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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모음/베드로서 설교 모음

베드로전서 2:13 - 21 설교 모음

by Jessi J 2024.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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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과 정치 1 /벧전2:13-15/ 조정의목사

2020-09-24 14:40:41

 

벧전 2:13-15 [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대통령, 국회의원, 경찰 당신들은 고철덩어리다

 

현 대통령이 눈물을 흘릴 때 함께 눈물 흘리지 않은 사람은 모두 다 백정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한 말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위와 같은 정치적인 발언들을 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우리가 대한민국의 한 구성원으로서 이런 발언을 할 수 없을까요? 잘못된 것에 대해 의분에 차서 한 말들인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세례 요한이 헤롯왕의 부도덕한 결혼에 대해서 말했던 것처럼, 예수님이 종교지도자와 바리새인들에게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지만, 오늘 본문 말씀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 위에 세워진 권위에 대해 생각하고 말할 때 꼭 기억해야 할 말씀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 위에 세워진 권세자들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신 것들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정치적인 참여는 개인의 취향이나 자유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위치하고 있는 자리는 우리의구원과 관련된 곳입니다. 베드로는 1장에서 우리의 구원에 대해 하나님의 풍성한 구원의 계획과 섭리, 능력에 대해 말하고 나서 구원받은 자답게 살라고 말합니다.

 

이후에 베드로는 사회구조 안에서, 육신의 상전과 종 사이에서, 그리고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 우리가 정치적인 권세자들에 대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우리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구원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살았던 우리를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로 삼아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모퉁이 돌 위에 우리를 세우셔서 신령한 집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서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들은남들도 다 이 정도는 말하잖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권세자들과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13). 여기서순종하라는 동사는 즉각적인 순종을 말합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쩔 수없이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이것은 결정적인 순종을 말합니다. 내 의지를 가지고 순종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발적인 순종입니다. 누군가가 시키고 억압하니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순종하라는 명령이 가지는 의미입니다.

 

그 순종의 대상은인간의 모든 제도입니다. 이것은 정치제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권위자, 왕과 같은 정치인들을 가리키는데, 오늘날로 말하자면 대통령, 장관, 시의원, 시장 등일 것입니다. “모든이라고 했으니 우리가 순종해야 할 대상의 폭이 넓어집니다. 어떤 주석가는 이 말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다른 합법적 권위들(부모/자녀, 교회 교역자/구성원들, 사업상, 교육제도상, 자발적 조직체 등의 권위 구조)에 적용하는 것을 정당화시킨다”(웨인그루뎀, 182). 여기에는 동네 이장이나 아파트 통장도 포함될 것입니다. “뭇 사람(everyone)을 공경하며”(17).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의 범위가 이렇게 넓은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들 모두에게 즉각적이고 결정적이며 자발적으로 순종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 순종하는 이유에 대해주를 위하여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생각하며 하는 억지 순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하시는 목적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입니다.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15). 여기서선행은 순종입니다. 우리 위에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자들에게 순종할 때 우리는 그 순종을 통해 어리석은 사람들(그리스도인들을 비방하고 핍박하는 악인들)의 입을 막는 것입니다.

 

이 편지를 쓰는 당시에도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이들에게 비방과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이 권세자들에게 순종한다면 정직하고 선량한 시민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죄와 싸우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12).

 

그리스도인은 선행과 순종을 통하여 비방하는 자들의 입을 막는 것입니다.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정치적인 발언과 권세자들에 대한 태도는 구원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9).

 

오늘날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많은 비방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씀을 지키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법과 행정법을 어기고 불법적인 것들을 행합니다. 그것을 통해 혜택을 누리면서 입으로는주 안에서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도로교통법을 어기면서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죄를 미워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외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가장 혐오하셨던 것이 이 외식입니다. 한 편에 진리를 가지면서 다른 한 편에는 거짓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우물에서 단 물과 쓴 물을 함께 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니까 이 땅의 법은 중요하지 않습니까? ‘남들도 다 하는데라고 생각한다면, 그들 중에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살도록 하나님의 소유 삼으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각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13:1-2).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원리입니다. 우리 위에 세워진 권위를 멸시하고 불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권위라 할지라도 그가 하나님을 거부하라는 명령을 한다면 그것은 거절해야 합니다. 그들은 권위를 부여받은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들에게 권위를 주신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거부해야 합니다.

