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참는 자의 복 /약1:12-18/ 곽선희 목사
2014-11-27 13:35:05
현재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로 팔리고 있는 책 중에 「마시멜로 두 번째 이야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책인데 많은 사람의 깊은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첫 번째 책이 워낙 인기가 있었기에 두 번째 책을 또 내놓게 된 것입니다.
첫 번째 책 이름은 「마시멜로 이야기」입니다. 마시멜로 이야기. 이건 번역한 이름이고 원 이름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Don't Eat The Marshmallow...Yet!」 그대로 번역하면은 '마시멜로를 지금은 먹지 마라.' 마시멜로라고 하는 것은 미국 아이들이 아주 좋아하는 사탕의 일종입니다. 그냥 먹기도 하고 약한 불에 잠깐 구워 먹기도 하는데요. 아이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사탕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의 월터미셀 교수가 이른바 ‘마시멜로 실험’을 했습니다. 이건 깊이 생각할 문제올시다. 4살짜리 아이들을 모아놓고 그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겁니다. 빈방에 아이들을 하나씩 들어가게 하고, 마시멜로 한 개를 책상 위에다 딱 올려놓고 그 네 살짜리 아이에게 이제 이야기합니다.
'이 마시멜로는 네 거다. 그런데 15분간만 참고 먹지 않으면 또 하나를 더 주겠다. 그러면 너는 둘을 먹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먹으면 하나고 15분 후에 먹으면 둘이다.' 이 실험의 이름을 지었는데, '만족유예'입니다. 만족함을 잠깐 유예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만족 유예실험을 한 것입니다. 그 동안의 욕망을 자제하고, 유혹 앞에 절제하고, 참아내는 인내심과, 또는 믿음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15분만 참으면 하나 더 준다. 그걸 믿어야 됩니다. 믿고 15분을 참아서 지금의 하나가 아니라 15분 후에 둘을 먹을 수 있기에 아이들이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그런데 뭐 여러분 짐작하시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걸 기다리지 못하고 다 먹어버렸어요. 무려 600명을 상대로 실험을 했는데 많이 먹었습니다. 그런데 먹지 않은 아이들이 있었어요. 10년 후에 그 아이들을 추적해 보았더니, 이 15분을 참고 인내하면서 먹지 않았던 아이들은 전부가 훌륭한 사람들이 됐습니다. 훌륭한 인물들이 됐어요.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게 어려운 일입니다.
전 아이들을 키울 때 마시멜로 실험을 한 건 아니지만 저 나름대로 하나의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달라고 할 때 오늘 주지 않는 겁니다. 내일 아침에 준다. 며칠 후에 준다. 얼마든지 지금 줄 수 있어도 주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에 준다.
이렇게 해 놓고 기다리게 합니다. 아이들은 벌써 다 잊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되면 약속한 것을 줍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이 그 다음을 위해서 오늘을 참는 만족유예 성격이 되는 거예요. 당장 내노라고 하면 그건 안 됩니다.
당장 달라고 하면 뭐 하루 종일 울어도 안 줍니다. 그건 안 된다는 걸 알아요. 안된다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한 약속이 있고야 성취라고 하는 기쁨이 돌아올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참고, 다음을 위해서 지금을 참고, 큰 성공을 위해서 오늘의 작은 수고를 견디고, 큰 유익을 위해서 오늘의 이 같은 저 같은 일 넉넉하게 견디는 아주 기본적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게 성격이 되고, 그게 철학이 되고, 그게 능력이 될 때 인생은 달라지는 겁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조금 연장해서 말씀을 드릴까요? 우리는 바로 천국을 바라보며 오늘을 참는 겁니다. 이 마시멜로 실험이, 이 만족유예라고 하는 이 간단한 실험이 우리 인간의 운명을 이렇듯 시험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고. 우리가 생각할 때는 시험이 없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는 걸 보면 전부 시험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해요. '우리 아들, 우리 딸이 지금 유학을 가 있는데 시험 없게 해 주세요. 그저 편안하게 해 주세요. 무사태평하게 해 주세요.' 거 참 재미없네요.
