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 하는 가정 /시128:1-6/ 박신진목사
2022-12-15 16:20:26
미국 동부 버지니아주 웹스터에 있는 감리교회에서 26년 간이나 교사로 수고하던 자비스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교회를 위해 많은 봉사를 하시고 세상을 떠난 몇 해 후 그 교회에서 부인의 신앙과 인격을 잊지 못해 추도식을 가졌어요. 그때 그 딸 안나를 초청하였고 안나는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가르침을 이야기하고 어머님의 석상에 카네이션 꽃을 바쳤는데, 이것이 어머니날 카네이션꽃을 달아드리는 유래를 가져온 거죠. 이 일이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고 이웃교회로 퍼져나갔습니다. 1908년 5월 둘째 주일에 죤 와나메이커 씨의 협조로 어머니의 사랑을 감사하는 모임이 시작되었고, 이 일을 계기로 사회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해요. 이에 미국국회는 몇 년 뒤에 어머니날을 제정하고 국경일로 지켰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선교사들이 어머니주일을 도입하였고 1955년 5월 8일 주일부터 8일을 어머니날로 지켰습니다. 미국에서는 아버지의 날을 따로 지킵니다. 6월 첫째주일인가 그래요. 그날은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를 기리며 아버지에게 선물을 사다드리더군요. 우리나라는 1973년에 아버지도 포함시켜 ‘어버이날’로 개칭하였습니다. 교회에서는 여전히 5월 둘째주일을 어버이주일로 기념하고 있지요. 사랑하시고 돌보아주시는 부모님께 감사드리는 주일이요, 효도를 다짐하는 주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저는 특별히 오늘 여러분에게 하나님과 함께 하는 가정에 대하여 설교하려고 합니다. 원래 가정은 하나님이 만드시고 돌보십니다. 가정의 진정한 주인은 하나님과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가정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고 봐야 합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상관하시는 곳입니다. 믿는 가정은 그 사실을 알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행복한 가정,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이루는 곳이고, 믿지 않는 가정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여 제 마음대로 살다가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러려면 부모님과 자녀가 믿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가정을 이뤄야 합니다.
최근 인터넷에 회자되는 비극적인 사건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경남 사천경찰서는 5일 재산 상속 문제로 아버지를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존속 살인 미수)로 A(33) 씨와 A 씨의 누나(35) 등 2명을 구속했다. 경찰은 이들의 어머니(61)도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A 씨 등은 지난 1일 오전 6시께 사천시 집 마당에 있는 자신의 아버지(68)를 전기충격기를 사용해 넘어뜨리고 각목, 철근 등으로 마구 때려 살해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아버지는 중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A 씨와 그의 누나는 10여 년 전 집을 떠나 각각 경기도 안산과 충북 청주에서 생활하면서 아버지에게 수차례 경제적 지원을 요구했다가 번번이 거절당하자 이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께 아버지가 사는 집으로 온 A 씨는 전기충격기와 가스분사기를, 누나는 수면제와 농약을 각각 구매했다. 이들은 휴대전화로 물품 구매를 분담하면서 농약 명칭까지 상의하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 경찰이 압수한 이들의 휴대전화 카카오톡 메시지에는 '농약 샀다', '전기충격기를 준비했다'는 등 사전 공모 사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남매의 범행은 어머니의 만류로 미수에 그쳤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어머니도 이들 남매와 사전에 범행을 모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5일 창원지법 진주지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 결과 A 씨의 어머니에게도 구속 영장이 발부됐다. 한편 어머니와 남매는 그동안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던 것으로 밝혀졌다.>
참 ‘콩가루집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못되게 했다 해도 자녀가 작정을 하고 계획을 해서 아버지를 죽이려 하다니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건이 우리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데, 어찌된 셈인지 부모를 ‘공격’하는 시대가 되었어요! 돈 때문에 가족 간의 신뢰와 사랑이 많이 사라져 버렸어요. 이 비슷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찾아보면 엄청나게 나옵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부모에게 사랑과 존경을 드리며, 가정을 든든히 지켜가겠다는 마음에 다짐과 감동이 있기를 바랍니다. 어느 때보다 교회는 가정회복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때입니다. 자녀들은 사랑하고 돌봐주시는 부모님과 가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함을 느끼고 표현하며 살아야 하겠고, 부모와 어른 세대는 성서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이 맡기신 가정을 잘 관리하는 청지기로서의 모범된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 안에서 어르신, 장년, 젊은이 세대가 바르게 사랑하는 가정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원한다면 정확한 나침반, 안내서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가정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죠.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1절) 이 말씀대로 ‘하나님이 함께 하는 가정’이 될 때 천국 같은 행복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도 극진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겁니다. 따라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구체적으로 걸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주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하면 됩니다. 특히 함께 사는 자녀들은 부모님께 지혜롭게 말하세요.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잠25:11).’ 분노를 쉬게 하고 평안과 기쁨을 가져옵니다. 지혜로운 한마디 말이나 간단한 글로 얼마든지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어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빠 엄마! 오늘 어버이날인데 그만 시험 준비한다고 게을러서 깜빡 카네이션 꽃 한 송이조차 준비하지 못했네요. 그러나 아빠 엄마 아시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분은 두 분이란 걸. 마음을 다하여 작은 글을 올립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저도 부모님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자식이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큰아이 중2 때, 2000년 박해인)
그러면, 성서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가정’은 어떤 복을 받을까요?
1. 땀 흘려 수고한 대로 열매를 거둡니다(2절).
놀고먹는 것은 복이 아니죠.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배우라.’는 지혜의 말씀처럼 우리는 부지런히 힘대로 일해야 합니다. 땀 흘려 수고하는 것은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는 증거이며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좋은 일자리를 찾느라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도 팽개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교회도 교회관리인을 찾고 있는데, 일 없다는 얘기는 많이 듣지만 이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작은 일, 수고스러운 일을 마다하면 큰 일, 편한 일도 감당할 수 없지 않을까요? 요즘 젊은이들과 사람들의 풍조를 생각하면 정말 걱정이 앞섭니다.
