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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모음/베드로서 설교 모음

베드로후서 3:1 - 7절 설교 모음

by Jessi J 2025.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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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마음을 일깨워/벧후3:1-2/양향모목사

2019-09-04 23:08:25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

 

베드로 사도가 두 편의 편지를 썼습니다.

베드로전서와 베드로후서를 썼는데 그 두 편을 우리가 배우고 있습니다.

베드로사도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이 서신을 쓰게 된 속내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내가 이 두 편지를 쓰는데 이 두 편지로 여러분은 정직하고 순수한 마음을 일깨워서 생각나게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명령들을 기억나게 하고 싶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마음도 진실한 마음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진실해야 정직해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데 마음이 정직하지 못한 상태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참된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더러워진 마음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교회 내에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있어야 할 진리의 말씀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뜻은 간곳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자기의 욕심만 채우고자 하는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습니다.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고집스러운 욕심들만 가득합니다.

 

세상은 거짓이 난무하고 온갖 이기주의가 팽배해서 마음을 놓고 살 수 없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교회 내에는 진실한 마음 정직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의 마음도 일깨워져서 정직한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바른 뜻을 잘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도들을 통해 주신 진리를 바르게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1.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본문 1절 말씀에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먼저 진실한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말에서 진실한 마음이란 거짓이 없이 참되고 바른 마음, 참되고 변하지 아니하는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되고 바르다는 말도 사람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올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말하는 참되고 바른 것과 마음 자체가 세속에 물들어서 악해진 상태에 있는 사람이 말하는 참되고 바른 것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헬라어에서는 이 진실한 마음에서 진실함을 좀 더 강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진실의 어원은 태양 빛에 드러난 섞인 것이 없는 순수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두운 상태에 있을 때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잘 분별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밝은 곳에 그것을 비추어 볼 때 비로소 무엇이 진짜인지 무엇이 가짜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진실한 마음도 죄악된 세상 가운데서 우리끼리 서로 비추어보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빛 되신 우리 예수님 앞으로 나아거서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볼 때 진실을 구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중국에 가서 중국에 사는 우리 조선족들을 만나보니까 다 그러 것은 아니겠지만 거짓말을 참 잘합니다.

차산다고 돈 달라고 해서 새 차 값을 주니까 다른데 다 쓰고 어디서 헌차 잘 굴러가지도 않는 싼 차 한 대 사고 차 샀다고 하고 조금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차 한 대를 산 것 만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마음이 순수함에서 떠나서 변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남의 나라에서 살면서 공산당의 감시를 받으면서 살면서 어려운 세월을 살면서 그들의 마음에 상처가 생기고 변질이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잘 사는 사람들 좋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합니다.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시대의 사람들은 참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일본 사람들에게 압박을 받으면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농사지어서 그들에게 다 빼앗기고 사람대접 받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겨우 해방이 되었지만 혼란스러운 사회였고 또 금방 6.25전쟁이 터져서 군에 가서 싸우고 피난살이 하고 고생들을 많이 했습니다.

한 많은 피난살이 설움도 많아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잣집이요…….” 피난시절 고생을 그린 대표적인 노래일 것입니다.

 

요즘 전우니 뭐니 해서 전쟁을 그린 연속극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적군이 앞에서 총을 쏴대는데 돌격 앞으로 하면 총알이 날라 와도 앞으로 가면서 총을 쏘아야 합니다.

그런데 저처럼 겁이 많은 군인은 바위 뒤에 숨어서 꼼짝도 안 합니다.

그 때의 양심으로 보면 이 사람은 아주 정직하지 못한 나쁜 군인입니다.

 

피난 가서 판자 집에서 겨우 목에 풀칠이나 하면서 사는데 그 때 왜 너만 먹고 나는 안주냐? 이 양심도 없는 놈아 라고 하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부모님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그런 시대를 살면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악하게 되었고 거짓말도 서슴없이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 어려운 환경의 지배를 받고 산 사람들이 정직하고 바른 마음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자신은 정직하다고 말하겠지만 이미 정직한 마음은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부모님 맡에서 그분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살았습니다.

그분들에게 가정교육을 받고 삶의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런 우리의 마음도 순수하게 정직하지는 못합니다.

 

그렇다고 오늘날을 사는 신세대가 정말 정직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더 악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아주 간난아이 때는 순수하겠지만 조금만 크면 정직한 마음이 없어지고 맙니다.

 

아이들이 배속에서부터 배운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바로 떼를 쓰고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지금은 장사꾼들이 돈벌이하기 위해서 우리들을 엄청 속이고 또 나쁜 길로 인도합니다.

전에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같은 것 없이도 잘 살았는데 장사꾼들이 돈벌이 하려고 그런 것 만들어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이나 컴퓨터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핸드폰 아니라 전화가 없는 세상에도 잘 살았는데 핸드폰 때문에 많은 사람 멍청하게 만듭니다.

길을 가면서도 문자 보내고 전화하고 수업시간에도 전화 만지작거리고 잠깐만 없어도 불안해합니다.

 

이런 잘못된 환경 때문에 우리의 마음들이 많은 상처를 받고 비뚤어진 상태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비뚤어진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바른 양심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교회에서 이런 정직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진리는 왜곡되고 바른 신앙을 가지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목사님 하면 참 존경스러워야 되는데 또 바른 진리만을 설교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목사라고 하면서 저렇게 비윤리적인 행동을 할까 왜 목사라고 하면서 저렇게 엉터리로 성격을 가르칠까? 의아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목사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살아 온 배경 때문에 마음에 많은 상처들이 있고 그 상처 때문에 정직한 마음이 훼손되어 있기 때문에 진리를 알지 못하고 바른 목회를 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어릴 때 너무 가난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목사님이 심방을 오시면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해서 대접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형제가 밖에서 목사님 잡수시는 것을 구경합니다.

조금 남기고 가야 우리가 먹을 텐데 마음을 조이면서 기다리는데 동생이 그만 으앙 하면서 울고 나옵니다.

형님아 목사님이 밥에 물 말아 먹었다

옛날 사람들 밥을 다 먹을 때 끝에 밥에 물을 부어서 말아 먹습니다.

깨끗이 밥알 한 톨 남기지 않고 다 먹기 위해서입니다.

