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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모음/사사기 설교 모음

사사기 4:1 - 24절 설교 모음

by Jessi J 2024.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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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에 도전한 여인 드보라 /4:1-10/ 이동원 목사

2015-05-08 17:57:33

 

사사기 장에서 에훗과 삼갈이라는 두 사사의 행적을 살펴보았습니다에훗은 왼손잡이였습니다더 정확하게 말하면 오른손을 못쓰는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셨습니다삼갈은 지극히 평범한 농부였습니다놀랍게도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구하셨습니다인간의 약점이나 평범함은 하나님께 쓰임받지 못할 방해 요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약점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다면 그 약점은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우리의 평범성 때문에 삶을 포기하거나 꿈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다면우리들의 평범한 삶이 하나님을 통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에훗과 삼갈의 예를 보고서도 하나님 앞에 쓰임받기를 겁내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나는 아니다나같이 부족하고 쓸모 없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위해 하나님은 또 한 사람의 사사를 세우셨습니다하나님은 전혀 상상도 못할 사람을 들어 쓰셨습니다그 주인공은 드보라 사사입니다

 

발달된 현대 사회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불리한 점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여성은 남성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특히 사회적 지위나 특권을 누리는 일에서 열등한 위치에 있습니다여성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각 방면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며 일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 여자들의 지위는 실로 노예를 방불케 하는 것이었습니다예수님 당시만 해도 유대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세 가지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첫째는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

 

둘째는 종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셋째는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했습니다그만큼 여인들은 역사적으로 심각한 성차별을 받아 왔습니다이런 사회이런 문화적 배경에서 한 여인이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하겠다고 일어선다는 것오늘날도 아니고 사사 시대에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당시 이스라엘은 가나안 왕 야빈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백성들은 다시 하나님께 범죄했고하나님은 범죄한 이 백성을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 가나안 왕 야빈의 지배 아래 두셨습니다이십 년 동안 노예 생활을 지속했습니다

 

가나안 왕 야빈의 수하에는 시스라라고 하는 소문난 명장이 있었습니다그는 군대장관이었는데그의 군대는 철병거 구백 승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요즘 식으로 하면 탱크 구백 대의 병력을 갖추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가나안 왕에 대항하여 드보라라는 여인이 전쟁을 시작했습니다이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이 여인은 이 불가능에 도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드보라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엄두도 낼 수 없고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하는 일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무엇이 드보라를 이토록 용감하게 나서도록 만들었습니까다음 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

 

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성경이 드보라를 소개하면서 강조하는 내용이 그가 선지자였다는 사실입니다선지자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입니다그리고 그 음성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사람입니다드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바락에게 그 말씀을 전합니다

 

󰡒드보라가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6).

 

드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고난에 처한 백성들에게 그분의 말씀을 전달하는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하나님의 음성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여인에게 들려졌습니다드보라는 가정주부의 자리에서 위기와 절망에 처한 한 시대를 치유하기 위한 사사의 자리로 불려 나왔습니다

 

당신이 있는 삶의 자리가 역경이라고 느낍니까혹은 위기라고 여겨집니까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보십시오당신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때로 우리는 우리의 삶이 난관에 부닥칠 때 주변 사람들의 말에 귀가 솔깃해집니다

 

그러나 사람의 말은 더 큰 낙심과 더 큰 절망의 심연으로 끌고 들어갑니다여러 사람의 말은 우리를 혼란에 빠지게 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합니다이럴 때 주께서는 무엇이라 말씀하실까요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 기뻐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에 가로막혔을 때 그들을 이끌고 가던 모세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한번 느껴 보십시오

 

사람들은 애굽 땅으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입니다매장지가 없어서 이 광야에서 죽어야 하느냐고 모세를 원망합니다앞에는 홍해가 길을 막고 있는데 뒤에서는 바로의 군대가 추적하고 있습니다오도 가도 못하는 사면초가四面楚歌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들의 절규와 아비규환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그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모세의 모습을 상기하십시오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14:13,14).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경험은 인생의 목표를 좌우하는 대단히 중요한 사건입니다제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제 인생에서 가장 크게 절망했던 해는 대학 입시에 실패했던 스무 살 때였습니다저희 집안은 경제적으로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아버지는 아예 집을 나가 버리셨습니다이제 어머니와 동생들 여섯게다가 조부모님까지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그나마 살던 집에서 쫓겨났습니다간신히 친구들이 수원 팔달산에 토굴을 파 주어 그곳에서 살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제 삶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습니다할머니는 이렇게 사느니 다 함께 죽어 버리자고 입버릇처럼 말씀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힘든 일은 일단 집을 나오면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이었습니다어느 날 밤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우연히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저는 그때 주님을 잘 알지 못했던 시절입니다막연히 신앙에 대한 어떤 동경과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안고 교회에 들어가 밤을 새웠습니다밤이 깊어 피곤해져서 그 교회의 종탑에 올라갔습니다종탑에 자그마한 마루방이 있었는데 그 방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얼마나 잤는지 모릅니다새벽이었는데 환한 빛이 들어오면서 갑자기 종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잠에서 깨어나 벌떡 일어섰습니다종소리가 여운을 남기며 제 마음에 어떤 목소리를 들려 주었습니다

 

󰡒나를 위해 일하라.󰡓

 

저는 그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른 채하나님을 믿으면 내 삶에 새로운 미래가 찾아오려나보다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저는 제가 처한 상황에서 절대로 절망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그 새벽그 교회 종탑에서 들었던 하나님의 음성은 제 삶에 새롭고도 분명한 관점을 주었습니다

 

몇 년 후 결혼 문제를 고려하게 되었을 때제 아내는 주변 사람들의 극심한 결혼 반대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저는 장남입니다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다 동생이 여섯이나 됩니다어머니에 조부모님까지 계시니어떤 부모가 제게 귀한 딸을 주려고 하겠습니까

 

아내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하며 엎드려 기도하였습니다결혼한 후에 들은 얘기인데아내가 어느 새벽에 기도를 하는데 주님께서 자꾸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내가 책임을 지겠다.󰡓

 

지금도 제 아내는 󰡒저는 주님이 책임을 지신다고 했어요󰡓라며 어떤 어려움도 견뎌 냅니다주님은 한 번도 우리 부부를 실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삶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 해도 좌절하지 마십시오주변 사람들의 훈수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십시오삶이 고달프다고 느낄 때 주님 앞에 엎드리십시오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여인 드보라가 불가능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간단한 사건 한 가지 때문이었습니다그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 하나님이 주실 승리에 대해 확신함

 

절 말씀을 보십시오드보라가 바락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와 그 병거들과 그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나님이 드보라를 통해 바락에게 말씀하셨습니다원수를 󰡒네 손에 붙일 것이라󰡓는 말이 곧 승리는 당신 것이라는 뜻입니다드보라는 자신이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며 바락에게 말했습니다

 

󰡒주께서 원수를 당신 손에 붙이실 것입니다.󰡓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미국 크라이슬러 자동차 회사의 회장 자리에서 은퇴한 리 아이아코카는 자서전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삶의 승패는 환경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확신으로 만들어진다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좋으냐 나쁘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삶에 대해서 어떤 확신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삶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이면 부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삶을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그 삶은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삶이 됩니다

 

미국의 윌리암 제임스라는 철학자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습니다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그러면 행복한 사람처럼 사고思考하십시오행복한 사람처럼 행동하십시오.󰡓

 

이 말은 이렇게 바꾸어도 될 것입니다

󰡒불행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그러면 불행한 사람처럼 사고하십시로불행한 사람처럼 행동하십시오.󰡓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면서 세계적인 기업 경영 강연자인 지그 지글러본 나침반에서 그의 책 성공을 만드는 소중한 사람이가 번역출판되었습니다편집자 주에게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습니다지글러에게 어느 날 직장 여성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이 여성은 자기가 다니고 있는 직장에 대해서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얼마나 견딜 수 없는 직장인가얼마나 대우가 나쁜가직장 사람들은 얼마나 악질인가얼마나 좋지 못한 사람들인가󰡑를 쭉 나열했습니다아마도 이 여성은 지그 지글러에게 상당한 동정을 기대하면서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이야기를 다 들은 지글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보기에 아가씨의 환경은 더욱 나빠질 것 같습니다앞으로 큰일이 닥칠 위험이 있습니다.󰡓

동정을 기대하면서 이야기를 했던 이 여인이 얼마나 실망했겠습니까

 

지글러는 계속 말을 이었습니다

󰡒아가씨는 직장과 동료들을 싫어하고 있습니다맞죠?󰡓『맞아요저는 직장이 너무 지긋지긋하고 동료들은 꼴도 보기 싫어요.』

 

󰡒그것이 문제입니다아가씨가 직장을 싫어한다면 직장도 아가씨를 싫어할 것이고아가씨가 동료들을 싫어한다면 동료들도 아가씨를 싫어할 것입니다성경이 이를 확언해 줍니다우리는 그 내용을 황금률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31절에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되어 있습니다아가씨의 삶이 바뀌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직장을 좋아하는 것을 배워야 하고 동료들을 좋아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지글러를 찾아온 여성이 펄펄 뛰면서 말했습니다.『좋은 것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좋아할 수 있지요?』지글러는 종이 한 장을 내 주면서 직장의 좋은 점을 작은 것 한 가지라도 써 보라고 했습니다그 여성은 반응이 없었습니다지글러가 물었습니다

 

󰡒직장에서 월급은 받으시죠월급 받는 것이 싫습니까좋으면 종이에 적으십시오휴가 때 쉴 수 있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이것도 좋으면 쓰십시오또다른 좋은 점이 있으면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십시오.󰡓

 

그 여성은 한참 생각하다가 웃음 지으며 말했습니다.『한 가지 좋은 점이 있는데 저희 집에서 직장이 가까워서 출퇴근하기가 편리합니다.』

쓰다 보니까 좋아하는 것이 스무 가지가 넘었습니다.󰡒직장에 좋은 점이 이렇게 많은데도 맘에 안 듭니까?󰡓

 

지글러는 마지막 충고를 하였습니다

󰡒아가씨아가씨가 다니는 직장이 무지하게 좋아질 것을 상상해 본 일이 있습니까주변의 동료들과 아름답고 소중한 관계를 맺을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미래를 보는 눈을 가지십시오우리 주변의 환경과 사물과 사람들은 보는 시각에 따라 모든 것이 좋게 보이기도 하고 나쁘게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가정에 최대의 절망이 닥쳤습니다오빠 나사로가 죽은 것입니다이 절망의 자리에 나타나신 예수께서 나사로를 일으키기 직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11:40).이 말씀에 중요한 두 단어가 나옵니다. 󰡒믿으면보리라󰡓입니다우리는 언제나 그 순서를 바꿀려고 합니다

 

󰡒보여 주십시오그러면 믿겠습니다주변 환경이 좋아지면 그때 제가 믿겠습니다좋은 결과가 나타나면 그때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하신 말씀은 이런 의미입니다

󰡒아직 나사로가 일어나지 않았어도 먼저 믿을 수 있느냐믿음의 눈으로 살아난 나사로를 볼 수가 있느냐믿음의 눈으로 좋아진 환경을 볼 수가 있느냐믿음으로 너희 장래를 볼 수 있느냐너희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패배를 확신하는 사람은 패배할 수밖에 없습니다절망을 예감하는 사람은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미래당신 가정의 미래에 대해서 절망합니까아니면 승리를 확신합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당신 인생의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캄캄한 어둠과 안개 속에 헤매는 것 같은 방황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당신에게 주실 승리를 믿으십시오당신을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님이 당신을 저버리지 않을 것을 믿으십시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8:32).

