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이 마술을 행하여/행8:9-13/양향모목사
2019-09-21 23:57:50
“9.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10.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11.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12.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13.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오늘날의 교회 교인들은 교리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교회에만 다니면 좋은 줄 알고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왜 믿어야 하는지 믿으면 무슨 복을 받는지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교리라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교리는 성경전체가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잘 정리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이라고 하면 하나님이라는 말이 나올 때 마다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알려고 하면 성경 전체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기록하고 있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해서 엉뚱한 하나님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단들은 성경 한 곳만 가지고 말하니까 잘못된 교리를 말합니다. 하나님뿐만 아니라 예수님, 성령님, 우리 인간, 교회, 그리고 종말 이런 주제들에 대해서 말을 할 때도 성경전체를 살펴보고 성경전체가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발로 알고 말을 해야 합니다.
이런 교리를 잘 모르고 이런 교리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 때문에 엉터리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보니까 교회에 다니기는 하는데 차라리 안 다니는 것만도 못하는 엉터리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이라고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냥 비슷하게 믿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흉내라도 내면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것이라도 있으면 없는 것 보다 낫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슷한 것은 진짜가 아닌 것입니다. 비슷한 것은 가짜입니다.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나 그런 것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차라리 없는 사람은 억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슷한 가짜를 가지고 진짜인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사마리아성에 사는 시몬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 비슷한 것 때문에 끝까지 진짜를 따르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빌립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또 그가 행한 표적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복음의 말씀을 듣고 그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빌립이 표적을 행하는 것을 보고 빌립이 전한 복음을 믿고 따랐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시몬이라는 사람은 복음을 듣고 복음을 따른 것이 아니라 빌립이 행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랐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듣고 놀란 것이 아니라 행하는 표적을 보고 놀랐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따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표적행하는 것을 보고 따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복음을 아시니까 복음이 귀합니까? 병든 사람 한 두 사람 고치는 것이 귀합니까? 복음의 능력이 그런 표적보다 수천수만 배 더 귀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제 예로살렘에서 온 유다와 사마리아로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시몬의 이야기를 여기에 기록해 둔 것은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것을 진짜로 알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생길 것이기 때문에 복음을 놔두고 엉뚱한 일에 관심을 가지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을 아셨기 때문에 이 기사를 통하여 교훈을 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시몬이 마술을 행하여”입니다. 마술사 시몬의 잘못된 행동이 오늘날 교회에도 많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전철을 밟지 말고 진리의 복음을 따라 바르게 가야한다는 것을 말씀 드리는 것이 오늘 제 설교의 목적이고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귀한 교훈입니다. 우리는 비슷한 것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진짜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진짜 복음 진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성에 시몬이라고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본문 9절 말씀에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시몬이라는 이름이 많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두 사람이나 있는데 베드로가 된 시몬과 가나안 사람 시몬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도 시몬이 있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간 사람도 시몬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시몬이라는 사람은 이 사람들과 다른 사람으로 오늘 본문이 기록된 사도행전 8장에만 등장하는 사람입니다. 시몬은 마술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 마술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그가 어디서 누구에게 마술을 배웠는지 성경에 기록이 없어서 잘 모릅니다.
초대교회의 몇몇 기록에 의하면 이 시몬이 애굽에 가서 철학과 마술을 배워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성경에 기록된 애굽은 온갖 잡신들을 섬기는 나라였고 그 잡신을 섬기며 이적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을 요술사 혹은 마술사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팡이를 던져서 뱀이 되게 할 때 애굽의 요술사들도 지팡이를 던져서 뱀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출(7:8절 이하) 뱀을 만든 것뿐만 아니라 몇몇 가지 이적들은 그들도 따라 했습니다.
시몬이 애굽에서 마술을 배워 왔다면 아마 이런 잡신들의 능력을 빌려서 이적을 행하는 능력을 배워왔을 것입니다. 이런 잡신들의 능력을 빌려서 기적을 일으키고 또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서 이상한 현상을 보게 하고 눈을 속여서 놀라운 일을 행하는 것처럼 보여주는 이런 일들을 마술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능력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믿었습니다. 시몬이 귀신을 섬기는 애굽 사람에게 귀신의 능력을 받아가지고 와서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속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이 하나님의 능력인지 귀신의 능력인지 잘 구별을 하지 못합니다. 그냥 우리가 지금까지 한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나거나 사람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면 다 놀랍게 여기고 하나님이 하신 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귀신들도 그런 일을 행하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진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신 일인지 귀신의 속임수인지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시몬은 마술을 행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했습니다. 마술을 행한 목적이 사람들을 놀래게 해서 자신을 주목을 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몬은 자칭 큰 자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그 일을 행한 자신을 높여서 자기 자신을 아주 대단한 사람이라고 자랑을 했다는 것입니다.
현대어 성경은 이 부분을 좀 더 실감나게 번역을 했습니다. “그는 전부터 마술을 하여 사마리아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자기가 대단한 사람인 양 떠들어댔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을 놀래게 해서 자기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사람들에게 떠들어댔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적을 행한 사람들은 그 이적이 마치 자신이 잘나서 그렇게 한 것처럼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놀라게 하려고 기적을 행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 것이라고 하며 자신이 영광을 받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전파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그 능력을 표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의 능력을 받았거나 사람의 눈을 속이는 속임수로 하는 마술들은 전적으로 자기 자랑을 위해서 사용합니다. 자기 이름을 내고 자기 자신이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사용합니다.
오늘날 교회 내에도 이런 시몬과 같이 마술을 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속여 놀라게 하고 귀신의 능력을 빌려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그로 인해서 자기 자신을 높이고 자기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시몬의 사건을 보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일이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기적이 일어나도 깜짝 놀랄 만한 엄청난 일이 일어나도 마치 지금 막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 것 같은 신비한 일이 일어나도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무관하거나 복음보다도 그 자체를 더 귀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사탄의 능력이고 속임수이며 마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사람을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본문 10-11절에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라고 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시몬의 마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마술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시몬이 오랫동안 마술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속인 것은 거기에 진짜 하나님의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가짜가 진짜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사마리아에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이 없었습니다. 유대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닌 혼혈족들이 살았기 때문에 유대인이 선기는 하나님이 이방인들이 섬기는 잡신들과 혼합이 되어서 바른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이상한 마술을 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떠들어대니까 사람들이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가짜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 그냥 이상한 마술을 하는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았다고 하니까 그대로 믿고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모든 사람들이 믿고 따랐다고 했습니다.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믿었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나름대로 머리가 좋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존경을 받을만한 선한 일을 많이 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높은 사람 똑똑한 사람 훌륭한 사람들이 다 시몬이 하는 일이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고 따르니까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나 좀 못난 사람들도 당연히 그 사람들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진리도 모르는 거짓 선생이고 또 그 거짓 선생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사람을 속이고 신비한 마술을 행하니까 그냥 그 사람 하는 말이 옳거니 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이단들 집단에 가보면 자기들 속에 국회의원이 있다. 장관이 있다. 또 일류 대학생들이 자신을 믿고 따른다고 자랑을 합니다. 그런데 장관이라고 국회의원이라고 또 일류대학을 다닐 정도로 머리가 좋다고 진리를 바르게 아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가 똑똑하다고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많이 배운 박사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바르게 아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다 어리석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잘 분별하지 못하고 그 사람이 좀 특별하게 행동하고 신비한 일을 하는 것 같으면 그냥 믿어버리는 것이 인생들입니다.
옛날 이단들은 신비한 능력을 일으킨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유혹했습니다. 기도만 하면 모든 병이 다 낫는다고 큰 소리를 치면서 사람들을 끌어들였습니다. 신유은사 집회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불치의 병이 나았다고 하면서 간증을 하니까 자기도 나을 줄 알고 기도원에서 죽치고 기다리다가 죽은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저에게 자기는 신유은사가 있어서 기도하면 병이 낫는다고 자랑을 합니다. 제가 농담으로 목사님 그러지 마 하나님께서 세상고생 그만하고 천국으로 데리고 가신다고 하는데 왜 목사님이 자꾸 방해를 놓아 죽을병에 걸리면 얼른 천국 가시라고 해야지.
그런 신유은사가 잘 안 나타나니까 요즘 이단들은 좋은 일 많이 한다고 소문을 내고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우리 교회는 양로원에 가서 노인들 발 마사지를 해 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교회라고 자랑을 하면서 기성교회들을 비웃습니다.
교회는 교회 안에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도와주는 곳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전도를 위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기도 하지만 교회가 구제단체이거나 사회사업을 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바른 복음을 전하는 것을 자랑해야지 그런 것을 자랑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큰 능력을 행한다, 신비한 마술 같은 일을 행한다, 선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믿고 따라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일 이용해서 우리를 속이는 거짓 선생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특별히 조심을 해야 합니다.
여기 마술사 시몬을 등장 시켜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후세에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이런 엉뚱한 일이 많을 것을 아시고 미리 조심하라고 알려주신 것입니다. 엉터리 이단들에게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짓선생들의 속임수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바로 알고 진리를 따라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진 이 십자가의 복음이 성경진리의 핵심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본문 12-13절에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라고 했습니다.
가짜가 진짜노릇을 하고 있는데 진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진짜 복음이 전해지니까 시몬을 따르던 사람들도 다 빌립의 말을 듣고 따르게 되었고 심지어 자기가 진짜라고 큰 소리를 치던 시몬도 그 나타나는 표적을 보고 놀라서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녔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사마리아 사람들은 어렴풋이나마 하나님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도 이스라엘 사람들이고 또 일부이기는 하지만 성경도 가지고 있었고 가짜였지만 시몬의 마술도 하나님의 큰 능력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하나님나라를 세우신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한 비밀을 그들이 듣고 가슴에 맺힌 의문들이 시원하게 뚫렸을 것입니다. 아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시는 분이시구나 아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랜 세월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신 분이시구나 이런 놀라운 사실을 듣고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싶어 했던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고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야가 누구이신 것을 알았고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는 것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에 그들의 기쁨은 말로 할 수 없는 큰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 가운데 마술을 행하여 사람들을 속이던 시몬도 끼어 있었습니다. 시몬도 자신이 행하는 일이 진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가짜라는 것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진짜를 접하게 되었으니까 놀라는 것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빌립이 행하는 표적도 자기의 마술과 비교할 수도 없는 엄청난 기적이었고 빌립이 전하는 복음도 자신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말씀이었기 때문에 그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녔다고 했습니다. 빌립을 따라 다니면서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랐다고 했습니다.
그냥 이 말씀을 언뜻 보면 아 시몬이라는 사람이 변화되어서 전에 행하던 남을 속이는 마술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고 따랐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진짜 회개를 하고 진자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 세례를 받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전심으로 라는 말은 진짜 진심을 가지고 따랐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의 뜻은 고집을 세우고 집착하고 몰두하는 것을 말합니다. 시몬이 진짜 돈이 되는 확실한 것을 만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끈질기게 빌립을 따라다니면서 어떻게 하는가를 보고 배우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시몬이 따른 것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빌립이었습니다. 시몬이 따른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라 나타나는 이적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빌립이 행하는 이적을 배워야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이 시몬처럼 복음이 아니라 나타나는 이적을 따르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신비한 일을 행하는 인간을 따르려고 합니다. 원래 교회에 온 목적이 그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교회의 직분을 맡은 것이 그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교회에 온 사람은 늘 그런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런 일에만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따로 칠십 인을 세우시고 하나님나라를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나가서 하나님나라를 전파하자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돌아와서 예수님께 보고를 합니다. 예수님 우리가 가서 하나님나라를 전파하니까 귀신들도 놀라서 항복을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 10:20)
귀신이 항복하고 사탄이 떨어져나가고 이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이름이 하늘나라에 기록된 것이 진자 기뻐할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나라에 의인으로 이름이 기록되고 하나님 백성으로 이름이 기록되어서 우리가 그 나라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에 대해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온 유다로 사마리아로 전파되어 나갈 때 사마리아 성의 시몬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셨습니다. 가짜를 가지고 진짜처럼 우리를 유혹하는 이단 거짓선생들이 많을 것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보다 이상한 마술을 행하여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우리를 속이고 유혹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속임수에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 복음을 믿는 믿음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두 사도가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행8:14-17/양향모목사
2019-09-21 23:59:28
“14.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17.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구약성경의 핵심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야 즉 그리스도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거기에 우리 인간도 창조하셔서 행복하게 잘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으려하고 자기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욕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을 배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인간은 영원한 생명도 빼앗기고 행복한 삶도 빼앗기고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는 세상에서 서로 미워하고 싸우면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런 우리 인간을 그대로 멸망하게 내버려두시지 않고 구원을 하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 구원의 방법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우리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형벌을 받게 하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그 약속을 따라 오신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복음서는 그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말씀을 하셨으며 어떤 행동을 하셨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나 에베소서와 같은 여러 서신서들은 그 예수님과 우리가 어떤 관계인가, 그리고 그 예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 예수님이 우리에게 메시야가 되고 구원을 받게 되는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구원이 무엇이며 구원받은 자가 어떤 복을 받고 어떤 삶을 누리게 되는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사도행전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어떻게 퍼져나갔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하나님나라로 승천하시면서 예언을 하시기를 이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온 유다나라로 그리고 사마리아로 전 세계를 퍼져나갈 것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그 일에 증인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예언대로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을 했고 온 유다와 사마리아로 퍼져나가기 시작을 했습니다.