 

오냐 나도 목사가 되어서 대접을 잘 받아야지 맛있는 것 다 먹고 살기 위해서 목사가 되어야지 그리고 그 아이가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목사의 마음에는 목사는 잘 대접을 받는 것이라고 입력되어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어렸을 때 목사님이 강단에서 물을 마시는 것을 보고 나도 얼른 목사가 되어서 교인들 앞에서 물 꿀꺽꿀꺽 마셔야지 라고 했다고 합니다.

남들은 다 무릎을 꿇고 예배를 드리는데 목사는 강단에 서서 설교를 하면서 물을 마시는 것이 아주 특별한 권리를 행세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 목사님의 마음속에는 목사는 특권을 가진 사람이야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라는 권위의식이 있습니다.

 

이런 무의식중에 있는 잘못된 마음들 때문에 대접을 받으려고 하고 권위의식을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참된 목회가 무엇인지 모르고 진리에 접근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너무 가난하게 살아서 나 교회에 와서 부자가 좀 되어보고 성공을 좀 해 보아야겠다.

세상에서 받지 못한 대접도 좀 받아보고 좀 잘난 척도 해 보아야 되겠다. 라는 마음들 때문에 진리를 발견하기 전에 바른 신앙생활을 해 보기도 전에 교회를 떠나버립니다.

 

환경 때문에, 어려움 때문에, 헛된 욕망 때문에, 잘못된 교육이나 경험 때문에 비뚤어진 우리의 마음을 정직하게 만드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밝은 햇빛에 비추어 보아서 정말로 바른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2.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역시 1절 말씀에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못된 마음 비뚤어진 마음을 버리고 정직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일깨워서 생각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일깨우다.” 라는 말은 구별하다, 분별하다.” 라는 말과 눈을 뜨게 하다. 자극을 주다.” 라는 말이 합해진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자극을 주어서 눈을 뜨게 해서 올바른 분별력을 갖게 한다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실은 바르지 못한 마음 정지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자신은 바른 사람이다 정직한 사람이다. 라고 착각하고 거기 안주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자극을 주어서 흔들어 깨워서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를 바르게 깨닫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잠에서 깨어나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자신의 생각이 마음이 바르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할 수 있을까요?

 

예배시간 한 시간 자는 것도 깨우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 인생을 깨울 수 있을까요?

 

일주일에 겨우 설교 3-40분 듣는데 거기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변하게 할 수 있을까요?

들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사람을 어떻게 일깨울 수 있을까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어떻게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바뀌게 할 수 있을까요?

 

허황된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어떻게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삶을 사는 사람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외식 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진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바꿀 수 있을 까요?

 

자기만 사랑하고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남을 배려하고 베푸는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세상의 재미만 바라보고 세상의 행복만 바라보고 어떻게 하든지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을 어떻게 세상의 헛됨을 알고 천국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사람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오랜 세월 그렇게 보고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알고 살아온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바꿀 수가 있을까요?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만 이런 기적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셔서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역사해 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처음 설교를 하시면서 우리의 심령의 밭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을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할 때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교만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낮은 자세로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참된 행복이 임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나 자신을 돌아볼 때 정말로 형편이 없는 자임을 깨닫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눈물로 호소할 때 복이 임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부드럽고 따듯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사는 자에게 참된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긍휼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과 연관시켜보면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정직하고 청결한 마음이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마음이 되고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마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를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 참 중요합니다.

서로를 화해시키고 사로를 이해하게 하고 서로를 사랑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참으로 중요합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또 노회일이나 복지협회 일을 하면서 화평케 하는 자가 정말로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단체에 어떤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사실 처음에는 별 것도 아닌 문제가 서로 의사소통이 잘 안 되었거나 중간에 말을 옮기는 사람이 나쁜 말만 옮겨서 서로 오해를 하게 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나쁜 말만 자꾸 하고 옮기는 사람이 있으면 그 가정이나 교회는 늘 분쟁과 미움만 있게 됩니다.

그러나 좋은 말만 하고 좋은 말만 옮기는 사람이 있는 가정이나 교회는 화목한 가정 화목한 교회가 됩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남의 잘못만 보고 지적하는 일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마음을 바꾸어서 칭찬하고 좋게 이야기 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꾸면 정말로 행복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깨끗하고 정결하고 정직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늘 우리의 마음을 일깨우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가까이 가시기를 바랍니다.

 

3.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본문 2절 말씀에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편협 되고 왜곡되어 있는 마음을 일깨워서 정직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그 때서야 하나님의 말씀 속에 기록된 진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나 선지자들을 통해서 우리를 일깨우시는 그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1)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의 참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선지자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하고 오히려 죄를 범하고 타락의 길로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시고 스스로 그 죄의 형벌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선언하시고 그들을 구원할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다는 약속이 거룩한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참 뜻입니다.

 

구약이 우리가 지켜야 할 율법이라고 이해를 한다면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율법과 선지서의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사도들의 서신서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게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세속에 물든 우리의 마음을 일깨워서 깨끗하고 정직한 마음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준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라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옳지 않은 너무 많은 것들을 보고 살아서 우리의 마음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변질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우리의 마음을 일깨워서 정결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져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사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리신 진리를 바르게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그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무릎 꿇고 엎드리니 우릴 겸손케 하소서

악한데서 눈을 돌려 모든 우상 버리오니

깨끗한 손 주옵소서 주님만 높여 드리기 원해

정결한 맘 주옵소서. 주님만 높여 드리기 원해…….

 

 

 

 

먼저 알아야 할 것/벧후3:3-5/양향모목사

2019-09-04 23:08:51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성경도 알아야 하고 교리도 알아야 하고 각종 법규들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진리는 참으로 심오한 것이기 때문에 무엇 한 두 가지 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거기 더 깊은 심오한 진리가 있습니다.

오늘 내가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 같지만 좀 더 알고 보면 나의 신앙이 초보였다는 것을 늘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겸손하게 더 많이 성경을 읽고 더 많이 진리를 깨닫고 더 많이 하나님의 바른 뜻을 알려고 노력을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평생 이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우리는 더 배우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알 수가 없으니까 필수적으로 우선적으로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중요한 것을 알지 못하고 더러는 몰라도 되는 것들만 잔뜩 공부하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기가 쉽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시작하면서 먼저 이것을 알지니라고 하시면서 말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영어성경에서는 이 말씀을 “First of all, you must understand” 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여러분이 꼭 알아야만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것 중에서 제일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몰라도 이것만은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아주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이 세상에서 경건하게 살지 못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재림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말세가 되면 조롱하는 자들이 나와서 자기의 정욕대로 행하면서 재림의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조롱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사는 사람들이 성도들입니다.

