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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모음/마태복음 설교 모음

마태복음 6:19 - 24절 설교 모음

by Jessi J 2022.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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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을 하늘에 쌓을 수 있는가? /6:19-24/ 옥한흠 목사

2014-11-10 10:22:51

 

우리모두가 한 생을 보내면서 돈과 끊을 수 없는 관계를 갖게 됩니다. 인간의 희로애락이나 오욕칠정이 대부분 돈으로 인해서 발생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늘도 돈 때문에 울고 있는지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돈으로 인해 웃고 있는지요. 쟈끄 엘룰(Jascque Ellul)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돈은 아무도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돈에 대해 남의 이야기처럼 말하고 인생을 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돈은 모른 척 하고 지나가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누구든 자기의 삶이 어떠하며 자기의 신앙이 어떠한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돈 앞에 서야 된다고 합니다. 저는 이 말에 공감합니다. 돈 앞에 설 때 그 사람의 인격이 드러납니다. 돈 앞에 섰을 때 그 사람이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돈이라는 것은 우리를 시험대에 올려 놓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유물론과 공산주의 유물론으로 대표되는 물질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존 화이트(John White)라고 하는 사람의 견해를 그대로 빌린다면, 공산주의 유물론은 돈만이 유일한 존재라고 주장을 하고 한편 자본주의 유물론은 돈만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돈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공산주의나 돈만이 중요하다고 하는 자본주의가 말의 표현상 좀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 밑바닥에 유물론을 깔고 있고 물질주의를 깔고 있다는 면에서는 동일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손에 넣고자 끝없는 탐욕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돈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확실한 수단으로 생각을 합니다. 힘을 과시할 수 있는 높을 깃발로 생각을 합니다. 또 안전을 지켜주는 확실한 방패막이로 믿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나의 생명도 나의 건강까지도 보장해 줄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돈을 높이니 자연히 돈의 횡포가 심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돈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인간을 지배하는 폭군으로 변했습니다. 얼마나 그 세력이 무서운지요. 돈의 힘 앞에 국가도 무릎을 꿇고 마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돈의 위세 앞에서는 법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날마다 보고 삽니다. 심지어 돈 앞에서 교회마저 무릎을 꿇는 비참한 현실을 우리가 지켜보고 삽니다. 돈이라고 말할 땐 단지 경제적인 가치나 화폐의 가치로만 이야기를 하면 안됩니다. 돈은 이미 화폐라고 하는 가치를, 그 영역을 뛰어넘은 지가 오랩니다.

 

이미 월권행사를 한지가 오랩니다. 돈은 우리의 정신까지 지배를 합니다. 심지어 우리의 가치관까지 마음대로 뒤집어 놓습니다. 우리의 전인격을 파괴하고도 남을 수 있고 이 세계의 도덕성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세력으로 지금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돈이 갖는 이런 위력에 대해서 칼 막스는 아주 묘한 말을 했습니다. '나는 못생긴 사람인데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돈으로 살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못생긴 사람이 아니다' 돈이면 못생긴 사람도 잘 생긴 사람으로 둔갑할 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그는 말했습니다.

 

'돈은 최고의 선이다.' 아마 이런 사상 때문에 공산주의가 그 머리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동경하는 모든 것을 돈을 통해서 가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갖고 싶어하는 욕망은 끝도 없고 한도 없다고 그는 말하면서 재미있는 말을 한마디 더 했습니다.

 

'흐르는 돈은 인간 내면의 저수지에서 결코 넘치는 일이 없다.' 잘 새겨서 들어 보십시오. 아무리 끌어 모아도 차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사람은 돈에 대한 탐욕이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이 최고다. 돈만 있으면 다 된다.' 이것이 유물사상의 뿌리 아닙니까?

 

'하나님이 무엇인가? 돈이 하나님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이 유물사상 아닙니까? 이와 같은 사상에 한동안 전 세계 인구의 1/2 이상이 놀아났다고 생각하면 돈의 힘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인간과 돈의 밀접한 관계를 꿰뚫어 보신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돈이 무엇인가? 보물이다.' 그래서 주님이 '네 보물을 땅에 쌓지 말라'고 하시면서 돈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보물이라고 그러시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보물이라고 하시다가 24절에 가면 돈으로 바뀝니다. 맘몬이라고 하는 돈 신으로 바뀝니다. 결국 예수님이 보물이라고 하실 때는 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돈을 벌 때마다 갖고 싶고, 쌓고 싶고, 기대고 싶은 심정이 있다는 것을 주님이 꿰뚫어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보물을 땅에 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땅에서 돈을 모으지 말라고 하시지 않고 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에게는 쌓고 싶은 아주 강한 욕망이 있다는 것을 주님이 들여다 보시는 것입니다.

 

또한 돈과 사람의 마음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주님이 인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인간이 너무 연약해서 잘못하면 돈을 하나님처럼 숭상할 수 있고 경배할 수 있다는 것도 주님이 인정하셨습니다.

 

그래서 24절은 '사람이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가 없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던지 돈을 섬기던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 주님이 돈과 인간, 인간과 돈의 끊을 수 없는 관계를 이렇게 환히 들여다 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입장을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주님이 무엇이라고 교훈하십니까? 우리에게 그처럼 소중한 보물이라면 안전한데다가 쌓아둬야지 허술한데다가 쌓으면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땅에다가 쌓지 말라. 거기는 허술하다. 하늘에 쌓아라.' 주님이 하시는 이 말씀을 우리는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땅에다 쌓아두면 금방 축이 나고 없어지고 나중에는 손에 남는 것이 없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다 쌓으면 안전해서 영원히 보관할 수가 있고 영원히 그 보물을 가지고 즐길 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옛날에는 돈이라고 하면, 흔히 재산이라고 하면 값진 의복들, 혹은 곡간에 쌓아 둔 곡식, 목장에 있는 가축을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곡식을 아무리 곡간에 쌓아 놔도 동록이 와서 먹고 쥐가 와서 먹고 나중에는 썩고 어떨 때는 도둑맞고 하면 아무리 쌓아 놔도 자꾸 없어진다.

 

자꾸 없어진다. 결국은 떠난다. 아무리 고급 옷을 소유하고 살아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좀이 먹어서 구멍이 뻥뻥 나면 나중에 다 못쓴다.' 다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쌓아 놓는 보물은 다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옛날에만 통하는 이야기 입니까?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돈이 없어 고생하는 사람도 많지만 돈을 갖고 안전한 곳을 찾지 못해서, 어디에 갖다 맡겨야 안전한지를 몰라서 밤을 설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이 세상에는 안전하게 내 돈을 맡길 만한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 동록이 슬고 좀이 먹고 도둑 맞고 얼마든지 없어질 수 있는 곳만 가득하니 돈 맡기는 안전한 곳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금리가 떨어지면 그만큼 내 돈 가치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주가가 폭락해 하루아침에 내 돈 가치가 반으로, 1/3로 줄어들 수가 있습니다.