 

과거 애굽에서 히브리인에게서 아들이 태어나면 죽이라는 바로의 명령에, 산파들이 순종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왕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은 것은, 생명을 귀하게 보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금하신 음식을 왕이 먹으라고 하자 먹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의 친구들은 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의 법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대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사도들에게 예수님을 전파하지 말라고 명령했을 때, 사도들은 목숨을 바치면서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는 자신을 신처럼 숭배하라고 명령했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거절하여 핍박과 순교를 당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런 경우가 있을까요? 미국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때리면 부모를 경찰이 체포합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부모는 자녀를 훈육하기 위해 커튼으로 가리고 매를 듭니다. 차별금지법은 동성애에 대해 죄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는 법입니다. 외국에서는 이 법을 어기면 벌금을 물거나 구금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경우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기 위해 세상의 법을 거부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인간의 모든 제도에 순종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편지를 쓸 당시 황제나 지도자들은 어떠했을까요?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를 말하면서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보낸 총독에게 하라”(13-14). 당시 왕은 폭군으로 유명한 네로 황제였습니다. 그는 황제가 되기 위해 아내의 오빠를 살해하고, 황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친어머니 살해했습니다.

 

결혼기념일에 아내를 처형하고 이복동생, 스승, 충신들을 차례로 죽입니다. 우리가 잘 알기로, 로마에 대화재가 일어났을 때 화재의 원인을 그리스도인에게 뒤집어씌워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습니다. 그의 잔혹함은, 인간의 몸에 송진을 묻혀 인간 촛대로 정원에 세워놓고 파티를 벌일 정도였습니다. 베드로도 이 네로 황제의 정치 하에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였습니다. 이러한 악한 왕의 시대에 베드로는 이와 같은 편지를 쓴 것입니다.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였을까요. 베드로는 왕의 비윤리적인 것들을 눈감아주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가 있으니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총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로마 제국의 황제가 각 지역을 다스리게 하기 위해 세운 자들이었는데, 그 총독이 있는 나라에 순종하는 것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베드로는 총독에 대해 설명할 때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14)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권세자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회 조직에 해가 되면 처벌하고 반대로 유익이 된다면 상을 내리고 그 업적을 기념했습니다. 사회주의든 민주주의든 어떤 정치적인 시스템이든 그것은 사회 구조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공산주의는 악마가 만든 것이고 민주주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무정부주의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어떤 시스템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는 사람이 문제입니다. 시민도 죄인이고 지도자도 죄인입니다. 민주주의 안에는 죄들이 없습니까?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주의에 동성애가 많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일반적인 은혜로 그러한 사회 구조와 그들의 역할을 허락하십니다.

 

만일 이러한 사회 구조가 없다면, 간음이나 살인을 저질러도 처벌이 없다면 그 사회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볼 때 악하고 문제 있는 정치 제도라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이상적으로 여기는 국가제도는 장차 그리스도가 다스리실 영원한 나라, 왕정국가입니다. 죄가 없으신 권력자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죄 없는 백성들의 나라 말입니다.

 

오늘날은 정치적인 발언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고 어떤 정치적인 의사를 피력하는 것도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허락된 자유를 하나님의 명령에 거스르면서까지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권세자들에게 순종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우리 위에 세워진 권세자가 비윤리적인 사람일지라도 그들에게 순종함으로 세상 사람들의 입을 막는 것입니다. 그들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리스도인들이 순종의 삶으로써 그들의 입을 막아야 하는데, 거칠고 비윤리적인 말과 행동으로써 세상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우리가 영원히 따라야 할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마지막으로 그분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19:1~11).

 

만왕의 왕이시고 모든 창조물을 지으신 분께서, 자신의 앞에 있는 한 인간 위에 세우신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합법적이지 않은 심문 과정과, 예수님을 함부로 대하는 군사들과 정치지도자들, 그리고 그들의 판결에 대해 예수님은 한 마디도 비방이나 욕이 없으셨습니다. 그 위에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인정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그러한 순종으로 우리의 죄가 씻겨내려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주여 주여 하면서 내가 말하는 대로 행하지 않느냐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면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한 개인 위에 세워진 권위에 순종하셨다면 우리 역시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정치적인 발언을 할 때나 권세자들에게 대응할 때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벧전2:13-18/ 자유하나 하나님의 종으로 살라/ 김은호 목사

2015-05-07 09:46:49

 

군대를 갔다 오신 분은 아시겠지만 군대 용어 중에 제대말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달 혹은 두 달 정도 제대를 앞두고 보내는 시간을 제대 말년이라고 합니다. 제대말년이 되면 열외가 많습니다.