성도라면 반드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리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가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필수적으로 꼭 알아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신앙을 확고하게 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올 것이다.

오늘 본문 말씀에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라고 했습니다.

 

말세라는 말은 종말이라는 말과 같이 씁니다.

종말이라는 말을 교리에서 쓸 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때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를 종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초림하신 이후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다 종말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가 가까이 오면 그 때를 말세지말 즉 종말의 끝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세라고 할 때 넓은 의미에서 신약 시대의 모든 시대를 말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좀 좁은 의미에서 이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다 되어가는 말세지말의 시대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되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 신실한 성도들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 세상 끝의 징조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24:9-14)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중에 대부분은 이미 시작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모든 민족들에게 미움을 받기 시작을 했습니다.

불법이 성행하고 사랑이 식어졌습니다.

천국 복음이 이미 온 세계에 전파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베드로후서에서 염려하던 거짓선생들이 많이 일어나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셔서 그렇지 만약에 우리의 행위대로 심판을 하시고자 하신다면 벌써 오셔서 심판을 하고 멸망을 시키셨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보면 정말로 한심하고 노아시대처럼 이 땅에 인생들을 지으셨음을 후회하실 것입니다.

 

이런 말세가 되면 조롱하는 자들이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조롱한다는 것은 깔보고 놀리고 비웃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같잖은 사람으로 여기고 한심한 사람으로 여기면서 깔본다는 것입니다.

 

시인이고 목사님이신 용혜원 목사님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 분의 시를 읽어보면 참 언어의 마술사답게 보통보아서 넘길만한 것들도 아름답게 표현을 해서 감명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뜻한바가 있어서 산 속에 들어가서 성경을 300독을 하시고 기도를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산해서 웃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1년에 강의를 500회 이상 다닌다고 합니다.

이번에 우리 세미나에도 강사로 오셨는데 얼마나 잘 웃기는지 배꼽을 잡았습니다.

성경을 그렇게 많이 읽고 기도를 그렇게 많이 하신 분이 왜 웃기는 분이 되셨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안 그래도 세상 사람들이 우리 기독교를 보고 비웃기 시작을 했는데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왜 웃기는 사람으로 변했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웃기는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강단에서 설교하는 목사님들도 3분에 한 번씩 웃겨야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강단에서 웃기기 시작을 했습니다.

성경이나 신학서적보다는 웃기는 이야기책을 많이 읽는다고 합니다.

 

저도 사실 말주변이나 웃기는 데는 좀 소질이 있는 사람입니다.

저의 평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제가 설교할 때 많이 웃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강단에서 여러분을 웃기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하고 진지한데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을 억지로 웃기기나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진리를 깨닫고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억지로 웃기기는 싫습니다.

 

안 그래도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는데

안 그래도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조롱하기 시작했는데

안 그래도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같잖게 여기기 시작했는데

우리 스스로 웃기기나 하는 사람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조롱할지라도 비웃으며 손가락질 할지라도 우리는 이 복음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이 재림의 신앙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이유이고 목적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우리를 조롱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정욕을 따라 행하고 싶은 것 때문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의 재림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세상을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 됩니다.

또 이 세상의 행복만을 위해서 살아서도 안 됩니다.

철저하게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리면서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고 사는 우리를 조롱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이 세상의 쾌락을 따라서 욕심을 채우면서 살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면 그들은 낭패를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교회가 좋은 줄을 알면서도 오지 않는 이유는 경건하고 바른 삶을 살기 싫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살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밝은 빛 가운데로 나오기 싫어합니다.

자신의 모습이 노출되는 것이 싫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세상 살기도 참 무서운 세상입니다.

여기저기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우리를 감시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핸드폰을 쓰고 신용카드를 쓰고 내비게이션을 쓰고 컴퓨터를 쓰기 때문에 우리 하루하루를 어떻게 사는가를 많이 감시받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려고 하면 그 보다 더 적나라하게 노출이 됩니다.

우리의 앉고 서는 것까지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려면 정말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해야 아무렇게나 자기의 마음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까지도 예수님의 재림만은 별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셔서 우리를 심판하신다는 것 자체를 싫어합니다.

그냥 하늘에 계시면서 복이나 주셔서 이 세상에 잘 살게 해 주셨으면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이 너무나 살기가 좋아져서 예수님이 오실까봐 걱정을 할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면 저렇게 살 수가 없을 것인데 라고 생각이 드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그 복된 소식을 전하는 목사들도 재림을 고대하고 기다리는 삶을 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너무 화려하게 살려고 하고 너무 세상의 것에 집착하고 너무 이 세상에 업적을 남기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생이 나그네이고 여행하는 순례자이니까 많은 짐도 필요 없으니 버리고 가볍게 살라고 하니까 요즘은 여행지가 더 화려하다고 합니다.

사는 집은 별 것 없이 살아도 여행가서는 화려한 호텔에 좋은 콘도에서 쉬기 때문에 나그네 인생도 잘 살아야 한다고 항변합니다.

 

간혹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바꾸기 싫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술 먹지 말라"는 말이 없는데 하면서 술을 마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안식일에 소가 구덩이에 빠지면 그 소를 구하는 것을 먼저 하라고 하셨는데 주일날 중요한 일이 있으면 그 일부터 먼저 하는 것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자신에게 편리하게 말씀을 요리합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 말씀을 바꾸어 보려고 합니다.

 

거짓선생들, 조롱하는 자들의 특징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고치기 싫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킵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하는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은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의 날이고, 멸망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심판이 임하고, 멸망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변명을 하고 부인을 하고 딴 소리를 해도 예수님께서 재림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을 하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멸망시키시는 일은 누구도 막을 수 없고 취소될 수 없는 확실한 일입니다.

 

재림을 준비하고 사는 사람은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고 재림이 없다고 아무렇게나 산 사람은 땅을 치며 통곡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를 비웃던 사람들이 슬피 울며 이를 갈며 후회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2.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고 할 것이다.

본문 4-5절 말씀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재림을 신앙을 가진 성도들을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이야기를 합니다.