 

물가가 뛰면 뛰는 만큼 내 돈 가치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환율이 뛰어 그만큼 가치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부동산 경기가 나빠져 나는 몇 억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가 하루아침에 1/2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벤처에 묻지마 투자를 했더니 전부 날라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창고는 다 좀이 먹고 동록이 슬고 도둑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정권을 쥔 사람에게 찍히니까 가진 것이 하루 아침에 다 없어지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세상은 다 그렇습니다. 가족들이 여행하다가 사고가 나자 쌓아놓은 돈을 가져갈 사람이 없어 국고에 환수되는 것도 봅니다.

 

이 세상에 안전한 데가 하나도 없습니다. 시편 966절에 다윗이 고백한 말이 맞습니다. 각 사람은 재물을 자꾸 쌓기만 하는데 땅에다 쌓다 보니 나중에는 그것을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피땀 흘려 벌어서 쌓아 놓았는데 나중에 보니 남 좋은 일 시킨다 그 말입니다. 얼마나 넌센스입니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입니까?

 

그럼에도 사람들은 땅에다가 쌓는 것이 그처럼 바보스러운 일인지 모르고 계속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하늘에 쌓으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바보가 하는 소리처럼 듣습니다. '하늘에 쌓는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여기 앉아 있는 분들 가운데서도 그런 예수님의 말씀을 그냥 귓전으로 듣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돈이 너희들에게 그만큼 보물처럼 소중하냐? 그렇다면 하늘에다 쌓아라. 거기가 안전하다." 20절을 같이 읽습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 못하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곳에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하늘 곡간은 안전해서 좋고, 내 마음이 하늘에 가 있을 수 있어서 좋고,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너희를 위하여' 하나님이 돈에 욕심 나셔서 하늘 곡간 자기 은행에다 넣으라고 하시나요?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늘에다 쌓는 것입니까? 돈은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땀 흘리고 눈물 흘려 번 것이 돈 아닙니까? 직장을 구하려고 10, 20, 100곳에다 이력서를 넣어서 겨우 얻은 직장이기에 거기에 충성하느라고 얼마나 정성을 쏟습니까? 그래서 번 돈입니다.

 

보물 아닙니까? 보물입니다. 이 소중한 것을 아무데나 맡기면 안 되겠죠? 안전한 곳에다 맡겨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의 눈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눈이 어두워지면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하시고는 왜 갑자기 22절에 눈 이야기를 하십니까?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선하면 온몸이 바를 것이요, 네 눈이 어두우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

 

왜 갑자기 동문서답 하듯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여러분, 돈은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하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돈에 눈이 어두워 질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십니까? 주님이 이것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길 원하는 사람은 돈 때문에 눈이 흐려지거나 어두워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눈이 흐려지면, 우리의 영혼의 눈이 어두워 지면 하나님과 돈을 혼동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보아야 되지 않습니까? 돈은 돈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눈이 흐려지면 하나님을 돈처럼 보고, 돈을 하나님처럼 보는 난시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을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24절에 나오는 말씀대로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을 돈으로 보고 돈을 하나님으로 보면 나중에는 돈을 하나님처럼 경배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자기도 모르게 돈에 노예가 돼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은 절대 두 주인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한 사람에게 충성해야지 두 사람에게 똑같이 충성할 수가 없습니다. 한 하나님을 경배해야지 하나님 둘을 놓고 경배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안 된다고 그러시지 않습니까? 안 된다고 그러는데 사람들은 된다고 그럽니다.

 

'돈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하겠다고. 하나님도 내 하나님이고, 돈도 내 하나님이고.' 그래서 둘을 동시에 움켜 쥐려고 하는 바보 같은 짓을 하는데 하나님이 안 된다고 하는데 우리는 된다고 우깁니다.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합니까?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큰 비극이 무엇입니까? 돈이 하나님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 믿는 사람에게 돈이 하나님으로 보이면 영적으로 최악의 상태에 빠집니다. 여러분, 돈은 사이비 하나님 노릇을 합니다. 꼭 기억하세요. 이점에 대해서는 칼 막스 만큼 혜안을 가지고 정확하게 꿰뚫어 본 사람이 역사에 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돈은 하나님입니다. 돈은 전능한 하나님처럼 행세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입에서 이런 똑 같은 말 하지 않는 것 보셨습니까? '돈이면 다 된다. 돈 가지고 안 되는 것이 있는가? 돈 가지고 해결 안 되는 문제가 있는가? 돈이면 다 통한다.' 자기도 모르게 그런 소리를, 그런 신앙고백을 합니다.

 

 

 

 

admin

 

 

 

영원한 투자 /6:19-21/ 이동원목사

2014-12-03 15:06:45

 

기독교 교인들의 의식을 조사하는 연구 보고서들에 의하면 교인들이 목사님들이 설교에서 언급하지 말았으면 하는 주제 중에 1위가 돈(헌금)이야기이고, 2위는 정치 이야기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 전에 종교 개혁자 칼빈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칼빈 당시에도 그런 문제의 제기가 있었던지

오늘날의 교회의 문제는 돈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교회가 돈에 대하여 바르게 말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라고 말했다고 알려 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의 설교에서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많은 비유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대략 38개의 비유가 기록되고 있는데 그 중에 16개가 재물에 대한 비유라는 것을 아십니까?

 

거의 예수님의 설교의 절반이 돈 이야기라는 사실입니다. 달란트이야기, 데나리온 이야기, 청지기, 과원지기, 품군, 부자이야기등은 다 물질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아닙니까. 신약성경에 평균 10구절에 한번씩 물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복음서에만 288구절이 물질에 관한 이야기이고, 성경 전체에 무려 2300구절 이상이 돈과 재정에 관한 구절입니다. 성경은 돈에 대한 관심을 피해가지 않습니다.

 

돈은 삶의 실제적인 문제입니다. 돈을 피해서는 인생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어떤 청년이 소원 성취의 요정이 들어 있는 요술 항아리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청년이 요정을 불러내자, 요정이 주인님, 무슨 소원을 들어 드릴까요?”하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청년은 지체 없이 저는 돈과 여자와 결혼을 원합니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요정은 곤난한 듯 꼭 세 가지를 다 원하시나요?”하자 다시 청년은 , 저는 돈 여자 결혼 세 가지가 다 필요한데요했답니다.

 

그러면 할 수 없지요. 소원대로 해드리지요그래서 그 청년은 얼마 후 돈 여자와 결혼했다고 합니다. 돈 여자와 결혼 안하시고, 돈 인간으로 살지 않으시려면 돈에 대한 바른 생각, 돈에 대한 바른 헌신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고상한 교훈의 하나로 알려진 산상수훈에서도 예수님은 돈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본문의 교훈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땅에 보물을 쌓아두지 말고(19),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라(20)”는 말입니다. 저는 이 교훈 속에 성경적 재정관이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러면 우선 땅에 보물을 쌓아두지 말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는, <본문에서 예수님이 금하지 않으신 것>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소유를 금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도 소유를 금한 말씀은 없고, 예수님도 사유재산을 금하는 가르침을 주신 일이 없습니다. 주기도를 가르치실 때에도 우리에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Our daily bread)을 주옵시고-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양식은 우리의 소유입니다. 우리는 주인은 아니지만 양식을 맡은 청지기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유를 부정하는 공산주의나 극단적 사회주의는 기독교적 가치관과 함께 갈 수 없습니다.