무사태평하면 얼마나 재미가 없습니까. 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까? 그저 무사하고, 무사하고, 무사하고 편안하고. 이건 아닙니다. 확실히 아닌데 우리는 시험이 없기만을 바라고 있어요. 그래서 야고보 1장 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기에 시험에 대한 큰 오해가 있어요. 그것은 시험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아요. 성경 전체는 말합니다. 시험은 있어야 한다고.
성경에 대하여서 시험에 대해 딱 한마디의 요약이 있다면 시험은 있어야 한다는 게 성경이고 시험은 없어야 한다는 게 우리 마음이에요. 이게 얼마나 모순입니까? 얼마나 멍청한 생각입니까? 그럼 믿음이라는 게 뭐냐? 시험이 있어야 한다는 걸 받아들입니다.
아, 그럼 있어야지요. 예, 있어야 됩니다. 바로 그것이 믿음이에요. 보세요. 우리가 복이라는 말을 합니다. 연초가 되서 우리는 '복 받으세요, 복 받으세요.' 복, 복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만 복이 복되려면 복이라는 것이 있고 그 다음에 복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복은 있는데 복된 사람이 없으면 소용이 없거든요. 다시 말하면 복권은 당첨됐는데 복된 사람이 아니면 그 복권 때문에 망하거든요. 그러니까 복이 복되려면 시련을 통해야 합니다.
특별히 지식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식이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가 많은 지식, 지식, 지식 하지만, 그래 공부하느라고 또 공부시키느라고 그저 많은 지식을 주려고, 많은 지식을 얻으려고 몸부림을 칩니다만 사실 우리는 조금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식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혜를 생각합니다. 지식보다 중요한 건 지혜거든요. 그런데 지식이 지혜로 바뀌려면 시험을 통해야 됩니다. 시련을 통해야 됩니다. 아무리 책을 많이 보고 공부를 했더라도 자기 사건에 부딪치는 시련을 통하지 않으면 그것이 지혜가 되질 않습니다.
그러니까 지혜가 중요한 겁니다. 지식이 지혜화 되려면 시험을 당해야 됩니다. 많은 사건을 겪어야 됩니다. 가능한 한 많은 사건을 겪고 부딪쳐야 됩니다. 거기서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지혜가 되는 것이요.
또 때때로 우리는 능력을 말합니다. 능력을 의지로 생각할 때가 있어요. 내가 하기로 결심하고,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열심히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뭐 의지는 있는데 마음은 굴뚝같은데 가만히 보면 쉽게 넘어져요. 왜요? 그 이유는 간단해요.
능력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의지가 능력화 되려면 넉넉하게 감당해 내려면, 그것 또한 시련을 겪어야 돼요. 많은 시련을 겪어야 돼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 시련을 통해서 능력이 생산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시험의 당위성을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시험은 있어야 한다고. 우리는 시험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새로운 믿음을 가지고 시험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뭘 말하는 것입니까? 그 다음에 오는 축복을, 그 다음에 오는 능력을, 그 다음에 오는 지혜를 생각하면서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아, 굉장한 말씀입니다. 굉장한 진리입니다.
또 하나는 약속에 관한 것입니다. 이 시험에는 약속이 있다고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약속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잘 모를 때가 많이 있어요.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고, 왜 내가 이렇게까지 어려워하는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좀 우스운 얘기입니다만 이제 나이 드니까 이런 얘기도 합니다. 제가 고학을 할 때, 저는 집이 없어요. 그래서 제 호적이 기숙사에요. 기숙사가 있었던 회현동 100번지가 제 호적입니다. 그래 방학 때가 되면 다 집으로 가지만 난 갈 데가 없어요.
겨울방학에도 그냥 앉아서, 그저 할 일 없으니까 책이나 읽고 있죠. 그런데 다른 것은 괜찮아도 자, 너무 어려워요.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이 공부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그런 소리를 했습니다. '하나님, 이거 너무하지 않습니까?
아니 나를 이 전쟁 통에서도 건져 주시고 아, 광산에 끌려갔다가도 살려주신 거 고맙긴 합니다만 지금 내가 목사가 되겠다고 공부하는데 이렇게까지 나를 괴롭혀야 합니까? 하나님, 이거 너무하지 않습니까?' 그런 푸념을 해 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그 기도는 안 들어 주시더라구요. 여러분, 아셔야 됩니다. 많은 어려움, 많은 시련, 겪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하니까 그런 어려움이 있었기에 오늘 내가 있는 거예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고로 약속이 있습니다. 그 시험 속에는 약속이 있습니다.