 

이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당신은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드보라가 불가능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주실 승리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 해야 할 일을 찾음

 

사람들은 불가능한 일에 맞닥뜨리면 일단 포기부터 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포기하는 것이 가장 쉬운 해결책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그러나 드보라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그 시대가 어둡고 위기와 절망에 처해 있었지만 드보라는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 같은 가정주부가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할 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드보라는 사람을 찾았습니다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바락이 장군감임을 발견했습니다드보라는 바락을 찾아가 함께 일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함께 일어나 싸우자고 했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자고 독려했습니다여기서부터 기적이 시작되었습니다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 상황이 변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병이어五餠二魚의 현장을 되새겨 봅시다6:1~15 참조). 예수께서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기적을 일으키셨던 장면을 머리에 그려 보십시오해는 져서 어두운데 군중들은 배가 고파 아우성입니다제자들은 무리를 돌려 보내자고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무리를 다 먹이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를 빌립에게 물으셨습니다빌립은 당시 년치 월급인 200데나리온으로도 모자란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때 안드레가 어린아이가 싸 온 도시락을 발견했습니다그러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인 도시락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이 적은 것을 가지고 이 많은 무리를 어찌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안드레는 포기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 어린아이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자신이 가져온 작은 도시락을 주님께 바쳤습니다그러자 주님이 그 도시락을 가지고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난감하고 혼란스런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주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신뢰하십시오그리고 할 일을 찾아보십시오

 

시골에 한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하루는 비가 억수같이 내려 집 앞에 나무가 쓰러져 길을 막아 버렸습니다소년은 혼자서 그 나무를 치우려고 기를 썼지만 소년의 힘으로는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소년이 쩔쩔매고 있는데 아버지가 나와서 물었습니다

 

󰡒얘야네가 할 수 있는 일을 정말 다 한 거니?󰡓『아빠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해 보았는데도 이 나무는 전혀 움직이질 않네요.』

 

󰡒아니야네가 아직도 하지 않은 일이 한 가지 있어무엇인지 알겠니이 아빠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잖니.󰡓당신은 정말 해야 할 일을 다했습니까

 

드보라는 자기가 직접 하지 못하는 일이 주어지자 그 일을 할 만한 적당한 사람을 찾았습니다바락에게 같이 일하자고 했습니다. 8절에 바락의 응답을 들어 보십시오그는 모든 남성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창피한 말을 하였습니다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바락은 사내 대장부답지 못하게 여자인 드보라에게 전쟁터에 같이 가자고 졸랐습니다드보라가 안 가면 자기도 가지 않겠답니다

 

세상에 이렇게 용기 없는 남자가 어디 있습니까그러나 이 바락을 바보 취급하지는 마십시오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의 영웅들 가운데 바락이 포함되어 있습니다(32). 믿음으로 인생을 살았고믿음으로 기적을 일으킨 사람들 가운데 바락도 들어 있습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말하기를바락이 드보라에게 동행을 요청한 것은 드보라에게 의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드보라와 함께하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바락은 드보라를 통해 들려 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했습니다드보라의 기도가 있다면 승리가 확실할 것을 알았습니다

 

때때로 신앙 좋은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는 못난 남편들이 있습니다아내의 기도 때문에 그 가정이 지탱해 나가고하나님을 향한 아내의 사랑 때문에 그 가정이 평안한 것을 모릅니다아내에게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드보라는 바락과 함께 전쟁터에 나갔습니다그리하여 역사가 바뀝니다이스라엘 민족은 드디어 자유를 되찾았습니다그들은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사사기 절을 보십시오드보라와 바락이 노래하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에 관원官員이 그치고 그쳤더니 나 드보라가 일어났고 내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의 어미가 되었도다.󰡓

 

이스라엘에 관원이 그치고 그쳤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포기했다는 말입니다그 상황에서 드보라가 일어났습니다그녀는 절망하지 않았고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512절 말씀입니다

 

󰡒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

절망에 빠진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드보라 같은 사람이 없는 데 있습니다하나님을 신뢰하고 주의 음성을 듣고 할 일을 찾아서 하는 드보라만 있으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목사님 제가 돈만 많으면 교회가 어려울 때 크게 도울 수 있을 텐데돈이 원수입니다󰡓라고 말하는 교인이 있습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람입니다주님께 헌신된 사람만 있으면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충성을 맹세한 사람만 있으면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두렵지 않습니다어느 시대나 정말 문제는 사람에게 있습니다깨어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31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드보라의 기도입니다떠오르는 해처럼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며 시대의 암흑을 뿌리치고 벌떡 일어나 자기가 가야 할 인생 길을 걸어가는 사람그들을 통해 주께서 사회를 치유하고 가정을 새롭게 하고 교회를 변화시키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절대 필요한 과제이며 이 시대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입니다당신도 불가능한 상황에 도전하여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기적의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주님을 더욱 사랑하기 바랍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평범한 가정주부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까이제부터라도 생각을 바꾸십시오여자가 무슨 일을 하겠느냐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면 어떤 일이든 감당할 수 있음을 믿으십시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수만 있다면 겁낼 것이 없습니다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주실 빛나는 승리를 신뢰하십시오그리고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주님 앞에 헌신하십시오하나님께서 일으키실 기적에 동참하십시오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사람들/4:1-10

2004-02-09 11:47:36

 

 

이스라엘의 국제공항이 있는 텔아비브는 성서에서 욥바라고 불리는 곳입니

. 텔아비브에는 이스라엘 독립 전쟁에서 전사한 이들을 추모하는 기념탑이 세

워져 있는데 탑의 각 부분에는 여러 가지 신앙적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탑의

지붕과 연결된 두 개의 기둥가운데 하나의 기둥은 야곱의 꿈을 상징하고 또 하나

의 기둥은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드린 믿음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 둘을

이어주는 지붕은 여리고의 승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은

벧엘에서 꿈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일평생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

. 아브라함은 자기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아들 이삭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

여 드렸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탑을 바라보노라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목

표가 무엇인지 확연하게 알수있습니다.

 

믿음과 꿈은 고난과 환란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텨온 이스라엘의 두 기둥이며

승리의 원동력입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과 꿈은 신앙인의 두 기둥입니다. 이 두

개의 기둥이 든든히 서 있을 때 성도들은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고 이 세

상에서 신앙적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슴속에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

음과 야곱이 꾸었던 꿈이 있다면 이 세상을 힘차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삶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어찌해서 우리는 능력 있고 힘차게 세상을

살지 못하고 답답하고 짜증스럽고 힘들게 살아가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러한 현

실에서 주저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를 도우시고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이 함

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신앙인의 두 기둥인 믿음과 소망을

다시 한번 굳게 세우며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족속 가운데 하솔왕 야빈의 압제를 받고 있었습니다.

들 족속은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전쟁때 크게 패한 적이 있었던 족속이었습니

.(11:1-15) 그때 여호수아는 대승을 거두어 하솔을 불살랐고 그 거민을 진멸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후에 힘을 키웠고 이스라엘의 힘이 약하던 틈을 타

서 쳐들어 왔습니다. 그들에게는 철병거 900승이 있었는데 그 세력이 너무도 강

력하여 그 어떤 족속도 대항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성인 드보

라를 사사로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하솔과 대항하게 하셨고 그녀를 통하

여 승리를 거두도록 하셨습니다. 드보라가 거두었던 승리는 하나님의 승리였고

신앙의 승리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이와같은 믿음의 승리가 여러분과 함

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1. 죄에 빠지면 하나님의 징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1-2)

 

이스라엘은 왼손잡이 사사 에훗이 죽은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고 하나

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 하시는 우상 숭

배의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징계의 채찍을

드셨고 그 결과 그들은 또 다시 무서운 압제와 고통 가운데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다른 족속의 침략 속에서 그들이 건재할 수 있었고 전쟁

에서 승리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능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전적

으로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30년간의 노예 생

활을 청산하고 가나안 복지를 향해 나갈 수 있었던 것도 자신들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금방 그 은혜를 잊어버렸고 하

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오래 참아

주셨고 그들의 길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배은 망덕한 백성들이라 하

더라도 그들이 주님을 찾고 부르짖으면 언제든지 도움의 손길을 주셨습니다.

 

본문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우상 숭배의 범죄에 빠져들고 있습니

. 우상 숭배는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으로 성경이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특별히 십계명에서 강력하게 금지 하셨습니다. "나 여

호와 너희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

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려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20:5-6) 하나님은 스스로 질투하시는 하

나님이라고 하시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죄를 자손 삼 사대까지 갚겠다고 하

셨습니다. 우상 숭배가 얼마나 무서운 범죄인지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우상 숭

배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보다 우상을 숭배하고 악을

행하였기에 하솔왕 야빈을 통해서 20년동안 압제와 고통을 받았습니다. 범죄의

결과는 이렇게 무섭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지금 무서운 환난 가운데 있는 분이 있습니까? 그 환난의

원인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환난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환난은 하나

님께서 성도를 연단시키는 하나의 방편이기도하고 또 인간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

의 징계로도 옵니다. 그러므로 내가 당하는 환난의 원인이 어떤 것인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분별해야 합니다. 그래서 환난의 원인이 신앙의 연단을 위

한 것이라면 믿음으로 이겨내야 하지만 나의 범죄에 대한 징계라면 내 모든 죄악

을 회개하며 신앙의 길로 돌아서야 합니다.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환난을 거두어

주시고 새 길을 열어 주십니다. 지금 우리 나라가 격고있는 경제적 환난은 이 민

족의 범죄 때문이라고 여러 차례 말씀을 드린바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 민족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자 하나님을 잘 섬기기보다는 물질을 섬겼고 겸손한 감사

생활 보다는 교만했고 절제하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의롭고 사랑이 넘치

는 나라를 만들지 못하고 불의와 미움이 지배하는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께서는 이 민족을 징계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나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를 살리시

려는 하나님의 손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범죄한 자들이 깨닫고 돌아와 자

손 천대까지 누리는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입니다. 만약 범죄의 자

리에 서 있다면 지금 돌아서십시오. 나의 범죄 때문에 지금 환난을 당하고 있다

면 그 속에 담겨 있는 주님의 사랑에 오히려 감사하며 믿음 위에 서십시오. 하나

님께서 고치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백성은 어려울 때 부르짖어야 합니다.(3)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가 깨닫을 수 있는 중요한 한가지는 범죄 함으로 환난

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주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베풀어 주신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은 회개의 부르짖음입니다.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며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이스

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탄식하며 부르짖을 때도 하나님은 그 부

르짖음을 들어주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

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2: 23) 이스라

엘 백성들은 고된 강제노역속에서 눈물과 한숨으로 세월을 보냈고 이 괴로움 때

문에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이 부르짖음은 불평과 원망의 하소

연이 아니라 자신들의 범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였습니다. 괴로움 속에서 불평하

고 원망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회개는 신앙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습니

.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회개의 부르짖음은 신앙의 첫걸음입니다. 하나님께

서는 이스라엘의 부르짖는 회개에 귀를 기울이셨고 그들에게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 하사 이스라엘 백성들을 권념하셨더라"(2:24-25)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십시오. 부르짖으면 살 길이 열리고 소망이 생겨납니다. 만약 환

난과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부르짖어 회개하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리석

은 일입니다. 부르짖지 않으면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회개없는 백

성은 망합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살길이 열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을 기억하셨고 이스라엘 백

성들을 권념하셨다고했습니다.