 

2. 저축을 금한 것도 아닙니다.

성경 특히 잠언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할 수 없는 겨울을 위해 여름에 땀흘려 일하고 저축하는 개미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6:6을 보실까요.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6:8입니다.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여 추수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예수님은 52어의 기적의 마당에서 남은 것을 거두어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가르치신 분이십니다. 개혁자 칼빈은 여기에서 저축의 정신을 찾았습니다.

 

3. 삶의 즐거움을 금한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물질 그 자체를 죄악시하지 않습니다. 만물을 지으시고 선하게 보신 하나님의 관점안에는 물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창조자 하나님이 물질을 주신 목적의 하나가 물질을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딤전6:17을 보십시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하나님은 인생이 우리에게 허락된 물질을 적절한 한계 내에서 누리는 것을 질투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함께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여기 본문에 예수님께서 땅에 보물을 쌓아두지 말라고 하신 것은 결코 재산을 소유하는 것이나, 장래를 위해 물질을 저축해 두거나, 적절한 한계 내에서 물질을 누리는 것을 금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본문에서 예수님이 금하신 것>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물질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주님에 의하면 물질은 필요한 것이지 목적은 아닙니다. 본문 마태복음 6장에서 의식주에 대한 필요를 가르치시던 주님은 마태6:32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여기 분명하게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신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그는 우리의 필요를 인정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물질은 목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질이 목적이 되는 징후가 무엇일까요? 물질을 쌓아두는 그 자체에서 보람을 느끼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서서히 물질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물질을 섬기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의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 아닌 물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인생이 맘몬주의의 우상에 빠진 삶의 모습입니다.

 

마태6:24을 읽어 보십시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기 재물이란 단어가 원어에 바로 맘몬(mamonas)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본래 우상 신을 뜻하는 말입니다. 재물이 내 인생의 목적이 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이미 우상 숭배에 빠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경계할 것은 재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상 숭배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돈은 악이 아니지만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근원이라고 가르칩니다.

 

딤전6:10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2.물질에서 안전을 구하는 삶입니다.

인생에서 돈을 잃는 것은 무엇보다 인생의 안전장치가 제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악착같이 물질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 인생의 안전을 보장하게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이 결코 안전의 보장이 되지 못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붙들고 사는 모든 세상의 보물은 결국 세가지 좀과 동록과 도둑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자랑하는 의복은 시간이 지나가면 좀이 쓸고, 보화에는 동록 곧 녹이 쓸어 부식하게 되고, 우리가 사는 집도 도둑의 표적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옛날 중동 지방의 집들은 흙집이어서 아무리 부자 집도 구멍을 파고 들어오면 도둑을 피할 재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현대의 도둑은 더 간교한 모습으로 우리의 재물을 노리고 있습니다.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물질이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가가 폭락하고 환률이 폭등하는 오늘의 현실은 우리에게 다시 이 메시지를 확인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의 경제위기 속에서 주님의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물질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것이 아닙니까.

 

셋째는,<본문에서 예수님이 격려하시는 것>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한마디로 하늘에 투자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보물을 안전하지 못한 땅에 아닌 안전한 하늘에 쌓아두라는 것입니다.

 

세상 은행은 안전하지 못하니 하늘 은행에 안전하게 쌓아두라는 것입니다. 우주에서 가장 안전한 이 은행의 이름을 아시나요? 바로 천국 기업 은행입니다. 벧전1:4을 함께 읽겠습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쉽게 말하면 가장 안전한 상급, 영원한 상급을 보장하는 하늘의 기업(천국 기업)에 투자하라는 것입니다.

 

이 하늘 나라에의 투자야 말로 영원한 투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라는 이 말씀의 결정적인 의미를 마태 복음 6장 마지막 부분에서 밝혀 주시지 않습니까?

 

마태6:33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하늘에 보물 쌓기에 집중하면 땅의 보물은 그분이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여기서 의를 구한다는 의미를 예수님은 막연하게 의로운 행위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마태6:1-2에 의하면 예수님은 의를 행함을 구제 행위와 연관시키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선교와 구제등에 구체적으로 헌신하는 삶을 뜻하는 말입니다

 

. 이제 우리는 지나가는 일년 동안의 청지기적 삶을 결산하면서 구체적으로 선교나 구제 그리고 헌금 생활에 얼마나 신실했는가를 결산해야 할 시간입니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맞이하면서 우리가 쓰임새를 절약하는 중에 헌금을 제일 먼저 줄이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헌금의 헌신이 줄어들 때 제일 타격을 받게 될 영역이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 나라의 선교의 영역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역사 속에는 이런 경제 위기를 직면하면서 오히려 재정적인 후퇴가 아닌 재정적인 헌신을 결단한 의외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작은 서점 사업을 하다가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위기와 유사한 경제 공황이 닥쳐 파산을 하고 약 10만불의 빚을 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무렵 그는 진지하게 기도하다가 은혜를 체험하고 나서 무엇보다 과거에 자신의 헌금 생활에 대한 불성실을 회개하고 자기 집을 팔고 빚 정리를 하고 다시 십일조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이 마당에 무슨 십일조냐는 질문에 그는 나는 무엇보다 하나님께 대한 빚부터 청산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셨다고 간증합니다.

 

그는 기도하며 약품 연구를 하면서 약품 제조, 판매, 영업으로 바쁜 새 삶을 살아가며 얻어지는 수입의 십의1조를, 그리고 십의 2조를, 마침내 십의 3조를 드리기 시작하고 전 세계에 흩어진 선교사들을 지원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기도와 헌신을 통해서 재기한지 3-4년 만에 한 세계적인 제약회사를 일으켜 세우게 됩니다. 그것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맨소래담 제약회사였습니다. 알버트 알렉산더 하이드(A.A.Hyde)박사의 스토리입니다.

 

그는 죽을 때 십의 9조까지 하나님께 드리는 기록을 남기는 성도가 됩니다. 무디 신학교의 총장을 지낸 조지 스위팅 박사는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죽을 때 우리가 묻게 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벌었는가?가 아니라 그의 나라를 위해 얼마나 드렸는가?가 될 것이라고.”

 

금년 한해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해 우리는 구체적으로 얼마나 헌신하는 삶을 사실 수 있으셨습니까? 당신은 어떤 청지기로 한해를 사셨는지요? 당신의 영원한 나라의 투자 실적은 어떠하셨는지요?

 

 

 

 

네 보물이 있는 곳 /6:19-24/ 곽선희 목사

2014-11-20 04:48:42

 

이스라엘 사람들의 지혜를 모았다 고 하는 탈무드에 이런 얘기가 있습 니다. 옛날에 한 왕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세 친구가 있었다고 합니 다.