나는 보이지 않아요. 아직 모르겠어요. 그게 무엇인지를 모르겠어요. 그러나 있다면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뭐 말이 복잡해요? 그렇지 않습니까? 아, 약속이 있다면 있는 줄 알지 뭘 그렇게 다 알겠다고 하누? 그건 먼 훗날에나 알 것이니까요. 약속이 있다.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이게 믿음이에요. 지금 당장 다 알기를 바랄 수 없어요. 하나님 앞에 당장 뭔가를 내놓으라고 졸라봐야 그건 아닙니다. 약속이 있다는 걸 믿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험이란 의미 없는 시험은 없어요. 그 속에 다 말씀이 있고, 하나님의 뜻이 있고, 지혜가 있어요.
또 오늘의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나 시험받는 자세가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나님 때문에 시험 당한다, 그렇게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시험은 내가 당하는 것이고, 나를 위해 당하는 것이지 하나님 책임이 아닌 것입니다. 그걸 생각해야합니다. 또 하나, 시험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죄를 지어서만 시험을 당하는 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좀 어려운 일 당하면 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물론 죄야 있지요. 없는 것도 아니지만, 어려운 일 당하면 '벌 받았다, 심판 받았다, 죄 때문이다' 생각하는데 꼭 그렇게 생각하진 마세요. 그게 중요한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시험을 주시거든요.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식도 때리는 겁니다. 의인도 시험을 당하거든요. 우리가 읽는 욥기라고 하는 책을 아는데, 욥기의 주제가 뭡니까. 의인의 고난입니다. 욥은 계속된 고난을 당하면서 '내가 왜 당해야 됩니까?
세상에 죽일 놈도 많고 못된 놈도 많은데 하필이면 왜 내가 당합니까?' 그거 아닙니까?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큰 죄를 지은 건 아닌데 내가 의인이라는 말은 아닙니다만 상대적으로 볼 때 내가 이만하면 괜찮은데 왜 하나님은 나를 이렇게 괴롭히십니까?
그걸 가지고 씨름을 하는 것이 욥기예요. 의인의 고난, 자 의로운 사람도 고난을 당한다하니 더 말할 게 있습니까? 한마디면 얘기는 끝납니다. 예수님도 시험을 당했어요.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당하셨는데,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편안하기만 바랍니까? 무사하기만 바라서야 되겠습니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예수님도 시험을 당했어요. 아주 어려운 시험을 당했어요.
어찌 생각하면 예수님의 일생이 전부 시험이에요. 십자가까지.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있어야 할 것이 있고,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시험당할 때마다 '이건 내게 꼭 필요한 것이다.' 아, 이 시간이 꼭 필요한 것이라고 그렇게 수용을 해야 됩니다.
또 하나는 큰 오해가 있습니다. 우리는 시험 당한다 할 때, 불행할 때 시험을 당하고, 내 뜻대로 안 될 때 시험 당하고, 고통을 당할 때 병들 때 이런 걸 시험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올시다. 진짜 무서운 시험은 오히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행복입니다. 형통함입니다.
돈을 손해 본 게 아니라 돈을 벌었어요. 굴욕을 당한 게 아니라 지금 칭찬을 받고 있어요. 병든 게 아니라 건강해요. 바로 그것이 시험이에요. 여러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 가만히 보면 너무 예쁘게 생겼어요. 조금만 덜 예뻤더라면 행복할 걸…….
너무 예쁜 것 때문에 망가지는 사람 많습니다. 여러분, 예쁜 것 그저 예쁘기만 하면 좋을 줄 알지만 아니 그래야 좋다고 말씀드리는데 그런 줄 아세요. 하나님이 적당히 만들었다고 생각하세요.
여러분, 너무 예쁜 거, 너무 머리 잘 돌아가는 거, 너무 똑똑한 거, 너무 능력이 많은 거, 너무 주먹이 센 거, 이거 다 시험이에요. 게다가 높은 자리 올라가는 것, 이거 시험입니다. 이걸 아셔야 됩니다. 우리는 뭔가 잘못될 때만 시험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오해가 있어요.