 

본문에서도 20년간이나 환난과 고통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

하여 두손 들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면서 부르짖었습니다. 범죄한 자가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돕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며 부르짖지 않으

니까 20년동안이나 내버려둔 것을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빨

리 부르짖는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징계를 내리셨

다고 하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인간적인 방법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떠한

노력도 헛수고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회개의 부르짖음밖에는 그 징계를 벗

어날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부르짖으며 회개하면 주님은 외면하지 않으시고 우

리를 감싸주시며 다시 회복시켜 주시고 자손 천대까지 누리는 복을 주십니다.

제 회개하며 부르짖으십시오.

 

3. 하나님은 그의 사람들을 통해서 일을 이루게 하십니다.

 

가나안 족속 하솔의 군대는 철병거 900승으로 무장했고 강력한 조직과 훈련

으로 이루어진 무적의 군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무적의 하솔의 군

대를 누르는데 한 여인을 들어 쓰셨습니다. 그녀는 바로 드보라였는데 하나님께

서 예비해 놓으신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일은 단순히 조직이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

실입니다. 여자의 몸으로 강력한 군대를 누르고 승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무

엇을 말합니까? 사사시대의 여자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실상 구약 시대의 여인이

위기에 처한 나라를 건지고 다스린 예는 흔치 않은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는 연약한 자를 쓰셔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강한 자가 아니라 약한 자를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에

게 협력자를 보내주십니다. 드보라에게는 바락 이라는 협력자가 있었는데 그는

다볼산에 매복하여 하솔의 철병거를 기손 강까지 유인하여 기습 공격을 펼쳤습니

. 이 기습으로 승리를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일을 이루어 가실 때 거

기에 필요한 사람을 불러서 쓰시고 또 그 일에 필요한 협력자를 보내 주십니다.

 

출애굽을 이끈 모세에게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형 아론을 협력자로 예비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할 때면 주위에 그 일을 돕는 협조자들이 있

습니다. 이들은 주님께서 보내 주신 사람들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주의 일을 감당

하여 교회에서 일을 할 때면 거기에는 반드시 협조자가 있습니다. 때로는 생각지

못했던 사람이 돕겠다고 나서기도 하는데 이는 모두 하나님의 보내신 사람들입니

. 그러므로 함께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교회는 어느 특정인에 의

해 일이 주도되어서는 안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안에서 서로 협력하고 마

음을 모아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입니다. 아무리 목회자

가 능력이 많아도 장로님들의 협력이 없이는 교회가 일할 수 없고 제직들의 참여

가 없다면 교회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피차에 좋은 협력자라

는 사실을 기억하며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좋은 협조자를 만나 주의 일을 감당

하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우리 함께 힘을 모아 거룩한 주의 일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합시다.

 

본문에 보면 하솔과의 전쟁에서 군대 장관 시스라가 도망하여 겐 사람의 집

으로 들어갔는데 그 집의 주인 여자 야엘이 그를 숨겨 주었습니다. 본래 하솔 왕

과 겐 사람 야엘의 집과는 서로 알고 지내는 관계였기 때문에 군대 장관 시스라

가 그 집으로 피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집 여인 야엘은 군대 장관 시스라를 선

대해 주었고 쉴 수 있도록 이불까지 내어 주었습니다. 시스라는 피곤에 지쳐 잠

에 빠졌고 그때 그 집주인 여자 야엘은 그의 살쩍에 말뚝을 박아 죽여 버렸습니

. 이스라엘을 괴롭힌 시스라의 말로가 이렇게 비참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

에서 야엘 이라는 여자를 사용하셨는데 야엘은 자기의 생명을 걸고 이 일에 참여

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도구로 부름 받은 드보라와 바락 그리고 야엘,

세사람은 자기들의 생명을 걸고 하솔의 군대와 대결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

님의 일에 부름 받은 사람들은 생명을 다하여 헌신해야 합니다. 연약한 사람이라

도 하나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 귀하게 사용하여 주십니다. 최선을 다 하는 충

성은 굳센 믿음에서 나옵니다. 믿음이 충만할 때 우리는 생명까지 내 놓을 수 있

습니다.

 

성도 여러분 ! 우리 교회는 오늘 저녁부터 심령 대부흥회를 개최합니다.

흥회는 집중해서 은혜 받는 기회요 믿음의 훈련을 하는 기간입니다. 준비된 사람

이 하나님의 일에 부름받습니다. 드보라와 바락, 그리고 야엘처럼 하나님의 도구

로 쓰일 수 있도록 믿음으로 준비합시다.

 

 

sani7008

 

 

 

약한 자를 쓰시는 하나님/4:12-16

2003-01-10 13:56:24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이 기록은 가나안 왕 야빈이라는 사람이 이스라엘을 이십 년간 지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야빈이라는 가나안 왕은 아주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보시면 아시듯이철병거 구백승 가지고 있었다.”그랬습니다. 철병거를 구백 승 소유하고 아주 용맹스러운 시스라라는 장군을 군대의 장관으로 거느리고 있을 만큼 아주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그런 왕이었습니다. 이 가나안 왕 야빈이 이스라엘을 이십 년간 지배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못살게 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당시 아직도 철기 문화권에 속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있던 이 가나안 족속들은 철을 다룰 수 있는 철기 문화에 속해 있었고 이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은 청동기 문화권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즘으로 치면 재래식 무기를 기진 군대와 핵무기를 가진 군대와의 관계쯤으로 보시면 될 줄 생각이 듭니다. 철병거 구백 승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협이 되었고 공포의 대상이 되어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막강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 가나안 왕 야빈의 압제에 시달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한 평범한 가정 주부였던 드보라라는 한 여인을 부르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을 불러서 그들과 전쟁을 하라고 하나님께서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드보라라는 한 여인에게 명하셨고 드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 일을 실천에 옮기게 되어졌습니다.

 

 

 

1. 쓰임 받은 여자, 사사 드보라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아침에 일어나면 세 가지 감사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고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합니다. 두 번째는 종으로 태어나지 않고 자유인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합니다. 셋째로는 여자로 태어나지 않고 남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합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이 아주 지독한 남성 우월 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만나는 이 성경 속에 드보라라는 한 여인이 살았던 때는

 

그 당대 그 사회 여성의 지위라는 것은 아주 형편없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회 문화적인 배경 속에서 하나님은 한 가냘픈 여성을 부르셨고

 

그 여성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시키는 아주 귀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유명한 권력이동(Power Shift)이라는 책을 쓴 엘빈 토플러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현대 사회까지 권력이 이동하는 것을 보면 고대 사회는 소위 말하는 근육질에 의한, 힘에 의한, 무력에 의한, 권력이 지배를 했고 그 다음 중세를 거쳐 근세로 넘어오면서 소위 돈 경제력에 의한 권력이 세계

 

를 지배했고 그 다음 이제 현대 그리고 미래 사회는 지식 정보에 의한 권력이 지배를 한다고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 드보라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쓰임을 받았던 때는 강력한 남성들의 근육질, 완력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를 지배하던 그런 때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냘픈 여성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이방 족속들을 무찌르고 그 막강한 구백 승의 철병거를 가진 가나안 족속을 쳐부수는 장면을 오늘 우리는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무엇 무엇 때문에 나는 할 수 없어. 무엇 무엇 때문에 나는 안돼.”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그러한 핑계를 대면서 내 자신을 합리화 시켰던 일들이 아주 수없이 많이 되풀이 되었을 줄 압니다.“여자이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학벌이 좋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없다. 나는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할 수 없었다. 나는 무엇무엇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나는 무엇무엇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없었다.”지금 자신의 패배함이 바로 다른 어떤 이유 때문에 그랬었다고 핑계를 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면 이 드보라는 한 남편의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선지자라고 성경은 말합니다.“그때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그랬습니다. 아주 파격적인 혁명적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랍비돗의 아내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불렀고 그에게 명령하셔서 바락을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서 전쟁에 나가게 했고 그 전쟁을 승리하게 했습니다. 이 바락 장군은 전쟁에 나가면서 당신이 나와 함께 전쟁에 나가지 않으면 나도 전쟁에 나가지 않겠다 하면서 이 드보라를 전쟁터에 데리고 나갑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그들은 승리하게 되고 그 강력한 철기 문명을 누리고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던 가나안 야빈의 군대 소위 시스라가 지휘하는 야빈의 군대는 무참하게 패배를 하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고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할지라도 결코 좌절해서는 안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응답하며 순종하는 자세가 될 때 그 다음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을 우리는 가져야 됩니다.

 

우리는 한 번 나가서 싸워 보지도 않고 한 번 실천해 보지도 않고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패배 의식이할 수 없다. 안돼.”이렇게 우리로 말미암아 포기하게 만드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쓰임을 받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자기의 힘을 의지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서 전적으로 순종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이 쓰셨던 연약한 사람들

 

여러분 우리가 오늘 4장 본문을 보았는데 3장을 보시면 1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그랬습니다. 여러분 오른손을 쓸 수 없다는 것은 오른손 장애인이라는 의미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왼손잡이 에훗이 적군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장면이 거기에 소개가 되어지고 있습니다. 오른손을 쓸 수 없는 왼손잡이 에훗이니까 아주 치명적인 핸디캡을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이 됩니다.

 

사사기 2015,16절을 보면 또 한 무리의 왼손잡이들이 나옵니다. 이 왼손잡이가 어느 지파 사람이냐 하면 하나같이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무려 칠백 명의 왼손잡이가 등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칠백 명의 왼손잡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편견, 선입견을 제외해 주시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오른손잡이라는 것은 무술에 뛰어난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왼손잡이라는 것은 오른손을 제대로 능력 있게 쓸 수 없는 핸디캡을 가진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른손 장애인인 왼손잡이를 쓰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3. 연약한 나를 쓰실 하나님의 계획은....?