주께서 강림을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이 어디에 있느냐고 합니다.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부터 변함이 없이 그대로 있는데 무슨 종말이 오겠느냐고 항변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재림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고 천지가 창조된 것도 말씀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 약속대로 꼭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의 약속은 분명히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재림에 관해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는 예수님의 재림 때 나타날 징조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30절에는 그 일이 꼭 일어날 것이며 땅의 모든 족속들이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천사가 약속하였습니다(1:10-11).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보는데서 하늘로 승천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을 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재림을 말합니다.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사도들도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하여 굳게 믿고 전파하였습니다.(살전 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여기뿐만 아니라 성경의 여러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분명하게 기록된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을 어디 있느냐고 묻는 것은 참 상식 밖의 일입니다.

 

그들은 알면서도 일부러 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재림이 없다고 하는 것은 일부러 알면서도 잊어버리려고 부인을 한다는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이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들의 주장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부인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하기 위해서 나름대로의 이론을 내세웁니다.

세상이 변함이 없이 그대로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많은 조상들이 죽었고 많은 조상들이 새로 태어났고 수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무런 이상이 없이 세상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앞으로도 세상이 멸망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그들의 주장에는 은근히 노아홍수의 심판도 부정을 해 버리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창조한 세상과 지금 이 세상이 똑 같은데 그런 심판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억지일 뿐입니다.

이 세상이 창조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일이기 때문에 이 세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이유는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합니다.

없는 일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은 확실한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말세가 되면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우리를 조롱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재림의 사실을 알면서도 세상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마음대로 살기 위해서 엉터리 학설로 재림을 부인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고 주님이 다시 오시면 믿지 않는 모든 자들을 심판하시고 멸망하실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재림의 신앙을 가지고 재림을 대비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먼저 알아야 할 것 2/벧후3:5-7/양현모목사

2019-09-04 23:09:19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저희 집에 저울이 하나 있습니다.

의사선생님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몸무게를 좀 줄여야 한다고 해서 저울을 하나 샀습니다.

전자저울을 사려고 했는데 좀 비싸서 옛날식 스프링저울을 샀습니다.

그리고 운동을 많이 해서 많이 줄였습니다.

아침마다 저울에 올라가 보면 정확하게 90kg입니다.

제 키에 89kg만 나가면 과체중에 속하기는 하지만 비만은 아니라고 해서 목표치가 89kg입니다.

그런데 항상 저울이 90kg을 가리킵니다.

한번은 목욕탕에 가서 전자저울에 몸무게를 달았더니 93kg가 나갑니다.

우리 집 저울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많이 빠졌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많은 정보들을 접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많은 정보들 가운데 잘 못된 정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럴듯한 통계나 과학적인 근거를 가졌다고 하는 정보들도 통계나 근거 자체가 제공하는 정보의 원리가 잘 못된 것들이 많아서 본의 아니게 속아서 살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거짓정보들의 홍수 속에서 우리의 마음이나 생각도 많이 비뚤어져 있는 것을 봅니다.

우리 자신이 정상적인 마음을 가지고 정상적인 지식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데 우리의 마음 자체가 죄악된 세상에 많이 물들어 있어서 고장 나서 정확한 무게를 측정하지 못하는 저울처럼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미나나 수련회들을 통해서 여러 가지의 지식들을 많이 배웁니다.

인간관계에 관한 것들 세상을 행복하게 사는 비결들 성공하는 방법들을 많이 배웁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을 정 위치에 가 있게 하는 세미나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비뚤어진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방법만 배우지 마음을 바른 위치에 두게 해 주려고 하는 세미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교육을 하고 아무리 많은 정보를 준다고 해도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서 주신 바른 자리에 가 있지 못하면 그런 노력들이 별 소용이 없고 오히려 잔꾀로 세상을 살게 하고 남을 속이면서 세상을 살게 하는 나쁜 효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먼저 알고 마음에 중심에 두고 살아야할 것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이런 예를 들어 설명을 했습니다.

 

왜 신앙생활을 하는지 그 신앙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고 그것이 마음 중심에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를 하게 되고 신앙생활을 바르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바른 마음이 없으면 신앙생활도 바르게 하지 못하고 이단들이 와서 유혹할 때 쉽게 넘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오늘도 우리가 먼저 알고 확실히 마음 중심에 두어야 할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모든 것보다 먼저 확실히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본문 5절 말씀에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늘과 땅과 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하늘과 땅과 물을 비롯해서 세상의 모든 만물들이 그리고 그 만물을 움직이는 질서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습니다.

 

성경말씀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천지가 창조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빛과 어두움을 나누어서 빛을 낮으로 하시고 어두움을 밤으로 나누셨습니다.

 

궁창을 만드시고 물을 궁창아래의 물과 궁창위의 물로 나누시고 궁창을 하늘이라고 하셨습니다.

 

궁창 아래의 물을 한곳으로 모으게 하시고 뭍이 드러나게 하셔서 뭍을 땅이라고 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 것은 이 우주 만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지금도 이 우주 만물의 주인이 되셔서 이 우주만물을 다스려나가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 만물의 창조주가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분명하다면 이 우주에 사는 사람은 아무런 조건이 없이 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교회에 다녀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잘 몰라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해도 어떤 신이든지 신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좀 똑똑해지면서 교만해지기 시작을 했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신세를 지는 일을 싫어하고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합니다.

과학이 발달해가면서 창조주 하나님 보다 자신들이 가진 과학을 신뢰하기 시작을 했고 이제는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 우주만물은 다 저절로 스스로 생긴 것이지 신이 창조하지 않았다고 주장을 합니다.

스티븐 호킹 박사라는 사람이 우주는 신의 창조물이 아니다, 신에 의해 창조되지 않았다라고 그의 책에서 주장했다고 해서 창조론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그 말을 인용하면서 의시대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이론에 의하면 이 우주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빅뱅 즉 우주의 대폭발에 의한 것인데 그 우주의 대폭발이 신이 개입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폭발을 해서 이 우주가 생기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우주가 생기게 된 것이 우주가 스스로 폭발을 해 가지고 큰 덩어리는 태양이 되고 작은 덩어리들이 지구나 달이나 별들이 되었다는 이론입니다.

 

불타는 큰 덩어리가 나는 태양이 되어서 빛을 발할 것이니까 너는 지구가 되어서 생명체들이 살게 해라 이렇게 서로 짜고 이 우주가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거기 우연히 아주 작은 생명체가 생겨났고 그 생명체가 스스로 진화해서 벌레가 되고 새가 되고 짐승이 되고 원숭이가 되고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별별 웃기는 이야기들이 다 나오는 것입니다.