사마리아에는 빌립이라는 사람이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의 한 사람은 아니었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뽑은 일곱 일꾼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마리아는 북 이스라엘의 수도였는데 이방나라의 침공으로 인해서 순수한 이스라엘 사람들만 살지 못하고 이방나라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혼혈족이 된 도시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들처럼 생각했던 성입니다. 그들을 한 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방인들보다 더 좋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상한 도시에 사도도 아닌 집사가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도들이 사마리아 현장에 내려가서 그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사마리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본문 14절 말씀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라고 했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했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빌립이 전한 말을 듣고 따랐다고 했습니다. 그 소식이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까지 들렸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긴급회의를 열고 베드로와 요한을 현장에 급파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선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이방인들은 짐승으로 취급을 하고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이방사람들과 혼혈족이라고 해서 이방인보다 더 천하게 여겼던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이라고 해도 예루살렘에 살지 않고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무시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 지방에서 자라셨는데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이라고 하자 유대인들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비웃은 적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유대인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 속에도 유대인이라는 우월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는 소식은 충격적인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정말로 사실일까 하는 의구심도 생겼을 것이고 그들이 예수님을 믿었다면 정말로 잘 믿은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을 설득하여 믿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었는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가 설교할 때 3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간단히 된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그들에게 보내주셔서 이런 일이 일어났고. 성령님을 보내주시면서 성령 강림식을 아주 거창하게 행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자기나라 말로 설교를 하는데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다 자기나라말로 듣게 하는 기적이 일어나고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니까 벌떡 일어나서 걷고 뛰기도 하고 세상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기적적인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표적들을 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런 표적을 보고도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경도 하나님도 잘 모르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대표로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내려간 것입니다. 베드로가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항상 앞장서기를 좋아했고 또 자칭 타칭으로 예수님의 수제자로 알려졌기 때문에 그가 가서 확인하는 것이 당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따라나선 것은 좀 특별합니다. 물론 요한도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이런 순서로 이야기를 하니까 서열상으로 갈만한 위치의 사람이긴 합니다. 요한에게는 사마리아의 좋지 않은 추억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십자가를 지실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아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려고 하셨는데 마침 사마리아로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먼저 보내어서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도록 부탁을 했으나 사마리아 사람들이 지나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때 요한이 화가 잔뜩 나서 예수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 9:54)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꾸짖으시고 다른 마을로 돌아서 가셨다고 했습니다.
요한은 그 때 사마리아 사람들이 악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고 하는데 환영은커녕 마을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막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배척한 그 사람들이 빌립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서 요한이 따라나섰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에서 받을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정말로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이 드는 복음입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 종교의 교리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서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었다는 사실도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믿기만 하면 의로운 사람이 되고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한 천국백성이 된다는 것도 더 믿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하나님을 따르던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믿지 못했던 것처럼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성경을 많이 읽고 하나님을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지 못합니다. 교회 안에는 교회를 오래 다니고 성경을 많이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잘 모르거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처럼 오랫동안 하나님을 섬기며 살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못했던 사람처럼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가운데도 예수님의 복음을 믿지 않거나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어중간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믿는 것 같기도 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생각할 때 저 사람은 너무나 악해서 도무지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면, 그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시면 그들도 예수님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을 뿐이더라.
본문 15-16절 말씀에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라고 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내려가 보니 성령이 내리신 일은 없는 것 같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은 상태였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받지 않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다고 했는데 이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믿고 세례를 받았다면 당연히 성령님이 그 마음에 역사하셔서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믿는데 성령님은 안계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몇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면서 그 상태가 어떤 상태인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경우들 중 우리의 상태는 어떤 상태인가를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도 중요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믿음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짜 믿음이 되어야 하고 그 믿음의 고백이 진실한 고백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이미 받았으나 잘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령님은 오셨는데 예루살렘에서처럼 떠들썩하게 오시지 않고 조용히 오셨기 때문에 그 성령님을 받은 사람들이 성령님을 받은 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 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성령님을 받은 사람이지만 뭐가 느껴지지 않았다고 기적을 체험하지 못했다고 성령님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 성령님을 받지 못했지만 우선 예수님을 스스로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그들이 말한 그대로 성령님은 오시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경우로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게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이런 예비적인 성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확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확실히 믿지는 못하지만 그냥 교회에는 오고 믿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런 상태로 계속 있다가는 결국 어느 날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한 채로 교회를 떠나고 말게 됩니다.
성령님과 관계없이 형식적으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는다고 받았지만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 척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마리아성에서 만난 마술사 시몬이라는 사람이 그 경우입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을 믿지 않았지만 예수님을 믿는척하고 세례까지 받고 나중에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 성령님도 돈을 주고 받으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이런 가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진짜 믿음을 볼 수 없고 잘못된 신앙을 가진 가라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 오늘날 교회들의 현실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런 불완전한 상태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님도 받지 않은 사람이 교회에만 다닌다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의 신앙고백은 진실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님을 받지 못한 사람처럼 살아서도 안 될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오시면 그 성령님께서 내 마음에 역사하심을 따라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와 관계가 없이 그냥 예수님만 믿고 세례만 받았다면 그것은 진실 되지 못한 신앙일수도 있기 때문에 자신을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본문 17절에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를 보시고 그들에게 안수하니까 그들에게도 성령님께서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그런 상태가 성령은 이미 받았지만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했고 성령님의 특별한 은사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두 사도가 안수하고 기도할 때에 그들에게 성령님이 충만하게 역사하셨고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성령의 특별한 능력들이 그들에게도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도 성령님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성령님의 충만한 역사를 사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성령님의 능력을 받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우리도 성령님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과 상관없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같으면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분명히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 속에 성령님이 와 계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다 진실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때는 아무나 교회에 와서 그냥 쉽게 예수님 믿겠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순간 그 사람에게는 엄청난 고통이 따랐기 때문입니다. 시민권도 박탈당하고 재산이나 기득권도 다 박탈을 당하고 자신이나 가족이나 다 붙잡혀 가서 사자 밥이 되거나 불에 태워서 죽임을 당할 각오가 있어야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목숨을 담보로 하고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예배드리다가 발각이 되면 바로 붙잡혀 갔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믿음이 있느니 없느니 그 고백이 진짜니 가짜니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조금만 피곤해도 예배에 빠지고 조금만 기분 나빠도 교회에 안 나오고 조금만 불이익을 당해도 교회도 버리고 떠납니다. 그 속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로 교회에 다닌다는 것은 참 힘들고 피곤한 일입니다. 성령님께서 내 속에 오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2)우리도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충만하게 역사하시면 신앙생활이 즐겁고 평안합니다. 성령 충만하심이 없이 내 생각대로 내고집대로 살려고 하니까 자꾸 세상의 쾌락이 쳐다보여지고 교회가 오기 싫어지는 것입니다.
(1)성령님이 충만하게 역사하시면 지혜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를 알게 되고 이 세상에서 참된 행복의 삶을 살게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게 되고 그 예수님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믿음인지 그 믿음을 통해서 우리의 신분이 얼마나 귀한 신분으로 바뀌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믿음을 통해서 받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 얼마나 귀한 복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왕에 성령님을 받아서 신앙생활 하시려면 성령님에게 푹 빠지시기 바랍니다. 내 속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하시는 지혜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알고 나면 진자 신앙을 가지고 나면 기쁨이 넘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2)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충만하게 역사하시면 우리가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가를 알게 해 주십니다.
우리의 죄가 너무나 흉악해서 이 죄 가운데 머물러 있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제일 착각하고 사는 것은 우리가 착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고개를 숙이지 못하고 구원이 필요한 인생인 것을 알지 못하고 교만하게 사는 것입니다. 날마다 늙어가고 병들어가고 죽어가면서도 천년만년 사는 사람처럼 삽니다.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시면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게 되고 흉악한 죄로 죽어가는 인생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스데반처럼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주여 이 죄를 나에게 머물러 있게 마옵소서”, “이 죄가 나에게 최종적으로 확정되게 하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3)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충만하게 역사하시면 우리의 삶이 점점 거룩한 삶이 될 것입니다.
쓸데없이 시간만 보내는 무책임하고 나태하고 게으르고 별 볼일 없이 사람들에게 미움이나 받는 그런 삶에서 정말로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잘했다고 칭찬받는 그런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3)우리도 성령님의 능력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시면 우리의 삶이 능력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힘이 없고 늘 고통스럽고 뭘 해도 잘 안 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꼭 눈에 보이는 기적만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포기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적 같은 역사가 아니라도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우리의 삶에 개입하셔서 우리의 삶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살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성령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고 믿음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살아보십시오. 여러분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강한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은사 즉 재능들을 주셨습니다. 그 재능들을 하나님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쓰려고 할 때 그 재능에 큰 능력이 일어날 것입니다. 돈이나 시간이나 지식이나 기술이나 사랑하는 마음이나 열심이나 음악적인 소질이나 문학적인 소질이나 미술이나 그 어떤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그 재능을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쓰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거기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마리아 사람들이 빌립이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을 듣고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믿기만 하고 세례만 받고 성령님의 능력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어중간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사도들이 안수할 때 성령을 받았고 성령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참된 성도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님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성령님이 충만하게 역사하지 않는 상태에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심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기쁨이 넘치고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큰 능력이 넘치는 복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행8:18-21/양향모목사
2019-09-23 22:59:30
“18.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21.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사마리아에 살았던 마술사 시몬의 이야기가 다시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술사 시몬이 빌립이 사마리아에 내려와서 표적을 행하는 것을 보고 그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가 정말로 예수님을 믿지는 않았지만 빌립이 행하는 표적을 보고 마술사로서 그 표적행하는 것이 탐이 났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복음을 따랐다기보다는 빌립을 보고 빌립이 행하는 표적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더 강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베드로 사도와 요한 사도가 빌립보다 한 수 더 높은 사람으로 보인 것입니다. 빌립은 표적을 행했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사람들에게 그 표적을 행하도록 만들어 주더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람들에게 안수를 하니까 사람들이 성령님을 받았는데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빌립이 행하던 그 표적들을 행하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빌립을 보고 놀랐던 그가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는 더 놀라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붙었습니다. 빌립이 행하는 표적보다는 베드로와 요한이 행하는 성령을 받게 하는 능력이 더 큰 것인 줄 알았기 때문에 빌립에게 표적행하는 것을 배울 것이 아니라 베드로에게 성령을 받게 하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돈을 좀 주고 그 기술을 배우려고 했습니다. 그전에 그가 애굽에 가서 마술을 배울 때 돈을 주고 배운 것처럼 성령의 능력도 돈을 주고 사면 되는 줄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가 애굽에서 배운 마술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같은 것으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돈을 주고 기술을 배우거나 돈을 주고 능력을 사서 행하면서 돈을 벌수 있는 그런 것으로 잘못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시몬에게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라고 책망을 했습니다. 그 베드로의 말이 오늘 설교제목입니다. 시몬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지 못한 마음을 가졌는데 그 바르지 못한 마음이 무엇인지 우리에게는 그 바르지 못한 마음이 없는지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시몬의 바르지 못한 마음
먼저 시몬이 어떤 마음을 가졌기에 베드로가 시몬에게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라고 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18-20절 말씀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시몬이 사도들에게 돈을 주면서 자기도 사도들이 행하는 권능을 받아서 자기도 사람들에게 안수를 하면 안수를 받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고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이 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시몬을 책망을 하면서 하나님의 선물을 돈을 주고 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며 성령님을 사람 마음대로 받게 하는 것도 잘 못된 생각이라고 꾸짖었다는 것입니다.
1)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것은 바르지 못한 마음입니다.
시몬의 잘못된 생각은 모든 일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안수해서 성령을 받게 하는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돈이 최고입니다.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돈이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사는 목적이 돈을 벌기 위해서이고 그 돈으로 행복을 이룩해보겠다고 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꿈입니다. 그런 세상에 살면서 돈의 위력을 가지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회 와서도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돈이면 다 해결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일도 중요한 것들은 돈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진실한 사랑이나 참된 인간관계나 진정한 행복은 돈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쳐올 때 불행한 일이 닥쳐올 때 돈으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화려한 장례식이나 화려한 무덤은 만들 수 있겠지만 내가 가는 길을 돈으로 정할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과의 관계는 돈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고 돈 같은 것은 필요가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돈 가지고 뭘 하려고 했다가는 큰 낭패를 만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귀한 것을 주시면서 그것을 값없이 아무런 대가없이 거저 은혜로 주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조건 없이 그냥 은혜 받으라고 하시는데 뭔가를 가져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 가자고 전도하면 어떤 사람은 조금만 기다리라고 합니다. 교회에 가도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을 알아주고 헌금 안 하는 사람은 괄시하니까 돈 좀 벌어서 온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니까 돈 번다는 핑계로 교회를 멀리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운영해야 하니까 돈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 기쁘시게 한다고 교회를 떠나서 돈을 벌로 가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예전에 할머니들을 전도하니까 헌금할 돈이 없어서 교회 못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할머니들은 돈을 벌지 못하니까 헌금 안 해도 된다고 해도 제 말을 안 믿어서 제가 머리를 써서 오히려 교회에 오면 돈을 준다고 했습니다. 2천 원씩 드리면서 교회에 오시라고 했는데 처음에는 그래도 한 열 분씩 오시더니 조금 있으니까 한 사람도 안 옵니다. 돈은 핑계고 교회에 오기 싫으니까 예수님을 믿을 수 없으니까 못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돈이 많으면 분명히 교만해지고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돈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돈이 많으면 이 세상을 좋아하고 천국을 좋아하지 않고 예수님 재림도 기다리지 않고 세상에서 더 잘살려고 몸부림을 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재산이 많은 사람에게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바짝 예수님을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뒤를 돌아보지 않고 딴 생각하지 않고 끝까지 따르기 때문입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이사야 44:1-2) 돈 없는 자도 오라고 하셨습니다.