여기서 수고한 대로 거둔다는 것은 사실 놀라운 축복입니다. 시128편과 짝을 이루는 127편을 보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파수꾼이 밤새 보초를 서도 헛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수고해도 그 모든 것이 헛됩니다. 그러므로 수고의 열매를 거두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은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소중히 여기며 땀 흘려 수고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수고에 넘치는 복으로 채워주실 것이니, 이 아니 복이라 하지 않겠습니까!
2.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복을 받습니다(3절).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 자체가 큰 복입니다. 우리 시대는 가정 해체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혼한 가정, 가정 안에 있지만 이혼한 것과 같은 가정, 이혼하고 싶은 가정들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부모와 자식 세대가 원수처럼 지내면서 혈연을 끊지 못해 사는 가정도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온 가족이 한 상에 둘러앉아 사랑을 나누는 화목한 가정입니다. 화목함이 깨어지면 모든 성공과 업적도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성경은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잠17:1).
하나님과 함께 하는 가정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기 때문에, 결실한 포도나무 같은 아내와 어린 감람나무 같은 자녀의 복을 받아 누립니다. 포도나무는 지지대를 세워 주어야 열매 맺는 연약한 나무이지만 나무에 비해 엄청난 열매를 거둡니다. 아내 역시 약하지만 남편과 자녀들의 지지를 받으며 가정에서 가장 소중한 사랑의 열매를 풍성히 제공합니다. 어머니, 아내가 건강하고 밝으면 온 가족이 밝아지므로 큰 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가정은 어린 감람나무와 같은 자녀의 복을 받습니다. 감람나무가 잎과 열매의 기름, 뿌리가 두루 쓰이듯이 자녀들이 어디 가나 널리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사람으로 자랍니다. 맛을 내는 일, 상처를 치유하는 일, 연료, 성스런 기름 등 다방면에 올리브가 쓰임 받듯이, 믿음의 가정에서 자녀들도 하나님의 영광과 세상의 유익을 위해 널리 자주 쓰임 받는 복을 누립니다.
3. 가문이 번영하는 복을 누립니다(5-6절).
본 시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즉 ‘순례자의 노래’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순례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가장 사모하는 복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복을 누리는 일이지요. 우리 가정들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받을 복 중에 최고의 복은 영적인 축복입니다. 결혼반지보다 그 반지를 주는 사람의 진실한 사랑이 중요하듯, 세상에서 누리를 물질적인 축복보다 귀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누리는 영적인 복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가정, 즉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길로 행하는 가정은 평생 ‘예루살렘의 번영’을 볼 것입니다(5절). 아버지의 집에서 누리는 거룩함과 영광의 감격이 있을 것이며, 영혼이 잘 되어 항상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가정은 아들 딸 손자 손녀를 보면서 오래오래 살아가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 오래 산다고 다 복은 아니지요 건강하고 평안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6절) 라고 복을 선언합니다. 그래요! 믿음의 가정이 자식의 자식을 본다는 말씀은 신앙이 자손 대대로 계승되어 아름답고 위대한 믿음의 명문 가문을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전통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오랜 기도와 예배와 실천을 통하여 든든히 세워지는 것이지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가정을 이처럼 가문이 번영할 것이어요!
현대인은 가정파괴현상이라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위험한 현상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과 이 사회의 기초가 되었던 참된 가정의 안정과 친밀감이 송두리째 사라지려 하고 있어요. 부모를 마다한 가정, 부부끼리 등 돌린 가정, 자식들을 내치는 가정이 불안한 모습으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 험한 파도는 우리 가정에도 넘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우리 모두가 파멸을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는 밑에서부터 무너지게 되어 있어요!
가족 회복, 가정 정립은 반드시 주 안에서 이뤄내야 하는 영적 과제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가정이 되기 바랍니다! 가정을 세워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갑시다! 여호와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고 그의 말씀의 길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기 바랍니다. 복되고 형통한 가정이 되려면 이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와 자녀손들이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와 어버이주일을 지키며 새롭게 결단하기를 바랍니다.
‘어버이 살아신 제 섬기기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 이 뿐인가 하노라.’ 5년 전, 아버지 돌아가실 때 우리 자녀 넷은 말할 수 없이 울었어요. 특히 맏이인 저와 바로 밑의 여동생은 아버지 관이 나갈 때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우리 둘이 특별히 못해서가 아니라, 조금만 신경 써드리고 배려했으면 많이 좋아하셨을 텐데, 그럴 수 있는 우리가 못했다는 자책이 커서였어요. 하늘의 별을 따다 드리거나, 태산을 옮겨오라는 불가능한 효도가 아니라, 조금만 신경 쓰면 할 수 있는 효도를 지금부터 해서 가정을 평안히 세워갑시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가정은 또한 효도하는 가정입니다! *
하나님께서 제시하는 길을 걷는 가정 /시128:1-6
2019-08-23 01:38:16
5월을 흔히 가정의 달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어린이 주일이기도 해서, 특별히 가정에 관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읽으신 시편 128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소제목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절기 때가 되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가족들과 함께 먼 여행을 하곤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을 오를 즈음에는 많이 지쳤을테지만,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예루살렘 성전을 올라갔습니다. 오늘의 시편은 예루살렘 성전을 오를 때에 부르던 노래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사람들이 성전에 오르면서 어떠한 노래를 불렀는지를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어떤 이가 복이 있는 사람인지, 그리고 복된 가정이 어떠한 모습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 성전을 오르면서, 하나님께서 복된 가정을 주셨음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노래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오시면서 어떠한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러 오는 길에서, 복된 가정을 주신 것을 고백하며 노래로 하나님께 불러 드릴 수가 있다면, 그것 자체가 복된 일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가정이 복있는 자의 가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모든 가정들이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원합니다. 부모나 자녀들이나 집안이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불행하기를 원하는 가족의 일원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가정이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가정안에 문제가 있고, 집안에서 행복을 느끼기보다는 불행하다고 느끼면서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고자하기도 합니다. 사랑의 가정을 원하지만 미움이 있고, 따뜻한 가정을 원하지만 냉냉한 가정의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안타까워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에 관심해야 할 것은, 우리 각자가 원하는 행복한 가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각 가정에 이루시고자 하는 복의 모습이 무엇인지에 관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각 가정들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떄문입니다. 여기 계시는 분들 중에서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택해서 태어난 분은 없으실 것입니다.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자녀가 태어났으면 좋곘다고 태교도 하고 기도도하셨겠지만, 지금의 자녀가 내가 원하는 모습의 자녀라고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자녀는 부모님이 내 마음에 안들어서 투정도 부리고, 부모님은 자녀들이 자신의 뜻대로 따라주지 않아서 잔소리를 하며 체벌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정안에서 각자의 가진 뜻을 이루고자 할 때에 불행해지게 됩니다.