 

우주가 스스로 진화되어서 생겨났다는 사람들의 말을 반박하기 위해서 이런 예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보잉 747기의 부품이 몇 개나 되는지 모르지만 수백만 개는 될 것입니다.

수백만 개의 부품을 모두 분해해서 넓은 벌판에 벌려놓고 수백만 년이 지나면 저절로 조립이 되어 보잉 747기가 생길 수 있을까요?

서로 비슷한 부품들이 우리가 서로 비슷하니까 합쳐보자 해가지고 날개가 되고 바퀴가 되고 엔진이 되고 해서 드디어 비행기가 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우주나 이 우주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은 보잉 747기 보다 더 훨씬 정밀하게 조직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저절로 우연히 생길 수 있는 확률은 절대로 없습니다.

 

호킹이라는 사람이 아이큐가 아무리 높다고 해도 아무리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해도 별 볼 일 없는 인간일 뿐입니다.

자신은 루게릭병을 앓아서 평생 고생하면서 자기 스스로의 문제 하나도 그 병 하나도 스스로 고칠 수 없는 사람이 하나님이 필요 없다. 나 스스로 과학을 연구하여 잘 살 수 있다고 외치는 소리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참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믿는 믿음이 우리 성도가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그런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구태여 교회에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저절로 생긴 세상에 저절로 태어나서 사는 사람들이 누구에게 속박을 당하고 누구의 말에 순종을 하고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면 됩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고 내 마음대로 살다가 내 마음대로 죽는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우리는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이 우주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것도 믿습니다.

그리고 천지 창조하신 그 말씀으로 이 성경도 기록이 되어 있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2.이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을 심판하시는 역사입니다.

본문 6절 말씀에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라고 했습니다.

 

여기 이로 말미암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특별히 물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물에게 명령을 하여 하늘도 만드시고 땅도 만드신 그 말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물에게 내리셨던 그 명령으로 노아시대에 물로 이 세상을 심판하셨음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노아시대 때 사람들이 얼마나 악했던지 이 세상에 인간을 지으셨음을 한탄하시고 노아와 그 가족만을 남기고 모두 물로 심판을 하셔서 멸망시키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런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다면 우리도 잘못했을 때 그런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역사 속에 이런 사실이 있었다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큰 낭패를 당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노아홍수와 같은 하나님의 심판은 없는 것이라고 우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일단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을 때 목소리 큰 사람들이 이깁니다.

그래서 자기가 실수를 해서 사고를 내고도 오히려 큰 소리를 칩니다.

또 요즘은 여론이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진리는 목소리가 크다고 변하고 많은 사람들이 지지한다고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신론자들이 과학을 빙자해서 아무리 아니라고 항변을 해도

또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노아홍수와 같은 심판은 없다고 해도 그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시행하신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분명히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누가 뭐라고 해도 노아시대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말씀이니까 무조건 믿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적으로 연구를 한다고 해도 노아홍수의 사건은 우리의 역사 속에 꼭 있었던 사건이고 이 사건이 없으면 오히려 이해되지 않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런 생각이 없이 쓰고 있는 석탄이나 석유가 어떻게 땅 속에 그렇게 많이 매장이 되어 있는지를 알고 쓰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석탄이나 석유는 식물이나 동물들이 한꺼번에 땅에 매장이 되어서 갑자기 많은 흙이 그 위를 덮어서 압력을 가할 때 생겨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은 식물들이 동물들이 한꺼번에 갑자가 매장이 되어서 석탄이 되고 석유가 되었는지 설명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답변이 노아홍수로 답변이 된다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이 세상이 물에 덮이고 화산이 폭발하고 땅이 뒤집히는 현상이 그 때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노아홍수를 증명하는 과학적인 사실들을 많이 읽었지만 지금 다 말씀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과학자가 아니라서 설명을 해도 잘 알아듣지도 못하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성경이 미신을 믿는 것처럼 전설 따라 삼천리에 나오는 이야기들처럼 그렇게 확실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를 가진 합리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기는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구원의 역사를 기록한 구속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 편에서 보면 성경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심판하시는 심판의 기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창조되고 역사가 시작된 그 때부터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기록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타락한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셔서 낙원에서 쫓아내셨고 그들에게 벌을 주셨습니다.

노아홍수의 심판 바벨탑의 심판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서부터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이 성경에 계속해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인간들 못됐는지 그렇게 벌을 내리면 좀 바르게 하는 것처럼 하다가 금방 잊어버리고 또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벌을 내리면 또 울고불고 회개하고 그러다가 바로 타락하고 그것이 구약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을 받은 극소수의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죄를 알고 회개하고 죄 용서를 받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그 십자가를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3.지금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 위해서 보존되고 있습니다.

본문 7절 말씀에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아직 이렇게 심판을 받지 않고 존재해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심판을 멈추셨기 때문이 아니라 다시 심판하시기 위해서 그대로 보존하여 두신 것입니다.

 

동일한 말씀으로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 동일한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또 이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신 그 동일한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이 세상을 심판하신 후에 다시는 물로 이 세상을 심판하시지 않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징표로 무지개를 만들어 보여주셨습니다.

비가 많이 온 후에 무지개가 보이는 것은 지금 내린 비는 심판의 비가 아니라는 표시입니다.

 

우리 인간의 삶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시기 위한 비이기 때문입니다.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우리에게 깨끗한 물을 주시기 위해서 비가 내리는 것이지 심판은 아닙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불로 이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말씀이 성경에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요엘 2:30-31)라고 하셨습니다.

 

그 불이 핵폭탄과 같이 우리 인간들이 스스로 만든 무기일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그런 것을 이용하시지 않으셔도 더 큰 일을 하실 수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렇게 조용히 이 우주가 운행이 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잘 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기 때문이고 그 날을 준비하고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를 보존하시지 않으신다고 한다면 내일이라도 하나님의 심판이 없이도 우리 스스로 자멸할 수 있습니다.

환경이 너무나 많이 오염이 되어 있어서 스스로 자멸의 길을 가고 있고 우리가 만든 무기들 때문에 그 무기가 실수로 하나라도 터지면 서로 치고 받고 자멸에 이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말씀이 거짓말이 되기 때문에 그 때까지 자폭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계실 뿐입니다.