 

빼치카 당번도 열외이고 불침번도 열외입니다. 심지어는 아침 점호시간에도 나오지 않고 모포를 뒤집어쓰고 늦잠을 자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아니 얼마 있지 않으면 사회로 나가 생활할 사람이기 때문에 사역도 하지 않고 불침번도 서지 않고 빈둥빈둥 만화책이나 보면서 시간을 보내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우리들이 잘못하면 제대말년의 병사처럼 이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잠깐 지나가는 버스 정류장과 같은 인생이고 우리가 들어가 살게 될 곳은 영원한 천국이기 때문에 이 땅의 삶을 대충대충 살 수 있습니다. 나그네와 행인 같은 이 세상의 삶을 제대 말년의 병사처럼 대충대충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아니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가? 썩어지지 않을 하늘의 산 소망을 가진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이 땅에 속한 자가 아닌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그네와 행인 같은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16절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살라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16)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종으로 살라는 말입니다. (live as servants of God.)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그 일터교회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원래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죄의 종이었습니다. 마귀의 종이었습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공중권세 잡은 자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저와 여러분의 죄 값을 지불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죄와 죄의 결과인 저주로부터, 그리고 마귀로부터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이미 자유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가끔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방종으로 생각하여 악덕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를 얻었다고 해서 그 자유를 아무렇게나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자유를 얻었다고 해서 그 자유를 오용하여 악덕을 행하는 구실을 삼거나 혹은 방종 하는 구실을 삼아서는 안 됩니다. 도리어 자유함을 얻었기 때문에 그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주신 자유를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내가 하나님의 종처럼 사는 것입니다. 자유하나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삶은 구체적으로 어떤 삶입니까?

 

1. 인간이 세운 제도와 권위 아래 복종하라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13)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를 순종하고 왕의 권위에 복종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왕이나 왕의 권위와 왕이 세운 법령에 대하여 복종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14절을 보면 왕이 보낸 방백들에게까지 복종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14)

여기서 방백은 당시 로마 황제에 의해서 소아시아 식민지에 파송된 총독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위정자들의 권위에 복종하고 그 제도에 복종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종인 우리는 왜 위정자들의 권위와 제도에 대하여 순복해야 합니까?

 

첫째는, 주님 때문입니다.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13a)

 

주를 위하여복종해야 합니다. 주를 위하여 라는 말은 주님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복종하는 것은 그들이 나보다 더 잘나고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위정자들의 인품이 어질고 정치를 잘하고 그 제도가 마음에 들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를 위해서입니다. 주님 때문입니다. 주를 위해서라는 말은 주께서 그들을 세우셨고 그런 제도를 허락하셨음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권위와 제도가 주께로 말미암았을 말합니다. 모든 권위와 제도의 근원이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울 역시 동일한 말씀을 했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바라 ”(13:1)

 

모든 권위와 제도가 다 주께로 말미암았기에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주님 때문에 그들의 권위와 제도에 복종해야 합니다.

 

둘째는, 질서 때문입니다.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14)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벌을 주고 선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말은 곧질서를 위하여서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왕과 제도를 주신 것은 질서를 위함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위정자들을 세우시고 제도를 세우셨습니까?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포상을 하고 불의를 행하는 자들은 징계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하면 선을 보호하고 악을 억제시키기 위하여 위정자들과 제도를 세우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국가의 권력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무질서와 혼돈을 싫어하십니다. 이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질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권위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무법천지의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 당장 나가서 신호등 무시하고 운전해 보세요. 신호등 파란불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직진으로 달려 보세요.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쁘다는 이유로 고속도로에서 역주행 한번 해 보세요.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혼란과 혼돈을 싫어하십니다. 질서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위정자들과 그 제도에 순복해야 합니다.

 

무조건 모든 제도와 권위에 복종해야 하는가?

 

그러면 무조건 모든 위정자들의 권위와 제도에 복종해야 합니까? 무조건 복종을 해야 한다면 일제하에 신사참배도 해야 마땅한 일이고 독립운동도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정신대에 운동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참여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독립을 위하여 투쟁을 하였습니까?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금신상에 절하라는 왕의 명령을 거역하여 뜨거운 풀무불 속에 던짐을 당하였고 다니엘은 왕의 명령을 어기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어 놓고 기도하다가 사자 굴속에 던짐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무조건 모든 제도와 권위에 복종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순종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부모의 순종에도주 안에서라는 조건이 있듯이 왕과 왕이 세운 제도에 복종하는 것도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주를 위하여입니다.