 

여러분 어떤 약점을 가지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은 어떤 부족한 점들을 가지고 계십니까? 어떤 단점들을 여러분들은 가지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그 약점, 그 결점, 그 단점, 그 약한 것 때문에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을 수 없다고 체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나의 이 약점이, 나의 이 결점이, 나의 이 허물이 하나님 앞에 나로 하여금 더 겸손하게 엎드리게 하고 그 겸손함이, 그 순종함이 하나님의 귀한 쓰임 받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가시가 있었던 사람입니다. 가시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더욱더 겸손할 수 있었고 가시가 있었기 때문에 자고하지 않고 하나님께 더욱더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특별히 전도자들에 대해서 이렇게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자 가운데 지혜 있는 자, 능한 자, 문벌 있는 자도 있지만 그런 자가 오히려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미련한 자, 세상의 약한 자들, 세상의 천한 자들, 세상에서 멸시받는 자들, 세상에서 보잘 것 없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택하셔서 하나님의 귀한 믿음의 그릇으로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저 사람은 좋은 가문의 후손이니, 저 사람은 정말 좋은 학벌을 가졌느니, 저 사람은 재능이 뛰어나느니, 외모가 두드러 진다느니, 물질이 많다느니 등등을 가지고 그 사람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순종하는 우리의 충성을 통해서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고 하나님의 일을 맡기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드보라와 에훗같은 사람도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쓰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 자신들도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더욱더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약점이 없는 사람이 없다는 말은 이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완벽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나의 약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하고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 더 귀하게 쓰임 받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히려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더 새로워지고 더욱 더 돈독해지고 하나님께서도 나를 더 귀하게 쓰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신학자 윌리엄 바클레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지독한 청각 장애인이었습니다. 보청기를 끼지 않으면 옆에서 누가 말을 해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자기 앞에 있는 전화벨이 심하게 울려도 그 전화벨 소리를 들을 수 없을 만큼 심한 청각 장애를 앓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바클레이에게 박사님 박사님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저술과 위대한 신학적인 업적을 남길 수 있었습니까? 이렇게 질문하니까 그가 자기 귀에 꼽고 있는 보청기를 뽑으면서내가 이것을 빼면 이 세상의 어떤 소리와도 다 차단이 되기 때문에 내가 더욱더 열심히 책을 읽을 수 있었고 더욱더 열심히 기도할 수 있었고 내가 더욱더 열심히 성경을 연구할 수 있었다.”그에게 있어서 청각 장애는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이었다는 사실을 깨들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어떤 약점이 내가 가지고 있는 결점이나 단점이 나에게 부정적인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결단하고

 

어떤 자세로 서느냐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에 기울이냐에 따라서 나의 삶이 나의 단점이 나의 결점이 나의 핸디캡이 하나의 축복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 가운데 심각한 핸디캡을 가졌던 사람들이 훌륭한 업적을 남겼던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았던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국의 루우주벨트 대통령 같은 사람은 소아마비를 앓았던 신체 불구자였습니다.

 

천로역정이라는 책을 쓴 존 번연이라는 사람은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무학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존 번연은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고 천로 역정이라는 책을 씀으로 말미암아 이 세계에 나온 책들 가운데 성경 다음으로 많은 언어로 번역이 되어서 읽혀진 책의 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존 밀트같은 사람은 시력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시력을 다 잃어버렸을 때 그는 하나님 앞에서 실낙원이라는 위대한 책을 쓸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 유명한 가가와 도요히꼬라는 사람은 기생의 자식으로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폐결핵을 앓아서 아주 힘겹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본을 변화시키는 유명한 신학자로 그 역할을 다하는 하나님의 쓰임 받는 사람이 되었던 것을 보게됩니다.

 

 

 

 

 

 

믿음의 동역자들/4:1-24

2001-09-19 21:03:59

 

 

이스라엘은 본문 1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대로 사사 에훗이 죽은 후에 여

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으므로 20년 동안 하솔의 왕 야빈에게 학대를

받았습니다. 이에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사사 드보라와

두명의 돕는 자를 주셔서 이스라엘을 압제로부터 구하여 내십니다. 그 두

명의 동역자가 드보라의 군대장관 바락과 무명의 여인 야엘입니다. 이들 세

사람은 어느 누가 주도하였다기보다 동역 하였고 그 결과 승리를 하였습니

.

 

드보라는 이스라엘 사사 중에 유일한 여 사사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여자를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랍비들은 자신이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드보라가 사사가 되었다

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걸핏하면 조건을 따지고 한계를 설정합니다. '여자가 무슨', '

그 몸에 무슨', '그 나이에 어떻게' 등은 거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

는 한계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미신입니다. '여자는 할 수 없다'든가

'이 몸으로는 할 수 없다', '이 나이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미신

입니다. 드보라를 굳이 여자라 한다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여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그 몸으로 하는 가?'라고 말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는 그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몸으로 하는 것입

니다. 이 사회가 거의 정설처럼 여기는 한계가 있는데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하는 것, 즉 학벌이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학벌이

좋은 것은 좋은 것이지 그렇다고 그것이 한계는 아닙니다. 한계라는 말을

그런 정도에 붙여서는 안됩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일을 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상황 외에는

한계라는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떠난 상황이라면 저도 그

상황이 한계임을 인정하겠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은 상황 외에는 한

계가 아니라 단지 어려운 상황일 뿐입니다. 어려워진 일을 너무 쉽게 한계

라는 말로 결론 짖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드보라는 바락을 불러서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는

일에 동참할 것을 말합니다. 바락은 좋은 믿음의 동역자였습니다. 바락이

시스라를 무찌를 수 있었던 것은 무기가 앞섰기 때문이 아니라 믿음이 앞섰

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대적 시스라의 군대는 강군이었습니다.

스라엘과 시스라 군대의 싸움은 이스라엘이 절대적으로 열세였습니다. 그럼

에도 바락이 승리한 이유는 하나님을 믿는 확신에서 온 것입니다.

 

세 번째 믿음의 동역자는 야엘 이라는 여자입니다. 이 여자는 무명의 촌

부와 같은 인물입니다. 시스라가 자신들과 화평하게 지내고 있는 겐 사람

헤벨의 집으로 도망쳐 들어갔습니다. 시스라는 야엘이 자신의 도움일 줄 알

고 들어갔지만 그 손은 도움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의 손이었습니다.

21절에 보면 시스라는 야엘의 손에 죽고 맙니다. 드보라와 바락과 야엘은

서로 많이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는

하나가 되는 놀라운 일치를 봅니다. 그가 사사이거나 사사를 돕는 자거나

상관없이 열정은 모두 같았습니다. 아름다운 믿음의 동역자들입니다.

 

의선교회에 드보라와 바락과 야엘 같은 인물 세 사람만 있어도 교회는 큰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제가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이런

생각이 목사들의 습관적인 표현일지 모르겠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저는 그 습관적인 표현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결심이 생

겼습니다. "나는 많은 교우들 중에서 세 사람을 찾으려하지 않고 많은 교우

들이 다 세 사람이 되도록 기도할 것이다."

 

언젠가 성경공부 인도자 모임에서 고성규 집사님이 한자 뜻풀이를 하며

설명을 했는데 법조인이라 기막히게 풀이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 적용될

것 같아서 어제 다시 전화를 해서 그때의 뜻풀이를 물어 보았습니다. 제가

물은 것은 합력(合力)과 협력(協力)의 차이입니다. 집사님의 설명입니다.

합력은 작은 힘이든 큰 힘이든 있는 대로 내놓는 것입니다. 상대가 10을 내

놓고 나는 하나를 내놓아도 합력한 것이 된다고 합니다. 즉 내가 교회를 위

해 최소한의 봉사를 해도 그것은 의선교회를 위해 합력한 것이 된다는 것입

니다. 그러나 협력은 다릅니다. 상대가 10을 내놓으면 나도 10을 내놓을 때,

협력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협력은 동등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것을 내놓아 힘을 합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계약은

협력이지 합력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 양반과 상놈이 합력은 할

수 있어도 협력은 못하였다고 합니다. 의병장이 상놈인 부대에는 양반이

절대로 들어가서 협력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집사님의 설명을 듣고나자 이런 답이 나왔습니다. '교회는 합력 하는 공

동체이지 협력하는 공동체가 아니다.' 그래서 바울도 로마서 8:28에서 "

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교회는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는 공동체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룸에 있어서 각자의 직업

과 지위가 달라도 합력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는 합력하는 믿음의 동역자들

이 많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목회자인 저를 협력하기는 힘들겠지만 합력

은 얼마든지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합력하여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를 용납하여야 합니다.

가 나와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가 나와 다

르면 틀리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가 나와 다르다고 생각하면 하나가

될 수 있지만 틀리다고 생각하면 하나되기 힘듭니다. 교회 안에는 각기 하

는 일이 다르고 개성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우리는 그 다름을 인

정하고 서로 합력하여야 합니다. 그가 틀리지 않고 다르다면 용납해야 합니

.

 

오케스트라는 서로 틀린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 다른 소리를 한가지 악기 소리만 들으면 아주 귀에 거슬립니

. 그러나 다른 소리들이 합력할 때는 아름다운 소리가 되는 것입니다.

리 모두는 오케스트라의 악기와 같습니다. 심벌즈(cymbals)는 둥글고 얇은

두 개의 놋쇠판을 마쳐서 소리를 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 소리만 들으면 귀

에 몹시 거슬립니다. 그러나 애국가 연주시 '대한사람' 할 때의 심벌즈 소

리는 가슴까지 진동이 오는 감동이 있습니다. 우리 옆에 있는 지체의 소리

는 의선오케스트라에서 없어서는 안될 소리입니다. 저는 그 소리 하나 하나

의 개성을 존중합니다. 의선공동체가 믿음을 합력한다면 어떤 어려움이라도

극복할 수 있고, 사단 마귀 권세까지도 이길 줄 믿습니다.

 

 

 

 

사사기-9] 작은 자들이 이루어낸 큰 승리 /4:12-24

2018-07-13 04:44:58

 

1. 작은 것의 힘, 여성의 힘

 

잔 다르크(Jeanne d'Arc, 1412~1431)를 아시죠?

 

성경의 여성 지도자 드보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비교되어 언급되는 분입니다. 잔 다르크는 프랑스 입장에서 보면 우리의 임진왜란 같은 영국과의 백년전쟁(1337~1453)으로 나라가 위기 가운데 있을 때 전쟁에 나서서 패색이 짙던 프랑스를 구한 여성입니다. 드보라 역시 가나안 왕 야빈과 그의 군대 장관 시스라에 의해 20년 동안 짓눌리고 있던 이스라엘을 그들로부터 구한 여성입니다.

