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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모음/요한계시록 설교 모음

요한계시록 20:7 - 15절 설교 모음

by Jessi J 2024.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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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사망, 불못 /20:7-15/ 조정의목사

2023-12-10 08:35:20

 

모든 사람은 반드시 한 번 태어나서 한 번 죽는다(9:27). 그런데 어떤 사람은 두 번 태어나서 한 번만 죽고, 어떤 사람은 두 번 태어나지 못해서 두 번 죽는다. 수수께끼 같은 이 말은 성경이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는 명백한 진리다: 거듭난 자는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6), 거듭나지 않으면 누구든지 둘째 사망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14-15).

 

성경이 말하는 사망의 기본 개념은 분리. 영과 육이 분리되는 것이 첫째 사망이라면,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는 것이 둘째 사망이다. 모든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이르게 될 최종적이고 영구적인 운명, 둘째 사망에 관하여 주께서 말씀하신 것을 통하여 당신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현실을 직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

 

1. 언제 둘째 사망을 당하는가?

 

성경이 둘째 사망을 언급하는 시점은 7절에 나오는 것처럼 천 년이 차고 나서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이 땅에 당신의 나라를 세우시고 성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리신 이후다. 그 기간 동안 사탄은 큰 쇠사슬에 묶여 무저갱에 결박당했다. 입구를 인봉하여 틀어막아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통제했는데, 기한이 차면 그 옥에서 풀려나게 될 것이다(7). 이는 하나님께서 뜻하신 주권적인 계획대로 이루어질 일이다: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3).

 

사탄의 악한 본성은 천 년의 옥살이 후에도 전혀 갱생되지 않는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과 만민을 미혹하여 반역에 동참시키는 일에 또다시 매진한다. 풀려난 사탄은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동서남북 전 세계 곳곳에 있는 자들을 미혹한다(8). 요한은 구약 성경 에스겔서를 차용하여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연합 세력을 가리켜 곡과 마곡이라 불렀는데(38-9), 특별히 과거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가장 먼 지역에 퍼져 있는 적들(북쪽 끝, 메섹과 두발 왕)을 차용한 이유가 있다. 천년 왕국 이후에 사탄이 마지막으로 전 세계적인 반역을 일으킬 것이고, 그때 땅끝에서부터 셀 수 없이 많은 무리가 여기에 동참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8).

 

사람은 사탄의 손아귀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가? 거짓에 쉽게 속을 만큼 어리석은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편으로 속히 돌아설 만큼 철저하게 어그러지고 부패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 사람은 날 때부터 죄악 중에 출생한다(51:5). 하나님을 지적으로 알게 되더라도 의지적으로 그분께 반항하는 강력한 죄의 유전자를 가졌다. 육체의 욕심, 세상 풍조, 마귀를 따르는 것을 하나님 따르는 것보다 더 간절히 원한다(2:2-3).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옛 본성을 벗고 새 본성을 입는 거듭남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반항하는 악한 본성의 힘이 얼마나 끈질기고 파괴적인가? 대환난 기간에 하나님이 직접 쏟으시는 심판에도 꿈쩍하지 않고, 마귀가 힘을 잃고 그리스도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지상 낙원에서도 천 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서 때가 찼을 때 다시금 강력한 욕구를 드러낸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오래 참으심을 모조리 거부하고, 결국엔 둘째 사망으로 당신을 끌고 들어간다. 당신 안에 살아 있는 악한 본성의 무서움을 알라.

 

여기 거듭나지 않은 모든 사람에게 예비된 하나님의 최종 심판, 둘째 사망이 있다. 마귀의 미혹을 받아 전 세계에서 모여든 악인들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둘러쌀 것이다(9). 천년 왕국에 그리스도 나라의 수도가 될 예루살렘 성과 그곳을 중심으로 모여든 거듭난 자들의 무리를 말한다. 그때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대적하는 악한 무리들은 단번에 하늘에서 내려온 불로 태워져 죽임을 당할 것이다(9).

 

그리고 그들이 따르던 마귀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불과 유황 못(불못, 14)에 최종적으로 또 영구적으로 던져질 것이다(10). 그곳엔 대환난 기간 마귀의 꼭두각시 역할을 했던 지상 통치자, 적그리스도와(짐승) 그를 따르도록 만민을 속인 거짓 선지자도 있다. 15절에 보면,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그러니까 거듭나지 않은 모든 사람 또한 불못에 던져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 마귀와 그에게 속한 모든 악한 영(천사와 사람)의 영원한 운명이다. 회개할 기회는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다. 성경은 악인에 관하여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가 악인에 관한 성경의 마지막 계시다(10). 이것이 그들의 최종 목적지이자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종착지이기 때문이다

 

2. 어떻게 둘째 사망을 당하는가?

 

그러면 둘째 사망이란 무엇인가? 둘째 사망을 당하는 사람이 겪을 영원한 형벌은 어떤 것인가? 14절을 보라: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둘째 사망은 사건에 관한 표현이고, “불못은 장소에 관한 용어다. 악인은 최종적으로 그리고 영구적으로 하나님과 분리되는 사건을 겪는다. 이를 의심할 수 없게 만드는 설명이 바로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진다는 말씀이다. 사망과 음부는 인격체가 아니다. 그럼에도 의인화하여 그 둘을 영원한 불못에 던진다고 말한다.

 

무슨 뜻인가? 사망은 이생을 종료하고 내생으로 삶을 옮기는 사건이다. 하지만 둘째 사망은 끝이 없다. 그래서 사망을 폐기하는 것이다. 음부(하데스)지옥을 가리킨다. 지옥은 타락한 천사와 악인이 형벌을 받는 고통스러운 심판의 장소이지만(무저갱), 불못과 달리 영구적이지 않다. 둘째 사망의 장소인 불못은 영원하기 때문에 지옥은 불못 속으로 흡수된다. 결론적으로 불못은 마귀와 그의 편에 선 모든 악한 영이 영벌을 받을 장소이고, 그 영원한 심판의 장소에 던져지는 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한다.