가정은 자신의 뜻을 이루는 곳이 아니라, 가정을 만드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고, 그럴 때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가정의 모습인지, 그리고 그 복을 받기에 합당한 삶을 각자가 살아가고 있는지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길을 걷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걷는 사람과 가정이 복이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복과 큰 차이가 나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복을 보면, 주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고 강한 것을 소유하는 것을 그 근거로 둡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물질이 많고, 다른 사람들보다 명예와 인기가 많고, 돈을 잘버는 직장을 가진 것을 복의 잣대로 두기 쉽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세상의 것을 많이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가정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행복은 세상의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행복은 가정을 지으신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을 때에 경험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복된 가정은, 가정안에 있는 가족의 구성원들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을 만한 관계속에서, 가정의 행복도 있는 것입니다.
복된 사람, 복된 가정이 되기 위해서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또한 하나님의 길을 걷어야 할 것을 말합니다.
복을 받은 가정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인데, 하나님의 존귀하심을 깨닫는 가운데서 느끼는 두려움인 것입니다.
복이있는 가정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정입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부모를 두려워하도록 가르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님들이 먼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상실하게 되면, 방자하게 행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하나님의 길을 걷고 있는지를 보시면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길을 걷을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길을 찾아갈 때에 누구의 말을 최고로 잘 듣는 것 같습니까? 아마 GPS 에서 나오는 여자분의 말씀을, 남자나 여자나, 나이가 많던 적던지 간에 가장 잘 듣는 것 같습니다. 누가 길을 가르쳐 준다고 한다면, “걱정하지마. GPS에서 다 가르쳐 주니까 걱정하지 말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GPS 에서” 턴 라이트” 하면 “예스, 맴” 하면서 가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Arriving at the destination” 하면, “탱큐” 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길을 잘 인도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복주시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그분의 길을 따라 걷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마다 인생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는 길이 각자 다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니까 자신도 그 길을 따라 걸어갑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길을 따라서 걸어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복은, 다른 사람들이 제시하는 길에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을 걷는 자에게 있습니다.
시편 119:105편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는 가정은, 그 어떤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길로 삼고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서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의 길로 걸어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격려하는 것이 복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의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에 있는 무엇인가를 많이 소유했음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우리 가정을 지으신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그 길을 따라서 순종할 때에 누려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있는 사람의 가정은 어떠한 모습이겠습니까? 2-3절은, 복된 가정을 이루는 남편과 아내, 자녀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2. 먼저, 하나님의 복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것”에 있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수고한 대로 먹는 것이 복이라는 말에 동의하십니까?
두 농부가 이웃해서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둘다 밭에 나가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땅에서 검은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땅을 파보니 유전이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누가 더 복받은 사람처럼 여겨지십니까?
둘 다 복받은 사람일 수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땅에서 유전이 나와야 복을 받은 사람이고, 수고하면서 일하는 하루하루의 삶에 대해서는 복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 열심히 수고하면서 살아가는 현재에 삶이 복된 것임에도 그 복을 누리지 못하며 살아가곤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그들이 수고한 만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때가 많았습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살 때에는 애굽 사람들이 그 수고한 것을 가지고 갔고, 가나안 땅에서 나라를 세웠을 때에도 때로 다른 나라의 속국이 되어서 자신들이 수고한 것들을 다른 나라에 상납을 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때로 땅에 기근이 들어 수고한 것을 망치기도 했습니다. 내가 수고한 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을 때에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정, 특별히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들에게 주시는 복은 자신의 손으로 수고하고, 그 수고한대로 먹고 살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십니다. 수고한대로 먹을 수 있는 삶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삶이고, 이것이 복된 삶입니다.
하나님은 일하는 삶을 복된 삶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만드시고 에덴 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두셨을 때에 그들로 어떻게 살게 하셨을 것 같습니까? 에덴동산 안에 심겨진 나무의 열매를 따 먹으면서 빙둥빙둥 놀면서 살도록 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지으시고, 아담으로 하여금 일하도록 하셨습니다.
창세기 2:15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시고 그로 하여금 땅을 경작하면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 동산의 모든 열매가 자신의 것이지만, 또한 일하면서 살아가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전도서 3:13절에서 전도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합니다. 사람이 손으로 수고해서 그 수고한 대로 먹고 사는 것은 복이며,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직업을 고르거나, 어떠한 일을 시작할 때에 기준으로 삼는 것이, 자신의 수고에 비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일도 서슴치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줄 수 있는 물건을 팔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을 학대하고 착취하면서 자신의 것을 채우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이 열심이 사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각자가 하는 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걸어가시기 원하는 그 길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길을 벗어나서 하는 일은 하나님의 복을 잃어 버리고, 복된 가정을 잃어 버리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며, 그 수고한대로 감사하며 살아가는 가정이 복된 가정인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는 세상의 허황된 것을 쫓아 살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길을 따라 열심히 수고하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이고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3. 그러면 복된 아내와 자식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남편은 하나님의 길을 따라서, 열심히 수고하여서 가족이 먹고 살 수 있도록 벌어 옵니다. 그리고 가정안에는 아내와 자녀가 있습니다. 그런데 복된 가정의 아내를 보면, 안방에 있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포도나무나 감람나무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포도나무와 감람나무는 팔레스틴 지역에서 가장 좋은 열매나무로 알려졌습니다. 포도나무와 감람나무가 잘되면, 수입도 좋고 그것처럼 기쁜일이 없는 것입니다.
아내는 안방에 있는 결실한 포도나무와도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시면서, 좋은 열매를 바래서 극상품의 포도를 심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포도나무는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가정안에도 하나님께서는 결실한 포도나무를 두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아내를 가정에 두셨습니다.