 

그런데, 드보라 이야기는 단순한 여성 지도자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주 설교를 기억하십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의 全滅시킨 것이나 다름없던 하솔의 가나안 족속을 그들이 조금 남았다는 이유로 그까짓 것쯤이야하면서 무시하고 방치한 결과,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가나안 여러 족속들의 삶의 방식과 문화와 우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것을 받아들인 결과, 그 작고 사소한 일들 때문에 이스라엘이 겪은 虐待는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포도 알갱이들이 포도주 틀 속에서 짓눌리고 으깨어지듯 이스라엘은 그와 같은 모진 학대를 당했습니다. 그런 그들을 구한 사사는 놀랍게도 당시 사회에서 무시당하던 자요, 작은 자요, 소외된 자인 여성 드보라였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너희들이 불신앙으로 인하여 무시하고 소홀히 한 작은 것들이 얼마나 큰 화를 불러오는지 보고반면에 아무리 작고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과 또 그런 사람일지라도 하나님께 드려지면 얼마나 놀라운 일을 가져오는지를 보라였습니다.

 

즉 하나님을 불신하고 불순종하는 작은 것은 엄청난 고통을 불러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작고 사소한 것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불러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설교 역시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드보라보다 더 못한 조건의 한 여성이 추가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두 여성이 이루어낸 전쟁의 승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2. 여자들이 이루어낸 승리

 

1) 가나안과 이스라엘의 전투(12~16)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으로 바락을 임명하고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를 중심으로 1만 명의 군대를 소집한 드보라는 전투 명령을 내렸습니다(14). 그런데 문제는 그 1만 명이 58절 말씀대로 군인이 아닌 일반인들이었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창도 방패도 없이 강력한 시스라의 용병 집단과 맞서 싸워야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측이 먼저 宣戰布告를 하자 13절에 보면, 시스라 역시 자기 군대와 철 병거를 거느리고 다볼 산 근처 기손 강변으로 나왔습니다. 원래 시스라가 거주하던 곳은 하로셋학고임이라는 곳인데요. 이곳은 갈릴리 지역에 있던 이방인들의 집단적인 거주지였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보시는 첫 번째 그림이 가나안 군대의 이동 경로입니다. 두 번째 그림은 이스라엘 군대가 다볼 산에서 내려와 기손 강변 가나안 군대가 진을 친 곳으로 이동한 것을 표시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을 잘 보시면 가나안 군대가 먼저 기손 강변으로 이동했고, 이스라엘 군대는 다볼 산에서 그것을 지켜 본 이후 거기로 이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13,14). 이 시간적인 순서는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합니다.

 

그것은 다볼 산에 있던 바락과 이스라엘 군대가 시스라가 군사들과 철 병거를 거느리고 기손 강변으로 몰려오는 것을 다 지켜보았다는 뜻이며, 그것을 보고는 낙심이 되어서 전투에 나서기를 주저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14, 드보라가 바락에게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넘겨주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에 앞서 나가지 아니하시느냐?”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들이 모래바람을 일으키면서 병거를 끌고, 그 뒤를 수천 수만의 군대가 뒤따르는 모습은 이스라엘 군대를 겁먹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어느 누가 봐도 안 될 싸움, 하나마나한 싸움으로 보였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군인도 아닌 농부들과 목동들이 무기도 없이, 최고의 무기로 무장한 용병 집단과 싸워서 이길 가능성은 전혀 없는데다가, 사실 맞붙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 정도라면 얼른 피하는 것이 上策입니다. 그래서 바락은 망설이고 또 망설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드보라는 시스라의 군대를 진멸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바락에게 확신시켜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셨느니라.” 그리고 이어서 오늘이 바로 시스라가 진멸당하는 날이다라고 말함으로써 바락에게 용기와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락은 드보라에게 순종하고 또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다볼 산을 떠나 기손 강 쪽으로 내려갔습니다(14). 그렇게 해서 가나안의 군대와 이스라엘 군대가 맞붙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상황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본문 15, “여호와께서 바락 앞에서 시스라와 그의 모든 병거와 그의 온 군대를 칼날로 혼란에 빠지게 하시매.”

 

여기의 혼란54절에 언급된 기손 강의 폭우와 그로 인한 홍수를 말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하늘이 물을 내리고 구름도 물을 내렸나이다.” 역사가 요세푸스 역시 그 날의 전쟁의 승패를 가른 것은 다름 아닌 폭우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그 상황을 시적으로 표현한 520절을 보면,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라고 합니다.

 

별들, 하늘, 즉 날씨가 이스라엘을 도와서 함께 싸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예보에 없던 폭우가 다가 아니었습니다. 54,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 무슨 말인가 하면, 난데없는 폭우에 지진과 산사태까지 일어났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군대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초자연적인 상황 때문에 가나안의 진영은 아수라장이 되었으며, 가나안 군사들은 혼비백산하여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는 말이죠. 즉 그 날의 전투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야빈과 시스라의 군대는 하나도 남음이 없었습니다(16).

 

 

2) 시스라의 죽음(17~24)

 

이렇게 모두의 예상을 깨고 가나안 군대는 완전히 패배했습니다. 심지어 이 전투에 가나안 왕 야빈은 參戰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을 가볍게 본 것이고, 이 전쟁을 쉽게 본 것이죠. 그런 그들이 전쟁에서 대패하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15,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걸어서 도망한지라”, 17, “시스라가 걸어서 도망하여라는 표현을 보십시오. 이 표현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가나안과 그 군대는 철 병거로 이름을 얻었습니다.

 

철 병거로 이스라엘을 휘어잡았고, 이 전투에도 철 병거를 앞세웠습니다. 그런데 기손 강변의 난데없는 폭우와 지진 등으로 병거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시스라는 어쩔 수 없이 병거를 버리고 걸어서 도망을 쳤다는 말이죠. 그 위용을 자랑하던 철 병거는 시스라를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보십시오. 아무리 최신식 무기이고 최고의 기동력을 자랑하는 병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도망하던 시스라가 어디로 갔습니까? 헤벨의 집으로 피신했습니다.

 

헤벨은 겐 사람, 즉 모세의 장인과 그 후손들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게데스에서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11)”에 거주하고 있었는데요. 그곳은 가나안 왕 야빈이 거주하던 하솔과 가까웠고, 헤벨 집안은 하솔의 야빈과 친하게 지낸 것으로 보입니다(17). 그렇기 때문에 시스라가 헤벨에게로 피하여 갔고, 또 헤벨과 그의 가족들도 시스라를 영접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겐 사람이라는 이 민족의 이름이 철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바로 여기에 야빈과 시스라, 그리고 겐 사람의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야빈과 시스라에게 철 병거가 900대 있었지 않습니까? 아마도 이 철 병거와 관련하여 철 전문가인 겐 사람들과 야빈 사이에는 어떤 교류와 협조가 있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겐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절대로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모세의 장인의 후손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스라가 거기로 피하여 숨으면 설사 탄로 난다고 해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와 자신을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을 것이라는 계산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왜 본문은 이렇게 지극히 私的인 관계까지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헤벨의 아내인 야엘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 야엘이 전쟁에 패배하고 자신의 집을 찾아온 知人인 시스라를 그동안의 관계나 人情으로 볼 때 박절하게 대할 수 없는 사이라는 것, 나아가 그를 죽일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야엘은 전투와 도주로 인하여 지치고 허기진 시스라에게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그런 후에 이불로 덮어주면서 쉬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시스라가 깊이 잠들자, 야엘은 먼저 보였던 행동과는 정반대로 장막 말뚝과 방망이를 가지고서 시스라의 관자놀이, 즉 눈과 귀 사이에 그 말뚝을 박아 죽였습니다(21).

 

그런데 여러분, 야엘이 오른 손에 잡고 말뚝을 박은 방망이를 526절에 보면 일꾼들의 방망이라고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야엘이 천막 말뚝과 방망이를 능수능란하게 다루어 시스라를 죽인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즉 야엘이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천막을 고정시키는 말뚝을 일꾼들의 방망이로 박은 것은 마치 왼손잡이 에훗이 전쟁용 무기라고 할 수 없는 무딘 칼로 모압 왕 에글론을 죽인 일과 같다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주로 힘센 일군들이 사용하는 방망이로 땅에 박는 무딘 천막용 말뚝을 사람의 머리에 박아 죽인다는 것이 여성으로서 쉽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결국 이것은 시스라를 卽死하게 만든 힘은 그녀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즉 야엘로 하여금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그 어떤 남자보다도 더 큰 용기를 불어넣어 주시고, 한 번의 방망이질로 말뚝을 박을 수 있게 한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녀가 그 일을 하려할 때 시스라가 깨어날 수도 있었고, 또 시스라의 부하가 그것을 목격할 수도 있었지 않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녀와 그 가족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도우셨기에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야엘이 이 전쟁이 거룩한 하나님의 전쟁임을 알고 있었고, 시스라의 생명을 취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있는 것을 보시고 그녀에게 그러한 용기와 힘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524절은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볼 때, 헤벨의 부인인 야엘은 인간적인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점잖은 가문의 여성에게 어울리지 않는 잔인한 일을 그녀가 해낸 것, 또 성경이 그녀의 행동을 정당하게 보는 것을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야엘의 행동은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스라 본인도, 또 이스라엘조차도 생각하지 못하던 전혀 뜻밖의 인물인 야엘은 이 전쟁의 최대의 변수였습니다. 야엘은 군인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백성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이방인이고, 겐 사람 헤벨의 아내일 뿐이었습니다. 여성이 무시되던 시대에, 거기에다가 이방인은 더더욱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던 유대 사회에서 야엘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무시당하고 천대 받던 여인일지라도 그녀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있었고, 바로 그 믿음이 이 전쟁을 종식시킨 것입니다.

 

가나안의 군대를 물리친 일과 야엘이 시스라를 죽인 것이 이스라엘에게 알려지자 그것은 엄청난 기쁨의 소식, 구원의 소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의한 20년간의 모진 학대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이후 40년 동안 평화를 누렸습니다(5:31).

 

 

3) 작다고 무시하지 마라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보시는 이 사진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작다고 무시하지 마라입니다. 작다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준 성경의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 바로 다윗과 골리앗 사건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거기에 하나를 더하고 있습니다. 무시당하고 천대받던 여성 드보라와 이방인이자 여성이라는 두 가지 제약사항을 가진 야엘을 통해서 말이죠. 이것은 아무리 작은 자라도, 아무리 무시당하는 자라도 하나님의 손에 들리면 얼마나 강력해지는지를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3. 작은 자 약한 자를 쓰시는 하나님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사기는 고통 중에 있는 자기 백성, 설사 그 고통이 자신들의 불신과 불순종으로 인한 것일지라도, 그 가운데서 주님을 찾고 도움을 요청하면 구원자 사사를 세워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고통과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또 하나 사사기가 말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세움 받은 사사들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도 주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평범함을 버리자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실 때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과 평범하지 않은 방법을 쓰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속에 담긴 분명한 메시지를 들으라하셨습니다.