 

불못은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히 분리된 장소다. 천국이 빛이신 하나님과 영원한 사귐을 누리는 장소라면, 천국 바깥 어두운 곳에 있는 불못은 그 반대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불못은 또한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는 장소다. 어떤 사람은 불과 유황이 있는데 어떻게 어두울 수 있냐고 묻는다. 하지만 어두움은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철저히 단절된 죄인의 영원한 처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상징적 표현이다. 불과 유황은 뜨거운 불길에 타들어 가는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이 쉼 없이 주어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수님은 누구보다 형벌에 관하여 많은 경고를 하신 분으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하나님에게서 완전히 버림받은 인생은 가장 슬프고 비참한 인생이다. 또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심판을 받을 때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이를 갈게 될 것이다.

 

둘째 사망을 당하는 사람이 모두 똑같은 형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11-2절을 보라: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보좌 심판이라 불리는 장면이다. 하나님이 심판하시기 위해 좌정하신 보좌는 크고 흰 보좌다. 그분의 엄위성과 크신 영광, 절대 권세를 나타내는 커다란 보좌, 그분의 거룩하고 정결하신 성품에 따라 공정하고 의로운 판결을 내리신다는 것을 강조하는 순백색의 보좌다. 하나님은 임의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분명한 기준을 두고 공의로운 심판을 내리신다: 보좌 앞에 펴져 있는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받는 자들의 행위를 따라.

 

백보좌 앞에서 땅과 하늘이 피하여 사라진 장면을 요한은 봤다. 새로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기 전(21:1), 옛 땅과 하늘을 거두어가신다. 베드로는 주의 날에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말했다(벧후 3:10). 옛 세상은 물러가고 세상에 속한 백성은 큰 자나 작은 자나 예외 없이 심판의 보좌 앞에 선다. “죽은 자들이라 불리는 이들은 각각 자기의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들의 행위가 남김 없이 모두 드러나고, 그에 상응하는 공정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누가 죽은 자들인가?

 

3. 누가 둘째 사망을 당하는가?

 

백보좌 앞에는 두 종류의 책이 있다. 하나는 사람의 행위가 기록된 책이고, 또 하나는 생명책이다. 사람의 행위가 기록된 책의 개념은 구약 성도들에게도 익숙했다(“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139:16). 한편 또 다른 책, 곧 생명책 역시 모세 때부터 익숙했던 개념이다(“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32:32, 69:28).

 

오직 거듭난 사람의 이름만 생명책에서 찾을 수 있다. 주님은 사데 교회에게 끝까지 이기는 자에게 흰 옷을 주고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3:5). 적그리스도를 숭배하는 모든 사람에 관하여 계시록은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라고 말한다(17:8).

 

그러므로 생명책은 고대 로마 제국의 여러 도시가 보유하고 있던 시민의 명부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거듭나서 천국 시민권을 가진 자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 반대로 거듭나지 못한 모든 자는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고 바로 그들이 둘째 사망을 당한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15).

 

심판을 받는 죽은 자들은 실제로 첫째 사망을 당한 자들을 가리킨다. 13절에 보면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라고 말한다. 고대 사회에서 심해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운 장소로 그곳에 빠지면 찾아낼 수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상징적으로 죽음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 사망과 음부는 죽은 사람, 특별히 죄 가운데 죽은 사람이 맞이하는 사건과 종착지이다.

 

거듭난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 때와 지상 재림 때 죽은 자와 산 자 순으로 의의 부활, 생명의 부활을 맞이한다. 하지만 거듭나지 못한 자는 대환난 기간에 쏟아질 무서운 재앙으로 죽고, 그리스도의 재림 때 그 입에서 나온 검으로 전멸당하고, 천년왕국 후에, 하늘에서 내려온 불에 섬멸된다. 그리고 창세로부터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거듭나지 못한) 모든 자, 마귀의 편에 서서 하나님께 반역한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이 마지막 날에 심판의 부활로 보좌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한다(9:27). 또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라고 말한다(5:24). 자기 행위를 의지하며 사는 자는 그 행위대로 심판받고, 그리스도의 행위를 믿는 자는 그분의 행위로 인하여 구원받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허물과 죄의 사함을 받지만,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는 자신의 모든 허물과 죗값을 직접 치러야 한다.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 말해주듯, 하나님께서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이유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3:16).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서다(3:17). 그래서 지금 예수를 믿지 않고 거절한 자는 이미 둘째 사망을 선택한 것이고, 그 길 끝에는 영원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둘째 사망의 메시지로 어떤 교훈을 받을 수 있을까? 첫째, 오직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과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나 둘째 사망을 면하게 된 사실에 영원히 감사를 돌려드리라. 둘째, 사랑하는 가족, 친구를 대할 때, 그들이 처한 끔찍한 둘째 사망의 운명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하나님께 간구하며 기회를 만날 때 회개의 복음을 사랑으로 전달하라. 셋째, 계시록 217-8절에 나오는 것처럼, 이기는 자가 돼라. 예수를 위하여 사는 자로 다시 태어났으니 오직 그분을 위하여 살라. 둘째 사망에 처해질 사람들처럼 두려워하거나 불신하거나 죄를 즐기거나 우상을 좇거나 거짓을 따르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사랑하고, 그 거룩하심을 닮아가며, 믿음과 평안을 누리고 끝까지 충성하라.

 

 

 

그날은 온다 /20:11-15, 25:31-32, 고후5:10/ 김형익 목사

2021-08-17 09:55:10

 

오늘 본문은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예언입니다. 전세계의 모든 기독교 신자는 사도신경을 통해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라고 고백함으로써, 재림하시는 주님께서 최후의 심판을 행하실 것을 믿습니다. 성경이 명백하게 증거하는 최후 심판은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의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장로교회의 표준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331항에서 최후의 심판을 탁월하게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세상을 심판할 한 날을 정해 놓으셨다. 성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다. 그날에는 타락한 천사들이 심판 받을 뿐 아니라, 또한 이 땅에서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 자신들의 생각, 말 그리고 행위를 직고하고, 그들이 선악 간에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서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

 

1. 크고 흰 보좌 (11; 25:31-32; 51:6; 벧후 3:7,10)

 

마지막 심판의 예언은 요한이 환상 중에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았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최후 심판을 백보좌 심판이라고도 부릅니다. ‘크고 흰 보좌라고 보좌 앞에 형용사가 사용된 것은 요한계시록에서 유일한 경우입니다. 아마 이것은 20:4에서 보았던 보좌들죽은 성도들이 하늘에서 다스리는 보좌과 구별하려는 의도이거나, 심판의 권세와 위엄을 드러내려는 의도일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흰 색은 주로 순결함과 거룩함을 상징했듯이, 여기서도 그 의미를 포함할 것입니다.