 

하나는 아주 절친한 친구입니 다. 하루도 만나지 못하면 안되고 한 시간도 떠나면 안 되는 것 같은 그런 절친한 친구. 또 하나는 보통 친구. 그저 만날 수도 있고 안 만 날 수도 있는 그런 친구. 또 하나 는 먼 친구. 그래서 일년에 한번이 나 만날까, 어쩌다 생각나면 한번 만나는 정도의 친구가 있었답니다.

 

왕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은 다 음에 보니까 그 절친했던 친구는 전 혀 그 앞에 나타나질 안았습니다. 두 번째 보통 친구가 와서 문간에 서 있더랍니다. 그리 반갑지 않았 던 이 먼 친구가 찾아와서 자기와 미래로 향하는 내세의 길을 동행해 주었답니다.

 

첫 번째 친구는 돈입 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절친하게 여겨봐도 그 돈은 내가 세상 떠날 때 나와 함께 하지 않습니다. 전혀 나를 외면합니다. 두 번째 친구는 가족입니다. 가족이 그렇게 가까운 것처럼 느껴지지만 역시 내가 세상 떠날 때 문가에 서서 울고 있을 따 름입니다.

 

그가 나를 위로하지 못 합니다. 그리 친하지 아니한 것처 럼 생각했지 만은 자선이라고 하는 것, 선행이라고 하는 친구가 내 마 지막 가는 길의 동행인이 되더라는 그런 아주 뜻깊은 이야기입니다.

 

1989109일 베를린장벽이 무 너졌습니다. 이것은 공산주의가 무 너지는 것이요 세계가 새로운 세계 로 가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메가 첼린지(Megachallenges)라고 하는 책을 써서 오늘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습니다 만은 그 책의 저자인 존 나이스비트(John Naisbitt)는 한 10 여년 전에 메가트렌드(Megatrend) 라고 하는 책을 써서 세계를 놀라게 했던 미래학자입니다. 그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그 사건을 바로 베 를린에서 그 현장에서 보았다고 합 니다. 그는 이 사건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답니다. 그것이 사실입 니다. 아주 깊은 의미가 있으니까 요. 이것은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를 이긴 것입니다. 큰 승리의 찬가입 니다. 승리의 상징입니다. 돈이 이 데올로기를 이겼습니다. 경제가 정 치를 이겼습니다. 개방이 통제를 이겼습니다. 개인과 민주주의가 독 재자를 이겼습니다. 정보가 이념을 이긴 그러한 의미들을 가졌다 라고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문제 가 있습니다. 이래서 자본주의가 승리하고 이 땅에는 평안이 왔느냐? 민주주의가 이겨 가지고 이제 밝은 미래를 보장할 수 있게 됐느냐? 그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다시 미래 학자들은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고하 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에 문제 있 다"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 분 도 한국과 일본을 예로 듭니다. 민 주주의 문제 있습니다. 민주면 다 할건 줄 알았고 뭐 국민이다 문민이 다 해 가지고 아주 많은 희생을 지 불하면서 싸워서 민주주의를 실현했 습니다. 그래서 얻은 것이 뭡니까? 많은 혼란과 많은 어려움에 더 큰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결국은 요새 와서 역사가들은 말합니다. 우리 나라가 이만큼 사는 것도 박정희 대 통령 때 세워 놓은 그 틀 걸이에 의 해서 살고 있다는 겁니다. 민주주 의면 다 인줄 알고 목숨을 걸고 외 치던 사람들 지금 아주 실의에 빠졌 어요. 이 모습을 위해서 우리가 투 쟁했던가? 이거 한심한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그 누군가가 좀 똑바 른 사람이 나와서 강하게 우리를 리 드, 인도해 주었으면……. 강한 지 도력을 구하고 있습니다. 자 민주 주의에 문제 있어요. 자본주의에 종말이 왔어요. 깊이 생각해야 합 니다.

 

이렇게 베를린 장벽이 무너 지면서 온 세계가 뒤바뀌고 난 뒤 에, 온통 세계는 경제 바람으로 뒤 바뀌었습니다. 돈이면 그만이다 이 거요. 돈이 최고다. 돈 앞에 모두 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온 세계가 돈 앞에 꼼짝을 못 합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봅시다.

 

돈은 기술과 자원에 의해서 이루는 줄 알았습니 다. 그러나 이제 알고 보니 경제는 경영에 있다는 것을 알기 시작합니 다. 우리 나라도 '그저 열심만 내면 되겠다, 기술만 높이면 되겠다' 했는 데 알고 보니까 경영을 잘못했어요 경영 마인드에 펑크가 났어요. 그 래서 이 많은 노력과 수고들이 다 수포로 돌아간 것을 우리는 보았습 니다. 이제 경영의 시대입니다.

 

이 제 다시 한번 묻습니다. 경영은 인 격에서 나옵니다. 인격은 도덕에서 나옵니다. 도덕은 신앙의 뿌리를 두고있습니다. 그런고로 경제란 도 덕과 신앙적 가치관이 뒷받침하지 않는 한 무서운 폭군이 됩니다. 바 로 이 돈 때문에 세상은 끝이 나는 겁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 다

 

. 경제 우선이 아닙니다. 언제든 가 우리는 그저 '황금만능', '돈이면 다'라고, 그것은 종말을 고하는 예고 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 래학자들은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 다고 외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는 40일 동안 금식을 하신 후에 아 주 주리셨습니다.

 

인간으로 말하면 가장 어려운, 절박한 시간입니다. 바로 40일 금식한 그 시점에서 말씀 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 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그 절박 한 현실에서도 아직도 말씀이 먼저 요. 아무리, 아무리 급하고 절박하 게 느껴도 경제보다 말씀이 우선함 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 다.

 

오늘 본문 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경제에 대해서 간결하게 말씀하십니 다.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무 엇을 말씀합니까? 돈이 주인이 될 때가 있다는 거죠. 그리고 하나님 의 위치에까지 도전해 올라가고 있 다는 것입니다.

 

돈은 시원치 않은 인간들을 노예로 만듭니다. 그리고 우상이 됩니다. 돈을 섬길 때 돈은 우상이 되어 우리 인간을 비참하게 만듭니다. 이상하게도 돈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드는 그 위력이 있습니 다.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돈이 없고 가난하면 어떤 만남에서도 말 도 못합니다. 또 상당한 지혜로운 분이라도 그 순간에 어리석은 자로 평가되고 맙니다. 돈 없는 사람이 뭐라고 말을 하면은

 

"제 밥벌이도 못하는 주제에……"

하고 말합니다. 아무 말도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좀 조그만 모임에 가 보면 돈 있는 사람만 떠듭니다. 돈 있는 사람 다 잘났습니다. 잘난 척 합니다. 사실 은 잘난 게 없는데. 돈이 있을 뿐 이지. 그게 돈이 가지는 매력이요 마력이올시다. 그래서 어떤 경영학 책에 보니까 그런 말했어요.