돈 없이 값없이 와서 은혜로 주시는 귀한 것을 거저 받으라고 했습니다. 돈 벌어서 돈 가지고 사는 것은 배부르지 못하는 것이고 만족하지 못하는 것인데 거기 매달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하면 우리가 교회에 올 때 헌금을 가지고 오는데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헌금은 우리 자신들의 교회를 위해서 쓰는 것입니다. 우리가 헌금을 수천억 원을 한다고 해도 그것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믿음을 살 수 없습니다. 거저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드리는 것이며 그 감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2)성령님을 사람이 마음대로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시몬의 잘못된 생각은 돈으로 무엇이든지 해결하려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성령님의 능력을 사람 마음대로 주고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마음에 오셔서 우리로 예수님을 믿게 하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믿음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게 하고 영원한 천국에 이르게 합니다. 이런 믿음과 관계되는 이런 모든 일들을 성령님께서 하십니다.
이 믿음과 관계되는 일을 위해서 성령님께서는 때로는 이 세상의 자연 법칙이 아닌 초자연적인 법칙을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믿지 못하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기적적인 일들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런 귀한 일을 하시는 성령님을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들어가시거나 들어가지 마시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하시는 일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안수를 할 때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니까 사람이 안수하면 성령님이 오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안수한다고 성령님이 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임무를 받은 사도라고 해도 언제나 아무에게나 안수한다고 다 성령님이 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시면서 혹은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도록 해 주시면서 안수라는 수단을 동원해서 사용을 하시는 것이지 항상 그렇게 안수한다고 다 성령님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초대교회 때에 복음이 세계만방으로 전파되는 중요한 시점에서 사람들에게 특별히 보여주시기 위한 한 방법으로 안수를 사용하신 것이지 안수가 성령님을 오시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힘으로 오고가게 하실 수 없는 그 성령님이 오늘 우리에게 와 계신다는 것입니다. 억만금을 주고 살 수 없는 그 성령님이 오늘 우리에게 와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죽었던 우리의 영혼의 생명을 거듭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진리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믿음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인침을 받게 해 주시고 이 세상에서 죄를 멀리하고 점점 더 거룩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를 꼭 붙잡고 영원한 천국까지 인도해 주십니다. 나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돈으로도 할 수 없고 힘으로도 할 수 없는 이 엄청난 일이 나에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바르지 못한 마음의 결과
시몬이 바르지 못한 마음으로 엉뚱한 요구를 한 결과를 오늘 본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마음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있지 않나 살펴야 할 것입니다.
1)네 은과 함께 네가 망할지어다.
본문 20절에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돈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사려고 한 시몬에게 네가 좋아하고 네가 의지하고 네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그 돈과 함께 네가 망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돈처럼 친절한 것이 없습니다. 돈만 있으면 진짜 대접을 잘 받습니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잘되고 행복해집니다. 그런데 그 돈에는 다른 어두운 한 면이 있습니다. 돈이 좋은데 그 돈이 그냥 생기지 않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돈의 노예가 된다는 것입니다.
요즈음은 잘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보험회사나 다단계 회사 같은데 가보면 먼저 사람들에게 돈을 쓰는 것을 가르칩니다. 화려한 파티에도 데리고 가고 호화판 요리 집에도 데리고 가고 좋은 옷 명품 가방도 사게 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 좋은 것을 하면서 살려면 돈을 벌라고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서 화려하게 살라고 유혹을 합니다. 그 유혹에 빠져서 평범하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살던 사람들이 사기꾼이 되고 범죄자가 되고 인생 파탄에 빠지고 맙니다.
돈은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만 돈에 노예가 되면 안 됩니다. 돈이 우리를 끌고 가게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돈을 끌고 나갈 줄 알아야 합니다. 정당하게 벌고 아껴서 쓰고 바르게 쓰고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먼저 쓸 줄 알아야 합니다.
2)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본문 21절에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베드로나 요한이 전하는 이 진리의 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네게 돌아갈 분깃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이 진리의 도는 즉 우리가 가는 이 믿음의 길은 철저하게 우리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마음으로 믿으면 의로운 사람이 되고 그 마음에 믿는 바를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에 이르는 것이 우리가 가진 진리의 도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바른가, 바르지 못한가는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시몬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믿는 척 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신앙을 고백했고 세례 받았습니다. 그리고 전심으로 빌립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없었고 예수님을 통해서 돈을 좀 벌어 볼까하는 잘못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돈을 주고 사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그로 인해서 인기도 얻고 돈도 벌어보자는 잘못된 생각으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거짓으로 고백을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시몬뿐만 아니라 기독교 역사 이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미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2-23)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고 말하는데 그런 행위가 복음을 위한 바른 마음에서 나오지 않고 잘못된 마음으로 자기 이익이나 자기 자랑을 위해서 행하였기 때문에 예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행위라고 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에는 바른 마음 진실한 마음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교회를 오는 것도 어떤 마음으로 오느냐가 중요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도 어떤 마음으로 드리느냐가 중요합니다. 찬송을 부르는 것도 기도를 하는 것도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고 충성을 하는 것도 그 마음이 중요합니다.
바른 마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는 분깃도 없다고 했습니다. 분깃은 나누어가질 몫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나라를 상속받는 것을 분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나라를 상속 받을 것이고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인데 그것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나라를 받기 위함이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한 천국에서 살기 위함인데 우리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그 중요한 것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고 돈의 노에가 되면 이 세상에서 망하고 그런 돈을 사랑하는 잘못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영원한 생명도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이 진실 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이 위대한 믿음을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선물로 받았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능력으로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성령님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에게 오신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시도록 해 드리는 일입니다. 그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통하여 바른 마음으로 정직한 마음으로 이 믿음을 고백하는 일입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른 관계가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기업을 받게 될 것입니다. 돈으로 사람의 능력으로 받을 수 없는 성령님이 우리에게 와 계신다는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기도하라/행8:22-25/양향모목사
2019-09-23 23:05:17
“22.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3.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24.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 25.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성경은 구속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기록한 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구원과 역사 즉 구속사라고 합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성경에서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바르게 알고 구원에 이르는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경의 핵심인 구원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나, 영원한 천국에서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알려주는 교과서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신앙생활의 지침서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의 길에 대해서 알려주시면서 많은 사건들과 그 사건속의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켜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여주며 우리의 삶이 본이 되게 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보면 우리 주변에는 본받아야 할 긍정적인 삶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고 본받아서는 안 될 부정적인 삶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받고 따라야할만한 삶을 사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본을 받아야 할 삶은 따라 하기가 힘이 들기 때문에 보통 잘 따르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따라하지 말아야 할 부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본받지 말아야 될 부정적인 사람들의 삶을 비판하고 욕을 하면서도 잘 따라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그런 부정적인 타락한 습성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쉽게 따라합니다. 그래서 잘못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그 잘못이 무엇인 줄 알고 나 자신도 그런 삶을 살지 않도록 철저하게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마술사 시몬은 우리가 본받지 말아야 할 인물입니다. 우리가 따라 해서는 안 될 아주 나쁜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그를 악독이 가득한 사람, 불의에 매인 사람이라고 혹평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잘못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오늘날 교회 안에 버젓하게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나쁜 행동을 사람들이 많이 따르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잘 살펴보고 그런 신앙을 가지지 않도록 철저하게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악독이 가득하고 불의에 매인 사람
본문 23절에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마술사 시몬이 행하는 것을 보니까 그 마음에 악독이 가득하고 악독으로 불의에 매여서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 악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성경의 기록을 볼 때 시몬에게서 특별한 사악함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나름대로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서 마술이라는 것을 배워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나타낸 사람입니다. 그리고 빌립이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그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고 빌립을 따른 사람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안수를 하고 성령을 받게 할 때 그것을 좋게 보고 자신도 그런 일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가 그동안 세상을 살아오면서 잘못된 신앙관을 가졌기 때문에 자기의 생각대로 돈을 드려서 그 복을 받으려고 했지만 그것을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마술사 시몬을 아주 악하게 평가를 했습니다. 그 마음에 악독이 가득하고 그 불의에 매여서 사는 사람이라고 평가를 했습니다.
마술사 시몬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참 억울한 일입니다. 하나님 잘 믿어보려고 했고 사도들처럼 좋은 일 하려고 했는데 그것이 그렇게 악독한 일이 된다는 말에 그는 참 억울하다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자기가 남의 것을 훔친 일도 없고 남에게 사기를 친 일도 없고 착취를 한 일도 없는데 오히려 좋은 일 해서 사림들에게 존경받았는데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을 좀 잘 모르고 진리를 잘 알지 못해서 좀 다른 방법으로 신앙생활을 했다고 악독이 가득하니 불의에 매여서 사는 사람이나 하는 것은 참으로 억울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는 그런 비슷한 것은 더 악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차라리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몰라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도 모르고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며 따라야 하는지는 더더욱 모릅니다.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선한 일을 하면서 삽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자세히 살피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섬기고 예수님이 누구이신 줄 알면서도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을 가지지 않고 형식적으로 믿는척하는 것은 몰라서 못 믿는 사람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이요 더 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시몬과 같이 비슷하게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혼란스러워지고 거짓 선생들이 활기를 치고 가라지가 알곡보다 더 무성한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비슷한 것을 가지고 사기를 치는 거짓선생들이나 이단들에게 더 이상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 광성교회 성도들은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믿습니다. 진리를 바르게 알고 철두철미하게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1) 시몬처럼 마술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악한 것입니다.
시몬은 마술을 배워서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믿게 했습니다. 시몬의 거짓말에 많은 사람들이 다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믿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는 부흥사들이 부흥을 시키고 부흥사들이 망하게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흥사들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에 많이 몰려오긴 했는데 그래서 교회들이 크게 부흥을 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부흥사들이 잘못 가르친 거짓교훈들 때문에 엉터리교인들이 많이 양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부흥사들이 성도들을 속인 것 중에 하나가 마술사 시몬처럼 마술을 배워서 심리적인 것을 이용하고 또 귀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약간의 기적을 행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속인 것입니다. 그런 사기꾼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바르게 분별하지 못하고 되지도 않는 기도응답을 받아 기적을 일으킨다고 많은 시간들을 허비했습니다.
2) 시몬처럼 잘못된 신앙을 따르지 마시기 바랍니다.-그것은 악한 것입니다.
시몬은 진정한 신앙이 무엇인지 모르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무엇을 믿든지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만 다니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참된 믿음이 무엇인줄 알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엉터리로 믿고 오히려 반대되는 것을 믿고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이 됐다고 착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로 알고 성령님께서 주시는 마음으로 그 사실을 온전하게 믿고 진실 되게 고백하는 참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좋은 일을 많이 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이런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에게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좋은 말이긴 하지만 바른 믿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착하게 못사니까 우리가 바르게 살지 못하니까 우리가 좋은 일을 하지 못하니까 그런 일들을 통해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으니까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들의 그런 죄와 허물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믿음으로 받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나 중요한데 그런 기본도 모르면서 착하게 살자 좋은 일 많이 하면서 살자고 지껄이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속아서는 안 됩니다.
3) 시몬처럼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지 마십시오.-그것은 악한 일입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인지 돈을 믿고 따르는 것인지 잘 모를 정도로 돈이 모든 것의 중심에 서있습니다. 사람을 평가하는 것도 이 돈이 기준이고. 사람이 사는 목적도 이 돈이 기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악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돈에 얽매여서 주의 일도 못하는 사람도 되지 말아야 합니다.
4) 시몬처럼 세상의 출세를 위해서 믿음을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그것은 악한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핵심인물 두 사람은 원래 둘 다 시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입니다. 두 사람은 다 같은 민족으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겼지만 두 사람의 가는 길은 엄청나게 달랐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 바쳤던 사람입니다. 그가 한번 설교해서 3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예수님 믿게 하고 세례를 받게 했습니다. 기도해서 이적도 행하고 안수해서 성령님도 받게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사람들을 자기 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붙잡고 교회당을 건축하고 그들이 바치는 헌금으로 잘 살려고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의 증인으로 살다가 복음을 위해서 거꾸로 십자가를 지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술사 시몬은 종교를 이용해서 돈을 벌어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전해오는 기록에 의하면 나중에는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을 비판하고 영지주의라는 이단의 괴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인하고 자기의 생각대로 교리를 정하고 많은 사람들을 진리에서 떠나게 하고 바른 신앙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이런 행동이야 말로 악독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목회자들 가운데는 베드로 사도가 가는 길을 따르려고 하지 않고 마술사 시몬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시몬처럼 거짓 이적을 행하고 거짓 경건으로 시몬처럼 돈을 목적으로 삼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 자기 출세를 위해서 교회를 이용하는 삯군 목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기보다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 자기 생각들을 설교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부인하거나 약하게 평가 절하하는 것은 그것이 그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 앞에서 사악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돈에 노예가 되어서 이 세상의 행복이나 성공의 노예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그르치게 하는 사악한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런 진리를 깨닫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진리를 따라서 바른 마음을 가지고 바른 신앙을 고백하는 우리가 얼마나 복된 사람인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본문 22절 말씀에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시몬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 죄를 지적하면서 그 악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미리 제시한 것입니다. 먼저 그 악함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흉악한 죄라도 혹시 그 마음에 품은 흉악한 죄악을 용서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혹’이라는 말은 잘 하면 혹시라도 용서 받을 길이 있지 않겠느냐는 그런 가능성을 이야기 한 것은 아닙니다. 마술사 시몬이 품은 죄악이 너무나 커서 용서 받기 힘이 드는 일인데 회개하고 기도하면 혹시 하나님의 마음이 변해서 긍휼을 베푸셔서 용서하지 않겠느냐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여기 ‘혹’이라는 말은 강조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냥 대강 회개하고 대강 기도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철저하게 회개를 하고 간절하게 기도를 해야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간단히 용서받을 수 있는 그런 죄가 아니라 아주 흉악한 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 바르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믿지 못하는 죄는 대강 적당히 회개하고 기도하면 용서 받는 그런 죄가 아닙니다. 아주 철저하게 회개를 하고 아주 철저하게 고쳐야 되는 아주 중요한 죄입니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죄보다 엄청 무서운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의의 기준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에 달린 것이기 때문에 이것만큼은 철저하게 바르게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몬은 이 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의 죄가 얼마나 흉악한 죄인지 몰랐고 거기서 머물러 있으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회개란 먼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점검해보는데서 시작을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기 싫어합니다. 잘못이 생각이 나더라도 인정을 하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회개를 하지 못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좋은 것을 보고 본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고 나쁜 것을 보고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 반대의 길로 가야되는 사람도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본받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자기 자신을 너무나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흉을 보고 욕을 하는데도 정작 자신은 그 사실을 모르고 오히려 자신이 잘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삽니다.