사실 남자들이 밖에서 수고하지만, 안에서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이 가정을 성숙한 모습으로 가꾸어가는 존재가 아내입니다.
그리고 포도의 열매는 포도주를 만들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때문에 기쁨의 의미도 가집니다.아내라고 하는 존재는 집안의 활력소를 창출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남편과 그 자녀들을 격려하는 결실한 포도나무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식탁에 둘러 앉은 어린 감람나무라고 했습니다. 감람나무는 나무 결이 좋아서 가구를 만드는데 좋은 나무고, 감람열매도 좋은 수입원이 됩니다. 그리고 감람나무씨로 기름을 짜서 등불의 연료로 사용합니다. 성전에 있는 성소에도 감람유로 성소를 밝혔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사람에게 유용하게 사용되는 나무가 감람나무입니다.
비록 자녀들이 아직은 장성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크게 자라고, 열매를 맺을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그것도 복이 됩니다.
시편 52:8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감람나무가 하나님의 집에 심기어질 때에 복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박고 자랄 때에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유익이 됩니다. 이러한 자녀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이 복이라고 여겨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살다가 보면, 때로 아내들이 결실한 포도나무의 모습을 잃어 버리고, 자녀들은 어린 감람나무의 모습을 잃어 버릴 때가 있습니다.
안방에 들어갔는데 결실한 포도나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열매없는 들포도나무가 있다면 문제입니다. 식탁에 둘러 앉은 어린 감람나무가 있으면 좋은데, 식탁에 둘러 앉아서 스마트폰만을 보는 스마트폰족들이 있다면 참 걱정일 될 것입니다.
아내가 결실한 포도나무가 되고, 자녀들이 감람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그들도 하나님의 길로 걸어가는 복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의 구성원 각자가 하나님께 복을 받을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 가정도 복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된 가정은 다른 사람이 내게 복이 되기를 바라는 것보다, 내가 다른 사람의 복이 되어 주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나 자녀가 자신에게 복이 되는 존재가 되기를 기대하기 전에 아내와 자녀에게 복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아내 또한 남편과 자식이 내 복이 되어주지 못할 것을 한탄할 것이 아니라, 내가 남편과 자녀의 복이 되고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자녀들도 부모님께 자신들도 감람나무와 같이 복된 존재로 잘 성장하고 있는지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복된 가정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들의 관계가 좋은 가정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 복받을 만한 하나님과의 관계속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자신의 가정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바램입니다. 가정의 행복은 그 가정을 만드신 하나님의 복이 임할 때에 경험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성공해야 행복한 가정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길을 걸을 때에 복된 가정이 이루어짐을 믿고서 모든 가족이 하나님의 길로 걸어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가고 있는 길, 그리고 내가 가고자 원하는 길을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길을 갈 때에, 아버지는 수고한대로 가정을 먹일 수 있는 복을, 아내는 안방의 결실한 포도나무의 모습으로 열매맺는 복을, 자녀는 어린 감람나무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는 복을 누리는 가정을 이루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이 왕이신 가정 /시128:1-6/ 유기성목사
2019-05-24 01:34:37
시 128:1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명에 따라 사는 사람은, 그 어느 누구나 복을 받는다.
2 네 손으로 일한 만큼 네가 먹으니, 이것이 복이요, 은혜이다.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열매를 많이 맺는 포도나무와 같고, 네 상에 둘러앉은 네 아이들은 올리브 나무의 묘목과도 같다.
4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와 같이 복을 받는다.
5 주님께서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기를 빈다. 평생토록 너는, 예루살렘이 받은 은총을 보면서 살게 될 것이다.
6 아들딸 손자손녀 보면서 오래오래 살 것이다. 이스라엘에 평화가 깃들기를!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께서 복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정에 복을 주시기만 기도하지 말고 우리도 가정의 행복이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임을 명심하고 살아야 합니다. 가정을 소홀히 하다가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가정이 행복하면 어떤 처지에서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이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리 성공하고 부유해도 그의 삶은 무너져 버립니다.
시 128편에서는 하나님께서 가정에 주시는 4가지 복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2에 먹고 살 수 있는 일터가 있고 :3 가족들이 화목하고 :5 영적으로 은혜가 넘치며 :6에 건강하여 장수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는 우리 가정이 정말 복 받은 가정인가, 점검하는 기준입니다.
그러나 시 128편의 핵심 메시지는 어떤 사람이 이런 복을 누리느냐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1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명에 따라 사는 사람은, 그 어느 누구나 복을 받는다.
:4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와 같이 복을 받는다.
이 말씀은 가정의 행복은 노력하고 애써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사사 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왕이 없어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 버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집안 꼴이 이게 뭐냐”, “내가 몇 번 말했어. 왜 내 말은 안 들어주는 거야.” 하며 애를 써도 가정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왕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뀌어 매사에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복종하며 살면 비로소 가정이 복을 받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가정에서 왕이 되셔야하는 것입니다.
시 128편에서 첫 번째로 언급한 복이 ‘손으로 일한 만큼 먹는’ 복입니다. (;2)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사람에게는 이것은 복이 아닙니다.
일 안하고 부유하게 사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일확천금이나 횡재하면 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돈이 좀 생기면 "이젠 평생 먹고 놀아도 되겠네" 라고 말합니다.
무서운 타락입니다. 그로인하여 온갖 범죄와 사회 갈등이 일어나고 가정이 깨어지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에덴 동산은 일 안하고 먹고 사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창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달라스제일침례교회 담임목사였던 A. W. 크리스웰 목사님이 텍사스의 한 농부의 집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는 식사를 대접하면서 말했습니다. “이 일대 석유가 발견되면서, 농사짓던 농부들이 모두 엄청난 부자가 되어 도시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석유 매장지가 나의 땅 울타리 바로 바깥에서 끝났기에, 우리만 40년이 넘게 농사를 계속 지었습니다. 그런데 도시로 간 사람들은 한 가정도 예외 없이 이혼을 하였고, 자녀들은 타락했습니다.