 

요한은 보좌와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보았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는 이제 심판을 행하시는 분인데, 성부 하나님인지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심판을 하시는 분이 성부 하나님이라는 말씀들이 있지만(6:4; 18:35; 14:10),

 

성자 예수님께서 심판하신다고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7:22-23; 고후 5:10). 주님은 친히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마태복음 25:3132).”라고 말씀하셨고, 또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심판을 맡기셨다고도 하셨습니다(5:22). 그래서 조엘 비키는 보좌에 앉으신 이는 그리스도라고 단정적으로 말합니다.

 

사도신경도 심판하러 오시는 분은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 있고 있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성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함으로써 이 견해를 지지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고려하여 정리하면, 성부의 위임을 받아 성자 하나님께서 심판의 보좌에 앉아 심판하신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10:30)”고 하신 말씀도 생각하면,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역할 구분에 대한 지나친 논쟁은 유익하지도 않고 불필요할 것입니다.

 

요한이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을 보았을 때,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고 말합니다. 새 시대가 시작되기 위하여 현 시대는 끝나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늘과 땅으로 표현된 피조 세계인 우주가 심판하시는 이의 권세 앞에서 도망한다는 말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임박한 도래를 준비하는 우주의 해체라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21:1). 하지만 이것은 구약에서부터 예언된 것이었습니다.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이사야 51:6).” 사도 베드로도 이것을 말씀했습니다(벧후 3:7,10).

 

2. 죽은 자의 부활 (12-13)

 

11절은 심판하시는 하나님, 의로우신 재판장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심판의 대상, 피고인석에 설 자들은 누구입니까? 12절은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라고 말합니다. 바로 그들이 심판을 받을 피고들입니다. 13절을 보지요.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13).”

 

13절은 죽은 자들이 심판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부활을 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바다 그리고 사망과 음부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준다고 합니다. 바다, 그리고 사망과 음부는 일차적으로 죽은 자들의 영역을 의미하고, 죽음을 통해 지배하는 악의 영향력을 상징합니다. 특히 바다가 구체적으로 언급된 것은 바다에서 실종하여 그 몸이 땅에 묻히지 못한 사람들도 부활과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입니다.

 

과거에 화장을 반대하는 분들이 화장하면 부활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부활은 그것과는 상관이 없는 문제입니다. 몇 년 전에는 존 파이퍼 목사님이 화장은 성경적으로 죄에 대한 심판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피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취지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물론 그 의미를 염두에 둘 수 있습니다마는, 성경이 화장을 명시적으로 금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여지를 둘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같이 작은 나라에서 죽은 이들이 차지하는 면적이 점점 커지는 현상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화장이든 수목장이든 수장이든, 죽은 자들은 예외 없이 부활하여 심판대에 서게 될 것이라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재림하셔서 크고 흰 보좌에 앉아 심판을 행하실 때, 심판대 앞에 서게 될 피고는 아담과 하와로부터 지구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입니다. 더글라스 켈리는 이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인간의 모임이 될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후손 중 한 사람도 빠지지 않은 모임이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참고로,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한 곳에 모인 것은 2013210일 힌두교 축제인 쿰브 멜라(Kumbh Mela), 인도 알라하바드에 12천만 명이 모인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자들과는 비교 조차 불가능할 것입니다. 12절은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라고 표현합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물론 주님 재림하실 때 살아있는 자들은 그대로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는 신자들도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신자들도 다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인생을 결산하지 않을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3. 행위 심판과 두 종류의 책 (12-13; 16:27; 고후 5:10; 4:13; 21:27; 3:10,23; 8:1; 38:17)

 

우리는 심판하시는 분과 심판 받을 대상을 살펴봤습니다. 이제 심판의 기준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준으로 심판하십니까? 그 기준은 12절과 13절 하반절에 각각 기록되어있습니다.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12b),” 그리고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13b)”라고 했습니다. 기준은 그들이 살아 생전에 행한 행위입니다. 여러분은 신자들도 행위로 심판을 받습니까?”라고 질문하고 싶으십니까?

 

답은 그렇다입니다. 본문이 말씀하는 대로입니다. 주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태복음 16:27).”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린도후서 5:10).” 신자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12절에서 두 종류의 책을 만납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12).” 책들의 존재는 하나님의 심판이 자의적이거나 독단적이지 않고 완전히 공정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책들에 대한 말씀은 다니엘서의 인유인데(7:10; 12:1-2), 요한은 두 종류의 책을 봅니다. 먼저 보좌 앞에 펴져 있는 책들인데(복수) 이것은 각 사람의 행위들이 기록된 책들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책이(단수) 펴져 있는 것을 보지요. 그것은 생명책입니다. 먼저 행위를 기록한 책들을 생각해봅시다. 만일, 아담 이래 지구 상에 살았던 모든 인간, 각 사람의 행위들이 기록되어 있으려면 그 분량이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이 책들은 일종의 기소장인데, 하나님의 기소장이기에 판결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 책들에는 저와 여러분의 평생의 행적도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의 생각, 동기와 의도까지도 낱낱이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일들도 그날에는 다 드러나고야 말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브리서 4:13).” 잘못이 없을지라도 세상의 재판정에 피고로 선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하물며 우리의 모든 생각, 의도, 동기 그리고 행위를 기록한 책을 가지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는 것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두려워함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여기 책들은 문자적 의미라기 보다, 결코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 자신의 기억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입니다. 어거스틴의 말입니다. “이 책들은 신적 기억을 상징한다. 이 기억의 책은 모든 행위, , 생각 그리고 동기들을 오류 없이 기록하는 책이다. 무한하고 편재하시는 하나님은 역사의 모든 세부 사항을 완전하고 오류 없는 관찰로 지켜보셨다.”