 

우리가 지금 세상을 보면 악한 사람들이 더 잘 살고 나쁜 사람들이 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교회까지도 도덕적으로 타락한 목사가 담임하는 교회가 더 부흥을 하고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교회가,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외치는 교회가 초라한 교회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부흥이 부흥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께서 주신 그 길로 가는 것이 참된 부흥의 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심판을 볼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 심판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반드시 먼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바르게 알고 믿어야 합니다.

그 창조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고 우리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노아홍수가 이 세상의 역사속이 있었던 사실임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노아홍수 뿐만 아니라 성경의 많은 기록들이 대부분 타락한 인간의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이 아직 이렇게 보존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위해서라는 사실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심판에서 구원을 받은 우리가 제일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깨어 기억합시다 /벧후3:1-7/배진기목사

2019-07-05 23:45:05

 

베드로후서3:1-7

 

(1)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2)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

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3)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

며 조롱하여

(4)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

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

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

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중에 머리이며 초대교회 수장이었던 베드로가 흩어져

있는 핍박으로 인해 고난당하는 디아스포라 성도들에게 AD.64년경 로마에서

위로와 격려의 편지로 보낸 서신이 베드로전서입니다. 베드로는 전서에서 고난

이라는 단어를 8개의 다른 표현으로 16번이나 언급하면서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산 소망을 강조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전서를 보내고 얼마 안 있어서 네로 황제에 의해 감옥에 갇혔고 아

마 감옥 속에서 AD67년경 후서를 기록하여 교회들에게 보낸 것으로 보여집니

. 베드로는 후서에서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경고를 전했고 재림에 대해 준비

하라고 교훈하였습니다.

 

유언과 같이 보낸 편지가 베드로후서입니다. 그는 베드로후서를 보내고 AD.68

년에 로마에서 네로황제에 의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1-12에서 가장 먼저 성도들에게 산 소망의 성도로서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면서 영혼의 구원을 주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하늘에 간직한 유업을 소망으로 바라보며

살라고 위로와 격려를 주었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13-25에서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받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성도가 되기 위하여 살아있고 항상 있

는 말씀을 붙들고 거룩한 경건의 삶을 살라고 교훈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1-10에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

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여

신령한 모퉁이돌 되신 예수님과 함께 신령한 집을 지어 신령한 예배를 드리는

신령한 제사장이 되기를 사모하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정의를 내려준 성도의 정체성은 아래와 같습니다.

신분 / 택하신 족속 직분 / 왕같은 제사장

위치 / 거룩한 나라 소유권 / 하나님의 소유

사명 / 덕을 선포함 특권 / 하나님의 백성

보장 / 긍휼을 얻고 누리는 자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11-25에서 나그네 길을 가는 성도들에게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기 위해 자신과의 영적인 싸움을 잘 싸우므로 참 자유인으로 승리하기

위하여 스스로 육신을 입으시고 모든 것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아

성숙한 자유인의 삶을 살라고 교훈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3:1-22에서 정체성이 분명한 건강한 성도의 삶을 위하여

건강한 가정생활을 이루라고 권면하며 이웃과 한 마음으로 형제사랑을 이루며

선을 행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는 삶을 살라고 권면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4:1-11에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갑옷을 삼고 하나님의 뜻

을 따라 선한 청지기로서 남은 때를 살라고 하며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우므로

근신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라고 교훈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4:12-19에서 불시험 당할 때에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

려 고난의 참여자가 되어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쁘게 시험을 통과하라고

격려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도키마죠의 시험으로 Trial,

Training, Test 등의 시험이 있지만 하나님은 페이라죠의 시험인 Temptation

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5:1-10에서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은혜를 감사하

여 자원하는 기꺼움으로 섬기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봉사하며 고난을 이기므로

하나님이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

게 하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1:1-21에서 보배로운 믿음으로 성도된 우리가 예수 그리

스도를 체험적으로 앎으로 신의 성품에 참여하기 위하여 예언의 말씀을 잘 분

별할 것을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2:1-22에서 마지막 때에 강하게 역사하는 거짓 선생과 거

짓 선지자들의 거짓 교훈을 단호히 물리치고 보배로운 믿음을 지킬 것을 교훈

하였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오늘의 본문 베드로후서 3:1-7에서 이제까지의 교훈들을 기억하

고 깨어 있어서 항상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서 주어진 말씀들을 항상 기억하라

고 교훈하였습니다. “(3:1)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우리는 항상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야 합니다.

주여 진실하게 하소서 오늘 하루 하루 순간을 주가 주신 힘으로 승리하기 원하

네 주여 나를 진실하게 하소서

 

우리는 성령님께서 우리의 눈과 귀를 항상 열어 주사 진실의 마음을 일깨워

주시기를 기도하며 항상 반구저기(反求諸己)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본문 2절에서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고 언급 한 것처럼 자신

을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

암아 명하신 주님의 말씀 안에 바르게 세워가며 우리의 책임을 다하는 반구저

(反求諸己)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말세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본문 3절 이하에서 예고

하고 지적한 것처럼 사방에서 조롱하는 자들이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

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며 교회와 성도들을 조롱하고 복

음전파를 방해하며 핍박하는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차별 금지법과 같은

악법을 내세워 복음전파를 방해하며 사회 분위기를 무분별하게 흐리고 있습니

. 이와같이 어둠의 세력이 우리를 흔들 때에 우리는 넘어가지 말고 깨어서 주

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깨어 기도하며 주님의 약속을 기

억하고 기다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의 4분의 1이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말씀이고, 성경 25절 당 1절이 재림

에 관한 말씀입니다. 주의 재림은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의 최후

완성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않는 사람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요, 크리스

천이라고 부를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림에 대한 교훈들을 깨어서 기

억해야 합니다.

 

1. 예수님 자신이 다시 오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수 차례에 걸쳐서 예수님 자신이 다시 오신다고 직간접적으로 말씀하

셨습니다.

(마태복음 10: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

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

(마태복음 24:44 / 누가복음 12:40)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

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요한복음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한복음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

이미 성령님으로 육안으로 보이지 않게 우리 가운데 와서 임마누엘 하고 계시

지만 예수님은 약속하신대로 우리 눈이 보는대로 재림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약속들을 깨어서 기억하고 주님의 재림을 가다리고 준비해야 합니다.

 

2.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해 천사들도 증언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시다가 감람산에서 승천하

실 때에 천사들이 예수님의 자시오심에 대해 사도행전 1:10-11“(10)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

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라고 분명하게 증언하였습니다.