 

"사장 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는데 사장이 조심할 게 있답니다. 자기 부하직원들을 놓고

"너 이거 잘못했 다"하고 충고할 때

"요것 잘못했다"

 

이거 한 가지만 말 해야죠 그 순간 에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거예 요.

"사람이 그러면 못써"

이렇게 말하면요 그 부하직원이 나가면서 속으로 이런답니다.

"말조심하시오. 사람이야 내가 위지, 당신이 돈이 좀 있다고 그러나 본데 어림도 없 다, 이 사람아."

 

이렇게 말한답니다. 그래 그런 소리 안 들으려면 정신차 리세요. 돈 뿐이요? 돈이 있으면 돈뿐이지 돈으로 인해서 내가 지식 도 가졌고 인격도 가졌고 축복도 가 졌고 신앙까지 좋은 줄로 착각하지 마세요.

 

아니, 이게 돈이 문제라고 요. 축복은 누가 받았는지 두고봐 야 알 것이지 돈푼이나 있다고 하나 님이 내게 복을 많이 주신 것처럼 착각하지 마세요. 그거 아니에요. 돈이 있을 뿐이요. 돈으로 인해서 허세를 부리고 돈으로 인해서 스스 로 높아지고 돈으로 인해서 싸움을 벌이고 무한경쟁에 뛰어들어요. 이 상하게도 돈 가진 사람은 더 가지려 고 그래요. 돈 가진 사람이

 

"그만 하면……"

하고 스스로 자기를 만족 하게 여기는 사람 봤습니까? 아니 요, 끝도 없어요. 더 가지고 더 가 지고 남을 죽여가면서 남의 것까지 빼앗다가 마지막엔 꽝하고 넘어가는 비참한 인간들 여러분 매일 같이 보 고 있지 않습니까?

 

그 한심한 사람 이거든요. 왜 이렇게 욕심을 부려 야 합니까? 어느 사이에 돈을 섬기 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맘몬이라고 하는 우상을 섬기고 있었어요. 하 나님의 위치에 올려놓고 섬기고 있 었어요. 여러분 깊이 생각해야 합 니다.

 

돈이라는 것은 잘 부리면 좋 은 충성된 종이 되어서 나를 섬긴답 니다. 그러나 돈이라는 건 내가 그 를 섬기려고 들기 시작하면은 어느 사이에 무서운 폭군이 되어서 나를 처절하게 만든다는 거죠. 사도바울 의 편지, 디모데후서 32절에 보 면은 말세의 징조에 대해서 여러 가 지로 설명합니다.

 

사랑이 식어지고, 부모를 배반하고, , 여러 가지로 말씀합니다 신앙이 식어지고……. 그 중에 한 죄목이 있습니다. 그것 이 돈을 사랑하며……. 2000년 전 에 주신 말씀입니다만은 말세에는 사람들이 돈에 미치게 되겠다, 돈을 사랑하게 되겠다고 말합니다. 그리 고 돈은 사람의 눈을 흐리게 만듭니 다. 그래서 오늘 성경말씀에

 

"눈은 몸의 등불이니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그런데 돈 독 이 올라서 눈이 흐려지면 보이는 것 이 없다, 참으로 비참해지겠다고 말 합니다. 우스운 얘기입니다만은 조 선일보 인기 만화 중에 '광수생각'이 라고 하는 그런 칼럼이 있는데 거기 에 있었던 얘기입니다. 한 아가씨 가 자기 친구를 만나서

 

"나 며칠 전 에 약혼 파혼했다."그래요.

"언 제?",

"한 일주일 전에 파혼했지. 시원치 않아서 파혼했다."

근데 가 만히 친구가 보니까 여전히 다이아 몬드 반지를 끼고 있거든요.

"너 그 반지는 왜 아직도 끼고 있냐?"

대답이

 

"다이아몬드에 대한 내 애정 은 변함이 없거든."

, 다이아몬드 에 대한 애정은 있고, 다이아몬드를 준 사람에 대한 애정은 없어요. 이 것이 현대인의 맹점이에요. 바로 여기에, 인간은 없고, 돈만 있는 거 예요. 돈과 함께 망한다는 것을 왜 모릅니까? 좌우간 사람보다 돈을 높이면 그건 곧, 곧 망할 징조입니 다. 그걸 알아야 합니다. 눈을 흐 리게 하고 정신을 흐리게 합니다.

 

무디선생의 설교 중에 있는 얘기입 니다. 어떤 이민단이, 큰 배가 이민 단을 실은 배가 이민가는 목적지를 향하여 가다가 조난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무인도에 기착하게 됩니다. 일단 사람들이 다 내렸고 짐도 내렸 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얼마동안 지체해야 되게 됐는데, 그들은 다소 간의 양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몇 달 동안 사는 건 문제가 없었습 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민 가서 쓰 게 될 종자를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 다. 이 종자를 여기다 심어서 또 가꾸게 되면 이제 얼마든지 지낼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농사를 시작해야 될 판인데, 왠 사람이 다 니다가 보니깐 거기에 금광이 있어 요. 금 덩어리가 굴러다니는 걸보 고

 

"금광이다!"

소리 지르니까, 모든 사람이 금을 캐는데 정신이 없었어 요. 금을 많이들 가졌어요. 많이들 가졌어요. 정신이 없었어요. 그런 동안에 여름동안 농사를 하지 않았 습니다. 겨울이 닥쳐왔습니다. 금 덩어리는 많이 가졌는데 식량이 없 어 굶어 죽었답니다.

 

보세요. 금이 아무리 귀하지만 금을 먹고사는 건 아니더라는 얘기지요. 여러분, 이 생명이 먼저요, 이 무엇보다 생명위 주의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 래서 누가복음 1215절에 말씀합 니다.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 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행복도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습니다. 부자가 행복하다고 전혀 생각하지 마십시다. 그거 아닙니다. 그런고 로 '생명위주' 여기에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걸 잊지마세요.

 

사람이 돈 에 미쳐서 눈이 어두워지면 이보다 더 답답하고 비참한 일이 없습니다. 어느 교회의 여전도회 회장님께서 복부인이랍니다. 부동산 투기하느 라고 그 일주일 동안 돌아다니는 데, 여전도회 헌신 예배가 돼서 사 회를 하게 되었답니다. 그랬더니 올라가서 하는 말이

 

"찬송가 105"

그랬답니다. 그러니까 사람 돈에 미치면 아주 비참합니다. 인생의 행복은 질에 있지 물질에 있지 않다 는 걸 몇 번이고 다짐해야 됩니다. 그리고 오늘 성경은 뭘 가르쳐주는 고 하니, 종말론적 인식을 가지라는 거죠.

 

이건 떠나는 것이에요. 여러 분 생각해 보십시오. 소유라는 게 뭡니까? 내 이름으로 등기했다고 내겁니까? 소유가 가능한 겁니까? 소유 불가라는 걸 잊지마세요. 내 것이 없어요. 본래도 아니었거니와 앞으로도 내 것이 될 수가 없어요. 오늘 예수님은 간곡히 말씀합니다.

