 귀를 열어 주셨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비밀을 주의 종 선지자들에게 숨기지 않으시고 드러내 주시는 것이다.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귀를 열어 주시고, 눈을 열어 밝히 보게 하시고, 드러내 보이시는 것이다.
“심령의 수건을 벗겨 주사 보게 하신다”고 Paul이 말씀하시기도 했다.
막7:34~35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고 했고,
고후3: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고 하셨다.
우리는 사무엘이 놀라지도, 허둥대지도 않고 사려깊게 준비하도록 사울에 대하여 미리 예고해 주시는 하나님의 자상한 배려를 볼 때 사무엘이 평소에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사랑하고 친밀하게 해드리는 사람이었는가를 측량할 수 있다.
우리도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친밀하게 해드리고 사랑하고 섬기는 중에 준비할 것을 미리미리 준비시키는 성령의 감동과 감화와 인도하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o 하나님께서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향하여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예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화와 종교에서 “기름을 붓는 것”은 특별한 지위에 있는 자에게만 행하는 구별된 의식이었다.
즉 하나님과 백성의 대표자요, 통치자인 왕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세우기 위한 종교적 행위였다.
王에게 기름을 붓는 행위는 이방 풍습에도 있었으나 이스라엘에서 시행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 직분을 주셨다는 의미와, 성령을 통하여 그 자격을 얻게 하신다는 의미에서 시행된 것이었다.
즉 기름 부음은 봉사를 위한 성화와 구별의 의미를 내포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울을 세우신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블레셋의 지배하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 때문이었다.
이제 사사시대는 끝이 나고 더 이상 사사를 세우지 않으므로 블레셋 군사와 싸워 그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해 낼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진노 중에서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신다.
사울 일행은 소녀들의 인도를 따라 가서 산당으로 제사를 주관하려 올라가는 사무엘 선지자를 만났다.
이것은 우연한 것 같이 보이나 하나님께서 위대한 사건의 주권자로서 이렇게 일이 되어지도록 배려하신 것이다.
지혜의 원천이시고 지식의 근본이신 하나님은 작고 보잘 것 없는 사건을 통해서도 당신의 원대하고도 뚜렷한 목적과 의도를 이루어 나가신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들은 하찮은 일, 사소한 일에도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 하는 중에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목적하신 바를 청취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참새 한 마리도 떨어져 죽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작은 일에도, 하나님의 원대한 목적이 담겨져 있음을 깨닫고, 소홀함이 없이 정성스럽게 일하고, 최선을 다해 일하고 감사하면서 사역합시다.
서로 일하며 사랑하면서 교회일, 가정일, 직장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미리 예고해 주셔서 준비케 하고 당황케 하지 않는 자상하신 하나님이시다.
3. 사울을 만났을 때 고지하신 하나님이시다.
本文 17절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라”고 고지 하셨다.
“다스린다”는 뜻은 “닫다, 막다, 통치하다는 뜻인데 국가의 안영과 질서를 유지할 통치자의 임무를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王으로 인해 받을 고난을 알기에 허락하지 않으셨으나 이스라엘 주변 민족의 강포한 손으로부터 그의 백성을 구출할 도구로 쓰기 위해 王을 허락하셨다.
왕이나 지도자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명예나 권세를 위하고 영달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고 백성들의 안위와 질서를 확립하고 고통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세우신 것이다.
이것을 망각할 때, 강포하게 되고 백성을 억압하고 압제하게 된다.
그것은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모든 행동에 있어서 궁극적인 지향점은 백성들에게 참 평안과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다.
Paul을 세우신 것은 유럽을 구원하기 위함이요, 모세를 세우신 것은 애굽에서 억압받는 이스라엘을 구출하기 위함이요, 예수님을 세우신 것은 마귀의 손에 사로잡혀 지옥형벌의 곳으로 끌려가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이 뜻을 잘 알았던 모세는 강포하지 않고 온유했으며 순종했고, 그 뜻을 알았던 Paul은 세상의 자기 자랑거리와 권좌를 다 버리고 주님의 뜻을 따랐으며 순종하기를 “내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주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고 고백하며 그의 길을 갔다.
하나님의 뜻을 익히 아시는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 까지 복종하고 따르므로 인류를 그 죄에서 구원하시는 것이다.
우리를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세우신 것은 겨우 입에 풀칠하는데 세월을 다 보내라고 세운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명을 구원하고 도우라고 세우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왕을 허락하신 의미를 고찰해 볼 때 사울은 사명자라기 보다는 일시적으로 잠시 쓰임을 받고 버림 받게 될 임시 도구에 불과한 존재였다.
사울과 사무엘 선지가 만나는 과정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에 의해 인도되었다.
끝까지 겸손하고 순종치 못한 결말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사울이 그의 집인 기브아를 떠난 일과 아버지의 지시에 순종해서 암나귀 새끼를 열심히 찾는 일, 삼일 간에 걸친 여행 끝에 “라마”까지 도착하고 그때 마침 사무엘 선지가 이 성으로 제사를 주관하러 와서 만난 일은 하나님이 섭리인 것이다.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사울에 관한 당신의 일을 성취하기 위해 준비하시고 주관하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은 저와 여러분의 앞날을 주관하시며 성령의 감동과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 선히 인도하시고 생명의 길, 영생의 길, 영광의 길로 인도하신다.
예수님 때문에 저주에서 풀려났고, 예수님 때문에 죄악의 줄을 끊어 주셨고, 예수님 때문에 자유케 하시고 평안케 하셨으며 천국가게 해주셨다.
이 자유를 빼앗기지 않는 길은, 주의 사명을 위해 사는 것이다.
이 은총과 생명구원의 능력이 여러분의 삶에 충만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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