그들은 부유함 때문에 오히려 파멸했습니다. 그러나 저희 가정은 여전히 서로 사랑하며, 굳게 서 있으며, 우리 자녀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만 불행한 줄로 여겼는데, 점점 우리가 가장 복 받은 가정임을 깨달았습니다.”
정말 ‘돈, 돈’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 예수님이 그 가정에 왕이 아니시라는 증거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수 없이 사는 것입니다.
수고하여 일한 것으로 먹는 것이 복이요, 은혜인줄 알아야 합니다. 수고했다고 다 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내 손으로 일하여 먹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이 되셔야 가족들과 화목하게 살 수 있습니다.
가정의 행복을 깨뜨리는 결정적인 요인은 누가 잘했나, 잘못했나로 계속 싸우기 때문입니다. 누가 옳았는지 잘했는지를 판결하실 분은 오직 왕이신 예수님뿐입니다. 우리는 왕이신 예수님이 하라는 대로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용서하고 또 용서하게 됩니다.
가정은 용서와 은혜로 복을 받는 곳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아들이 기숙학교에 들어갔는데, 하루는 집에 와서 엄마를 찾더랍니다. “아빠, 엄마 어디 갔어?”, “응, 교회에 교인 상담하러 갔어.” 그랬더니 “아, 왜 내가 집에 오면 언제나 아무도 없는 거야?” 하더랍니다. 목사님은 ‘난 뭐야?’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왜 자녀들에게 아빠는 존재감이 없고 엄마만 있을까요? 품어주는 사랑이 다른 것입니다.
이젠 잔소리, 그만해야 합니다. 잔소리로 가정이 바뀌고 사람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편에게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다가 편지를 쓰기 시작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말로 전도하다보니 안할 말도 자꾸 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절 말 하지 않고, 편지로 말했더니 남편이 돌아오더랍니다.
예수님이 왕이시니 하고 싶은 말 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큰 소리 내지 말아야 합니다. “쉿, 집에 왕이 계십니다!”
가정에서 불평,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집에 왕이 계십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실 때, 가정에 은혜가 넘칩니다.
:5 주님께서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기를 빈다. 평생토록 너는, 예루살렘이 받은 은총을 보면서 살게 될 것이다.
여기 말씀하는 시온과 예루살렘은 다 여호와의 성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가정이 복되려면 영적으로 은혜가 넘쳐야 합니다.
교회 가는 것이 즐겁고 예배 때 은혜를 받으며 매일 말씀 묵상과 깊은 기도 시간을 가지며 사는 것이 가정을 행복하게 만드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잘 믿어도 불행한 일을 겪는 사람들이 많던데’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잘 사는 사람이 한 둘이야?’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죄로 말미암아 왜곡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을 통하여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사실 가장 문제가 없어야할 곳이 가정입니다. 그런데도 가장 문제가 많은 곳이 가정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만큼 사탄의 공격이 가정에 집중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환란만 주는 것이 아니라 돈이나 건강이나 성공도 누리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부부 싸움이 오래 지속되고, 형제들이 오랫동안 불화하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산다면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를 따지지 말고 영을 분별해야 합니다.
마귀에게 눌려 사는 것입니다.
항상 가정에 은혜의 통로가 활짝 열려있어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여성도 한 분이 하루는 몸이 아파 자리에 누워 있는데,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자기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해 주었답니다.
그 때 너무나 행복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남자 성도 한 분은 사업이 너무나 힘들어 크게 좌절하여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었는데, 아내가 밤을 새워가면서 기도하더랍니다. 그 때 정신이 번쩍 드는데 내가 이렇게 나약한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되지, 하는 마음이 들어 아내와 함께 교회에 나가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 믿어졌답니다. 그렇게 다시 사업을 시작했고 일어날 수 있었다고 간증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건강하여 장수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예수동행일기만 열심히 쓰는 것이 아닙니다. 운동도 열심히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 하십니다. 운동도 경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몸을 누가 더 사랑할 것 같습니까? 자기 자신이 아닙니다. 가족들이 자신의 건강을 더 챙깁니다. 그래서 잔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족보다 더 우리의 건강을 위하십니다.
먹는 것을 보면 예수님이 그 사람의 왕이신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먹고,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할 때 건강도 장수도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장수의 정확한 이유는 전쟁이 없이 평화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전쟁이 나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손자도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가정이 복되기를 원한다면 “우리 가정의 왕은 예수님이시다.” 결단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수 24:15 ...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정말 왕으로 모시고 살려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생각만으로 예수님이 왕이시고 의지적으로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하면 반드시 무서운 율법주의적인 가정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것 같은데, 분위기는 너무나 경직되어 있는 가정입니다. 부모가 회초리 들고 가정예배 드리는 가정입니다. 성경 안 읽으면 밥도 안주는 가정입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것이 기쁨이 됩니다.
리더십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존 맥스웰(John Maxwell)이 어렸을 때 집에서 가장 하기 싫은 일이 설거지였습니다. 그런데 고등학생 때 좋아하는 여학생이 생겼습니다. 맥스웰은 틈만 나면 여자 친구의 집으로 갔는데, 공교롭게도 그녀가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는 주저 없이 그녀 옆에서 설거지를 하였고 설거지가 너무나 즐거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게 되면 어떤 장애물도 극복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사랑하게 되면 신앙생활이 근본적으로 변화되게 됩니다.
순종만 하며 사는 것이 두려운 일이 아니고 기쁨이고 감사요, 자랑이 됩니다.
그래서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만약 주님과 동행하는 눈이 뜨이지 않았다면 저는 무서운 율법주의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참 좋아하던 선배 목사님께서 50대 중반에 소천 하셨는데, 임종 전에 갈 5:22 말씀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가지고 깊은 회개를 하셨습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하나하나를 묵상하는데 다 자신이 없더랍니다.
주위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했는가? 생각하니 부끄러웠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목회를 하였는가? 자신이 없고, 화평의 열매는 맺었나? 묵상하다가 생각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들을 불러 화해하였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였습니다. “내가 다시 일어난다면 사람을 사랑하고, 상처를 싸매주고 위로하는 목회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이제는 그것도 하나님이 그만 두라.”고 하셨답니다. 그러면서 너무나 가슴 깊이 새겨들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왜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살았나? 생각하는 중에 깨달아지는 것이, 요 15장에서 하신 말씀처럼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함을 소홀히 여겼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만 하면 되는 것을 마치 내 힘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무엇인가 이룰 수 있는 것처럼 열심히 일만 하였습니다. 그것이 너무나 후회가 됩니다.”