 

동록이 슬고, 도적이 구멍을 뚫 고……. 그렇습니다. 도적이 와서 구멍을 뚫기도 하지만, 가만히 두어 도 녹이 슬고 좀이 먹어서 없어지고 말아요. 그냥 없어지게 돼 있는 거 예요. 이거는 보관 불가능이요. 소 유 불가올시다. 절대로 내 것이 될 수가 없어요. 잠깐동안 내 손에 있 을 뿐입니다. 이것을 잠시도 잊어 선 안됩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부 자가 미련한 거 아닙니까?

 

이것이 항상 내 손에 있을 줄로 생각했던 거거든요. 아니에요. 그래서 곧 내 손에서 떠난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쓸 수 있을 때 써야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참 소유란, 오늘 성경말씀 의 진리는 소유는 내가 쓴 것만 내 거라 그거예요. 썼으니까. 그래서 농담 삼아 진담 삼아 말합니다마는

 

"잘 잡수세요. 먹은 건 내 거요."

먹었으니 이건 틀림없이 내 거지. 그러나 밥상에 놓인 것도 내 거가 아니더라고요. 고거도 못 먹고 죽 을 수도 있으니까. 다 소용없어요. , 옷이 옷장이 있다고 내 것입니 까? 지금 입은 것만 내 것이요. 이걸 잊지 말아야 돼요. 그런고로 우리의 마음은 항상 가벼워야 됩니 다. 이 모든 것에 매일 것 없어요. 세월이 가면서 점점 가벼워져야 됩 니다.

 

무거워지면 안됩니다. 그 사 람이 나이가 들면 다 무게를 느낍니 다. 이런 것도 무게를 느끼고, 저런 것도 느끼는 데, 옷을 맞춰도요 난 첫째가 가벼운 거. 그거 거든요. 가장 가벼운 거, 뭡니까? 왜요? 옷이 무거우니까요. 이 시계를 차 도 가벼운 거요. 가벼운 게 제일이 요. 뭐든지. 마음도 아주 가볍게 돈이 있어도 있는 듯 없는 듯, 집이 있어도 그게 언제 내 건가. 생각하 세요. 그런 마음을 가지세요. 곧 쓸 수 있을 때 써야 합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이 소유란 곧 기회입 니다. 곧 축복이요 또 사명입니다. 참 죄송하지만 나이 많은 할머니일 한 분을 압니다. 그 분이 돈을 100 억 이상 가지고 있어요. 그래 많은 사람들이 부탁을 해요. 좀 가서 권 면하라고, 권면해 봤어요 좋은 일 하자고. 아 어림도 없어요. 지금도 얼마나 고생하면서도 그 돈 그냥 가 지고 부르쥐고 있어요. 줄 사람도 없어요.

 

그런 할머닌데 요새는요 정신이 오락가락 해요. 이제는 누 굴 줄래도 줄 수도 없어요. 기가 막혀요. 왜 쓸 수 있을 때 쓰지 못 했나 하는 생각입니다. 돈이란 잘 벌기도 하고 잘 보관하기도 하고 잘 써야 되는 거죠. 예수님 말씀이

 

"냉수 한 그릇을 내 이름으로 주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 하리라"

귀 한 말씀 하셨습니다. 또한 전도서 111절에 보면

"너는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돌아오리라"

좋은 일에 쓰면 되돌아 온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요새 미 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서 인기가 있는 책이 하나 있습니다. 너무 재 목이 재미있습니다

 

"다 쓰고 죽자"

다 쓰고 죽자, 남으면 안 됩니다. 자본주의의 결점이 바로 여기에 있 어요. 그저 축적하고 더 가지려고 더 가지려고 하다가 꽝하는 거예요. 쓰는 지혜가 있어야 됩니다.

 

이게 문제올시다. 저는 저 용정에, 중국 용정에 12년 전에 방문했을 때 거기 는 아시는 대로 우리 나라에 어려움 을 당할 때 애국자들과 신앙이 좋은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그쪽으로 망 명을 했어요. 거기 모여 살 던 곳이 용정입니다.

 

그래 그 특별한 뜻깊 은 곳이고 또 그리고 제가 한 번 처 음 방문했을 때 보니까 그때 지하 교회에 있는 집사님 한 분, 예수 이 름으로 끌려가서 얼마나 매를 맞았 는데 온 몸이 뼈가 다 부러졌어요. 그래 전혀 일어나 앉지도 못합니다. 누워 있어서 수십 년을 지내는 거예 요. 그런데 제가 들어서서

 

"안녕하 십니까"

그랬더니

"목사님 오셨군 요"

그래요 깜짝 놀라서 어째서 그 러느냐고 그랬더니

"제가 10년 동안 목사님의 설교를 듣거든요, 오늘 아 침에도 목사님 음성을 들었는데 내 가 왜 못 알아봅니까"

 

너무 반가워 요. 그래 제가 그때 결심했습니다. '이 용정에 예배당을 다시 지어 주 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가 여러분의 참 고마운 분들의 헌금을 걷어서 예 배당을 지었어요. 저번 여름에 가 서 헌당식을 했어요. 잘 지었습니 다. 총 한 12억 들었어요. 잘 지었 습니다. 그런데 내가 고마운 것은, 지금 한 삼천명 모이는데 거기 다녀 오는 사람들 중국 갔다가 거기 교회 보고 와서는 하나같이

 

"목사님 참 좋은 일 했습디다. 좌우간 중국 천 지에 최고의 좋은 예배당입디다. 너무너무 좋은 일 했습니다."

그럴 때 내 마음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 요. 여러분 돈은 이렇게 쓰는 거예 요. 멋지게 써 가지고 거기서 절정 경험을 얻어야 되요. 피크 익스피 어리언스(Peak Experience), 화끈한 기쁨을 좀 맛보며 그렇게 사세요 째 째하게 살지 말구요. 그리고 돈을 쓰고도 떫어 가지고 말이야 어딘가 모르게 찝찝하고……. 이렇게 살지 말고 좀 화끈하게 좀 멋지게 한 번……. 그렇고 싶지 않아요.

 

여러분 투자 신탁에 문제 있습니 다. 선행에 투자하고 하나님께 신 탁하는 것보다 아름다운 건 없어요. 그럴 때 영혼이 자유합니다. 저 앞 에 밝은 세계가 보입니다. 여러분 돈이 아주 귀하고 놀라운 역사를 이 루기도 하고 또 돈이 나를 파멸로 끌기도 합니다.