본을 받을만한 삶을 사는 사람은 늘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잘못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인간은 악하고 욕심이 많고 틈만 있으면 나쁜 길로 가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수시로 자신을 살피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쁜 길로 가고 있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잘못된 일이 없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회개할 기회도 있고 바른길로 다시 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일이 발견되면 즉시 그 길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 바른 길로 가야 합니다. 회개란 잘못을 뉘우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길을 돌아서서 다시 바른 길로 가는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회개입니다.
무엇이 잘 안되면 왜 잘 안되는지를 살피고 그 어려운 일이 다시 오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기도해서 어려운 일이 해결되었다고 또 다시 그런 길을 반복해서 가는 사람은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늘 나 자신을 살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서 바른 길로 돌아서야합니다. 다시는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다짐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회개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본문 24절에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마술사 시몬은 베드로 사도가 그렇게 간곡하게 그의 잘못을 알리고 회개하고 기도할 것을 요구했지만 시몬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돈과 함께 망할 것이고 하나님을 뒤에서 조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는 믿음을 통해서 얻는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은 얻지 못할 것이며 그런 그의 행동은 악독한 것이고 불의에 매여 사는 비참한 짓임을 명백하게 이야기 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그런 잘못들을 철저하게 알고 회개를 하라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잘못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 잘못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느끼지도 못했고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서 바른 길로 가려는 마음도 없었고 회개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기도도 하지 않았고 사도들에게 기도해달라고만 요청을 했습니다.
그 기도요청의 내용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해 달라거나 바른 길로 가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은 자신이 가는 길이 잘못되었든지 바르지 못하든지 간에 상관이 없이 계속 살던 대로 살 것이니까 하나님께 벌만 받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돈은 계속 사랑하는데 돈으로 망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엉터리 믿음을 가지고 있어도 구원은 받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나는 희생도 없이 헌신도 없이 내 살대로 살테니까 잘못한다고 벌도 주지 말고 복만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영광 돌리고 그런 것 하기 싫으니까 그냥 복이나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술사 시몬을 통하여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교훈을 받았습니다. 진리를 바르게 알지 못하고 잘못 믿는 믿음이 얼마나 악한 것인가를 알았습니다. 바른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알았습니다.
우리 자신에게도 그런 것이 없는가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철저하게 회개하고 바른 길로 가야 할 것입니다. 진리를 바로 아는 것이, 바른 신앙을 가지고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행8:25/양향모목사
2019-09-23 23:09:02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오늘 본문 말씀은 단순하게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왔다가 그 임무를 완성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말씀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는데 돌아갈 때 그냥 돌아가지 않고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고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역사의 기록은 시시하게 별 볼일 없는 이야기를 아무 의미 없이 그냥 기록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우리 인간들에게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구원의 역사를 기록한 성경 말씀은 어느 한 구절 의미 없이 기록한 부분은 없습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그 시대나 아니면 다른 어느 시절에 아주 중요한 의미를 주는 말씀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도 당시에는 그냥 지나가는 단순한 한 사건의 기록이었는지 모르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아주 귀한 의미를 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오늘날 설교가 방향을 잃고 그 힘을 잃고 세상이야기나 듣기 싫은 잔소리로 인식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당시에 사도들이 주의 말씀을 증언하고 복음을 전하던 그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오늘 본문 말씀에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새”라고 했습니다. 두 사도가 사마리아성에 와서 주의 말씀을 증언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먼저 “증언하여 말하다”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주의 말씀을 전했는데 그냥 말한 것이 아니라 증언하여 말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설교한다는 뜻을 가진 용어들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혹은 제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또는 복음전도자들이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선포할 때 그 선포를 여러 가지 용어로 쓰고 있습니다.
“가르치다”라는 말을 설교라는 말로 쓰기도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마태복음 5장의 산상보훈을 시작할 때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서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마5:2)라고 하셨는데 이 가르치다는 말을 설교에 사용해서 설교를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구원이 무엇인지 그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기도 하고 또 구원받은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선포하다”라는 말을 쓸 때도 있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 새”(눅8:1)라고 하실 때 여기서 “선포하다”라는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여기 선포한다는 말은 신하가 왕명을 받고 그 왕명을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설교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명령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나라 사극을 보면 왕의 신하가 어인이 찍힌 문서를 하나 들고 와서 어명이요 하면 무릎을 꿇고 그 명령을 들어야 합니다. 그 어명이 사약을 받는 것이라고 해도 왕이 있는 왕궁을 향해서 절을 하고 그 사약을 받게 하는 것이 어명입니다. 설교는 어명과 같이 어명보다 더 엄격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고 그 어명을 듣는 사람들은 어명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입니다.
“권면하다”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행18:4)라고 했는데 여기서 권면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라고 호소하고 설득하는 것을 말합니다. 설교는 진리를 전파하고 그 진리를 따르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증언하다”입니다. 본문에서 증언하다는 헬라어로 디아말튀로마이(διαμαρτύρομαι)라는 단어를 썼는데 “증언하다”는 뜻 외에 “엄숙히 확언하다, 경고하다, 엄명하다.”라는 뜻으로 번역을 하기도 합니다.
이 단어는 법정에 출두해서 자기가 본 사실을 증인으로서 그대로 말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 말에서 순교자라는 말이 나왔듯이 어떤 일이 있어도 진실만을 이야기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사실이 아닐 때 목숨이라도 내어놓을 수 있다는 각오로 말하는 것을 뜻합니다.
옛날의 설교는 주로 “선포하다”는 말에 가까운 설교였습니다.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그대로 따르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믿음이 좋아서 목사님이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선포하면 아멘으로 받고 그대로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하나님의 명령을 선포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목사들이 자기 명령을 하나님의 명령처럼 잘못 전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무리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외쳐도 별로 두려워하지 않고 지키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설교를 왕의 명령을 선포하듯이 해도 잘 안 들으니까 그것이 왜 하나님의 말씀인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기 시작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성경공부가 엄청나게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부흥회도 사경회라고 해서 성경을 공부했고 이런저런 프로그램들을 동원하여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을 했습니다.
성경공부를 많이 해서 진리를 잘 알면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바르게 잘 할 줄 알았는데 공부를 많이 해도 삶은 바뀌지 않습니다. 머리만 잔뜩 커져서 지식만 늘었지 그런 지식이 곧 삶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배워서 성경지식으로 남을 비판하는 일에나 쓰는 사람이 많습니다.
더군다나 교회 안에 거짓 선생들 이단들이 많이 들어와서 엉터리 공부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성경공부가 신앙을 망치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많은 이단들이 성경공부 가르쳐준다고 유혹을 해서 성경의 진리가 아닌 자기들의 엉터리 교리로 사람을 세뇌시켜서 이단에 빠지게 만듭니다. 무료성경공부니 하는 단체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가르쳐도 안 되니까 이제는 권면하는 설교 설득하는 설교를 합니다. 교리를 가르쳐주고 신앙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를 설명해주고 그렇게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호소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남의 호소나 부탁이나 권면이나 이런 것에 잘 동조하지 않습니다. 남의 부탁 다 들어주다가는 내 할 일을 못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못 들어주고 남의 부탁 들어주다가 망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남의 부탁을 잘 거절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설교자들이 고민이 많습니다. 왕명이라고 선포를 해도 안 되고 진리를 조목조목 가르쳐도 안 되고 부탁을 하고 호소를 해도 안 되니까 이제 특별한 방법이 없습니다. 그냥 듣든지 말든지 듣고 믿든지 말든지 그냥 시간되면 최선을 다해서 설교를 하고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듣고 감동 받을 가슴이 있는 사람은 감동을 받고 실천한 손발이 있는 사람은 실천을 하고 이것저것도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요 그냥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는 사도들의 설교 형태가 중요하다고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두 사도의 설교 형태는 증거하여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이것은 내가 목숨을 걸고 확실하게 증언하는 것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이익을 채우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님을 확실히 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당신들을 이용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는 모든 것을 다 잃고 목숨까지 담보로 잡히면서까지 이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목숨까지 바칠 것을 각오하면서 하는 말이 시시한 이야기를 해서 되겠습니까? 시시한 이야기 하면서 거기 목숨까지 걸겠습니까? 목숨까지 바치면서 꼭 해야 하는 이야기는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너무나 중요하고 너무나 확실하고 이 길 밖에 없는 아주 중요한 진리의 도를 이야기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 살펴볼 것은 그들이 목숨까지 걸고 증언한 것이 “주의 말씀”이라고 했는데 그 주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주의 말씀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모든 것을 바쳐서 죽을 각오를 하고 외치느냐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라고 하면 넓은 의미에서 성경 말씀이 다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성경 말씀 전체를 다 주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주의 말씀이란 그런 넓은 의미에서의 말씀이 아니라 좁은 의미에서 주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짧은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경 전체를 다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의 말씀은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고백한 대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들이 증언한 주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이나 여러 제자들에게 또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도 여러 가지 말씀들을 하셨기 때문에 그 말씀 전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정말로 우리들이 꼭 알아야 할 중요한 말씀을 증언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만나서 많은 말씀들을 들었습니다. 그가 처음 들은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직접 하신 말씀으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라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던 시몬에게 예수님께서 오셔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더니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우리가 그런 경험을 했으면 그 이야기가 엄청 자랑스러운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네게 오셔서 그렇게 말씀을 하셔서 순종했더니 엄청났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것이 별 것 아닌 줄 알고 잡은 고기도 다 버리고 고기 잡을 배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그였기 때문에 고기 엄청 잡은 그런 이야기를 중요한 이야기라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좋아하는 말씀은 “영생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 난 후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만 따라 다니면 먹고 사는 문제가 다 해결이 되니까 다른 것 할 필요도 없고 오직 예수님만 따라 다니면 만사가 다 해결이 됩니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영생에 관한 말씀을 하시자 사람들이 하나 둘 다 떠나갑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하셨을 때 시몬 베드로가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6:68)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말한 영생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39-40)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1-3)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6-17)
구원에 관한 말씀, 영생에 관한 말씀, 영원한 하나님나라 천국에 관한 말씀이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해준 주님의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 많은 설교자들 가운데 이런 영원한 생명에 관한 말씀을 자기 삶을 다 바쳐서 자기 목숨을 다 바쳐서 순교하는 각오로 증언하는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삶을 위해서 출세를 위해서 영광을 위해서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거짓말을 섞어가면서 설교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최근에 보도된 글을 보니까 어떤 기독교 학생운동 본부의 대표 목사가 여고생을 농락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또 어떤 유명한 강사 목사는 서울대학을 졸업하고 고위 공무원으로 재직했었으나 교통사고 한 다리를 잃고 좌절 속에서 방황하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일어났다고 간증을 하고 특강을 하고 다녔는데 알고 보니까 다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학력도 위조고 공무원 했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심지어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은 것도 거짓으로 탄로 났습니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 정말로 베드로와 요한 같은 주의 말씀을 바로 증언하는 증언자가 그립습니다. 목숨을 걸고 진리를 외치던 순교자의 신앙이 그립습니다.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한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서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두 사도가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했는데 이 복음은 앞에서 그들이 증언한 주님의 말씀 즉 영원한 생명 영원한 찬국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할 때 정말로 기뻤을 것입니다. 그들이 전한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복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시시한 것 좀 나누어줘도 마음이 기쁩니다. 먹을 것 조금 나누어 줘도 기쁘고 작은 선물 하나 줘도 기쁩니다. 받는 사람도 기쁘겠지만 주는 사람도 기쁩니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기쁨은 말로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엄청난 소식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도 기뻤을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소식은 복된 소식입니다. 너무나 기쁜 소식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는 귀한 소식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허무하게 살았는데 영원한 세상이 있다는 것이 기쁜 소식입니다. 그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려면 율법을 다 지키고 선을 행하고 수준 높은 삶을 살아야 되는 줄 알고 포기하면서 살았는데 아주 간단한 길을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 인 줄 인정하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해서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그 높으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며 그 아들의 지위를 가지고 이 세상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쁜 소식을 이런 복된 소식을 어찌 전하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시간만 있으면 틈만 있으면 만나는 사람마다 전해야 할 복음이 우리가 믿는 이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그런데 나쁜 사람들이 자기만 천국 가려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안 가르쳐줍니다. 기도해서 응답받고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 이런 쓸데없는 것만 잔뜩 이야기 하고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는 감춰 버립니다. 천국 이야기 하면서도 아무나 잘 못 가는 것처럼 이야기 합니다.
율법도 지켜야 하고 바르게 살아야 하고 충성도 해야 되고 그래야 가는 것이지 그냥 믿기만 한다고 가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이렇게 나쁜 사람들이 교회에 잔뜩 모여 있습니다. 복음을 복음으로 전하지 않고 다른 것을 복음이라고 전하고 사람의 영원한 생명을 수종하게 여기지 않는 나쁜 사라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이 복음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누구에게든지 해당이 되는 복음입니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똑똑한 사람이나 미련한 사람이나 착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다 천하보다 더 소중한 생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 천하보다 더 소중한 생명을 영원토록 가지게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방인들의 혼혈족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들보다 더 무시하는 사람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비천한 사람들에게도 복음은 유효합니다. 그들도 복음을 믿고 따르면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사마리아인 중에서도 저 산골 촌마을 사람들에게도 이 복음이 필요합니다. 촌마을 구석구석에 하나님의 백성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의 유익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귀한 복음을 산골까지 다니면서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전하는 복음이 너무나 귀하고 중요한 것인 줄 알았기 때문에 세상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도 버리고 목숨이 위태로운지도 알면서도 당당하게 주의 말씀을 이 복음을 증언하며 외쳤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가진 이 복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 복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릴 각오로 이 세상을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족에게 우리 이웃에게 세상 끝까지 시골 구석구석까지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 우리 광성교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물 성령을 받으라 /행8:9-25/ 이상호목사
2017-03-14 17:49:28
오늘 읽은 9절부터 25절의 말씀에는 두 가지 얘기가 나옵니다. 그 하나는 시몬이라는 사람에 대한 얘기이고 또 하나는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지고 세례에 이어서 성령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들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성령을 받았다는 것이 더 큰 중요한 얘기일 것 같은데 실상은 시몬이란 사람에 관한 얘기가 본문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형태입니다.