 

신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정말 신자들도 행위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라면, 신자들이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여기에 또 다른 책, 생명책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생명책은 고대 세계의 도시나 국가의 시민 명부와 같은 책입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자들은 천국 시민이고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1:27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천국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합니다. 신자들이라고 해도, 또 신자들이 얻은 구원의 믿음이 그들 안에 선한 행위들을 만들어낸다고 해도(2:10),

 

어찌 그들이 범한 부끄러운 죄악들이 없겠습니까? 행위를 기록한 책들에 의하면, 하나님 앞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지옥의 형벌을 면할 인간은 하나도 없습니다(3:10,23). 그래서 심판대 앞에 선 신자들도 먼저 자신들의 부끄러운 죄악들을 직면하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이것은 유죄 판결과 지옥 형벌로 이어져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판결을 받기 직전, 잠시 천사장이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라고 하자, 그가 지은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이 그리스도에게 부어졌으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도다라는 선언과 함께(8:1) 모든 죄의 용서와 무죄가 선고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당신의 등 뒤로 던져버리실 것입니다(38:17). 그리고 심지어 믿음이 신자 안에서 만들어낸 선한 행위들에 대한 상이 주어질 것입니다. 생명책은 신자들이 최후의 심판에서 유죄 선고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성입니다.

 

4. 둘째 사망 (14-15; 고전 15:26)

 

하지만 생명책에서 이름을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유죄 선고가 내려질 것입니다. 그 형벌은 둘째 사망입니다. 14-15절을 보지요.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14-15).”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두 번 죽는다는 말씀입니다.

 

처음 죽음은 우리가 보통 말하는 죽음으로,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둘째 사망이 있습니다. 첫째 죽음에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자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15절 말씀대로, 불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불못은 육체적인 고통을 포함하지만 본질상 영적 고통을 영원히 겪는 지옥을 상징합니다. 육체를 지니지 않은 사탄과 그의 사자들은 영적 고통만을 겪겠지만, 부활하여 육체를 다시 얻은 사람들은 영적 고통에 더하여 육체의 고통까지 영원토록 겪을 것입니다.

 

끝으로 사탄의 지배력을 상징하던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짐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은 마치게 됩니다. 바울 사도가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린도전서 15:26).”라고 한대로 입니다. 사망 곧 죽음은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 세계에 죄로 말미암아 들어온 저주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영광의 새 하늘과 새 땅을 가져오시기 위하여(21:1) 죽음의 저주를 음부와 함께 정죄의 자리에 던져 버리시는 것입니다.

 

5. 교훈과 적용 (13:8; 24:43-44; 살전 5:2; 6:37,44)

 

사랑하는 여러분, 그날은 반드시 옵니다. 그날에 주님이 재림하셔서 크고 흰 보좌에 앉아 인류 역사의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늘과 땅도 피하여 간 데가 없다고 할만큼 두려운 심판의 날입니다. 그날 우리는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심판하시는 주님 앞에 숨겨질 수 있는 존재나 개인, 숨겨질 수 있는 행위나 동기는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행위, , 생각 그리고 동기를 오류 없이 기록한 책을 가지고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만물이 그분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고 우리도 그럴 것입니다(4:13).

 

세상 역사에서 구부러지고 뒤틀려진 정의가 완전히 바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주님의 심판에서 유죄를 면할 인간은 하나도 없습니다. 죄인이 살 길은 오직 하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의 이름을 주님은 생명책에 기록하십니다. 생명책의 원 이름은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입니다(13:8; 21:27).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의식인 세례를 생각해보십시오. 세례는 참된 신앙의 고백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당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산 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세례를 받은 신자의 모든 죄는 다 예수 그리스도께 전가되었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그 모든 형벌과 저주가 주님에게 다 남김 없이 부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심판의 날에 신자들도 소환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참 구주시라면,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면, 여러분은 그 모든 죄악에도 불구하고 정죄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이 심판을 다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용서를 받은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주님을 믿는 사람, 그 믿음이 선한 행위의 열매를 맺음으로 참된 믿음을 입증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을 진실하게 믿는자들은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말씀합니다. ,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날을 맞을 준비가 되셨습니까? 성경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것이라고 거듭 말씀합니다(24:43-44; 12:39-40; 살전 5:2,4; 벧후 3:10; 3:3; 16:15). 주님의 재림과 심판의 날은 생각지 않은 날 불현듯 임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편안하게 앉아서 나는 그리스도인이니까 심판의 날이 나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여러분은 자신의 믿음이 참되지 않음을 말할 뿐입니다. 참 신자는 그날을 두려움으로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그날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막연한 무서움이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이 가져오는 두려움입니다. 하지만 신자는 또한 그날을 기다립니다.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드러난 나의 큰 죄악들이 용서받을 때,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가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드러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날을 맞을 준비가 되셨습니까? 그날은 죽음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그날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여러분은 지금 당장 주님께 나아가 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1:15). 여러분은 그 심판의 날에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면할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하고 여러분의 그 죄악들이 오직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이 흘리신 피로만 덮여질 수 있고 사해질 수 있음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여기에 주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향한 주님의 자비로운 약속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6:37).”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한복음 6:44).”

 

이제 구주를 믿는 자들을 위해 주님이 차려주신 식탁으로 나아갑시다.

 

 

 

생명책에 당신의 이름은 기록되었는가? /20:1-15/ 유기성목사

2018-06-27 01:07:11

 

20:1 나는 또 한 천사가 아비소스 (무저갱)의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2 그는 그 용, 곧 악마요 사탄인 그 옛 뱀을 붙잡아 결박하여, 3 아비소스에 던지고 닫은 다음에, 그 위에 봉인을 하여 천 년 동안 가두어 두고, 천 년이 끝날 때까지는 민족들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사탄은 그 뒤에 잠시 동안 풀려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4 내가 또 보좌들을 보니, 그 위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심판할 권세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나는, 예수의 증언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이 베인 사람들의 영혼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짐승이나 그 짐승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5 그 나머지 죽은 사람들은 천 년이 끝날 때까지 살아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은 복이 있고 거룩합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둘째 사망이 아무런 세력도 부리지 못합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서, 천 년 동안 그와 함께 다스릴 것입니다.