 

여러분 새로운 마 음으로 물질에 대해서 바른 신앙관 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선행에 투 자하고 하나님께 신탁하는 주의 사 람들 되야 하겠습니다. 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6:19-21/ 우리의 보물은 하늘에

2014-09-30 11:02:47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고아원에서 살던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아이는 좋은 가정에 입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를 입양한 양부모님은 좋은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자기의 친자식처럼 진심으로 사랑해주고 잘 돌보아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에게는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버릇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아이는 먹을 것이 생기면, 그것을 자기만이 아는 곳에 몰래 숨겨두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때에 따라서는 음식물을 숨겨놓고 자기가 숨겨놓았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방청소를 하든지 또는 빨랫감을 찾기 위해서 구석구석 뒤지다가 숨겨놓은 음식물을 발견하고는 했습니다. 그때는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음식물에 곰팡이가 슬어서 더 이상 먹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고아원에서는 먹을 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기 위해서 그렇게 음식물을 감출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부모 밑에서 그렇게 하는 일은 전연 쓸데없는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가 사랑으로 잘 돌보아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음식물을 계속해서 숨긴다는 것은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고 섭섭하게 만드는 불신의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적인 견지에서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결코 고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으로 돌보아주고 계신데, 마치 우리가 아직도 영적인 고아들인 것처럼 자꾸만 우리의 육신을 위해 이 땅에서 무엇인가 쌓아두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섭섭하게 해 드리는 일이나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또 이 세상은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은 결코 아닙니다.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곳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본향은 하나님 아버지의 집입니다. 곧 영원한 하늘 나라가 우리의 본향입니다.

 

헬라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이 바사제국을 정복하기 위해서 대군을 이끌고 원정길에 올랐을 때였습니다. 머나먼 길이었습니다. 또 가는 도중에도 크고 작은 성읍들을 정복해야만 되었습니다. 헬라의 군병들은 그 모든 성읍들을 차례로 하나씩 하나씩 정벌해 나아갔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원정길에 오르기 앞서서 신하들에게 한 가지 분명한 지침을 내렸습니다.

 

"바사제국에 이르기까지는 그 어느 누구라도 그 어떠한 전리품에든지 손을 대지 말아라. 나의 명령을 어길 시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목숨을 보존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수많은 금은보화들이 땅바닥에 널려있는데, 그 모든 전리품들을 내버리고 가야한다니 얼마나 아까운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그러나 알렉산더의 부하들은 얼마 안 가서 알렉산더의 뜻이 옳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목적지는 바사제국이었습니다. 중간에 있는 작은 도성들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가는 도중에 금은보화로 인해서, 자기들의 몸을 무겁게 만들었더라면 그들은 바사제국에 도달하기도 전에 지쳐서 다 쓰러져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몸을 가볍게 했기 때문에, 거뜬히 바사제국에 당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원래의 목표대로 바사제국을 손쉽게 정복하고,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영적인 고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지금도 우리를 돌보아주고 계십니다. 또한 우리의 목적지는 하늘나라입니다. 이 땅은 그저 우리가 잠시 거쳐갈 곳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마치 영적인 고아인 것처럼 우리 육신을 위해서 이 땅에 무엇인가 쌓아두기를 힘썼다면, 이제부터는 우리 마음의 방향을 바꾸십시다. 이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기를 힘쓰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땅에 쌓은 보물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19절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우리가 언뜻 생각하기에 보물이라고 하면 다이아몬드와 같은 값진 보석이나, 또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골동품을 머리 속에 연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보물은 그러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가 보물로 간주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그 당시에는 옷이 보물처럼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요새는 옷이 흔하니까 아무런 보물이 되지 않지만, 옛날에는 옷이 매우 귀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옷이 보물처럼 진귀하게 간주되었던 경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창45:22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 형들이 양식을 사기 위해서 요셉에게 왔습니다. 이런저런 일이 있고 난 뒤 요셉은 자기의 신분을 형들에게 밝혔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요셉은 형들을 가나안 땅으로 되돌려 보내면서 아버지 야곱을 모시고 오도록 수레를 딸려 보냈습니다. 길을 가면서 먹을 수 있는 양식도 주었습니다. 아울러 요셉은 형들 각자에게 옷을 한 벌씩 주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의 친동생 베냐민에게는 옷을 다섯 벌이나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 당시에는 옷이 귀하게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7:21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점령했을 때입니다. 그때 아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서 전리품을 감추었습니다. 그가 감춘 전리품 가운데 하나가 무엇이었습니까?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이 거기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만큼 옷이 귀한 보물로 여겨졌다는 뜻입니다.

 

14:12에 나오는 기록입니다. 삼손이 블레셋 여자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청년들 30명이 잔칫집에 모였습니다. 그때 삼손은 블레셋 청년 30명에게 수수께끼를 내면서 만일 그들이 잔치하는 7일 동안 수수께끼를 알아맞히면 그들에게 베옷 30벌과 겉옷 30벌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들이 수수께끼를 알아맞히지 못할 경우에는 그들이 삼손에게 베옷 30벌과 겉옷 30벌을 주도록 약속했습니다. 그만큼 그 당시에는 옷이 보물처럼 귀하게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왕하5:22에 보면 또 이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아람의 장군 나아만에게 문둥병이 걸렸습니다. 그것을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사가 깨끗하게 고쳐주었습니다. 나아만은 너무나도 감사해서 선물을 주고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것을 거절하면서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엘리사의 사환이었던 게하시가 마음 속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는 나아만을 몰래 따라가서 엘리사 대신에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때 받은 선물 가운데 하나가 역시 옷 두 벌이었습니다. 그만큼 옷이 보물처럼 귀하게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양털로 만든 좋은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금실까지 달아서, 자기의 부를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둘째, 그 당시에는 곡식이 보물처럼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얼마나 먹고 살기가 힘든 때였겠습니까? 그래서 창고에 가득 쌓아놓은 곡물은 부의 상징으로 생각이 되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 있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서도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밭에 곡식의 소출이 풍성했습니다. 그러자 이 부자는 궁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그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에 쌓아두리라."

 

먹고 살기가 어려운 때 창고에 곡식이 가득 쌓여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부의 상징이 되었을 것입니다.

 

셋째, 그 당시에는 금과 같은 보화가 보물처럼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여러분, 그 당시 사람들이 보화를 주로 어디에 감추었습니까? 13:44에 보면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가 나오고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그 당시 사람들은 낮에 나가서 밭의 적당한 곳을 물색하고 돌아옵니다. 그리고 밤중에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 가서 밭을 깊이 파고 그 속에 보화를 감추어두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 당시에는 이 세 가지, 곧 옷과 곡식과 보화가 보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땅에 쌓은 보물의 문제점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은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지적해 주셨습니다. 옷은 입고 있을 때는 괜찮지만, 입고 있지 않을 때는 거기에 좀이 쏠아서 못쓰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곡식을 창고에 쌓아놓으면 무엇이 생기기 마련입니까? 오늘 본문에는 동록이라고 말을 했습니다만 헬라어 본뜻은 "eating," "먹는 것"을 뜻합니다. 곡식을 먹어치우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쥐나 해충과 같은 벌레가 곡식을 갉아먹게 됩니다. 또 밭에 감추인 보화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도적이 몰래 숨어서 지켜보다가, 주인이 없는 사이를 틈타 땅을 파고 보화를 도적질해 갈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땅에 쌓은 보물은 안전하지 못합니다. 물론 우리가 경우에 따라서 좀 더 오래 보관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게 되면 결국은 우리의 손을 다 떠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보물을 안전하지 못한 땅에 쌓아놓는 것은 결코 우리 자신을 위하는 길이 될 수 없습니다.