 

너희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의 것들, 인간적인 것들, 즉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지극히 사소하고 작은 것들을 택했고 그것 때문에 망했다면, 세상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지극히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하나님께 드려지면 얼마나 놀라운 일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보라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세상의 것, 인간의 것, 이방의 것, 그 사소하고 작은 것들 때문에 하나님을 버리지 말고, 설사 아주 작고 미약한 것일지라도 하나님 안에 있는 것들을 택하여 그로 인하여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즉 세상적으로나 인간적으로, 그리고 찬란한 이방문화와 비교할 때 약한 자, 가난한 자, 세상이 눈먼 자라고 여길지라도, 하나님의 손에 잡히면 얼마나 부하게 되고, 강하게 되고, 위대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인생이 되라는 말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또 다른 드보라가 되고 또 다른 야엘이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존귀한 들러리로 삽시다 /4:1-10/ 조봉희목사

2020-03-21 14:56:40

 

저는 오늘 아침 매우 행복한 질문으로 설교를 시작합니다.

결혼을 잘하셨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아멘으로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결혼 잘하셨습니까?’ ‘아멘

사람은 누구나 결혼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스스로 행복을 누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결혼하실 분들도 행복한 결혼을 하게 될 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더 확인해보겠습니다. 부부가 서로 잘 만났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서로 이렇게 말해봅시다. ‘당신 안 만났으면 큰 일 날 뻔 했어요.’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당신 안 만났으면 큰일 할 뻔 했어.’

 

성경을 보면 부부가 참 잘 만난 분들이 많습니다. 노아는 부인을 잘 만났기에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아라랏 산꼭대기에 방주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부인 사라를 잘 만났기에 벤처 신앙의 순례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모세도 부인 십보라를 잘 만났기에 민족 구원과 해방을 위해 그 험난한 광야 길의 거룩한 동행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 위인 중 한 분이 바로 오늘 본문의 주인공 드보라라는 여인입니다.

드보라는 이스라엘 역사상 사사시대 중엽에 등장한 매우 훌륭한 인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20년 동안 팔레스타인 원주민들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 여장부로 등장한 인물입니다.

드보라라는 이름은 꿀벌이라는 매력적인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그녀는 꿀벌처럼 Sweat to Sweet. 땀 흘리는 수고로 달콤함을 가져다 준 행복 메이커입니다.

이런 저력을 가지고 자기 민족을 오랑캐들의 압제에서 해방시켜준 훌륭한 여장부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드보라 한 사람 덕분에 고난의 때를 마감하고 즐거운 노래를 부르며 살았습니다. 오늘 나로 인해 노래가 나오는 현장을 만들어가시기 바랍니다.(5)

인디언들의 관습에 풍년과 축복을 가져다주는 rain maker가 있듯이 오늘 우리도 행복 메이커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구약성경 중에서 춘추전국시대에 해당하는 스토리가 사사기라는 책입니다. 13명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모두가 평범한 사람이지만, 오직 성령의 은혜로 큰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받는 만큼 평범에서 비범으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Ordinary to Extraordinary입니다. Good to Great로 도약합니다.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때때로 예배당 의자 하나하나를 안수하며 기도하곤 합니다. ‘주님, 이 의자에 앉는 한 분 한 분 모두에게 성령을 주옵소서. 누구든지 교회에 나오면 성령 받고 가게 하옵소서.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축복하여주옵소서,’

 

사사기에서 강조하는 메시지 중 하나는 누구든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으면 존귀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받는 만큼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존귀한 들러리로 사명자 인생을 살아갑니다. 사람들한테 인기를 얻고 각광을 받는 주연보다는 조용한 조연으로 살아갑니다.

그야말로 들러리의 영성으로 고결하게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크게 축복하시는 하늘의 상 받을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에서 제시하는 존귀한 들러리의 삶은 무엇일까요?

 

1. 성령의 사람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살아갑니다.

 

본문의 주인공 드보라는 남편과 일찍 사별하였습니다. 그래서 에브라임 산지에 남편을 안장했고, 특히 기념비를 세워놓았습니다. 사람들이 남편의 큰 업적을 기념하여 공적비를 세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의 부인 드보라는 남편의 직임을 계승받아 백성들을 다스리는 사사역할을 했습니다. 부부가 함께 얼마나 훌륭했으면 주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았겠습니까?

이런 배경으로 본문 4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의 사사는 랍비돗의 아내인 예언자 드보라였다.

 

여기서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관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드보라는 자신의 이름 대신 랍비돗의 아내로 소개 됩니다. 이미 죽은 남편의 아내로 불립니다.

그녀는 이스라엘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영웅적 인물입니다. 그녀는 팔레스타인의 전차부대 900대와 대군을 물리친 여장부입니다. 지금도 드보라는 이스라엘 역사의 잔 다르크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드보라는 한 남자의 아내, 즉 들러리로 소개될 뿐입니다.

더 나아가서 신약성경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영웅들 40여 명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처럼 명예로운 명단에 그녀의 이름 대신, 그가 도와준 바락 장군의 이름만 등재하고 있습니다.(32)

 

이처럼 드보라는 큰 업적을 남기면서도 자기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이름을 존귀하게 해드리고, 바락 장군을 높여주는 거룩한 들러리 역할만 했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은혜로 살아가는 존귀한 들러리의 영성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여성들은 남자를 성공시키기 위해 훌륭하게 뒷바라지하는 평강공주들입니다.

최근 옥편에서는 남존여비의 뜻을 새롭게 풀이합니다. 남자를 존귀케 하는 여인은 왕비가 된다.

 

19세기 영국 사상계의 거장이었던 토마스 칼라일은 <영웅의 역사>라는 책에서 항간에 드러난 영웅보다 가려진 영웅들이 더 많음을 피력합니다. 세계적인 경제 전문지 <포춘>에서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의 총수 중 86%가 훌륭한 조력자, 참모 출신이라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훌륭한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여러 기업과 기관에서 필요한 들러리로 묵묵히 사명을 다하는 충신들입니다. 자기를 희생하며 사명을 다하는 존귀한 들러리입니다.

현대사회는 competence(실력자)보다는 chemistry(협조자)를 필요로 합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이런 분들을 머리 숙여 존경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 라인에서 묵묵히 섬기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라고 격려하십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주연보다는 조연을 더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어쩌면 어느 기업이나 기관의 총수보다는 참모들이 더 큰 상을 받을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교회에서 주도자 역할을 한 목회자보다는 겸허한 조력자로 충성을 다한 장로님들과 권사님들, 집사님들이 더 큰 상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존경 받아야할 거룩한 비목들이 많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다스리는 자보다는 섬기는 자를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상 받을 자, 하늘에서 큰 자라고 높이 평가하십니다.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라는 책의 저자 S. 사이넥은 이렇게 말합니다.

리더란 남보다 더 적게 해도 되는 면허가 아니라, 남보다 더 많이 해야 할 책임자다.”

즉 리더는 직함이나 서열이 아닙니다. 책임을 다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리더의 본질을 매우 심오하게 천명하십니다.(마가복음 10:45)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인자는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다.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들러리의 영성을 강조하십니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섬기는 영성입니다.

 

우리나라 선교 초기에 전라남도 지역에서 훌륭하게 의료선교를 하신 서서평 선교사님(Elijabeth Shepping)의 좌우명은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Not Success, but Service.

인생의 목적은 성공을 뛰어넘어 섬김이어야합니다. 우리 모두 섬기는 사명자로 살아갑시다.

 

하나님께는 주연과 조연, 주도자와 보조자, 주인공과 들러리, 모두 다 중요합니다. 동등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자기 이름을 알리고, 높이는 것은 잠시 잠깐입니다. 사람들은 금방 잊어버립니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서는 숨겨진 조연들이 더 존귀한 영웅입니다.

제가 자주 표현하는 문장으로 second but better입니다. 두 번째가 더 좋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존귀한 들러리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스스로 이렇게 선포하며 살아야 합니다.

나는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다. 하나님만 영광 받으시면 충분하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밝게 하는 은하수와 거룩한 안개꽃으로 살수록 더욱 존귀합니다.

 

 

2. 성령의 사람은 좋은 협력자로 살아갑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연합시키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 예수 믿게 되면, 서로 생면부지의 관계인데도 하나 되게 하시고, 서로 좋은 팀워크를 이루며 살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지구촌교회 공동체 명칭이 형제선교회 자매선교회, 그리고 사랑방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드보라는 좋은 협력자의 영성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가나안 땅 남쪽 에브라임 산지에 살면서도 저 멀리 북쪽에 있는 납달리 지역의 바락과 좋은 연계를 이루었습니다.

그녀는 남쪽의 산간 마을에 살면서도 150km 이상 떨어진 북쪽 사람들과 좋은 협력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드보라는 꿀벌이라는 자기 이름 뜻 그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가져다준 것입니다.

사사기 5장을 보면 드보라는 이스라엘을 백성들에게 즐거운 노래를 부르게 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협력공동체입니다. 우리 지구촌교회의 매력입니다. 팀워크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본문 사사기 4장을 읽어보면 참 아이러니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바락이라는 장군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블레셋 군대를 무서워하여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습니다. 겁쟁이 장군, 허수아비였습니다. 마이가리 계급장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드보라가 그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6)

하나님께서 가나안 원주민을 물리쳐주실 것이니 그들과 싸우라고 용기를 심어줍니다.

그런데 바락 장군은 남자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본문 8절을 봅시다.

바락이 드보라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나도 가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않는다면, 나도 가지 않겠습니다.”

 

너무나 웃기는 장면입니다. 남자 장군이 아낙네 여성한테 전쟁터에 함께 가자고 부탁합니다.

부탁 정도가 아니라, 어린아이가 엄마 치맛자락을 잡듯이 칭얼댑니다. 남자 장군이 나약한 여성에게 전쟁터에 함께 가자고 바락바락 소리 지릅니다. 그래서 이름이 바락입니다.

이처럼 남자는 때때로 여자에게 큰 아들에 불과합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반응에도 드보라는 고결한 여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바락 장군과 함께 전쟁터로 출정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함께라는 말을 다섯 번이나 반복합니다.(8~9)

드보라는 여성인데도 전쟁터에 함께 출정하여 목숨 걸고 헌신합니다.

그야말로 현대판 잔 다르크요, 바보 온달을 장군으로 부상시킨 평강공주입니다.

 

이것이 여성의 매력입니다. 여자는 함께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인물입니다. 하나님은 남자를 위해 여자를 만들 때 함께하는 파트너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외형적으로는 용감한 것 같으나, 속으로는 수줍음을 잘 탑니다. 작은 일에도 굉장히 멋쩍어합니다. 그래서 어떤 낯선 모임에는 여자와 함께 가기를 좋아합니다.