승천한 장소도 감람산이고 재림하는 장소도 감람산이라고 스가랴 14:4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 산은 그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라고 예언되었습니다.

 

3.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해 사도들도 증언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성도들에게 항상 재림을 준비하라고 교훈하면서 초대교회에 임하

였던 핍박들을 이기는 소망으로 주님의 재림을 강조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5:51-52) (51)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나팔 소

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빌립보서 3:20-21) (20)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

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15-17) (15)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

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

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

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디모데후서 4:7-8) (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

음을 지켰으니 (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

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디도서 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

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주님의 재림을 말씀하고 있고 사도요한은 요한계시록

에서 구체적으로 주님의 재림에 대해 예언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22:20) 이것

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

여 오시옵소서

 

4. 성경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의 징조에 대해 분명하고 구체적인 예

고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재림의 징조에 대해 구체적인 말씀들을 주셨습니

.

(마태복음 24:3-14) “(3)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

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

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6)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

니라 (7)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

이 있으리니 (8)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9)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

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

움을 받으리라 (10)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

워하겠으며 (11)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불법

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

원을 얻으리라 (14)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리고 마태복음 24:36에서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셨고 사도행전 1:7

에서도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나 재림의 시기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말씀들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32-33에서 “(32)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을 무화과나

무가 말라죽는 것으로 가르쳤고, 말라 죽었던 무화과나무가 다시 살아나면 주의

재림이 임박한 줄 알라고 하시면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

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1948514일에 독립했으니 주의 재림이

심히 가까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세대는 몇 년입니까? 40, 50,

100년으로 보기도 합니다. 창세기 15:13에서는 한 세대를 100년으로 말했

습니다.

재림의 때에 대한 자연계의 징조들을 요한계시록은 일곱인, 일곱 대접, 일곱 나

팔로 단계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5. 우리는 깨어서 주님의 재림 시에 일어날 일들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때의 일들에 대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공중재림과 7년 혼인잔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번에 지상재

림하시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서 재림하시고 하늘에서는 7년 어린양 혼인잔치가

있게 됩니다. 그 때에 땅에서는 창세 이래 없었던 큰 환란인 7년 대환난이 있

게 됩니다. 이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의 생명의 부활과 산 성도의 휴거

가 있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52 / 데살로니가전서 4:16-17)

7년 혼인잔치와 대환란이 끝나면 주님의 지상재림이 이루어집니다. (마태복음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주님의 지상재임 이후 천년왕국이 시작이되고 마귀와 그에게 속한 자들은 무저

갱에 갇히게 되고 성도들은 천년왕국에서 왕노릇하게 됩니다. 천년왕국 이후 마

귀의 세력이 무저갱에서 잠시 풀려나 사람들을 미혹하나 예수님이 마귀를 영원

한 불못에 던지시고 온 세상을 심판하시며 그 이후 영원한 신천신지의 세계가

열리게 됩니다. 이에 대한 예언이 요한계시록 19장부터 22장에 기록되어 있습

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는 사도들의 교훈들을 깨어 기억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있어야 합

니다. 깨어 있기 위하여 반구저기를 이루며 삽시다.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간사

한 마음을 버리고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고 베드로 사도의 교훈들과 같

이 자신을 바르게 세워 성도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분명히 하고 항상 깨어서 교

훈들을 기억하고 산소망을 가지고 재림을 준비하는 삶을 삽시다.

 

 

 

어떤 기다림 /벧후3:1-7,14/ 배의신

2018-02-08 19:53:05

 

베드로후서 3:1-7,14, “1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2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4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지난 9일 인터넷 뉴스에 양용은 선수 드디어 PGA 우승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랐습니다. 골프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아직 한 번도 해보지는 못한 스포츠인데, 내용이 궁금해서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골프에 어떤 매력이 있는지도 살펴보았습니다.

 

PGA라는 약자는 미국프로골프(Professional Golfers\' Association)\'를 말합니다. 우리나라 선수로는 최경주 선수에 이어 양용은 선수가 두 번째 우승자로 PGA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LPGA(미국여자프로골프)에는 잘 알려진 박세리, 김미현, 박지은, 한희원 등 10여 명 이상의 선수들이 있습니다.

 

프로 골퍼(Golfer)들이 우승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기다림인내라고 했습니다. 1-18홀을 도는 동안,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는 다른 선수들이 퍼팅하는 동안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그 시간을 안정되게 인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기다리는 동안 초조해하거나 불안감이 엄습하면 퍼팅을 안정되게 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우승을 놓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프는 어떤 면에서는 기다림의 스포츠라고 합니다.

 

때로는 골퍼들이 침체의 늪에 빠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처음 골프를 배울 때로 돌아가서 퍼팅 자세를 다시 연습하고 잘못된 것을 교정한다고 합니다. 즉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그래야 정확한 퍼팅을 할 수 있고 정확한 감각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사순절 네 번째 주일 말씀을 준비하면서 골프라는 스포츠를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부자들이나 하는 놀이’, ‘한가한 사람들의 스포츠정도로 생각을 했었는데, ‘기다림의 스포츠라는 새로운 매력을 알았습니다. 특히 골퍼들이 자기 순서를 기다리며 마음을 안정되게 하고 인내해야 한다는 것과 침체기에는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우리 신앙인들과 닮아 있습니다.

 

골퍼들은 멋진 퍼팅으로 홀컵에 골인하기 위하여 기다리며 온 마음과 생각을 올인(All in)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기쁨의 삶이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온 마음과 생각을 올인해야 합니다. 골퍼들은 홀컵에 공이 빨려 들어가는 그 순간을 상상하며 짜릿해하지만, 우리는 우리 주님을 만나는 그 순간을 생각하며 기뻐합니다.

 

그래서 본문 14절에서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권면합니다. 우리는 흠 없는 정결한 모습으로 주님을 만나도록 준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본문의 의미를 간단하게 살펴봅시다.

 

본문은 사도 베드로의 두 번째 편지인 본 서신의 기록 목적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재림이 늦어짐으로 해서 비웃으며 조롱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성도들을 미혹하기 때문에 성도들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우려는 목적입니다. 왜냐하면 말세가 되면 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약속이 헛되다고 비난하는 일이 생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롱하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정말 예수께서 다시 온다는 약속은 어떻게 된 거야? 예수는 절대로 오지 않아. 세상이 창조된 뒤로 달라진 것이라곤 없잖아?’(현대어성경 4) 라고 비난합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알고도 일부러 잊으려 한다,’고 책망합니다.