이것은 반 이방 사람들이었던 사라마리아도 복음을 받았다는 것 이상으로 시몬을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교훈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도행전은 교회가 발전하면서 발생되는 사건들을 계속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들을 통해서 지금 교회들에게 교훈을 하고 있는데 이 시몬의 경우도 그런 맥락 중에 있습니다.
사마리아 지방에 복음이 전해진다는 것은 아주 대단한 일이고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지방은 옛날 북 이스라엘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난 뒤에 정책적으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이방인들이 이주해서 살게 되었고 그래서 거기는 거의 이스라엘 민족의 정통성을 찾아 볼 수 없는 혼혈인과 이방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와 달리 많은 이방 종교와 문화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런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졌다는 것은 당시 유대 사람들에게 충격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한 이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혼혈과 이방이라고 상종도 하지 않던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아주 놀랄만하고 새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거의 이방 사람 취급을 받던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지면서 시몬이라는 사람이 등장하게 되고 이 사람을 통해서 성경에서 특별히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 문화 속에 들어간 복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시몬이라는 사람은 사마리아에서 마술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마술을 해서 자칭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한다고 해서 사람들의 인정을 나름대로 받고 있었는데 이 사람이 빌립의 전도하는 모습을 보고 변화되어서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성경에는 그가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몬의 믿음에 대해서 의심을 합니다. “그는 가짜로 믿는 척만 했지 진짜로 믿지 않았다.” 든지 “단순히 능력을 배우려고 믿음을 가장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추측은 오히려 별 근거가 없는 얘기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를 믿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3절에 보면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믿고 세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는 오히려 사마리아에서 믿는 사람들 중에 아주 열심 있는 사람에 속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시몬이 베드로가 사마리아에 가서 안수할 때 사람들이 성령을 받는 것을 보고, 베드로 앞에 돈을 내어 놓으면서 성령을 주는 안수하는 능력을 자신에게도 좀 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시몬에 대해서 베드로는 아주 심하게 책망을 하고 회개하라고 말합니다. 이때 책망과 저주를 들은 시몬은 다시 베드로에게 다시 자신에 대한 저주를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청합니다.
이런 시몬의 행동은 그가 거짓신앙이었기 때문에 한 행동이라기보다는 그의 신앙이 아직 그 사마리아의 문화와 신비주의적인 종교적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보아야 합니다.
복음이 유대에 전해질 때는 이런 문제는 없었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서는 아무도 성령의 능력을 사겠다는 황당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있었고, 성령의 능력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에서는 그 상황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시몬과 같이 마술을 부려서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장사를 할 수 있었을 정도로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많은 신비주의 종교들로 인해서 종교라는 것이 그런 신비적인 것들이 전부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그런 신비적인 마술 같은 것들을 돈을 주고 배우거나 전수하는 것들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시몬은 믿기는 믿었지만 자신의 이해로 자신의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신앙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유교와 불교 또 도교 등이 혼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절에 가서 한번 빌어 보고 조상에게 빌어도 보고 안 되면 또 산신령에게 가서 빌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런 종교적인 분위기와 문화 속에서 ‘한번 바꿔 봐도 좋지 않냐’는 식으로 시몬은 아주 엉뚱하게 성령의 능력을 팔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성경은 복음이 이방에 들어갈 때 그곳의 문화와 상황 속에 복음이 잘못 이해되어지고 기존의 종교들과 혼합되어 받아들여지게 되는 상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이방으로 뻗어갈 복음이 부딪히게 될 대표적인 상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기독교에서도 아주 심각하게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 전통 종교들과 그 종교성을 가진 사람들과 복음이 만나면서 시몬과 비슷한 일들을 많이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마치 시몬처럼 방언을 돈 주고 배우는 학원이 생기기도 했고, 어떤 사람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선물인 은사를 배울 수 있고 전수할 수 있는 것처럼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교 전통으로 교회 안에 전혀 복음과 관계없는 유교적인 권위주의가 팽배해진 부분도 있고, 목사가 마치 무당의 역할을 대신해서 복을 빌어주고 재앙을 막아주는 이상한 위치에 놓여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들도 하나님의 선물을 돈을 주고 사려고 하는 일들을 하려고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전통 종교의 영향이라기보다는 현대 물질주의와 성과주의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일을 돈과 인간의 능력으로 하려고 하는 경향입니다.
우리나라에 신앙 좋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돈이 있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돈으로 성령의 능력을 사겠다고는 안 했지만 돈으로 성령의 일을 이루겠다는 비슷한 마음 바탕인 것입니다.
또 자신의 능력, 사람의 능력으로 성령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돈으로 모든 것을 다 살 수 있다는 생각은 큰 잘못입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지만 돈으로 편안한 잠은 살 수가 없습니다. 돈으로 얼마든지 좋은 책은 살 수 있지만 지식은 결코 돈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살 수 있지만 식욕은 돈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돈으로 아름다운 옷과 예쁜 장신구는 살 수 있지만 참된 아름다움은 돈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돈으로 좋은 집은 살 수 있지만 행복한 가정은 살 수가 없습니다. 돈으로 사치를 꾸밀 수 있지만 문화는 돈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돈으로 향락을 누릴 수 있지만 만족은 돈으로 누릴 수가 없습니다. 돈으로 종교생활은 할 수 있지만 영원한 생명은 결코 돈으로 구할 수가 없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돈이 많은 할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애완견과 시골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개도 나이가 들었고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슬픔에 쌓인 채 신부에게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신부님, 제가 가장 아끼는 개가 죽고 말았어요. 신부님께서 이 불쌍한 개를 위하여 성대한 미사를 올려주실 수 있나요?" 신부는 고개를 저으며 할아버지에게 말했답니다.
"우리 성당에서 동물을 위한 미사를 올릴 수는 없습니다. 저 밑에 내려가면 뭘 믿는지 모르는 새로운 교파가 새로 문을 열었습니다. 그 곳에 가면 혹시 해줄지 모르겠군요."
"예, 그럼 그렇게 하죠. 그런데 한 일억 정도면 식을 올릴 수 있겠죠?" 신부가 정색을 하며 "예? 할아버지도 참, 그 개가 카톨릭 교도였다는 말씀을 왜 안하셨어요" 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때때로 하나님의 선물로서 주어지는 성령의 능력과 성령의 일을 우리 힘으로 하려고 하거나 우리 가진 돈으로 이루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능력으로 우리 가진 것으로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 삶 속에서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우리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기대하고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 손에 달려있고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에 달려있다는 것을 우리 삶 속에 고백하는 한 주가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사도행전 8장은 사도행전 전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주제가 되는 말씀은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예수님은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성령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성령을 받고도 유대 땅을 고집합니다. 하나님은 빌립을 이방인의 지역인 사마리아로 내려가게 하셔서 복음을 전하여 이방인들이 세례를 받게 하고, 고정관념이 바뀌지 않은 베드로와 요한을 통하여 이방 사람들도 성령을 받도록 역사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이방인에게 복음이 증거되어 이방인에게 성령이 내리는 출발점이 되는 부분이 사도행전 8장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가 오늘 우리들에게까지 임하여 우리도 성령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은 유대인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예수를 오래 믿은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거예요. 성령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에게도 내렸지만 이방인인 사마리아 땅에 내린 것처럼, 예수를 오래 믿은 사람에게도 내리시지만 오늘 처음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도 내리는 것입니다. 성령은 누구에게나 내릴 수 있고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예수 믿는 모든 사람은 세례도 받아야하지만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는 것이 신앙생활의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을 받아야 달라집니다. 성령을 받아야 변화됩니다. 성령을 받아야 나의 생각과 가치관이 달라지는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내가 달라지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 마음에 들어오니까 그 사람이 나를 사로잡잖아요. 그래서 만날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나고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옷도 입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도 먹게 되고..., 사랑을 하면 달리지는 거예요. 오래된 유행가 가사에도 있잖아요.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 예, 사랑을 하면 예뻐지는 거예요.
성령을 받는 것이 이런 것과도 같은 겁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 마음에 들어오니까 내가 달라지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겁니다. 이전에는 나의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내 철학과 가치관, 내가 생각하는 것이 있거든요. 자기의 주장이 있었어요.
그런데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면서 그런 것들이 송두리째 달라집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내 생각이 변화됩니다.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고 인정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두려움도 없어지고 담대해지고 기쁘고 즐겁게 살아갈 수가 있고,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되고,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헌신하게 됩니다.
문제는 성령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 성령을 받아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을 위해 힘있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베드로, 마술사 시몬의 유혹을 이기다 /행8:9-25
2015-08-22 14:51:01
원제목: 간절히 주님만 원합니다.
이 본문은, 보통 설교자들이, 평생 한번도 택하지 않을 본문일 것입니다.
특별히 은혜롭거나 마음에 끌리는 본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본문을 성경에 길게 기록한 이유는, 분명히 주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인데요...
◑1. 돈이면 다 된다는.. 마술사 시몬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8:21
본문은 시몬이라는 마술사에 대한 기사인데, 간단한 에피소드 같은데,
분량 적으로 사도행전 8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큽니다.
무엇인가 담고 있는 교훈이 크다는 의미입니다.
성령께서는 이 본문으로 설교를 준비할 때,
이 본문에 담긴 너무나 중요한 메시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앞으로 이 본문을 자주 설교하게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 말씀이 여러분 마음의 아주 깊은 곳을 만지시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역사ministry를 돈 주고 사려하다.
본문에 나오는 마술사 시몬은 사마리아 사람으로서
빌립을 통하여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강한 인상을 받고
자기도 세례를 받은 후, 열심히 빌립을 따라 다녔습니다.
그 후 사마리아에서 일어난 전도의 역사에 대하여 조사를 하러 온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술사 시몬이 베드로에게 와서 돈을 줄테니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8:19
부탁을 하였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시몬을 심하게 책망하였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8:20
▲베드로 사도의 도에 지나친 책망? / 깨달아야 할 중요한 교훈이 있기 때문에 길게 설명.
본문을 읽으면, 누구나 시몬이 잘못했고
별로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도 너무 심하게 책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시몬이 초신자라, 뭘 잘 모르고 실수를 한 것은 아닌가?
그래도 나름대로 은혜를 갈망했던 사람인데
“망할지어다!” 라니 너무 심한 말을 한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만일 “헌금 할 터이니 성령충만을 받고 싶습니다.”하는 새신자가 있는데,
그에게 베드로처럼 “당신의 돈과 당신이 함께 망할지어다!” 했다면
교인들 반응이 어떨까요?
제가 성경적으로 잘했다고 칭찬하기 보다는,
어떻게 목사님이 그렇게 하실 수가 있느냐고 하실 분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성격이 별난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저주한 것입니까?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정말 은혜를 받아야 될 것이
‘베드로가 왜 이렇게 화를 낼만큼 심하게 야단을 쳤는가?’
‘도대체 마술사 시몬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성경에 아주 길게 이 사건에 대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시몬의 치명적인 죄 - <돈으로 다 할 수 있다>는 믿음?
베드로는 시몬의 마음 중심이 악한 영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가 겉으로는 세례를 받았지만
실제로 예수님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시몬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죄가 무엇일까요?
본문에 나타나기는, 돈으로 성령의 역사도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귀신을 섬기는 자들의 행태를 보면,
전부 돈을 가지고 귀신을 사는 것입니다.
돈(제물)을 줘서, 귀신을 내 구미에 맞게, 내 마음대로 부리려 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내가 더 큰 것이지요. 돈을 주고 귀신을 부리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을 대접하는 자를 너무너무 싫어하십니다.
지독한 우상숭배하는 식으로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죄입니다.
시몬에게는 돈이 하나님 보다 더 컸습니다.
곧 ‘돈이면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고, 교회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무서운 죄입니다.
하나님을 귀신 섬기 듯 하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너는 네 돈과 함께 망하리라고 극언을 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마음에도, 돈을 하나님 보다 더 크게 보는 유혹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돈이 있어야 대접받아.”
“교회 부흥도 돈이 있어야 돼.”하는 말을
부지불식간에 내 뱉는 일은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돈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맞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돈 보다 못하게 생각하고
돈을 하나님 보다 위에다 두고 있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몬이 그랬습니다.
영어에 simony라는 성직매매라는 단어가 있는데,
시몬이라는 이름으로부터 유래한 말입니다.
중세에는 성직자가 많은 부귀와 권세를 누릴 수 있어서
돈으로 성직을 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현대 교회에서 돈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려고 하는 것에
가장 많이 해당되는 것은 교회의 직분을 돈으로 사려고 하는 것일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택한 사람을 선거를 통해 세우기도 하는데,
그 선거에서 돈을 쓰는 것은 결국 성직매매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를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실상은 악령에 사로잡힌 시몬
베드로는 시몬이 겉으로는 하나님의 귀한 은혜인 성령을 간구하는 것 같지만,
그 마음 중심은 오랜 마술사 생활로 인하여 악령에 사로잡힌 상태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8:21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8:23
악한 영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는 상태에서도 세례를 받을 수 있고,
성령 받기를 사모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두렵게 하는 일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마술사 시몬에게 있었던 마음의 실체를 깨달아서
우리도 이와 같은 반열에 서지 않게 되기를 원합니다.