7 천 년이 끝나면, 사탄은 옥에서 풀려나서, 8 땅의 사방에 있는 민족들,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려고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을 하려고 그들을 모을 것인데, 그들의 수는 바다의 모래와 같을 것입니다. 9 그들은 지면으로 올라와서, 성도들의 진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도시를 둘러쌌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그들을 삼켜 버렸습니다. 10 그들을 미혹하던 악마도 불과 유황의 바다로 던져졌는데, 그 곳은 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들이 있는 곳입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영원히, 밤낮으로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11 나는 크고 흰 보좌와 거기에 앉으신 분을 보았습니다.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마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12 나는 또 죽은 사람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할 것 없이, 다 그 보좌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책들을 펴놓고, 또 다른 책 하나를 펴놓았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었습니다. 죽은 사람들은, 그 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자기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13 바다가 그 속에 있는 죽은 사람들을 내놓고, 사망과 지옥도 그 속에 있는 죽은 사람들을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각각 자기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14 그리고 사망과 지옥이 불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이 불바다가 둘째 사망입니다. 15 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다 이 불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이 자리에 전도 받아 교회에 처음 나오신 분들이 계실 텐데, 진심으로 축복하고 환영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구원의 새 생명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설교할 성경 본문 계 20장은 전도대상자들에게 너무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준비하면서 하나님께서 일부러 준비하신 성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20장에는 마지막 때 있을 천년 왕국과 이어지는 마지막 심판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귀가 배후에서 조종하던 바벨론이 멸망한 다음 마귀도 무저갱이라고 하는 아비소스에 천년 동안 갇히게 됩니다. 사탄이 역사하지 못하는 놀라운 세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마귀에게 절하지 않고 순교했던 성도들이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다스리게 됩니다. 이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여기 언급된 천년 왕국이 예수님의 재림 전에 있느냐, 예수님의 재림 후에 있느냐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기에 성경대로만 믿는 것이 지혜로울 것입니다. 아마 알려주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치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에게 붉은 색깔을 설명하여주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논란 없이도 분명히 깨달을 수 있는 주님의 교훈을 찾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며, 우리는 반드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마지막 심판에 이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천년이 끝나면 다시 한 번 사탄이 풀려나 사람들을 미혹하게 될 터인데, 그것은 사탄을 완전히 멸망시키기 위함입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주님을 대적하는 군대를 삼켜 버리고 미혹하던 악마와 함께 영원히 불과 유황의 바다로 던져버리게 됩니다.

 

그 후, 크고 흰 보좌 위에 주 예수님께서 앉으셔서 마지막 심판을 행하시게 됩니다.

그 때, 그동안 있었던 땅과 하늘이 사라져 버리고 모든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두 번째 부활인데, 빌라도도 가룟 유다도 히틀러도 스탈린도 김일성도 그 자리에 설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뉩니다. 순교자들이 먼저 부활하여 주님과 다스리고, 그 후 부활한 이들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5: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2011년 미국의 롭 벨 목사는 자신의 책 [사랑이 이긴다]에서 지옥은 없으며 인간은 죽어서 모두 천국으로 간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고 해서 사람들을 지옥에 보낼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의 책은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2위에 오르는 등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옥이 정말 있을까요? 아마 큰 논쟁이 벌어질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그렇습니다. 지옥은 반드시 있습니다.

 

존 웨슬리(John Wesley) 목사님은 심판과 지옥에 대한 설교를 많이 하셨는데, “여러분의 손가락을 불에다 대고 있어보라. 잠시 동안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이보다 더 큰 고통은 없을 것이다. 하물며 온몸이 불에 들어가 죽지도 않고 영원히 있을 것을 생각해 보라라고 했습니다.

 

지옥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독약 병에 독약이라는 글자를 지우고 해골 표시를 하지 말자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친절이고 사랑입니까? 그것은 지옥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철부지 같은 생각일 뿐이며, ‘지옥은 없으니 죄지어도 돼,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아, 네 마음대로 살아라는 마귀의 유혹인 것입니다.

 

무디(D.L. Moody)만일 지옥이 없다면 많은 시간을 들여 성경을 읽을 필요가 없고 성경은 다 불태워버려야 한다. 지옥이 없다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예배당을 지을 필요가 없다. 기존 예배당도 오락 장소로 바꾸어 써야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펼쳐진 책들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의 행위를 기록한 책으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근거가 됩니다. 그 책에 사람들이 일생 했던 생각, , 모든 행동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면 여러분의 책이 있습니다. 한 평생 마음속에 생각한 것, 누구를 미워한 것, 은밀한 가운데 행한 모든 더러운 행동, 다른 사람이 모르는 일, 남편이나 아내도 모르고 부모도 자녀도 모르는 일이 다 기록되어 있고 그것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정말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사람이 일생동안 행한 선한 일과 악한 일을 대조해서 선행이 악행보다 많으면 구원받고 악행이 선행을 능가하면 멸망 받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 법정에서도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어떤 죄를 지었느냐 만 문제입니다.

얼마 전 전직 대통령이 재판을 받아 엄청난 중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가 잘한 일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지은 죄가 있으면 벌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는 또 하나의 책이 있습니다. 생명책입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마지막 심판을 받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누가 그런 복을 받는다는 말입니까? 아주 쉽습니다.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회개하고, 예수님께서 자신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입니다. 얼마나 쉽고 간단한 일입니까? 그래서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을 알고 나면 세상에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그 보다 더 큰 기쁨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놀라운 복음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전도 받아 오신 분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교회 나오라 예수 믿으라 극성스럽게 전도하는지 궁금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도 생명책에 기록되어야겠다는 뜨거운 소원 때문에 그렇게 전도하는 것입니다.

교회 현관 게시판에 이름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보셨을 텐데 하나님의 보좌 앞의 생명책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두루마리에 기록된 이름들은 이번 전도집회 전도대상자들입니다. 모두 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든 것입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세상 사람들보다 죄를 더 많이 지어도 천국에 간다는 말은 아닙니다. 간혹 예수 믿는 사람은 죄를 많이 지어도 천국가고 세상 사람은 착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해도 지옥 간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이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말인데 엄밀히 말하면 말이 안 되는 말입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생명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인데, 그 생명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일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그래서 생명책에 자신이 이름이 기록되었는지는 예수님께서 마음에 임하셨음을 아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후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면 어떤 삶을 살겠습니까? 결코 세상 사람보다 죄 많이 짓고 살 수 없습니다.