가정의 행복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왕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미 가족들 사이에 깊은 상처가 생겼고 가정에서 실패했다고 여기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혼자만 남았다고 슬퍼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 가정을 파괴하려 발버둥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파괴된 가정이라도 회복해 주십니다. 이제부터라도 예수님이 왕이심을 분명히 결단하고 살기만 하면 반드시 가정이 살아납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면서 가정에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복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찬송: 예수 우리 왕이여!
가정의 행복, 심은 대로 거둔다 /시128:1-6/ 유기성 목사
2016-08-10 12:06:37
음향 장비 기술자로 일하는 마크 스파크스라는 미국 사람이 테네시주 내시빌의 한 벼룩 시장에서 마음에 드는 액자 하나를 2달러에 구입했습니다, 집에 와서 액자에 있는 그림을 빼내려고 풀어보니 그림 뒤에 오래된 종이 하나가 접혀져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 문서를 펼쳐 보니 미국 독립 선언서였습니다. 그는 이것이 얼마의 가치가 있는지 전문가에게 감정을 맡겼는데, 1820년 200부 밖에 발행되지 않은 ‘진본’임이 밝혀졌습니다. 단돈 2달러에 산 액자가 250,000달러(약 3억원)의 가치를 가진 것이었습니다. 그 액자의 가치를 모르고 2달러에 내다 판 사람은 얼마나 억울할까요?
소중한 보물이지만 그 가치를 모르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소중한 보물이지만 그 가치를 몰라 소홀히 하는 것 중에 우리 가정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정이 얼마나 큰 복인 줄 모르고 삽니다. 남 몰래 고통 당하고, 이혼을 생각하고, 행복에 대하여 체념한 가정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가정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을 창조하실 때마다 “좋았더라” 하셨지만, 아담과 하와가 함께 살게 하신 후에는 “심히 좋아더라!” 하셨습니다. 가정은 본래 완전한 걸작품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가정은 그렇지 못합니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연애는 단꿈이요 결혼은 꿈을 깨는 자명종이다.
어느 해 뉴스를 들으니 부부싸움 때문에 119 구조대가 출동한 경우가 한 해에 1353건이었답니다. 놀랄 일입니다. 저는 119란 불 났을 때만 가는 것인 줄 알았어요.
가정이 이렇게 된 것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님 안에서 회복되었습니다. 우리 영혼만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가정도 치유받고 구원받은 것입니다. 여기까지 알아야 합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님은 우리 가정을 행복하게 만드십니다. 가정 행복은 예수 믿는 큰 복입니다.
시 128: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그러면 예수 믿고도 행복하지 않은 가정은 어쩐 까닭입니까?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도록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행복도 농사처럼 심는대로 거두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 13: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가정은 좋은 씨를 뿌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행복을 거둘 그 좋은 씨는 무엇입니까?
1절과 4절에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 128: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그렇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가정 행복의 씨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입니까?
어느 가정에나 왕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는 누가 왕입니까?
여러분의 가정에서 누가 가장 높임을 받습니까?
아버지입니까? 어머니입니까? 자식입니까? 정말 하나님입니까?
여러분의 가정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돈은 아닙니까? 세상 성공은 아닙니까? 부모가 자녀들에게 줄 가장 귀한 유산은 부모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무엇이 부모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인 줄 압니다. 부모가 정말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그것을 모를 수 없습니다.
사무엘상 2장에 엘리 제사장의 가정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리 제사장에게는 부목사격으로 제사장의 일을 돕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홉니와 비느하스는 불량자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중간에 가로채고, 성전에서 수종되는 여인들을 범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어느 날 엘리 제사장이 두 아들을 불러 야단을 쳤습니다.
삼상 2:23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
여러분, 잘 보십시오. 엘리 제사장이 아들에게 책망하며 그리 말라 했는데 왜 그리 말아야 하느냐? 소문이 안 좋다 그겁니다.
아들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에 대해서 가슴을 치고, 자식들을 호되게 때리던지 쫓아내든지 해야 할텐데, 엘리가 신경 쓴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의 여론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엘리 제사장에 대하여 더 기분이 나쁘셨던 것 같습니다.
삼상 2:29 "너희는 어찌하여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
그래서 엘리 제사장의 집이 망한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교회를 다니는 것 같아도 실제로 신경 쓰는 것은 사람들의 말이지 하나님이 아닌 가정은 복 받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내게 번제로 드려라.” 하였을 때 아브라함은 고민했지만, 그에게 있어서 아들보다 하나님이 더 귀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칼을 내리치려고 했을 때 하나님이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창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가정의 축복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에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12절에서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 했습니다.
사람 마다 중심의 영은 성령이냐 세상의 영이냐 둘 중의 하나입니다. 가정을 덮은 영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냐 세상의 영이냐 둘 중의 하나입니다.
마귀는 에덴 동산에서 행복했던 아담 부부를 불행하게 만든 존재입니다. 이 마귀는 계속하여 모든 부부를 불행에 빠뜨리고자 지금도 역사합니다.
마 13:25-28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마귀가 가정에 장난치지 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 뿐입니다.
마 12:43-45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하나님이 왕시지 못한 가정은 마귀의 놀이터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가정을 덮고 있는 영을 분별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역사와 악한 영의 역사, 결과를 보면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오래참음, 자비, 양선, 온유, 충성, 절제라 했습니다. 성령이 덮고 있는 가정은 이런 열매가 맺힙니다.
그러나 악한 영이 덮고 있는 가정은 다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보면 “음란함, 더러움, 방탕, 점치고 부적을 붙히는 일, 마술, 원수맺음, 다툼, 시기, 분냄, 분쟁, 분열, 파당, 질투, 술취함,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놀음” 이라고 했습니다.