 

둘째는, 국가가 선을 장려하고 악한 자를 처벌하고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는 정상적인 활동을 할 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를 믿지 못하도록 배교를 강요하거나 우상숭배를 강요하는 권위와 제도에 대해서는 복종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리를 배척하고 거스리는 자에게는 순종해서는 안 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에서 언급한 666입니다. 요한계시록 13:18절에 보면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666이 나옵니다.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륙이니라”(13:18)

 

많은 사람들이 이 666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computer의 영어 숫자 스펠링을 아라비아 숫자로 환원하여 합하면 666이 되니까 컴퓨터를 666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분은 신용카드, 세계통일 화폐카드의 바코드를 666이라고 말합니다.

 

신용카드 속에도 666이 숨겨져 있고 세계통일 화폐가 발행이 되는데 이 화폐도 어느 시점이 되면 666의 문신으로 변하고 만국 상품의 부호인 Bar Code 666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이 바코드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상품 거래도 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정확하게 666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경이 말하는 666은 컴퓨터나 신용카드나 세계통일 화폐의 바코드와 같은 물건이 아닙니다. 분명히 계13:18절은 짐승의 수 666을 사람의 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 사람은 당시 로마 황제 네로를 말합니다. 네로라는 이름의 라틴어 문자의 합이 666이 되기 때문입니다.

 

N=50 E=6 R=500 O=60 N=50

우리는 NERO로 알고 그렇게 쓰고 있지만 고대사본들을 보면 네로를 부를 때 NERON 으로 뒤에 N자가 들어 있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만일 마지막 N자가 없으면 616이 됩니다.

 

그런데 당시의 고대의 사본들 가운데는 네로 황제를 666 혹은 616으로 표기하여 사용하였습니다. 히브리말로 네로 황제 (Neron Caesar)는 글자의 합도 666으로 되어 있습니다.

 

13:14절에 666을 말하면서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666이 네로라는 사실을 더욱 확실하여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사람들에게 네로는 워낙 악한 자였기 때문에 반드시 환생하여 다시 살아나 그리스도인들을 도륙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었습니다.

 

13:17절에 보면짐승의 표를 받지도 못하면 매매도 못하게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말세에 있을 만국통상 상품기호인 바코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로마 제국 안에 행하여졌던 관행을 말합니다.

 

당시 황제에게 경배하고 난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증서를 주었습니다. 이 증서가 바로 짐승의 표입니다. 이 표를 받은 사람은 박해와 죽음으로부터 면죄를 받을 수 있었고 로마 제국 안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 표를 갖지 않는 사람은 상행위조차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네로와 같은 로마 황제의 무자비한 탄압과 황제 숭배를 적그리스도의 666으로 보고 네로와 도미시안과 같은 자의 권세는 마귀로부터 온 권세이기 때문에 절대로 이 권세에 순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권세의 배후에는 붉은 용이 숨어 있기 때문에 순교를 하더라도 이 짐승의 표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666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는 지도자들의 권위와 제도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국가의 지도자가 진리를 버리고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에는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책망한 것처럼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예수를 믿지 못하게 만들고 종교적인 탄압을 가하며 우상숭배를 강요한다면 단호히 순교적인 신앙을 가지고 거부해야 합니다.

 

2. 선을 행하라

 

하나님의 종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종의 삶은 둘째로, 선을 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15절을 읽겠습니다.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5)

 

우리가 사용하는 개역성경에는 왜냐하면 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고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15절의 정확한 표현은

왜냐하면 선을 행함으로 어리석은 자들의 무지한 입을 막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15)

 

선을 행하여야 할 이유는 어리석은 자들의 입을 막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선을 행함으로 어리석은 자들의 입을 막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어리석은 사람들은 누구를 말합니까? 헬라어 원문의 뜻은이성이 없을 정도로 몰지각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무지한 사람, 무식한 사람은 누구를 말합니까?

 

헬라어로이그노시안인데 단순히 지식이 결핍된 것만이 아니라 진리를 배우거나 수용하기를 거절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복음의 진리를 대적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베드로는 12절에서 이 사람들을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12)

 

이 편지를 쓸 당시 주는 것 없이 예수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을 보며 기독교인들은 인육을 먹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로마에 불을 지른 방화범이라고 말하는 등 기독교에 대하여 온갖 비방을 일삼았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이유 없이 기독교를 비방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독교 안티 싸이트에 들어가 보면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부르며 오늘의 교회와 크리스천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사람들 앞에서 선을 행하라고 말합니다. 기독교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지 않다고 변호하려고 하지 말고 선을 행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렇게 묵묵히 선을 행하는 삶을 살게 되면 그들이 우리를 보고 비방이나 험담하는 말을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그리스도인에게 책잡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기독교에 대하여 좋지 못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잠잠케 하는 것은 영적전쟁과 더불어 우리가 선을 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영적인 전쟁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여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종의 삶입니다.