 

그러면서 노아시대를 예로 듭니다. 옛 노아시대 이전의 사람들도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서 제멋대로 살다가 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노아시대 이후로 오늘까지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제멋대로 사는 인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불의 심판을 준비해 두고 계십니다.

 

노아시대나 소돔과 고모라에서도 멸망당하는 그 순간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즐기며 하나님을 무시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물과 불로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시대도 마찬가지로 어느 날 갑자기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순간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제멋대로 살도록 버려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은 반드시 이루어지며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이 심판을 보게 될 것입니다.

 

10절에서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그 상황을 말씀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흠 없이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기다리며 인내해야 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기다려야 합니까?

 

오늘의 성도들은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야 합니다. 영혼이 깨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명하신 말씀을 생각하고 확신을 가지고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앞서 골프이야기에서 했던 것처럼,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었던 처음의 그 순전한 마음을 어떤 경우에도 변치 않아야 합니다. 만일 믿음이 탈색되고 변질되고 침체되었다면 처음사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2:4-5)고 책망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지혜롭게 행하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향하는 방향이 조금이라도 틀어졌다면 즉시 바로잡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작은 틈이고, 적은 차이라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돌이킬 수 없는 차이로 벌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캐나다에 있는 로키산맥(Rocky Mountains)은 지질학적 측면에서는 동·서로 크게 나누어집니다. 이 로키산맥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디바이드 크릭(Divide Creek)’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나누는 내라는 뜻입니다. 이 물줄기는 크고 둥근 돌에 부딪쳐서 동. 서로 갈라지는데, 서쪽으로 갈라지는 물은 킥킹호수로 흘러 캐나다 서쪽인 태평양으로 가고,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마우 강으로 흘러 사스카취완 강으로 합류했다가 다시 위니펙 호수로 흘러 들어가 넬슨 강과 허드슨 만을 거쳐 마지막으로 캐나다 동쪽인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맨 처음에 나누일 때는 별 차이가 없었지만, 나중에는 태평양과 대서양이라는 엄청난 차이로 벌어집니다. 물이 일단 바다로 들어간 후에는 아무리 방향을 바꾸려고 해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선택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을 택하느냐? 무슨 일을 택하느냐? 어떤 길을 택하느냐? 이런 선택과 결단에 따라서 인생이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지금 사람들은 세상적인 출세를 위하여 좋은 길을 택하려고 혈안입니다. 또한 편안하고 행복한 성공적인 삶을 위하여 바쁘게 일하며 돈을 끌어 모읍니다.

 

바로 내일의 일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지혜 자 솔로몬은 전도서 2:21(공동번역)에서 지혜와 지식을 짜내고 재간을 부려 수고해서 얻은 것을 아무 수고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 남겨 주어야 하다니, 이 또한 헛된 일이며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다.”고 고백합니다.

 

뿐만 아니라 야고보서 4:13-14절에서는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깨달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순전하고 진실한 처음사랑과 처음 믿음으로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지금의 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면서 돌이키기를 미루거나, 선택과 결단을 머뭇거려서는 안 됩니다. 시간이 지나서 기회가 끝나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만 남기 때문입니다. 한순간의 배고픔을 면하려고 장자의 권한을 죽 한 그릇에 팔아먹은 에서가 기회가 지난 다음에 통곡하며 애원했지만 돌이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뿐입니까? 가장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열 두 제자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지키지 못한 가룟 유다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더 중요한 영의 생명과 영원한 가치를 모르고 눈앞의 돈과 물질에 눈이 멀어서 끝내는 예수님을 팔고 멸망을 자초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하나님의 불 심판을 받을 때에 롯이 자기 딸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심판이 임박했으니 이 성을 떠나라.’고 경고했지만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창세기 19:14절입니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경고를 듣고도 농담으로 여기는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며, 잘못된 모든 행위를 벗어버리고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본문 1-2절에서 성도들을 성경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하려 한다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여러분은 어떤 기다림의 자리에 있습니까?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외면한 채, 세상적인 출세와 세상적인 만족과 행복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를 통하여 이 세상은 불에 풀어지고 모든 일들이 드러난다.’고 하십니다.

 

어떤 삶으로 기다려야 합니까?

 

어떤 학자가 사람들의 삶의 스타일을 통계로 살펴보았습니다. 응답자의 27%는 먹기 위해 살고, 60%는 출세지향으로 살고, 나머지 10%는 자기가 할 일에 대해 꿈을 가지고 살고, 나머지 3%만이 \'어떻게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고 산다고 했습니다.

 

전체의 3% 만이 자기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사명을 기록해 두고 실천하는 사람들이고, 10%는 꿈은 있지만 구체적인 계획이 없고, 나머지 87%는 꿈과 계획이 없이 그냥 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해당합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은 하지만 구체적인 자기 사명감 없이 살아갑니다. 자기 사명을 알고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이 많지 않습니다. 이런 성도가 많다면 우리나라는 획기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전국민의 20%가 투철한 사명감으로 산다면 교회는 물론이요, 가정이 바뀌고, 직장이 바뀌고, 사회가 바뀌고, 나라가 바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명에 의하여 살며, 우리 각자에게 달란트 대로 맡기신 사명을 행하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을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14절에서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기신 사명을 실천하는 삶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25:21)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받은 달란트는 무엇이며,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아직 이러한 일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면 지금부터 자신의 자리를 찾으십시오. 여러분의 자리를 찾을 때가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하게 부어지는 때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자리가 무언가 어색하고 답답합니까? 자기가 머물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자리를 찾으십시오. 세상 사람들이나 거짓 성도들의 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그들은 세상에 관심을 두게 하고, 세속적인 신앙과 기복신앙을 갖게 하며, 예수님의 재림이나 하나님의 심판을 잊도록 만듭니다. 그 속에 빠지면 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결코 유머나 농담이 없습니다.

 

역대하 15:7절의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니라.”는 말씀처럼, 여러분이 주님을 따르는 삶 속에서 행하는 모든 일에는 분명한 상급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순전하고 진실한 처음사랑과 처음 믿음으로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기신 사명을 실천하는 삶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이런 기다림에는 하나님의 풍성한 약속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삶을 실천할 때, 가정이 행복하고, 직장이 복을 받고, 교회가 부흥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주님 오실 때까지 이런 인내와 깨어 있는 기다림으로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들에게는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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