열매를 보고 마귀가 역사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잘 아는 개척 교회 목사님으로 부터 메일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 저희 교회가 태어난 지 벌써 6년이 됩니다. 이제 장년 70명 재적에 주일날 60명 정도 참석하고 아이들이 30명 가량 됩니다. 목사님, 개척 교회 5년만에 터득한 것인데요. 개척 교회는 분열의 영이 더 강하게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새신자가 와도 기존 교인들이 좋아하지 않고, 일꾼이 와도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경계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그래서 들어오면 나가고 들어오면 내보내고. 그런 과정을 4년을 보냈습니다.
5년째 드디어 분열의 영, 시기와 질투의 영이 역사하는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강력하게 기도하기 시작하였을 때 드디어 교인들이 하나 되고 헌신하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새신자가 와도 거의 100%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마귀는 교회만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도 공격합니다.
부부 싸움이 오래 지속되고, 형제들이 오랫동안 불화하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산다면 이 문제의 영적 뿌리를 알아야 합니다. 가정에 불화의 영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하나님이 왕이 되시고 아닌 것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수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의 가정의 왕이심을 분명히 선택하였습니까?
그렇다면 가정에서 하나님께 예배가 드려져야 합니다,
“대한민국!” 이라는 응원 소리가 들리면 한국 사람의 가정입니다.
마찬가지로 찬양과 신앙 고백이 들려야 하나님의 가정입니다.
가정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아야 하나님의 소유된 가정입니다.
가정 예배를 드려보면 그 가정의 영적 상태가 드러납니다.
가정 예배 분위기가 무거우면, 가정에 큰 영적 문제가 생겼다는 말입니다. 가정의 우선 순위가 하나님 보다 세상이라는 증거이거나, 가족간에 해결되지 않은 상처나 불화가 있거나, 고백하지 못한 죄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감출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것이 있으면 가정 예배 드리기 힘들어지고, 싫어집니다.
그러기에 더욱 가정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집을 예배로 채우려면 큰 소리로 찬양하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함께 가정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 중에 영적인 세력이 바뀝니다.
가정 예배를 드릴 형편이 되지 않으시는 교우는 가정에서 개인 예배라도 시작하십시오!
어떤 아내가 몸이 아파 누웠을 때 남편이 자기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줄 때 너무나 행복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어느 남편이 사업이 힘들 때 아내가 밤을 새워가면서 기도할 때에 정신이 들면서 새롭게 사업을 해서 일어날 수 있었다고 간증하였습니다.
가정의 행복을 원합니까?
“예수님 우리 가정에 오세요.” 하지 말고 이제부터 여러분이 예수님의 집에서 산다고 여겨야 합니다.
가정의 모든 일에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시 128: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는 오늘 처음 우리 교회에 나오신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오늘 처음으로 우리 교회에 나오신 분은 틀림없이 우리 교회를 찾아오는 길을 아는 분들에게 물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확인하신 후, 그 길을 찾아 이 곳까지 오셨을 것입니다. 길을 모르고 이 곳에 오신 분은 한 분도 없으실 것입니다. 교회에 오려고 해도 제일 중요한 것은 길을 아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살려고 할 때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사는 길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는 누구의 말이 통합니까?
가정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가정이 하나님의 가정입니다.
마귀의 말을 듣는다면 마귀의 소속인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지만 실제로는 마귀가 하자는 대로 하는 가정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마귀의 속삭임을 따르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복을 기대합니까?
남편에게 전도 편지를 쓴 부인이 있었습니다. 말로 전도하다 깨달았습니다. 말로 하니 조급해지더랍니다. 안할 말도 많이 하고. 그래서 일절 말은 하지 않고, 편지로 말했더니 남편이 돌아오더랍니다. 하고 싶은 말 안하는 것도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큰 소리 내지 마십시오. 왕이 계십니다.
믿음 없는 탄식, 원망도 하시지 마세요. 집에 왕이 계십니다.
청주 좋은 교회, 한영제목사, 50대 중반의 나이에 지난 화요일 소천하셨습니다.
이 목사님이 임종 전에 갈라디아서 5장 22절 말씀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외우고 묵상하신 일에 대하여 들었습니다.
사랑의 열매, 얼마나 많은 사랑을 가지고 사람을 대했는가? 부끄러웠답니다.
희락의 열매,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목회를 하였는가? 주신 은혜에 만족하여 기뻐하고 감사하지 못한 삶에서 막혀버렸답니다.
화평의 열매, 화평을 회복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 사람들을 불러 화해하였답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하나 하나 다 자신이 없더랍니다.