◑2. 내면적 신앙의 진정성은 없어도.. 돈으로 거창해지고 싶었던 시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체험, 성령의 능력을 구합니다.
그런 성도일수록 마술사 시몬의 악독한 마음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몬의 악독한 마음이 무엇입니까? 곧 하나님은 마음에 두기 싫어하면서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기적은 간절히 원하는 태도입니다.
그런 외적 능력을 통해서, 자기가 높아지고 존경받아 보겠다는 의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목적이 고린도후서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고후6:16-18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더 나아가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며 영원한 언약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성령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오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회복인 것입니다.
마음의 진정성은 없지만, 교회의 사역이 좋아 보입니다. 명예스러워 보입니다.
하나님을, 자기 돈으로 움직이려고 하는 마음을 어떻게 가질 수가 있지요?
사람들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롬1:28
그러면서도 교회에서 지도자 행세는 하고 싶어 합니다...
▲교회에서, 돈으로 존경을 사고 싶습니다. (이하 삽입)
혹자는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작은 돈으로, 가장 단 시간에,
가장 존경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이 교회>라고 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교회 직분자들이 받는 그런 명예/존경을 받으려면.. 어쩌면 평생가도 불가능합니다.
(죄송하지만 )영세자영업/밑바닥 일 하시는 분들은, 평생 지내도 존경 못 받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약 몇 년 동안만 성실히 하면..
무슨 회장/총무/위원장 하면서 존경 받기가 쉽습니다. (이런 분들 비난 의도 아님)
그게 너무 좋아보여서,
돈만 들여서,
자기 마음에는 아무 신앙적인 진정성 없이
교회에서 권사/장로/더 이상도 얼마든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학교도 잘 안 다니면서, 돈 들여서 명예로 신학교 졸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음의 진정성이 있냐/없냐는 사람이 속단하기는 어렵고, 주님이 판단하시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돈의 위력’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돈 풀어서, 헌금하고/교인들 식사대접하고/ 필요한 곳에 얼마씩 집어주고,
겉으로 보기에는 ‘참 선량한 사람이다’는 평가를 얻을 수 있겠습니다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너 돈으로 뭘 사려하는구나!’
무서운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것입니다.
더 예를 들면, 농촌교회/선교지 교회를 도와주는 것도.. 순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내 수하에 들어오면 도와주고/내 수하에서 벗어나면 끝!’ 하는 마음이
돈을 쓰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들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돈을 내고, 헌금을 하면서.. give and take식으로 뭘 달라는 것이지요.
절대 거저 줄 수 없습니다. 얼마나 소중한 돈인데 거저 주겠습니까?
그래서 헌금드리면서도, give and take식으로 드리기 쉽습니다...
돈 많은 시몬이, 은과 금도 없는 베드로를 좀 도와주고 싶었겠지요.
그런데 거저 주기는 아까우니까, 대신에 뭘 좀 달라는 식이지요.
마술사 시몬에게는, 베드로의 ‘성령을 임하게 하는 능력’이 좋게 보였던 것입니다.
오늘 나도, 사실은 그런 유혹에 빠지기 쉬우므로,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베드로 사도, 마술사 시몬의 유혹을 이기다
오늘날 연인에게 호감을 얻으려는 사람은, 물질공세를 폅니다.
대대적인 물질공세를 계속 펴면, 결국에는 다 넘어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절대 안 통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절대 안 통하는 물질공세가,
어쩐지 교회지도자들에게는 잘 통할 수 있습니다.
누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교회처럼 로비가 잘 통하는 곳이 없다’고...
워낙 로비 같은 것을 모르는 순진한 분들인지라,
갈비 한 상자만 드려도 껌벅 넘어간다고 좋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마술사 시몬의 유혹에 절대 넘어가지 않는,
가난한 베드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뭐든지 주는 것이 좋다고, 넙죽 넙죽 받아 넣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 더 읽으실 분 ...............................................
▲회개하지 않는 마술사 시몬
베드로가, 마술사 시몬에게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8:22
명하였는데, 본문 어디에도 시몬이 회개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시몬이 정말 초신자라 잘 몰라서 그런 실수를 한 것이라면
바로 무릎을 꿇고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문제는, 별 문제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시몬은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라고만 했습니다.
시몬은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경에는 마술사 시몬의 이야기는 더 이상 안 나오지만,
다른 역사서를 참고하면, 시몬은 많은 사람을 미혹하는 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시몬이라는 이름이 우연히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당시 누구나 ‘아, 그 시몬’하고 알고 있었던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 죄, 복된 회개
★ 촛대가 바울에게로 옮겨진 사연 /행8:14-25/ 이재철목사
2015-07-26 17:59:37
땅 끝까지 복음 전하는 지상명령의 수행을
적어도 초대교회가 태동할 그 당시에는(행1~10장)
12사도들이 그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은 바울을 택하시게 되는 사연과 그 교훈!
▲복음을 받은 사마리아 성
스데반의 순교로 촉발된 유대교의 대 박해를 피해서
많은 교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서 각처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흩어진 크리스천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들 가운데,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찾아가서, 그 이방 도시에 복음을 전했다.
사마리아 성 사람들은,
빌립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
사마리아 성에는, 생명의 역사가 충만했고, 온 성 안에 기쁨이 샘솟았다.
▲두 사도가 안수할 때, 사마리아 교인들이 성령을 받다
유대인이 짐승처럼 간주하는 사마리아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았다는 놀라운 소문은
바로 그 시간까지도 예루살렘을 고수하고 있던 사도들에게도 전해졌다.
사도들은 반신반의 하면서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서
베드로와 요한 사도를 사마리아 성 현장에 급파했다. 행8:14
두 사도는, 모든 소문이 사실임을, 자신들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또한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기는 했지만
그들 가운데 아직 아무도 성령님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래서 두 사도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드렸고,
그와 동시에 성령님께서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성령님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강림하셨다. 註1)
▲두 사도가 기도할 때, 하필 표적이 나타난 이유는?
왜 성령님의 특별하신 역사가, 당시 유독 사마리아 성에만 임했는가?
당시에 흩어진 제자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는데,
유독 사마리아 성에만 성령님을 받는 역사가 나타났다.
유독 사마리아 성에만 성령님이 임하신 이유,
즉, 유독 베드로와 요한, 두 사도가 안수한 곳에만 성령님이 임하신 이유는,
바로 <두 사도에게 어떤 표적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굳이 사도들이 사마리아에서 안수 기도 안 해도,
빌립 집사가 전도했으니까, 빌립이 기도할 때도 성령님이 임하실 수도 있었다...
▲깨닫지 못하는 사도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분명히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행1:8
그 지상명령을 망각한 채, 온갖 위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만 꿋꿋이 사수하고 있었다.
아마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는 말씀을 행1:4
너무 과도하게 지킨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니까 약속하신 성령을 받고도,
또 다른 ‘제2탄’ 같은 것을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녹색은 편집자 주)
주님께서는 스데반의 순교로 인해 촉발된 큰 박해로 통해
사도들을 예루살렘 너머로 강제로라도 흩으려고 하셨다.
그러나 그런 일을 겪으면서도, 성도들은 다 흩어져서 복음을 전했지만
사도들은 예루살렘을 사수하는 것만이 참된 믿음의 증거인양
절대로 예루살렘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행8:1
마침내 주님께서는 사마리아 성을 복음화 시키신 후에
그곳으로 두 사도를 보내어, 그들이 안수 기도할 때
성령님이 임하시는 가시(可視)적 표적이 이루어지도록 특별히 역사하셨다.
*‘가시적’의 근거 → 행8:18의 “보고”
그 표적을 통해 두 사도들은,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에게도 성령님께서 강림하신다는 사실을,
그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분명히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마리아에서 그 특별한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한 사도들은
사마리아의 경험을 발판삼아
자신들의 사역의 방향을 이방세계로 돌려야 했었다.
하지만 행8:25에 보면
두 사도는 그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들이 한 것이라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위치한 사마리아의 마을들에서
복음을 전한 것뿐이었다.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행8:25
사도들은, 사마리아 성의 체험을 접촉점으로 해서
행1:8절 말씀에 순종해서 이방세계로 계속 나아가야한다는 생각은
신기하게도 없었다. 오직 예루살렘밖에 몰랐다.
그런데 주님이 굳이 사도들을, 먼 예루살렘으로부터 사마리아로 부르시고,
그들이 안수할 때 성령님이 임하시는 표적을 보여주시기까지 하신 것은,
그 접촉점을 경험삼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러 나아가기를 원하시는 특별한 ‘성령의 인도’로 보인다.
하지만 사도들은 주님께서 주신 기회인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바울 선택의 불가피성 (이 설교문의 주제 ★)
그래서 우리는, 그런 안타까운 사도행전 8장에 바로 이어서는 9장에서
주님께서 바울을 이방인을 위한 당신의 도구로 선택하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주님께서는 이 사건 이후에도,
사도들에게 계속 몇 차례 ‘기회’를 더 주셨다.
*예를 들면 가이사랴의 백부장 고넬료의 회심사건, 행10장.
그렇지만 사도들은 끝내 그 ‘기회’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그것이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한계였을까?
*관련글 :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 http://blog.daum.net/ygbhygbh/8808502
그래서 사도행전 후반부부터는 사도행전의 초점이
‘히브리파 유대인’인 12사도들을 떠나
아예 ‘헬라파 유대인’인 바울에게만 집중된다.
만약에 베드로를 위시한 사도들이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셨던 사마리아 성의 ‘기회’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았더라면,
그래서 땅끝까지 나아가는 ‘지상명령’에 순종했더라면
사도행전의 내용은, 지금 우리가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촛대는 옮겨질 수 있다.
사도행전에서 우리가 얻게 되는 가장 큰 교훈 중의 하나는
주님께서 당신의 직계 제자들이었던 12사도들에게
‘이방선교의 촛대’를 맡겨 주셨지만,
그러나 그 이방 선교의 촛대는
12사도들보다 훨씬 뒤에 부르심을 받은 바울에게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계2:4~5절은 에베소 교회에 대한 주님의 질책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2:4~5
주님께서는 당신의 특별한 섭리와 목적을 위해서
특별히 선택하신 사람들에게 당신의 촛대를 맡기신다.
그러나 촛대를 맡은 자가, 주님의 촛대를 맡은 것을 자랑만 할뿐
주님의 뜻을 행하려 하지 않을 때는
주님은, 그 촛대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신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이 시대의 특별한 시대적 사명을 위해
하나님은 개인을 부르시고, 교회도 부르신다.
그러나 그 사명을 깨닫지 못하고 유기, 방치할 때
하나님은 그 촛대를 다른 이에게 옮기신다.
이스라엘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결국은 구원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쓰임 받는 도구(촛대)들은... 바꿔지고, 옮겨질 수 있다.
오늘날 '십자가의 복음'을 똑바로 전하지 않고
정반대 개념인 '성공의 복음, 번영의 복음'을 계속 전하다가는
하나님께서 참고 참으시다가는, 결국에는 촛대를 옮기실 것이다. ★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에4:14
註1)
시몬이 사도들이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행8:18
→이 기록은, 눈에 안 보이는 마음속으로 성령 받음이 아닌,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가시적인) 역사가 나타났음을 뜻한다.
오순절파는 이것을 ‘방언’으로 본다.
왜냐하면 행2장, 행10:45~46의 고넬료의 집, 행19:6의 에베소에도
성령이 임할 때 방언이 반드시 동반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8:17에 사마리아 성에서도 그들이 성령을 받았는데,
방언을 받았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성경에 없으나,
마술사 시몬이 뭘 ‘보았다’고 했으니, 행8:18
아마 그것이 성령 받은 사람들이 방언한 것을 보았다고 본다
사마리아에 복음이 들어가다 /행8:14-25/ 하용조 목사
2015-05-25 08:17:16
사도행전의 핵심적 구절은 1:8절입니다. 같이 외워봅시다. ‘ -- ’
역사란 사도행전 1:8절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28장은 바로 사도행전 1장 8절에 의해서 결정이 됩니다. 복음이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서 시작이 되어 제자들은 그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능력을 얻습니다.
성령을 받자마자 그들은 이상한 말을하기 시작했고, 밖으로 뛰어 나갔고, 예수그리스도를 선포하기 시박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복음이 편만하게 전파되었습니다. 120명, 3천명, 5천명, 수를 셀수 없는 사람이 모이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다 예루살렘을 중심해서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첫째 예루살렘과, 이것이 1장 부터 7장까지의 내용입니다.
온유다와 사마리아와, 그것이 오늘부터 생각하게되는 8장 부터 12장까지에 온유다와 사마리ㅏ에 전해진 복음의 이야기 입니다.
땅 끝까지, 13장 부터 28장까지의 내용이 사도 바울을 통해서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그런 이야기 입니다.
여러분의 생애도 사도행전 1:8에 의해서 결정이 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먼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주변에 있는 가까운 친척들과 이웃들과 여러분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싫어하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그뿐만아니라 여러분이 알지못하는 친척도 친구도 이웃도 아닌데 여러분이 전혀 예기치 못했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우리 한국적으로 이야기 하면 성령이 임하면 우리나라가 복을 받습니다. 이복은 사마리아와 같은 일본과 주변국가에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합니다.
우리 백년사에 이제는 일본과 중국을 뛰어 넘어서 놀랍게도 한국의 선교사들이 구쏘련지역과, 모슬렘 지역과,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지역, 이스라엘까지 눈물을 흘리며 헌신하는 이런 일들이 생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임하면 성령이 임하면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일들이 다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먼저 자기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그리고 자기 주면 사람들을 변화시키는데, 그 주변에는 내가 친한 유대인도 있고, 친하지 않은 사마리아도 있습니다. 원수처럼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땅끝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 세계에도 나를 통한 성령의 역사들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할 때는 형식과 전통과 제도와 법들을 다 초월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제일 놀라는 사람은 자기자신입니다. 성령의 세례가 내게 임하면 내가 생각했던 신앙의 틀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 자기가 생각하는 신앙의 틀이 있습니다.