남자들이 교회에 나올 때도 혼자서는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선교회 모임이나 사랑방 모임에 혼자서는 쑥스러워서 참석을 잘 못합니다. 부인이 동행해야 용기를 내서 따라갑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강조하는 파트너십입니다.

성령의 사람 드보라는 믿음이 약한 바락 장군을 돕기 위해 위험한 전쟁터에도 함께 갑니다. 든든한 참모로 따라 나서며 들러리가 되어줍니다. 그녀는 남편마저 사별한 연약한 아낙네였지만 두려움과 의기소침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일어나게 합니다. 한 마디로 영적 대모였습니다.

 

드보라의 이런 영적 리더십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자기를 영웅화시키거나 공치사를 하는 대신, 여호와의 이름만을 높입니다.

(6, 7, 9, 14, 15, 23. 5:31)

그래서 5장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대서사시적으로 노래합니다. 구약성경에서 몇 편 안 되는 웅장한 시입니다.

하나님만을 높이는 그의 숭고한 신앙고백은 한 마디입니다. 하나님이 하셨어요!

이것이 훌륭한 들러리의 영성입니다. 다 같이 제창합시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좋은 협력자로 헌신하며, 하나님만 높여드립니다. 공동체를 세워나갑니다.

교회 직분자는 간섭자, 감시자, 대적자가 아닙니다. 협력자, 동역자입니다. 거룩한 들러리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이전에, 우리를 먼저 생각합니다.

 

반면에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개인주의로 사는 요인 중 하나는 성령 없이 살기 까닭입니다.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어느 모임, 어느 자리에서도 좋은 협력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직장, 사회, 공동체, 어디서든지 좋은 조력자로 섬기는 거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큰 자로 여기시는 존귀한 들러리이십니다.

 

(기도초청 : 주님 큰 영광 받으소서 ~~)

 

 

 

팀플레이로 승리를 거두라 /4:1-24/ 조상호목사

2023-07-20 11:11:32

 

한국과 일본에서 있었던 2002년 축구 월드컵대회의 가장 큰 이변은 전년도 우승팀인 프랑스 팀의 예선 탈락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프랑스를 좋아하는 많은 축구팬들이 큰 충격을 받았지만, 일부 축구 전문가들은 이미 대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프랑스 팀이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4년 전 1998년 월드컵 대회 때의 프랑스 팀은 글자 그래도 다인종연합의 무지개팀이었습니다. 모든 선수들이 유기적으로 연합된 훌륭한 팀웍으로 경기를 한다고 해서 프랑스 팀은 Art Soccer의 대명사처럼 불려졌습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2002년도의 프랑스 팀은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축구선수 지단 중심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더 이상 다인종연합의 무지개팀이 아니라, ‘지단의 팀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모든 공격이 지단의 발끝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프랑스 팀은 지단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모든 전술을 지단 한 사람에게 맞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공격의 출발이 그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그에 따라 승패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눈치 챈 다른 팀들이 프랑스 팀 전력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슈퍼스타 지단을 방어하는 훈련을 철저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프랑스는 2002년 월드컵 개막전에서 아프리카의 무명 팀 세네갈에게 01로 패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우습게 봤던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무기력하게 00으로 비긴 것도 사실은 지단이 부상을 이유로 빠지면서 팀플레이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흥 축구강국으로 떠올라서 최소한 4강까지는 올라갈 거라던 포르투갈은 피구라는 슈퍼스타를 중심으로 하는 피구의 팀이었습니다.

 

포르투갈이 예선에서 우습게보았던 미국에 23으로 패한 것도 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피구가 컨디션 난조로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에 01로 패하였던 것도 포르투갈이 자랑하던 피구가 송종국과 이영표의 협력수비에 철저하게 발목이 잡혔기 때문입니다. 아르헨티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바티스투타와 베론이라는 수백억 원의 몸값을 자랑하는 스타 플레이어를 앞세운 강력한 우승 후보였지만, 베론의 부진으로 조별예선 탈락이라는 충격에 휩싸여야 했습니다. 이처럼 한 두 사람의 슈퍼스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팀들은 대부분 예선에서 혹은 16, 8강전에서 줄줄이 탈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세계축구계에 제대로 명함도 내밀지 못하던 한국축구가 4강에 올랐습니다. 사실 한국 팀에 지단이나 피구, 아니 눈높이를 낮추어서 유럽 빅 리그의 B급 프로팀에서조차 주전으로 뛸만한 스타 플레이어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안정환과 설기현 정도의 선수도 실은 유럽의 톱 클라스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팀이 4강이라는 상상을 초월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된 이유는 조직력 때문이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처음 부임할 때부터 마지막 월드컵이 끝날 때까지 황선홍, 홍명보 혹은 안정환 선수로 대표되는 한국 축구가 아니라, ‘열한 명이 유기적으로 톱니 바뀌처럼 물려 돌아가는 팀으로 이끌어가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독불장군식으로 경기에 임하는 선수는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개인보다는 팀을 우선시하고 늘 팀플레이를 강조하였습니다. 한국팀은 항상 팀플레이를 목숨처럼 중요하게 여기며 경기에 임하여, 계속 연전연승을 하여 결국 월드컵 4강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반면 수백억 원의 몸값을 자랑하는 소수 엘리트를 중심으로 구성된 팀들과 솔로 플레이를 앞세운 세계 축구강국들은 어이없게도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무명 팀들에게 패배하여 줄줄이 탈락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실력 있는 스퍼스타 한 두 사람이 이끄는 팀보다, 실력은 조금 떨어지는 선수들이라 할지라도 전체 멤버가 팀플레이를 하는 팀이 더 강하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서로 협력하고 도와가며 힘을 모으는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스포츠 경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이나 기업체나 군대에서 조차 팀플레이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솔로 플레이로 사역하는 것보다 팀플레이로 사역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역을 훨씬 더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드보라, 바락, 야엘, 이 세 사람이 함께 통쾌한 승리를 거둔 사건을 통해, 팀플레이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에훗의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1) 우리가 지난주에 이미 살펴본 대로 외팔이 선지자 에훗이 활동하던 80년 동안은 태평성대를 이루다가, 에훗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하나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 가나안 왕 야빈의 지배 아래 두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20년 동안이나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야빈 왕의 수하에는 시스라라고 하는 소문난 장군과 철병거 구백 승을 가지고 있는 강력한 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1) 한계를 극복한 드보라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등장하는 첫 번째 사람이 드보라입니다. 드보라가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한계를 극복한 사람입니다. 4절에서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니, 드보라는 여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니까 드보라는 사사로 부름을 받기 전에 이미 이스라엘에서 선지자로서 활동하고 있었음에 분명합니다.

 

5절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녀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은 것을 보면, 재판장의 역할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사사로 뽑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상황에 비추어 굉장히 파격적인 일입니다. 옛날 고대 근동에서의 여자들의 지위는 거의 노예와 다름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만 해도 유대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세 가지 감사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첫째는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 둘째로 종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 셋째는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했습니다. 이처럼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대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 중에 유일한 여사사가 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그것도 드보라가 에훗이나 삼갈이나 옷니엘 등과 같이 사사라는 한 가지 직분만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사사와 선지자와 재판장의 이 세 가지 직분을 수행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드보라처럼 우리들도 사회적, 관습적 인식에 얽매이지 말고, 한계를 극복하며 살라는 교훈입니다. 사실 우리 주위에 보면 사회적으로, 관습적으로, 환경적으로 여러 가지 한계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키 큰 사람 치고 싱겁지 않은 사람 없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키 큰 사람은 항상 소금을 옆구리에 차고 다녀야 합니까? 또 어떤 사람은 스물아홉을 넘기면 시집가기는 틀렸다라고 말을 합니다만, 이 말을 들은 스물아홉을 넘긴 자매는 무슨 낙으로 살아갑니까? 또 어떤 사람은 그 연세에 무얼 한다고 그러세요? 환갑 넘으면 인생 이미 종친 거죠?”라고 말합니다만, 갈렙은 85세에 헤브론을 취했습니다. 외모를 들먹이며, 집안을 들먹이며, 학벌과 나이를 들먹이며 자꾸만 한계를 짓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여성도 얼마든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얼마든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신사의 나라’,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정치인으로 기억되는 사람은 윈스턴 처칠과 마가렛 대처(Margaret Hilda Thatcher) 두 사람입니다. 윈스턴 처칠이야 워낙 훌륭한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렇다치더라도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을 좋아하는 것은 굉장히 의외입니다. 그런데 영국사람들이 대처 전 영국 수상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녀가 한계를 극복한 여인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렛 대처는1925년 영국의 링컨셔 그랜섬에서 식료품 가게와 양장점을 운영하시는 부모님의 둘째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법학과 화학을 전공한 후, 변호사와 국회의원을 거쳐, 여러 부서의 장관에 오른 후, 1975년에는 여성으로서 영국 최초의 보수당 당수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리고 1979년에는 영국의 총리에 오르면서 유럽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었고, 영국 헌정사상 총리직 3번연임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녀가 영국 수상에 임명되었을 당시 영국은 심각한 인플레 현상과 노조의 파업, 포클랜드 전쟁 등으로 경제는 물론이고, 대외 신인도가 크게 하락하는 등 국내외적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처 수상은 사회 전반에 걸쳐 과감한 개혁을 단행하고 나섰으나, 국민들의 지지도는 역대 수상들 중에서 최하위를 기록할 정도로 형편없이 떨어지고, 당시 집권당인 보수당 내에서도 조차도 수상의 정책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비판을 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대처 수상은 정책의 선회(U-turn)를 주장하는 반대파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바로 자신의 정책이 영국의 번영과 국민들의 복지향상에 분명 기여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러한 의지와 소신 때문에, 그녀는 철의 여인이라는 닉네임을 갖게 되었고, 총리로서 영국을 11년 반 동안 이끌며 국가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되어 영국인은 물론이고 전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여성정치를 대표하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마가렛 대처는 한계를 극복한 여인이었습니다. 유명한 집안 출신의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평범한 집안 더 종확히 말하면 구멍가게를 운영하시는 어려운 가정 출신이었습니다. 또 당시 남성에 비해 많은 차별을 받던 여성이었습니다. 쌍둥이 남매를 키워야 하는 엄마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였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서도 이와 같이 한계를 극복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저는 지난 주 주중에 모 행사 관계로 준비모임을 갖는 중에 두 분의 자매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정확하게 옮길 수 없지만, 대충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그 동안 자녀들 키우느라, 아이들 돌보느라,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것들을 계속하지 못하고 있었다. 때로는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아이들이 미워질 때가 있다. 아이들 때문에 내 인생이 뭐가 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제가 그 분들에게 이렇게 도전했습니다.