7:21에 보면 예수님을 주여, 주여라고 부르기만 했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은 자들에게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7:33)고 하실 것이고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42, 50) 하셨습니다.

 

자신 안에 예수님이 계신 것을 알고 예수님과 동행하면 의롭게 살게 마련입니다.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25장에 보면 구원받은 자와 멸망당할 자를 구분하는 기준이, 주린 사람을 보았을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사람에게 마시게 하고 나그네 된 자를 영접하고 벗은 자에게 옷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아보고 옥에 갇혔을 때 찾아갔었느냐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행위 구원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항상 예수님과 동행하였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25:40에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하셨으니 지극히 작은 자를 보아도 주 예수님을 함께 보는 사람이었다는 말인 것입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이 의롭고 거룩하고 사랑이 많기에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 역시 여전히 죄성을 가진 사람이고 결코 온전할 수 없습니다. 그에게도 혈기나 정욕이나 음란이나 거짓의 충동과 유혹이 있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여전히 값없이 주시는 속죄의 은혜입니다. 그가 주 예수님을 영접하였기에 사탄의 고소 앞에서, 주님께서 자신의 피로 정결케 되고 의롭게 되었다고 변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8: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

그렇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으면 행위로 심판받는 것을 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건성으로 듣고 넘기면 큰일입니다.

 

미군이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투하하기 전, 여러 번 경고 전단을 투하해서 피난가라고 했습니다. “히로시마 시민 여러분, 194586일 이전까지 50Km 밖으로 피난가십시오. 그날 원자탄이 투하될 터인데 살아남을 자가 없습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그러나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코웃음 쳤습니다. “전쟁에 패하게 됐으니까 공갈친다.”, “30만 명이나 죽이는 폭탄이 어디 있어?”, “피난 갈까?” 망설이던 사람도 두고 보지 뭐.” 하고 주저앉았습니다.

결국 극소수의 사람만 피난 가서 살았고 거의 다 타죽었습니다.

 

마지막 심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날이 오면 피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 진정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여야 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그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매일 예수님과 동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때,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주님께서 눅 10장에서 칠십 인을 전도자로 파송하였는데, 그들이 돌아와 기뻐하며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하였을 때,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하셨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에게는 이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기 위하여 의롭고 거룩하고 사랑을 베풀어야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증거로, 주님과 동행하며 사는 기쁨 때문에, 의롭고 거룩하고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 기쁨 때문에 어떤 시험도 고난도 이기는 것입니다.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꼭 목 베임을 당해야 순교가 아닙니다. 그럴 기회가 없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어떤 유혹이나 핍박 앞에서도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순교신앙입니다.

 

이처럼 주님과 늘 함께 동행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 나라에서 큰 상급이 있습니다.

우리가 죽을 때, 그 어떤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지만 먼저 보낼 수는 있습니다.

이민 갈 때, 이삿짐은 배로 먼저 부칩니다. 그리고 몸만 입국을 하여 부친 이삿짐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을 사랑했던 일, 성도를 사랑했던 일, 교회를 위하여 헌신했던 일,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당했던 일, 용서하고 사랑했던 일 때문에 구원받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 가면 그로 인하여 말할 수 없이 기쁠 것입니다.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이것이 새 생명의 삶을 사는 사람의 기쁨이고 축복입니다.

 

여러분, 아직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확신이 없다면 지금 이 시간, 생명이신 주님을 마음에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찬송 180장 하나님의 나팔 소리

 

 

 

백보좌 심판과 그 전후 사건 1 /20:11-15/ 폴 워셔 Paul Washer

2015-06-18 20:09:00

 

당신을 태우러 기차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011절입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잠시 멈춰 서서, 당신이 정말 어디로 가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주님은 진실로 뭐라고 하셨습니까?

 

우리는 자주, 내 육신을 기쁘게 하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죽음의 기차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해 버립니다.

 

그 기차는, 비록 아주 천천히 오는 것 같지만, 언젠가는 확실히 내 앞에 도착합니다.

그 기차를 타면,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듯이 서게 되는 날이 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입니다. 아무도 예외가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자긍심self-esteem을 잃어버릴까봐,

또는 은행잔고가 없을까봐 걱정하며.. 불면의 밤을 보내지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우리는 이 최후의 심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해야 합니다.

 

지금 무수한 사람들이 지옥의 멸망 판결을 받고 있는데..

당신은, 두 다리 쭉 뻗고 편히 주무실 수 있겠습니까?

 

이 성경의 말씀, 심판에 관한 말씀은.. 현실입니다.

그건 30, 50년 후, 먼 미래의 일이다!’ 라고 안심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50세만 지나서 되돌아보면, 과거의 1020년이 금방 지나가 버린다는 사실을,

그래서 30, 50년 후의 현실도.. 금방 내 코 앞에 닥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자신의 최후 심판을 생각하며,

또한 세상 사람들의 백보좌 심판을 염려하며.. 잠을 못 이루는 밤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가 5감각으로 보고, 만지고, 느끼는 것들보다

훨씬 더 실재reality입니다.

이것은 다만 시간의 문제이지, ‘가능성의 문제는 아닙니다.

 

백보좌 심판 직전에, 사탄의 심판이 있습니다.

 

백보좌 심판을 나타내는 본문 계2011절은

그리고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내가 보니..”

한글성경엔 또 내가 보니..” 라고 했는데, 같은 뜻입니다.

 

그러니까 사도요한은, 11절에서 백보좌 심판의 환상을 보기 전에,

앞서 10절에서,

사탄이 불못에 던져지는 장면을,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20:10.

최후에, 흔히 Satanic trinity (삼마일체)라고 부르는

사탄, 짐승, 거짓선지자가.. 불 못에 던져져서, 영원한 심판을 받습니다.

그것을 설명하는 구절이 계201~10절입니다.