장로교회에서 자랐다든지, 순복음에서 자랐다든지, 침례교회에서 자랐다든지, 다 신앙의 자기의 전통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유주의적인 신아의 배경에서 살아 온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배경에서 자라났던지 간에 성령이 임하면 자기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가치관, 자기의 성격, 자기의 이상 이런 것들이 유감스럽게도 다 깨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자기가 원하지 않는곳에 가게 됩니다. 심지어 원수에게까지 가게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이데오로기를 초월합니다. 성령은 지역을 초월합니다. 성령은 인간관계를 초월합니다. 성령은 교파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장 어리석은것가운데 하나가 교파안으로 제한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선교단체를 초월합니다. 성령을 받고 선교단체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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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의 선교단체가 최고인줄 압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그 선교단체를 초월합니다. 성령님은 선교사를 초월합니다. 이상합니다. 자기가 성령을 받으면 선교사로 갑니다. 그것이 최고의 하나님의 뜻인줄아는데 하나님의 뜻은 그것보다 더 초월해계십니다. 그래서 아시아로 갈려 할때 하나님이 못가게하시고 마게도냐로 거게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제일 놀란사람은 베드로 였습니다. 외냐하면 복음은 예루살렘 중심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복음은 유대인중심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방인에게는 복음이 갈것이라고 상상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앞에 보자기가 하나 내려온 것입니다.
구약에서 더러워서 먹을수 없었던 그런 음식을 먹으라는 것입이다. 그래서 아주 용감합니다. 하나님을 야단칩니다. 이더러운 것을 날보고 어찌 먹으라고 하느냐고 이야기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야단 잘 칩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그렇게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막 야단칩니다.
그래서 농담이 있습니다. 천국에서 예수님과 성도들과 얘기를 하는데 한사람이 죽어서 옵니다. 예수님이 쉿 조심해라 저기 고려파가 온다. 그런 농담이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하나님은 고넬료를 만나게 하십니다. 베드로의 전통적인 생각, 베드로의 가치관, 그의 문화적인 배경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깨끗하다고 한것을 왜 네가 더럽다고 하느냐. 내가 인정을 하는데 왜 네가 제한을 하느냐.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 너무나 많은 제한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너무나 제한을 하는 것이빈다. 하나님은 우주의 하나님이십니다. 대한민국의 하나님 만이 아니십니다. 나만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선인에게 비도 내리시고 악인에게 비도 내리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놀라운 것입니다.
사도들은 성령을 받고 나서도 복음이란 유대인중심, 예루살렘중심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14절을 보시면 성령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14 ‘ -- ’ 첫째 여기서 성령님은 예루살렘을 뛰어 넘어서 사마리아를 뚫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됩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라아도 말씀을 받았다함을 듣고, 이 말의 뜻은 사마리아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안갈줄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하나님이 버릴줄로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저 사람은 버렸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관심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나를 버렸을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제일 관심을 가진다는 뜻입니다.
‘사마리아도 복음이 전해졌다는 말씀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냈다’ 그 중간에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몇가지 내용이 빠져 있습니다. ‘깜짝 놀랐다’는 그런 말이 빠져있습니다. ‘쇼크를 먹었다’ ‘당황했다’ 그런 말이 빠져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당황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나님이 갑자기 나에게 엄청난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자기가 살고 있는 정상적인 상황에서 무언가 더해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상적인 나의 삶에 무엇을 더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내 뿌리를 흐트러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의 도덕과 여러분의 정의감과 여러분의 선행에다가 하나님의 정의가 하나 더 붙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정의 근본부터 뒤 흔들어 놓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근본적인 가치관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으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의 도덕은 프러스 알파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뒤집어 놓는 것입니다.
성령이 그렇게 빠르고 강력하게 역사할줄 미쳐몰랐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은 우리가 싫어하는 곳에도 가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역을 초월합니다. 인종을 초월합니다. 이데오로기를 초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막힌 담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성령을 정말의지하고 체험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우주적인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님을 제한하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지역을 제한하지 않게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해외선교하려면 우리 민족부터 전도하지, 하나님 안에는 우리민족 다른 민족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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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시켜보면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자기 밖에 기도 할줄 모릅니다. 처음 기도하면, 남을 위해서 기도 할수가 없습니다. 기도를 조금더하면 남을 위해서 기도 합니다.
자기 식구를 위해서 기도 합니다. 자기 부인, 자기 자식, 친척, 좀더 기도가 넓어지면 자기 교회 식구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기도가 좀더 넓어지면 민족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나라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 할수 있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느껴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정말 이북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의 폭이 굉장히 넓은 사람입니다. 그래도 어떻습니까? 자기 민족입니다. 자기와 관계 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나와 상관없는 민족, 나와 상관없는 백성,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 사람이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에, 지옥간다는 그 생각때문에, 그렇게 눈물을 흘릴수 있는 사람, 이사람 진짜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역사란 우리의 고정관념과 상식과 전통의 틀을 뛰어 넘는다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14절에서 보면 또한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을때 사도들이 즉시 응답했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사도와 제자들 그당시의 최고의 지도자 급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정도의 사람들이 갔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중요한 사건에는 중요한 사람을 보냅니다. 덜 중요한 사건에는 덜 중요한 사람을 보내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모든 사도들을 대표해서 이 문제를 알아보려고 갔다는 것입니다. 갔는데 한달 있다가 가거나 생각해보고 간것이 아니라 즉시 갔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즉각적인 응답이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자기의 한계를 뛰어 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면 즉각적인 반응을 합니다. 살아있는 교회란 즉각적인 반응을 할수 있는 교회입니다.
죽은 교회란 반응이 늦는 교회이거나 없는 교회입니다. 아무리 성령님께서 역사를해도 죽었기 때문에, 비만증에 걸려있기 때문에, 도저히 일어날수 없도록 약해졌기 때문에 반응을 할수 없는 것입니다. 몸이란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울고 웃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반응을 하는 몸은 죽은 시체만이 반응을 할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이 떠난 전통적인 교회는 반응이 없습니다. 전톤에 얽매여 있습니다. 선배들이 그렇게 해왔기때문에 그렇게 해야한다는 것이빈다. 헌법에 얽매여 있습니다.
법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에 절대로 헌법을 벗어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하시고저하는 성령의 일을가지고 의논할때 토론을 굉장히 많이 합니다. 그리고 몇달을 지나갑니다. 그리고 고민하다가 결국하지 않습니다. 전통을 살리기 위해서, 전통적 가치관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역사보다 그것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무엇인가 결정했을 때에는 이미 때가 늦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성령이 임하시면 즉각적인 반응을 할수 있게되기를 바랍니다. 주저하지 마십시요. 생각하면 못할일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못할일이 많습니다. 자녀교육, 직업, 이런것을 생각하니까 복잡합니다. 지금 돌아가실 부모님이 계신데 장례식은 치루고 가야 할것이 아닌가. 내가 부양할 가족들이 있는데, 이런 저런 것을 다 생각한면 40, 50, 60이 되어도 못떠납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움직일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어떤 사람들은 그런 모든 것들이 있지만, 눈을 딱 감고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어떤일을 하고자 할때 교회는 눈을 감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비 합리적인것 같고 여러가지 문제가 만은 것 갔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해야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해야합니다. 그때만 최고의 결과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좋아 생각하는 것들은 최악을 만들어 놓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최선을 만들어 놓습니다. 여러분이 인간적인 주판을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게산하는 것은 언제나 엉터리입니다. 하나님이 계산하시는 것은 언제나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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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은 사마리아가 복음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주저하지 않고, 즉시 베드로와 요한을 파송했습니다. 여러분의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주저하지 말고 즉각 반응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즉각 반응을 했습니다. 그리고 즉각 사마리아로 갔습니다. 사마리아로 가서 한 일이 무엇입니까? 15절 입니다.
15 ‘ -- ’ 그들이 한 최초의 일은 우리가 셍각한 것 보다는 좀다른 이외의 것이 었습니다. 성령 받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입니다. 외 이런 일들이 제일 먼저해야하는 일일까요. 간단합니다.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중요한 일을 결정할때 사람이 생각해서 중요한 것이 있고 하나님이 생각해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우선순위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해야합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좋은일이라고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해야합니다. 좋은 일도 다 포기해야 합니다. 외냐하면 내가 선택하며 내가 할수 있는일은 제한되어 있기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해야할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가 우선순위로 해야 할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해외 선교입니다. 해외선교를 뚫으면 국내 선교가 됩니다. 그러나 국내 선교를 뚫으면 해외선교다 뚫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큰것을 결정한면 작은 것은 쉽게 됩니다. 특별히 우리교회에 명령하신 것은 해외 선교입니다. 그래서 이 일에 헌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그들에게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은 이 사람들에게 성령의 세례를 받도록 기도하라는 것이 었습니다.
그 이유가 16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16 ‘ -- ’ 여기서 두가지 세례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구원을 받았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세례를 의미 합니다.
빌립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가리켜 우리는 ‘유앙게리온’ 이라고 말합니다. 전파 한다는 것을 ‘케루소’ 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떠나 갔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중풍병자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사람들은 뒤집어 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물세례를 주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믿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조금더 강조를 하면 구원의 확신을 가졌다 이런 말을 합니다. 여러분 구원의 확신이 있지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셨지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셨지요, 분명히 나도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기보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성령으로 세례 받은 일이 없었다고 그랬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가지 성령의 세례와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이 차이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는 구원의 세례인 것입니다. 그것은 위치의 변화입니다. 이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옮긴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늘로 옮긴 것입니다. 마귀에서 하나님으로 옮긴 것입니다.
죄인에서 의인으로 바꾸어 진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셍명이 있음을 믿습니다. 여러분이 죽으면 천국으로 바로 갈것을 믿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는 누가 뭐래도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고전 12:3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서는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구우너을 받은 것은 누구의 역사인가?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내가 예수 믿을때 이미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같이 받을수도 있지만 이것이 다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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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귀신도 나갔습니다. 기적도 일어났습니다. 예수가 내안에 계십니다. 나의 주인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세례가 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성령의 세례는 무엇입니까?
구원은 예수님이 나를위하여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다시 승천하셔서 내가 그 분을 믿어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것,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하면 나를 위한 것입니다. 절대로 구원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구원받았다고 다른 사람이 구원받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구원 받았다고 자동적으로 내가 구원 받는 것도 아닙니다. 이 구원은 내 문제 입니다. 내영혼의 개인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우원을 받은 것인데, 그러면 성령께서 기름부어 주시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구원 받은 사람들이 능력있게 기쁘게 즐겁게 충만하게 그리스도를 증할수 있는 능력의 세례인 것입니다.
구언 받았다고 능력이 생겼습니까? 생길수도 있고 안생길 수도 있지요, 다른 것입니다. 위치가 변해졌다고 그 사람이 갑자기 인격의 변화기 온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지만 성령의 기름의 부음을 받아야, 성령이 임하시면 무엇을 받아요?
능력, 능력은 누구를위해서 받는 것입니까? 나를위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나를위해서 받는 것이지만 능력은 내가 봉사하기 위해서 받는 것입니다. 은사인 것입니다. 그분의 능력을 내가 받아서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같이 믿지만 한 사람은 기쁘고 능력있게 전도하는 사람이 있고, 한 사람은 죽었다가 깨어도 전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 믿어요? 예수 믿어요. 전도 할래요 안해요. 못해요. 똑 같이 예수를 믿는데 한 사람은 밤이 새도록 기도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5분 기도하면 할 기도가 없습니다. 똑 같이 찬송을 부르는데 한 사람은 찬송가사 가운데 5절이 나오면 기절을 합니다. 이것을 언제 다 부르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데 또 한 사람은 가사가 짧아서 안타까워해요, 너무 좋아요, 찬송을 불러도 불러도 너무 좋아요, 뛰고 싶어요, 찬양하고 싶어요,
여러분 누가 월급 주어서 전도 합니까?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이지요. 봉사를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이 지요, 해서 좋은 것이 지요, 그 능력을 누가 주었습니까? 여러분 성령으로 능력을 받지 아니하면 이것 못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받지 못하면 전도 못합니다. 성령의 능력 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일 못합니다. 구원은 받을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성령의 세례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믿을 뿐만 아니라 에베소 사람들에게 그런일이 있었습니다. 너희들이 믿을때 성령을 받았느냐? 성령이란 것은 들어 보지도 못했다고 했습니다.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요한의 회개의 세례를 받았다고 그랬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아볼로라고하는 사람은 예수에 대해서 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에 대해서 몰랐습니다. 오늘도 성령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님은 잘 알지만, 육으로 오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잘알지만,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무지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찬송을 부를 힘이 없는 것입니다. 기도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전도할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순교를 합니까? 못합니다. 무섭고 두려워서,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안에 있는 죄와 싸워 이길수가 이씁니까? 이길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이 능력이 나를 사로 잡을때 내가 마귀와 싸워 이기는 것이고, 죄와 싸워 이기는 것이고, 나와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식과 방법과 제도로 될것 같습니까? 안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 받은 교회는 부흥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받는 성도들은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이 놀라운 능력을 받게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기왕 예수 믿을바에는 기쁘게 빋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코꿰어서 믿는 분이 있습니다. 천국을 겨우 가는 분이 있습니다. 안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고통스럽게 가는 것입니다.