 

다시 시작해 보세요. 이곳 크라이스트처치에서도 활동할 수 있어요. 한번 해 보세요.” 그렇습니다.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 자녀교육 때문에, 나이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키가 작아서, 학벌이 변변치 않아서, 할 수 없다고 한계를 지어놓고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만들어 놓은 한계 안에서 고민하지 말고, 박차고 일어나 한계를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 가지 한계를 극복하고 하나님께 위대하게 쓰임 받았던 드보라 사사와 대처 수상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한 사도 바울처럼 믿음으로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2) 믿음으로 전진한 바락

드보라는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 군대를 무찌르기 위해 바락이라는 사람을 불러 하나님 명령을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셨다. 너는 1만 명의 병사를 이끌고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와 싸우라. 원수를 네 손에 붙여줄 것이다.”(5~7) 그런데 바락이 뭐라고 대답을 합니까? 모든 남성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합니다. 8절을 보겠습니다.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 바락은 남자답지 못하게 여자인 드보라에게 당신이 가지 않으면 내가 가지 않겠다, 당신이 가야 한다, 나는 혼자서는 절대로 가지 않겠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 어물전 망신 꼴뚜기가 다 시킨다고, 남자 망신을 바락이 다 시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바락은 드보라 사사를 의지한 것이 아니라, 드보라 사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가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지 않으면 내가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 11장의 믿음 장에 그이 이름이 올랐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11:32).”라고 언급되어 있을 정도로, 바락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바락은 겁쟁이나 졸장부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하고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믿음을 가지고 시스라 군대와 전투를 벌입니다.

 

14절을 보겠습니다.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이에 바락이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바락은 드보라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손 강에 집결해 있는 시스라의 모든 병거와 군대를 향해 공격을 감행하기 위해서 다볼산에서 내려갔습니다. 사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대단히 무모한 공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시스라 군대는 시시한 군대가 아닙니다. 철 병거가 무려 구백승이나 됩니다. 이 철 병거는 오늘날로 말하면 탱크나 마찬가지입니다. 두꺼운 가죽이나 철로 사방을 에워싸서 그 병거 안에 들어가 있으면 어떠한 칼이나 활이나 창이 뚫고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사람은 조그맣게 나 있는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며 상대방을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기에 철병거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시스라 군대에는 이러한 철병거가 구백승이나 있는데 반해, 이스라엘에는 한 대의 철병거도 없었습니다. 철병거는 커녕, 아직 변변한 칼조차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무엘상 13장에 보면 그 때까지도 이스라엘 온 땅에 철을 다룰 줄 아는 철공이 없어서 사울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외에는 아무도 칼이나 창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사울시대에도 철기문화가 발달되지 않았다면 사울시대보다 170여 년 전인 바락시대에 철로 만든 변변한 무기조차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와 같이 탱크라고 할 수 있는 철병거로 중무장한 시스라 군대를 향해, 겨우 1만 명의 보병부대를 이끌고 바락은 대범하게 공격을 감행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 한가지입니다. 믿음입니다. 그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하나님 말씀을 믿는 믿음이 그로 하여금 강력한 시스라 군대를 향해 공격을 감행하게 했습니다.

 

그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15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한지라.” 바락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결국에는 엄청난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철병거를 다 놓아두고 삼십육계 출행랑을 쳤습니다. 여러분! 바락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철병거가 적들보다 많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칼이나 창을 잘 다룰 수 아는 용맹스러운 부하들이 많아서 입니까? 아니면 바락의 전략이 뛰어났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바락은 믿음 때문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승리의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저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작은 비행기의 경우에는 수명, Boeing 747 같은 경우에는 거의 400명 가까이 타고 엄청나게 많은 화물을 실은 비행기가 어떻게 날 수 있을까? 참으로 신기합니다. 그런데 어느 책에서 비행기가 날 수 있는 이유를 읽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것은 중력의 법칙에 지배됩니다. 우주에는 모든 물체를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이 힘을 만유인력, 혹은 중력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손에 든 사과를 놓으면 땅에 떨어지는데, 바로 중력의 힘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행기는 중력의 법칙에 지배받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늘로 날아갑니다.

 

그것은 비행기가 중력의 법칙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양력의 법칙에 의해서 움직여지기 때문입니다. 비행기 양쪽에 날개가 있습니다. 비행기 엔진의 힘으로 바퀴를 굴려 앞으로 나가면 이 날개에 바람이 부딪치게 되는데, 날개 위와 날개 아래에 같은 양의 바람이 부딪칩니다. 그러나 날개가 앞쪽에서 뒤쪽으로 갈수록 경사가 지어져 있고 날개가 밑에는 짧고, 위에는 길기 때문에 바람의 빠르기가 다르게 됩니다. 날개 위로 더 빠른 바람이 지나가면서 부압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 부압이 비행기를 빨아올리는 작용을 합니다. 반대로 날개 밑에는 정압이 생겨서 날개를 밑에서 위로 밀어 올립니다. 부압과 정압이 합해져서 양력을 만들어 결국은 비행기를 뜨게 만듭니다. 이것이 비행기가 날 수 있는 원리입니다.

 

저는 비행기가 뜨는 원리에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비행기가 통상적인 중력의 원리가 아닌 양력의 원리로 날아가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의 원리가 아닌, 믿음의 원리로 멋있게, 놀랍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의 법칙은 우리를 이 땅에 얽어매는 것이 아니라, 푸른 창공을 나는 비행기와 같이 이 땅을 초월해서 살 수 있게 해주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원리로 이 땅의 원리를 초월해서 살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원리보다 믿음의 원리를 따라서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적인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인간의 원리가 아닌 믿음의 원리를 통해서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전진하여 엄청난 승리를 거둔 바락처럼 믿음으로 전진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는 기적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간이 큰 여인 야엘

본문은 드보라와 바락 외에 또 다른 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야엘 이라는 여인입니다. 가나안 왕 야빈과의 전쟁을 끝내게 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여인입니다. 믿음으로 전진하는 바락의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 시스라 군대를 공격하여 시스라의 모든 병사들을 전멸시켰습니다. 이제 시스라는 홀홀 단신으로 도망하여 헤벨의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여기 헤벨이라는 사람은 가나안 야빈 왕과 사이좋게 지내기로 하고 화친을 맺은 사람입니다. 18절을 보면 헤벨의 아내 야엘은 시스라를 자신의 장막으로 영접합니다. 걱정하지 말고 자신의 안방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장막 안으로 들어오게 합니다. 그러나 외갓 남자가 자기 부인이 아닌, 남의 부인의 안방에 들어간다는 것은 당시의 관습에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자기 남편이 아닌, 외갓 남자를 자기 안방으로 들어오게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대단한 용기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야일을 보십시오. 시스라를 자기 안방에 들어오게 하고 목이 말라 물을 달라고 하는 그에게 젖부대를 열어 마시게 했는데, 요즘말로 말하면 우유나 요쿠르트 통 뚜껑을 열어 마시게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시스라는 그것을 마시고 갈증을 해소시킨 후에, 누가 찾아와서 자기를 찾거든 없다고 하라는 말을 하고 이내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21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곤비하여 깊이 잠든지라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취하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 살쩍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시스라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정말 야엘은 대단한 여인입니다. 야엘은 피곤하여 곤히 잠이 든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장막용 말뚝을 박아 그의 머리를 땅에 박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시스라를 추격하는 바락에게 죽은 시스라의 시체를 넘겨주었습니다. 야엘은 정말 간이 큰 여인입니다. 정말 용기가 있는 여인입니다. 저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간 에스더를 간 큰 여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야엘도 대단한 여인입니다. 시스라가 보통 사람입니까? 싸움과 전쟁에 능통한 가나안의 군대장관입니다. 전쟁과 무예에 도가 튼 베테랑 무사입니다. 어지간한 장수가 나타나도 그를 이길 수 없을 만큼 그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야엘이 시스라를 암살하다가 실패를 하면 그녀의 목숨은 단번에 날아가 버릴 것이 뻔한데, 대범하게도 시스라를 죽였습니다. 그것도 정식 무기인 칼이 아닌, 장막의 말뚝을 뽑아 그것으로 죽였습니다. 결국 그녀의 용기 있는 행동은 그의 이름을 역사대대로 기억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용기 있는 사람을 통해서 귀한 역사를 일으키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머리 굴리며 주저하는 사람보다, 부족하더라도 용기 있는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영국 국왕의 대관식이 거행되고, 영국의 왕들과 위대한 사람들이 안장되어 있는 웨스트민스터 대사원에는 로렌스경의 기념비가 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아주 두려워하며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을 거의 두려워하지 않았다!” 또 유명한 요한 빅커스토스(John L. Bickerstoth)가 죽은 후에 그의 잠겨진 책상의 서랍에서 다음과 같은 기도문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 주님. 오직 주님만을 두려워하고 다른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허락해 주옵소서!” 그렇습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두려워하는 대상이 아니라, 공략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배짱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가나안 나라와의 전쟁에서 드보라와 바락과 야엘은 솔로 플레이를 하지 않고, 팀플레이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다 괴멸시키고 멋진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팀플레이에는 이처럼 큰 능력이 나타납니다. 어제 연합체육대회 개회예배에서 전해진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전도서 49절부터 12절을 보면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다르고, 교파가 다르고, 이민의 배경이 다르고, 나이와 성별이 달랐지만, 우리는 함께 하나 되어 체육대회를 했습니다. 4인조 릴레이를 하면서, 재치 줄다리기를 하면서, 도토리 나르기를 하면서, 하나 됨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솔로 플레이를 하지 마십시오. 좋은 믿음의 동지들과 함께 팀플레이를 하십시오. 몇 주 전에 소개한 적이 있지만, 월남전에서 많은 미군들이 베트콩의 총탄에 죽은 것이 사실이지만, 같은 편인 미군이 공중과 바다에서 쏜 함포사격과 공중포화를 맞아 죽은 군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에 프랜들리 파이어(Friendly Fire)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지난 며칠 전에도 이라크에서 프랜들리 파이어가 있었습니다. 미군이 쏜 총탄에 같은 편인 이라크 경찰 20여명이 죽었습니다. 적으로부터 맞아 죽으면 억울하지도 않을 텐데 같은 편으로부터 총탄을 맞았다고 억울해하며 분노하는 모습을 TV를 통해서 본 적이 있습니다. 적군을 향해서 쏴야하는데, 같은 편을 향해서 총탄을 쏘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사탄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마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디를 향해서 총을 쏘고 있습니까? 혹시 같은 교회내의 성도들을 향해서, 아니면 교회가 좀 다르다고 다른 교회에 다니는 타교인을 향해서, 서로 경쟁하며 시기하며 총을 쏘고 있지 않습니까? 더 이상 우군을 향해서 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함께 더불어 힘을 모아 사탄과 대적하며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팀플레이어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솔로 플레이어를 하지 않고 믿음으로 팀플레이를 하여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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