잘될 때가 무서워요. 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조지 팍스의 말입니다. '마귀도 병들면 천사가 된다.' 하하하. 그렇잖아요? 마귀 같은 것도 병들어서 병원에 누워 있으면 뭐 죄를 지을 수도 없고 뭐 그럭저럭 천사가 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돈도 있고, 명예도 있고, 똑똑하고 건강하니까 문제죠. 이게 시험이죠. 그런데 이건 시험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데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더 무서운 거죠.
자, 그러면 시험 당하면서 우리는 전에 생각지 못했던 걸 생각하게 합니다.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가 시험을 통해서 나 자신을 생각하게 합니다. 여러분,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도 그렇대요.
내가 뭘 좀 아는 줄 알았는데 시험 딱 보고 나니까 '아이고, 내가 너무 몰랐구나.' 생각하게 돼요. 시험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됩니다. 또 뭔가 늘 생각하면서도 끊지를 못해요. 끊어야 되겠다. 끊어야 되겠다고 하면서 못 끊는 게 있죠. 이제 하나님이 비상조치를 합니다. 끊게 만듭니다. 그게 시험입니다.
또 내가 방향이 잘못된 줄 모르고 가고 있어요. 이제 방향을 점검하게 합니다. 내가 무슨 뜻을 가졌는지 살면서도 그럭저럭 살 뿐이지 의미를 모르고 있어요. 삶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합니다. 시험을 통해서. 시험을 통해서 목적을 점검합니다.
시험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합니다. 1장 3절에 보면, "너희 믿음의 시련이……" 그랬습니다. 시험의 초점은 믿음에 있습니다.
마시멜론 시험에서 나온 것과 같이 자 '15분을 기다리면 하나 더 준다' 하는 그 믿음, 그것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 거예요. 그 믿음만 확실하면 이 시험을 이길 수가 있는 거예요. 그 믿음이 흔들리면 시험을 이길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고로 시험의 궁극 초점은 어디 있는가 하면 믿음에 있습니다. 어떤 믿음? 순수한 믿음, 확실한 믿음, 강인한 믿음, 그 믿음이 필요합니다.
유명한 신학자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참 제자가 되는 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값싼 은혜를 지향하고 있다. 그 태도가 잘못되었다. 그래서 행위 없는 믿음, 순종 없는 신앙, 십자가 없는 은혜, 시련이 없는 축복, 여기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이제 새 마음으로 우리가 이 시험을 우리가 당하면서 온전히 기쁘게 여길 온전히 기쁘게 여기는 거기까지 도달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시험을 받고 옳다 인정함을 받은 후에" - 인정서를 받아야 돼요. 합격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시험을 통해서 합격이 되면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시험을 약속으로 인정하십시다. 이스라엘 백성들, 애굽에서 나올 때는 그저 나오기만 하면 바로 가나안인 줄 알았어요. 안돼요.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40년의 광야생활이 필요했어요. 광야생활의 시련을 통해서만 가나안에 갈 수 있어요. 그냥 화끈한 기적 속에서 홍해가 열리는 순간 가나안 땅이 다가오는 게 아니었다는 겁니다. 이 귀중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칼 바르트(Karl Barth)는 데카르트(Ren Descartes)의 철학인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내가 존재한다" 하는 말을 뒤집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믿는다, 그런고로 존재한다."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믿습니다. 약속을 믿습니다. 그런고로 내가 존재합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그냥 참는 것이 아니고 기쁨으로 참고, 감사함으로 참아 봅시다. 그리할 때에 시험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큰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영광이 항상 함께하는 윤택한 신앙생활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의 약속을 믿는 주의 자녀들이 주의 전에 모였습니다. 이제 주의 말씀을 귀담아 들었습니다. 우리는 시험을 당할 때마다 슬퍼했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시험을 당할 때마다 기뻐하고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원하오니 시험을 통해 주시는 많은 복과 그 약속을 바라보면서 우리 또한 기뻐하며 감사하며 이 시험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 확실한 은총을 받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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