 

 

 

둘째로, 하늘에 쌓은 보물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20절입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이 땅과는 달리 하늘은 안전합니다. 그곳은 좀이나 동록도 또 도적도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지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둘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 방법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을 우리가 선한 청지기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사용하면 그것은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는 셈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을 우리의 욕심에 따라 이기적인 목적으로 쌓아둔다든지, 또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한다는 것은 보물을 땅에 쌓는 셈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물질뿐만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시간, 재능, 건강, 노력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예컨대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보면 구제와 기도와 금식에 대한 가르침이 나오고 있습니다. 구제할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자기를 과시한다면 보물을 땅에 쌓는 것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은밀하게 하면 그것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이 들으라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고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곧 보물을 땅에 쌓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은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입니다.

 

금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슬픈 기색을 내면서 또 얼굴을 흉하게 하면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금식을 하는 것은, 아무리 귀한 금식을 한다 할지라도 이것은 보물을 땅에 쌓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면서 또 얼굴을 씻으면서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보이기 위해서 금식하는 것은,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누구를 위한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을 위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신 것입니다. 10:2930의 말씀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요즘 우리가 은행에 저축을 하면 이율이 얼마나 됩니까? 45%나 됩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원금조차도 보장받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또 이율이 어느 정도 된다 하더라도 물가상승률에 제대로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둘 경우는 이율은 백 배라고 했습니다. 10,000%입니다.

 

그러니까 그것보다도 더 확실하고 수지 맞는 투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거기다가 하늘나라 은행은 안전합니다. 결코 부도가 나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게 될 경우에 만기가 되면,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금세에는 백 배나 받고, 내세에는 영생까지 겸해서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확실한 투자입니까?

 

지금은 고인이 되셨습니다만 영락 교회를 설립하신 한경직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영락 교회를 건축할 당시에 교인들의 수가 대략 150명 가량이 되었다고 합니다. 교회 건축을 앞두고서 성전기공예배를 앞두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 목사님은 그 당시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해서는 우리의 물질을 바쳐야 합니다. 십일 먹을 양식만 남기고, 하나님의 성전건축을 위해서 다 바칠 수 있는 마음의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만 기공예배에 참석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뒤에 기공예배를 드리는 날 150명의 교인들 가운데 53명이 그렇게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들은 십일 먹을 양식만 남겨놓고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서 다 바쳤습니다. 그 뒤 30년이 흘렀습니다.

 

교회설립 30주년이 되었을 때 목사님이 한 번 조사를 해보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 십일 먹을 양식만 남기고 다 하나님께 바친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십일 동안 먹고 난 뒤 그 뒤에는 다 굶어죽었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53명이 하나같이 한국의 300대 재벌 속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하늘에 쌓은 보물은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금세에는 100, 내세에는 영생까지 우리에게 허락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보물을 늘 하늘에 쌓아두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보물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어야 할 이유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21절입니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해바라기는 늘 태양을 바라보면서 삽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의 마음은 어쩔 수 없이 보물이 있는 곳으로 쏠리기 마련입니다.

 

어떤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교회는 구역예배를 드릴 때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예배를 인도하도록 되어있다고 합니다. 어떤 여집사님이 사회를 볼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소위 말하는 복부인이었습니다. 그저 이 아파트 저 아파트를 계속해서 정신 없이 쫓아다니다가 그날 구역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는 찬송가를 펴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다같이 찬송가 101동을 찾으십시다. 그리고 101동을 함께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 아파트 동 수만 가득 차 있으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말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또 여러 해 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남자 집사님 두 분이 함께 차를 타고서 기도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가는 도중에 소낙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차가 그만 미끄러져서 실개천에 기우뚱하게 기울어졌습니다.

 

밤중이라 도와줄 사람도 없어서 그들은 그냥 차를 두고 걸어서 기도원까지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밤새도록 엎드려서 기도하는데, 기도의 내용이 서로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차 주인인 한 사람은 앉자마자 계속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차가 물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꼭 좀 지켜주시옵소서."

 

반면에 같이 간 다른 집사님은 탄광을 운영하는 분이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이러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탄광에 물이 새어 들어가지 않도록 지켜주시옵소서."

 

이와 같이 물질이 있는 곳에는 어쩔 수 없이 우리의 마음이 쏠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땅에 보물을 쌓아두게 되면 우리의 마음이 어디로 가게 되겠습니까? 땅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게 될 경우에는 자연히 우리의 마음이 하늘에 있게 마련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3:2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늘 우리의 마음이 하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당연히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 예컨대 이방인들이나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땅에 있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들은 자기들의 보물을 땅에 쌓아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언제나 영원을 사모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제가 시 한 수를 소개하고 오늘 말씀을 끝맺고자 합니다. 우리나라의 여류시인이었던 김소엽권사님의 시입니다. 하루는 그가 책상에 앉아서 밤 깊은 시간에 조용히 성경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어느 한 구절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말씀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바로 눅12:20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그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조용히 창 너머에 있는 밤하늘을 한 번 쳐다보았습니다. 시골의 밤하늘에는 반짝이는 별들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별들을 바라보면서 그의 마음 속에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별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흘리시는 눈물이구나! 하나님의 눈물이 저렇게 별로 변해서 밤하늘에 반짝이고 있구나!"

 

곧바로 그는 종이를 꺼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 한 수를 지었습니다. 제목은 ""입니다.

 

""

 

이제 얼마나

 

남았는지

 

나는 모릅니다.

 

오늘 밤이라도

 

"영혼아!"하고 부르시면

 

""하고 두말 없이 가야 되어요.

 

가기 싫어도 가야 하고

 

가고 싶어도 못 가요.

 

그분이 부르시기 전에는

 

그날이 언제일는지

 

당신도 몰라요

 

나도 몰라요.

 

모르면서도 모르는 것을 모르고 살고 있어요.

 

매일 밤

 

그분이 울고 계셔요.

 

이제 조금밖에 안 남았는데

 

하늘 곳간은 텅 비어 있고

 

입이 터지도록 먹고 마셔도

 

정작 가진 것

 

이 세상에 남긴 것

 

하나도 없어

 

저 불쌍한 자식을 어쩌나 울고 계셔요.

 

그분이 흘린 눈물

 

방울마다

 

빛나는

 

 

별이 되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과연 우리의 하늘창고에는 보물이 얼마나 쌓여있겠습니까? 행여 우리의 하늘 곳간은 텅 비워둔 채, 그저 이 땅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우리의 보물을 땅에 쌓는 일에만 급급해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우리의 마음의 방향을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이제는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기를 힘쓰는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내세에도 영원한 생명을 누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금세에도 100배의 축복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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