 

그리고이어지는 11절에서,

백보좌의 심판,

즉 불순종과 불신의 인간에 대한 심판이,

사탄의 삼마일체에 대한 심판과 연이어서 나옵니다.

 

10절과 11절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의미심장합니다.

 

정리하면,

하나님은 먼저 마귀의 세력들을 심판하시고,

연이어 불순종과 불신앙의 사람들을 심판하시는데..

 

물론 이 백보좌의 심판때는 신자들도 함께 심판을 받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사탄의 세력을 먼저 심판하시고,

이어서 사탄을 추종했던 사람들도, 반드시 사탄과 함께 심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두려움과 경고를 줍니다.

불신자들과 불신앙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최후에 받는 심판은,

사탄의 심판에 연이어서, 사람도 심판을 받습니다.

 

그리고 판결도 똑같습니다.

사탄의 세력도 '불못'이고,

불신자들도 그 심판의 결과는 '불못'입니다. 20:15

 

 

새 하늘과 새 땅 전에, 백보좌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을 20장부터 대지를 크게 나누면

201~10절까지는.. <사탄의 심판>

2011~끝절 15절까지는.. <백보좌 심판>

그리고 계21장과 22장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여러분, 이 순서를 눈 여겨 보십시오.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시작하시기 전에,

먼저는 <삼마일체, 사탄의 세력>을 심판하시고

이어서 <백보좌 심판>을 통해, <불신자>들을 심판하시고,

 

세상을 깨끗이 정화하시고, 청소하신 후에

비로소 <새 하늘과 새 땅>을 시작하신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마지막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기 전에,

하나님은, 사탄의 모든 역사를, 지난 수 천 년간 내려왔던 사탄과 그 훼방을

먼저 심판하십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천국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사탄이 계속 역사하고, 훼방하면.. 그게 어디 천국이겠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깨닫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피조세계인 새 하늘과 새 땅을 가져 오실 때,

그 원수인 사탄이 <먼저, 앞서>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을 쓰러뜨린 후, 또 다른 원수를 심판하실 것인데,

그 원수는 바로 불신앙의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그 사탄을 따라갔고, 사탄의 종이 되어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사탄>을 심판하시면서, 연속해서 <사람>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피조세상이 새롭게, 온전케, 의롭게 되려면.. 심판이 있어야 하는데

그 백보좌 심판에서, 많은 인간들은 지옥(불못)으로 갈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스크루지는

자신의 몸을 이탈하는 경험을 합니다.

 

천사는 스크루지를 데리고 이집저집 돌아다니고,

스크루지는, 천사를 따라서, 우연히 방문한 집에서, 그 집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에 대해 아주 지독한 말들을 해서

스크루지조차, 그 저주의 대상에 대해 동정심을 느낄 지경이었습니다.

 

마침내 그 집 사람들이 스크루지라는, 자기 이름을 부릅니다.

 

그래서 그들의 저주의 대상이, 사실은 자기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그렇게 잔인한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잠시만, 이 이야기를 고쳐서 생각해 봅시다.

지금, 하늘에서 천상의 회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만약 내가 파리가 되어서, 그 회의장에 잠입해서, 벽에 붙어서,

그 천상의 회의장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이 땅에 임하게 하기 전에,

세상을 죄로 오염시킨, 사악하고 비참한 존재들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말씀을 듣게 된다면

벌벌 떨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당신은, 당신의 이름 석자를 듣게 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사악한 존재 중에는.. 바로 당신도 포함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새롭게 건설하시기 전에,

이 피조세계를 죄로 오염시킨 모든 것을 제거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제거 대상, 심판의 대상 중에는

내 이름도, 거기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2011~15절의 백보좌 심판에 관한 말씀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한 번 들어보실까요?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나라 사역에 포함되지 않았다면,

마지막 심판 때, 그 생명책에 당신의 이름도 들어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 무서운 일이지만,

당신은 전에, 이 진리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반드시 이런 설교를 들으셔야 합니다.

그 심판은 너무 엄중하기 때문이고,

'기차'는 나를 태우러, 지금도 계속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보좌 심판

 

사도요한은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20:11

오늘날 신자들, 즉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보좌를 보는 것입니다.

보좌를 보는 사람은.. 다 그의 인생과 신앙이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성전에서 주의 옷자락이 가득한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에스겔도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예레미야도 하늘 보좌를 보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보좌를 봐야 합니다.

위 구절을 암송하면서, 묵상하면서, 그 보좌를 보실 수도 있습니다.

꼭 봐야 합니다.

 

당신을 구속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주인이시며

거대한 보좌 위에 앉아 계십니다.

 

그 보좌는 너무나 높고 거대해서, 그것에 비교하면

모든 피조세계는 안개같이 사라져 버릴 지경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주의 일을 하다가, 세상이 모두 당신을 대적할 때도

당신은 보좌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러면 회복되고, 다시 힘을 얻습니다.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신, 아직 주님을 믿지 않는 분들도

하늘의 보좌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리셔야 합니다.

 

꼭 환상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본문 말씀을 통해서라도, 우리는 하늘의 보좌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무조건 축복하시고 지지해 주셔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는 언젠가 그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를 받기 위해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를 보아야 합니다.

 

당신은 언젠가 그 보좌 앞에서, 완벽한 정의 가운데 심판 받을 것입니다.

 

보좌의 권세

보좌는, 그분의 능력과 모든 것을 다스리는 권세도 보여주지만,

하나님이 앉으신 그 보좌가, 심판의 보좌라는 사실을 당신은 아셔야 합니다.

 

로마서 14장은, ‘하나님의 심판의 보좌라고 합니다.

고후5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심판의 보좌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을 때, 심판대(베마) 앞에 서셨습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마지막에는 모든 것이 그 반대라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그리스도의 심판대(베마)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는 그날 어떻게 느끼겠습니까? 재판장과 피고가 뒤바뀐 그 날 말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하찮게 여겼고, 헤롯과 협상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아무것도 아닌, 물건처럼 취급했는데,

이제 빌라도가 그리스도 앞에 설 것입니다.

 

빌라도가 참 비참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아닙니다.