 

3. 사랑하며 두려워하며 공경하라

 

하나님의 종은 세 번째로, 사랑하며 공경하며 살아야 합니다.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17)

 

모든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형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된 자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고 말씀합니다.

 

공경하라는 말은 존경하라는 말입니다. 존경하다는 말은 귀하게 대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존경이 사라졌습니다. 젊은 청소년들을 보면 웃어른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부모님도 존경하지 않고 선생님도 존경하지 않습니다.

 

며칠 전 대학 캠퍼스에서 싸움을 나무라던 대학 교수가 학생에게 폭력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는 학생들이 그것을 보면서도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존경심이 사라진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부모님도 선생님도 존경하지 않는 아이들이 교회에 목사님을 존경하겠습니까? 국가의 지도자들을 존경하겠습니까? 그래서 노대통령을 부를 때 대통령이라고도 안 부르고노통이라고 부릅니다.

 

노대통령 지지자들을노빠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윗사람들을 존경하라! 지도자들을 존경하라!

 

순복하고 복종하는 것이 행위에 대한 것이라면 존경하는 것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복종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할 때가 있습니다.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복종하지만 마음속으로는네가 나보다 잘 난 게 뭐 있어 하나님이 하라고 하니까 가정의 질서를 위해서 내가 복종한다이런 마음으로 복종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다른 형제를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지도자들을 존경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하며 존경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내가 나은 자녀도 내 마음에 안드는데 모든 지도자들이 내 마음에 들겠습니까? 내 스타일에 맞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사랑하며 존경한다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하며 섬기며 존경하며 살 수 있는 비결이 하나 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6:7절에서 종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6:7)

골로새서 3:23절도 같이 볼까요.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3:23)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해야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종과 주인의 관계에서만이 우리의 모든 삶의 관계에 해당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크든지 작든지, 힘든 일이든지 쉬운 일이든지, 하나님이 그 일을 내게 주셨음을 믿고 그 일을 주께 하듯 해야 합니다.

 

일만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베소서 5:22절을 보겠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5:22)

 

남편에게 복종하고 또 남편으로서 아내를 사랑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럴 때마다 오늘의 말씀을 생각하며 주께 하듯 해 보십시오. 남편에게는 못해도 주님께는 복종할 수 있잖아요. 아내의 허물진 모습을 보고는 사랑할 수 없어도 주님은 사랑할 수 있잖아요.

 

4.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주인에게 순종하라

 

하나님의 종은 네 번째로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주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18)

 

반복되는 것 같지만 처음은 왕과 방백들에게 복종하라는 것이고 18절에서는 사환들이 주인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사환은 천한 종인둘로스가 아닙니다. ‘오이케타이로 바로 가정에 속한 하인을 말합니다. 가정에 속한 하인은 어떻게 주인을 섬겨야 합니까? 두려워함으로 순복해야 합니다. 이 말은 존경심을 가지고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환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주인들의 권위를 인정해 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선하고 관용을 베푸는 자들에게만이 아니라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까다로운 자는 마음이 뒤틀린 자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사환들은 주인의 인격을 핑계삼지 말고 주인의 인격을 변명거리로 삼지 말고 주인의 인격이 어떠하든지 간에 순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노동조합이 발달하고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극도로 발달하면서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어떻게 보면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명령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직장의 상사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착하고 너그러운 주인에게만이 아니라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순종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주인이 너그럽든지 까다롭든지 상관없이 범사에 주인들에게 순종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성경은 고용된 사람들에게만 순종을 강요합니까? 오늘의 말씀만을 보면 하나님은 가진자, 권력 있는 자의 편에 계신 분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골로새서 4:1절을 보면 가진 자들에게 고용인들에게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라고 명령합니다.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4:1)

고용인은 회사를 투명하게 운영하여야합니다. 공적자금을 대출 받아 가지고 부도 처리를 내고 호화로운 별장을 지어 놓고 지내는 상전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바로 관계입니다. 이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위로를 받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성공을 경험하기도하고 실패를 경험합니다.

 

오늘 당신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 한 분들이 소중한 분이십니다. 오늘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나와 관련된 분들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순종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좌와 저주와 율법과 죽음에서 자유함을 얻은 자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유함을 얻었기에 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종으로 이 땅을 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이 땅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 인간이 세운 제도와 권위 아래 복종하라. 주님 때문에 질서 때문에 .......

2. 선을 행하라.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선을 행함으로 어리석은 자들의 입을 막는 것입니다.

3. 사랑하며 두려워하며 공경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해야 합니다.

4.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주인에게 순종하라. 우리는 주님 때문에 복종하고 선을 행하고 존경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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