한 분은 날개 돋힌듯이 찬양하며 기뻐하며 감사하며 방언하며 예언하며 기적을 베풀며 사랑을 나누어주며 가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 들에게 그런 축복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가 그런교회가 되기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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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셰례가 없다고 구원을 못받았느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생각해보라.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구원 받았을까요 못받았을까요. 물론 받았지요.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가롯유다 빼 놓고는 다 받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하께 먹고 자고 기적을 목격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십자가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도 보았습니다. 목격자 입니다. 그런데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두려움에 사로잡혀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지만 아직도 힘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만 아직도 능력이 없습니다. 죄와 피투성이가 되면서 싸우는 것입니다. 매일 죄와 싸우는 것입니다. 엎치락 뒤치락 이겼다가 졌다가 악을 씁니다.
피투성이가 됩니다. 그러나 해결점이 없는 것입니다. 혹시 ㄱ런 분이 여기 안계십니까? 그런 분은 성령의 세례를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힘으로는 절대 안된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음식을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 음식 먹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네게 분부한 것을 받기 전까지는 떠나지 말라 그랬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오순절 임한 성령이십니다.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였고, 홀연히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들렸고, 성령님의 임재와 충만이 그들에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의 몸을 뚫고 이 성령님이 역사한 것입니다. 나느 오늘 이시간에 그런 역사들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 분은 바로 영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 였습니다. 그것이 내안에 뚫고 들어 올때 그들은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방안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뛰쳐나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뛰쳐나가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머물러 이싸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뛰쳐나가야 합니다. 불을 받은 사람은 그냥 있지를 못합니다. 뛰쳐 나가는 것입니다. 전세계로 뛰쳐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 였습니다.
그들이 구원을 몰라서 예수님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구원이 있다면 이 구원이 능력이 되기위하여, 구원이 이 복음이 전파되기위하여, 우리는 성령님을 의지해야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에 사로 잡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세례입니다.
성령의 세례가 임할때 일반적으로 무슨일이 일어납니까? 방언과 예언과 기적과 표적들이 따라 옵니다. 그분이 내안에 들어 왔는데 어떻게 조용히 몰래 들어 오겠나? 굉장하게 들어 오신다. 땅이 진동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불을 받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방언이 터지기도 합니다. 방언이 없을수도 있습니다. 스데반은 방언이 없었습니다. 한견직 목사님이 방언했다는 말을 못들었습니다. 그분이 성령의 세례 안받은 분일까요? 그렇게 말할수 없지요.
성령의 세례가 임하면 이런 현상들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내가 방언을 못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방언하는 것이 기쁘고 좋습니다. 어떤 이는 다른 사람이 방언한는 것을 아주 기분나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못해도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자기 이성이 동의를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해서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있는 곳에는 역사가 있습니다. 성령님이 계시는 곳에는 팽창함이 있습니다.
어떤 역동성이 있는 것입니다. 정지하지를 않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 결혼하면 애기를 낳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해야 낳는것이 아닙니다. 똑 같습니다. 성령님이 임하면 무식하건 유식하건 누구에게건 기적과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런 일이 정말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너무 기뻐서 밤잠을 못자본 일이 혹시 있습니까? 이정도는 되어야지요. 예수님 때문에 너무 흥분이 되어서 잠이 안와요. 성경을 덮을수가 없어요 너무 재미 있어서. 찬송을 그칠수가 없요 너무 좋아서, 이런 흥분과 이런 감격이 있는 것입니다.
무언가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무식하냐 유식하냐 그런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프리카인인가 아시아인인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일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도 모르고 예수 믿는 것은 불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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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세례들이 나타났습니다.
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7 ‘ -- ’ 언제 성령의 세례가 임했습니까? 안수할때. 누가? 사도가.
성령의 세례는 언제 임하는가? 안수기도할때다. 안수란 말을 빼면 기도할때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면 성령의 세례가 아주 빨리 옵니다. 어떤 경우에는 안수 하면 더빨리 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다 안수 하기를 바랍니다.
안수는 목사님이 하는 것이지 어찌 우리가 합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에게도 안수할 능력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귀신이야 목사님이 쫓지 우리가 어찌 쫓습니까? 아닙니다. ‘믿는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누구든지 귀신을 쫓아낼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할 능력은 목사님에게만 있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전도할 능력은 목사님에게만 있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할 능력은 목사에게만 있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다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전도하십시요, 안수 하삽시요, 기도하십시요, 능력을 행하십시요, 귀신을 쫓으십시요, 병을 고치십시요, 다 여러분에게 주신 축복인 것입니다.
‘안수하매 성령의 세례가 임했다’ 그런데 특별히 신령한 사람이 안수기도 할때 성령의 역사가 빨리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수할 때만 성령의 세례가 임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경우를 보면 10:44에서 고넬료의 집에가서 이런 일을 행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를 했습니다. 이 말을 할때 성령이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임재하셨다 그랬습니다.
정말 충만한 성령의 설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때, 기도할때만, 안수할따만 성령의 세례가 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들을때 성령의 역사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세례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들을때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내 심령의 변화가 오는 것입니다. 말씀이 나의 여혼과 부딪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깨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 저 설교는 나를 위한 설교다. 자꾸 이렇게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 설교는 저 친구를위한 설교다. 우리 부인이 좀 들어야 되는데, 이것은 아닙니다. 정말설교는 내 얘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분은 구역장에게 가서 구역장님 목사님에게 내얘기 했지요. 그런 일이 정말 많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성령이 말씀하시면 자기 이야기 하는것과 같습니다. 자기의 심령을 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때 성령의 세례가 임할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안수할때 성령의 세례가 임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기도와 말씀에 전염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린이 같이 기도하고 성경을 사모하며 말씀을 들을때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과 만나는 것입니다.
성령의 세례가 임하며 방언하고,예언하고, 그런일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런일이 없을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용하게 비둘기처럼 임하는 분이 있습니다. 아부 그 사람은 아무것도 안일어나났는데 굉장한 능력을 가질수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울과 디모데 입니다. 디모데는 믿음의 아들이지요. 디모데에게 기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바울은 넘어지고 깨어지는 것이 많습니다. 디모데 같은 형이 있습니다. 바울 같은 형이 있습니다. 베드로 같은 형이 있습니다. 다 다릅니다. 스데반 같은 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 동일한 형은 아닙니다. 다 은사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그러나 다른 것을 서로 존중할줄 알아야 합니다. 서로 조화를 이룰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와 다르다고 비판해서ㅏ는 안됩니다.
기도원에서 은혜받은 사람들은 전도하면 꼭 기도원에 가자고 합니다. 그것도 꼭 그 기도원에 가야 합니다. 그것도 꼭 그 바위에 가야합니다. 그래야 은혜 받는 답니다. 그런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럴수도 있고 안그럴수도 있는 것입니다.
성경공부에 은혜 받은 사람은 꼭 성경공부하자고 그럽니다. 기도원 그것은 아무 쓸데 없다고, 그런것은 다 교만입니다. 서로 다른 다른 사람의 은사를 인정하고 존경할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은 그 사람은 그 사람의 방법대로 나는 나의 방법대로, 내가 하나님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종합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종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의미에서 우리교회는 교회중의 하나 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역의 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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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분을 우리가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결코 우리가 하나님의 위치에 서서 판단하면 안됩니다.
성령의 세례가 생기면 어떤일이 생깁니까? 사탄이 공격을 합니다.
18-19 ‘ -- ’ 마귀는 우리에게 두가지 방법으로 공격합니다.
첫째는 무식하게, 스데반을 사람들이 돌로 쳐죽이는 것과 같이 공격형으로 전투적으로 공격하는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서운 것은 두번째 공격입니다.
그것은 아주 교활하게 우리가 감당할수 없게 은밀하게 오는 것입니다. 성령을 물질화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을 상품화 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을 세속화 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것입니다. 기가 막힌 것입니다. 쇽크가 오는 것입니다. 땅의 기쁨만 알던 사람이 하늘의 기쁨을 만났을 때 비교할수가 없는 것입니다. 죽고 싶을 정도로 좋은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시몬이 그것을 보고 놀랬습니다. 자기가 왕년에 점을 쳐 보았던 사람이고, 기적을 행했던 사람인데, 이것이 장사가 될것 같아요 딱 보니까? 그래서 시몬이 그것을 돈주고 사자고 그랬습니다.
여기에 성령 사역의 결정적인 위기가 있습니다.
요즘 성령 사역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많습니다. 성령운동이 그렇게 많은데 왜 세상이 안변할까요? 다 성령을 상품화 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불질화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을 세속화 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성령가지고 장사를 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성령을 얘기하면 사람이 구름떼 처럼 사람이 모입니다. 변화가 없습니다. 귀신도 나가고 기적도 일어 납니다. 요란합니다. 세상이 뒤집힐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을 상품화 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물질화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을 세속화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의 성령운동의 비극입니다.
많은 부흥회, 많은 집회, 영계의 거성들 많지요, 기도원 운동들, 다 많은데 왜 우리는 도덕적으로 사화가 더 나빠집니까? 교회가 많은데 세상은 왜 더 타락합니까? 설교가 없습니까? 홍수처럼 많습니다.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 테잎으로 얼마나 많이 들었나? 유명한 목사님의 부흥회 안가 본데가 없다. 그런데 왜 안되나? 왜 안변하나? 여기에 결정적 위기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은사 받은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상품화 한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돈을 주고 사고 파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란 무엇입니까? 성령의 역사는 결국 그리스도의 복음을 능력있게 전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사도 주셨고,축복도 주셨고, 건강도 주셨고, 기적도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역사에는 반드시 선교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을 많이 이야기 하는 분들이 선교를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불로불로는 많이하는데 선교사 안보냅니다. 그것으로 무엇합니까? 다 다른것 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결국 전도하는 것입니다. 선교, 성령의 역사는 무엇해요, 구제 합니다.
우리다 배웠습니다. 성령이 역사하니까 집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도왔습니다. 한국교회가 구제 안합니다. 집만 짓지요, 기도원만 만들지요, 자기 왕국 같은 것은 만들지만, 정말 헌신하고 희생해서 나누어 주지않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 이런일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돕고, 병든자들을 돕고, 그러나 어떤 성령의 사역들을 보면 물질축복, 건간축복, 병고치는 것, 은사 자랑 이런 것들로 꽉찼습니다. 그렇게 해서 무엇하자는 것입니까? 건강해서 무엇하자는 것입니까? 물질축복 받아서 무엇하자는 것입니까? 은사 받아서 무엇하자는 것입니까? 여기에 우리의 맹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성령의 은사를 받았는데 한참 있다가 보면 돈을 갖다줘요, 고마워서, 그런데 한참 보니까 돈이 자꾸 좋아져, 그래서 돈 많이 벌릴쪽에만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쪽에는 일을하지 않아요, 돈이 많이 벌릴쪽에만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돈으로 망하는 것입니다.
돈과 함께 망하는 것입니다. 성공과 함께 망하는 것입니다. 물질과 함께 망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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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사역의 아주 결정적인 위기가 도가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이름으로 돈 벌이 해서는 안됩니다. 성령의 이름으로 돈벌이 해서 안됩니다. 인기를 얻어서도 안됩니다. 성공을 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수단화 되면 안됩니다.
하나님이나 성령님이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광과 예배의 대상이시지 나의 축복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ㅓ무나 많이 하나님이나 예수님이나 성령님을 나의 성취의 대상으로 바꿔 버린데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에 마귀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탄의 속임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몬 이라는 사람은 돈을 주고 안수의 능력을 사고 싶었습니다. 성직을 매매하는 것을 가리쳐 시몬에다가 Y를 붙입니다. SIMONY가 성직매매라는 단어 뜻입니다. 아주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지만 교회를 돈주고 사고 파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흥을 조장하려고 대중 최면을 거는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인위적으로 부흥을 조작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하나님의 진정한 부흥과 착각을 갖도록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귀신 쫒고, 능력을 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열매입니다. 거룩의 열매가 있는가? 희생과 헌신의 열배가 있는가? 성령님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인가? 성령님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주엇다고 말하는 것인가? 어떤 것입닏까? 내가 이익을 보았습니까? 손해를 보았습니까? 여기에 진정한 성령의 사역의 갈림길이 있습니다.
성령 사역의 가장 큰 유혹은 물질과, 세속의 영광과, 섬김과 연관 시켜서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과 빛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 내면의 깊은 세계를 보지 못하게 하는데 있습니다.
물질적인 성령관에는 어떤 결과가 따릅니까?
20 ‘ -- ’ 하나님의 역사나 성령의 역사나 하나님의 교회를 물질적인 것으로 연관 시키고 물질적인 것으로 해석할때는 무슨일이 생기는가? 돈과 함께 망할 지어다. 그것 밖에는 없습니다. 방합니다.
21 ‘ -- ’ 성령을 물질화 상품화 하는 곳에는 이 도와 아무상관이 없습니다. 이 분깃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22 ‘ -- ’ 하나님은 여기에서 우리에게 놀라운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비록 시몬 처럼되었지만 회개하고 주님께 기도하고 돌아오면 용서해 주십니다. 얼마나 고마운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시몬은 이 말을 듣자마자 다음과 같은 요청을 합니다.
24 ‘ -- ’ 시몬은 참순진합니다. 얼마나 귀여운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순진함이 여러분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세례가 얼마나 중요한지, 구원 받은 사람은 능력을 얻어야 합니다. 구원 받은 것으로 다 되었다 생각하지 마십시요.
성령의 세례는 세가지 형태로 옵니다. 하나는 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의 세례가 늦게 오는 수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가 이런 경우입니다. 어떤 경우는 동시적으로 옵니다. 예수를 믿자마자 불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펄쩍 펄쩍 뛰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불세례가 먼저 옵니다. 그리고 고넬료 처럼 나중에 세례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떻게 왔든지 간에 우리에게 두가지가 필요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 받고 구원 받는 동시에, 능력있게 주님을 위해서 살수 있도록, 승리하며 살수 있도록,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여러분에게 있게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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