‘내가 다시 일어난다면 사람을 사랑하고, 상처를 싸매주고 위로하는 목회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이제는 그것도 하나님이 그만 두라.’고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아지는 것이 요한복음 15장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이 생각났답니다. 성령의 열매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만 하면 되는 것을 마치 자신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무엇인가 이룰 수 있는 것처럼 열심히 일만 하였다는 것을 깨닫고 너무나 후회하였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그렇지만 내 삶을 뒤돌아보면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 너무 많다.’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행복도 내 힘으로 만들어 보려고 몸부림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이 왕이심을 분명히 하면 됩니다. 이것이 가정 행복의 씨를 심는 것입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 /시128:3-6
2008-01-23 10:21:32
올해 우리 교회는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는 언약을 붙잡고 하나님께서 주신 시대적 복음화 시스템인 렘넌트 공동체 훈련장과 성전 건축을 위해 기도해 오고 있습니다. 이에 맞추어 성도 여러분은 현장 정복, 경제 정복, 문화 정복의 증인으로 설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몇몇 성도는 자신의 환경과 형편을 탓하며 “내가 어떻게 이런 시대적인 응답을 누릴 수 있겠는가, 이런 것은 믿음이 좋은 사람에게나 적용되는 것이다”라며 마치 자신과 상관없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큰 착각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시대를 변화시키고 복음을 회복하실 때 다수의 무리가 아닌 소수의 연약한 자를 통해 역사하셨습니다. 모세가 그랬고, 여호수아가 그랬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러했습니다. 세 가지 개혁과 세 가지 정복이 마치 내게 큰 능력이 있어야 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능력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고 우리는 그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다윗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목동이라는 작은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중요한 응답을 받았습니다. 초대교회가 큰 부흥집회를 통해 시대를 변화시킨 것이 아닙니다. 소수의 연약한 자들이 마가다락방에 모여 기도할 때 성령이 임했고 그때부터 큰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렘넌트 공동체 훈련장과 성전 건축에 대한 건축허가가 최종적으로 승인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작은 정성이 모여지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염려와 불신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후대에 대한 언약을 잡고 정시 무시로 조금만 기도하면 됩니다. 여러분의 조그마한 실천이 하나님의 큰 계획을 이루는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이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마 25:21),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사 60:22)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런 작은 것에 대한 실천은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가정에서 여성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집안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하여 가정의 모든 짐을 여성이 지게 했지만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21세기는 모든 고정관념이 글로벌 시대에 맞도록 바뀌어야 합니다. 사실 집안 분위기는 여자하기 나름이 아니라 남자하기 나름입니다. 남자가 변하면 집안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남자들의 작은 갱신이 가정의 화목을 이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Oneness 가정의 축복을 회복하는 증거가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결실한 포도나무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시 128:3) 시편 기자는 아내의 모습을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가정에서 아내가 풍성한 삶을 살 때 그 가정이 행복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포도나무는 자기 스스로는 서지 못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넝쿨을 지지할 버팀목이 있어야 자랄 수 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아내가 가정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남편이 버팀목 역할을 해 주어야 합니다. 아내라는 말의 우리말 어원을 보면 남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아내의 고어는 ‘안해’로 ‘안에 있는 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내가 집안의 태양이라는 것입니다. 태양빛이 잘 비추어질 때 만물이 소생하듯 아내가 집안에서 생명력 있게 빛을 발하도록 해 주어야 가정이 화목해 집니다. 아내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 주지 않으면 그 빛이 사라지고 가정은 어둠의 그림자가 찾아와 삭막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가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하는 남편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아내가 행복해 질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은 물질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닌 남편의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해 주셨듯이 남편도 풍성한 사랑을 아내에게 주어야 합니다. 이럴 때 아내가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은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이벤트 행사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제목처럼 아주 작은 것으로도 아내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사소한 집안일부터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내에게 참 생명력을 주게 됩니다. 아내에 대한 위로와 격려의 말 한마디와 같은 작은 시작을 실천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어린 감람나무
본문 3절을 보면 ‘눌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와 같다’고 표현하였습니다. 감람나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올리브나무입니다. 이 감람나무는 이스라엘에서 아주 유용하게 쓰입니다. 음식이나 약품으로도 쓰일 뿐 아니라 선지자나 제사장의 머리에 기름을 부을 때에도 이 감람나무 열매 기름을 사용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활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감람나무입니다. 이러한 감람나무처럼 우리 자녀들도 어떤 상황에서나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되도록 양육해야 합니다. 감람나무의 또 다른 특징은 끈질긴 생명력입니다. 어린 감람나무를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수백 년을 넘어 천년 이상 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어떻게 양육하느냐에 따라 우리 자녀가 감람나무처럼 풍성한 생명력을 가지고 시대를 살리는 렘넌트로 자라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부모의 지혜로운 연약 교육이 중요합니다. 특히 아버지의 갱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한 통계를 보면 자녀가 고민거리가 생겼을 때 이를 어머니에게 상담하는 비율은 32%인데 반해 아버지에게 상담하는 비율은 고작 4%에 불과합니다. 아버지들이 자녀교육에 대한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역시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자녀에게 해 주는 축복 기도, 강단 메시지를 가지고 식사시간에 나누는 포럼 등 이러한 작은 실천이 가정을 복음공동체 Oneness로 만드는 중요한 통로가 됩니다. 자녀를 격려하고, 인정해 주는 한마디의 말이 중요합니다. ‘한 말의 쓸개보다 한 방울의 꿀이 더 많은 파리를 잡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쓴소리를 지나치게 사용하면 아이는 자신감이 결여되어 피동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속적인 칭찬은 자녀에게 비전을 주게 됩니다. 이런 작은 시작이 자녀들에게 힘차게 비상할 수 있는 날개를 달아주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찌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찌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찌로다 (시 128:5~6) 이스라엘의 삶의 중심은 시온 곧 성전이었습니다. 우리의 후대들이 우리의 성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삶과 꿈을 갖는다면, 교회 중심의 삶을 살아간다면 성공은 보장된 축복이 될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예배를 드리러 나오는 날이 최고 축복의 날이 되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성경은 나 곧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숫군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숫군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시 130:5~6)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배 시간이 생애 최고의 날, 새 은혜를 받는 날, 하나님 뜻을 발견하는 날, 세 가지 개혁과 세 가지 정복의 축복의 날이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복음을 가지고 예배에 승리하면 무조건 응답받고, 무조건 성공하게 됩니다. 이 축복을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전달하는 부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가족이 주는 행복을 돈으로 계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런던대학교 교육연구소의 파우다비 박사는 다소 희한해 보이는 이 연구에 대한 결과를 사회경제학 저널에 발표했습니다. 이 발표에 따르면 가족을 만나 즐겁게 지낼 때 느끼는 행복은 1년에 약 1억5000만 원의 수입이 늘어날 때 맛보는 행복과 같고 이웃과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은 4600만 원의 추가수입을 올리는 행복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또 결혼에 성공하는 것은 6300만 원 값어치의 행복을 얻게 되고 반대로 고통스러운 이혼을 하는 경우에는 빚이 1억8000만 원이 늘어날 때 겪는 심리적 고통을 맛본다는 것입니다.
이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파우다비 박사는 “수입이 늘 때 동반되는 행복감은 오래 지속되지 않지만 가족이나 친구와 만족스럽게 지낼 때 느끼는 행복감은 더 깊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끼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이것도 돈으로 환산하면 가족과 대면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연 수입 1200만원을 버는 것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연 수입 1억2000만 원을 버는 게 같은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가족 안에서 참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연구 결과입니다.
돈 조금 더 벌기위해 가족 간의 관계가 깨어진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것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이처럼 안타깝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가족이 주 안에서 Oneness를 이루는 것에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제목과 같이 작은 것부터 시작하여 교회 모든 가정이 천국의 모델하우스가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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