바로 당신이 비참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빌라도처럼 행동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빌라도처럼,

복음을 계속해서 듣고서도, 그 분에 대해 고려해 본 후, 그분을 거절했습니다.

아니면 그리스도를 시시하게 생각했습니다.

 

그저 종교적이 될 만큼만 그리스도를 대했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섬기는 그 정도만큼

당신은 사실 그리스도를 심판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불순종만 죄가 아니라,

당신이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방식이나, 그분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그분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크고흰 보좌

희랍어로 메가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이 단어는 외관의 크기, 치수, 무게, 탁월함, 권세, 능력이

모두 총체적으로 위대하다는 뜻입니다.

 

당신이 서게 될 심판의 보좌가 그렇게 위대합니다.

 

보좌의 위대함은, 그 발등상에서도 나타납니다.

보좌의 발등상은 이 지구 자체입니다.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하늘은 나의 보좌이고, 땅은 나의 발등상이다

모든 대륙을 소유하고 유지한 왕은 없었습니다.

 

우리와 세상이 떨 수밖에 없는 위대한 왕도,

지구의 일부분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 앞에 서게 될 이 왕은, 너무나 위대해서

그 보좌의 발등상이, 이 지구 전체입니다.

 

그렇다면 그 분의 능력과 권위는

얼마나 위대하겠습니까?

 

나는 크고 흰 보좌를 보았다

사실, 그 보좌 앞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인간이 서 있습니다.

 

인간이 바다를 이루고 있지만, 요한은 그들에 대해 무관심합니다.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그렇게 위대하시기 때문에

요한은 오직, 그 분만 눈에 들어오고,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그 보좌 앞에서, 완전히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인간은, 다른 인간에 대해, 많은 가치를 두고 있으며

우리는 서로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침내 자신을 완전히 계시하실 때는

우리 인간은 완전히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될 것입니다.

 

당신이 교만의 문제를 갖고 있다면,

하나님의 보좌를 봐야 합니다.

그때 모든 교만은, 즉시로 녹아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보좌가 위대한 이유는, 그 위에 앉으신 분 때문입니다.

그 분은 스스로 계신 분이며, 알파와 오메가이고,

고대부터 계신 분, 보이지 않는 신, 송축 받으실 분,

권능자, 거룩한 분, 의의 하나님, 신 중에 신이며, 왕 중의 왕이시고,

 

하늘과 땅의 주인이고, 율법을 주시는 분이시고,

모든 자를 심판하실 분으로

이 분은, 우리가 두려워할 분이십니다.

 

성경은 이 분이 우리가 두려워할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4:34~35,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느부갓네살 왕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그의 총명이 다시 되돌아왔습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오직 이 땅만을 보며

그런 사람들의 모든 판단의 근거도.. ‘땅의 것입니다.

 

그런 당신이, 하늘을 우러러 볼 때, 총명이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영원한 것을 보시고, 실재 Reality가 무엇인지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제가 시poet를 위해서, 제 인생을 걸 것 같습니까?

이것은 시가 아니라, 실재입니다.

 

이런 일은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이것 만이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것입니다.

 

믿는 우리의 마음은 새로워졌고, 성령으로 거듭났지만, 그렇다고 해도 명심하십시오.

우리가 진정한 복음을 갖고 있다고 종일 자랑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세상에 매혹당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반짝거리는 것들, 인간에게 너무나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들에 의해

매혹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하늘과 보좌를 우러러 볼 때,

진리에 대한 총명이, 신앙심이 되돌아올 것입니다.

 

'흰색'의 의미.

보좌는 흰색이라고 합니다. 백보좌입니다.

하나님의 의에 대해 말하려고 하면 무너집니다.

인간의 언어로는 하나님의 의를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으며, 이해했다고 해도, 소통할 수 없을 만큼 인간의 언어는 미약합니다.

 

하나님의 의righteousness의 이글거리는 백색의 찬란함!

천사조차 자신을 가리지 않고, 그 앞에 설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스랍들은, 히브리어로 불타는이라는 뜻이 있는데

그들 자체가 불타는 것이 아니라,

이 위대하고 두렵고 무시무시한 하나님과, 하나님의 의를 반영합니다.

 

당신이 심판받을 보좌는, 점도 흠도 없는 백색으로,

어떤 협상도 허락되지 않으며

순수하게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인 완벽한 백색의 의에 의해 심판 받을 것입니다.

 

.............

 

20장의 보좌와 계4장의 보좌를 비교해 보면,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백보좌 심판과 그 전후 사건 2 /20:11-12/ 폴 워셔

2015-06-19 14:06:30

 

20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위 성경은 주의 임재 앞에서, 땅과 하늘이 피하여 도망간다고 말씀합니다.

피하여 간 데 없더라고 했는데,

하늘과 땅이, 자기 있는 힘을 다해서, 보좌에 앉으신 분으로부터

도망치듯, 뒤로 물러난다는 것입니다.

 

루터교 신학자 싸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들어보세요, 이 말은 고전적 표현입니다.

 

그 보좌 위에는 끔찍하게 두려운 분이 앉아있습니다.

(여러분, 요즘 교회에서 언제, 하나님이 끔찍이 두려운 분이다.. 라는 설교를 들어보셨습니까?

그러나 과거에는, 교회에서, 하나님을 끔찍이 두려운 분 awful God 으로 가르쳤습니다.)

 

그 보좌 위에는, 이름도 형상도 모습도 없이

오직 신비하고 끔찍하고 awful, 무게 있는 존재가 앉아 계시는데,

그 분은 오직 이름 지을 수도 없고, 형언할 수도 없는,

영원한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곳에는 전능자의 벌거벗은 (가려지지 않은) 끔찍하게 두려운 임재가 있어서,

하늘과 땅이 그 앞에서 도망을 갑니다.

 

752.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이 이르면, 내가 바르게 심판하리니,

땅의 기둥은, 내가 세웠거니와, 땅과 그 모든 주민이 소멸되리라 하시도다.’

 

975.

산들이 여호와의 앞, 곧 온 땅의 주 앞에서 밀랍(왁스) 같이 녹았도다

 

위 구절들은, 하나님 앞에서

땅과 그 거민이 다 소멸되고, 온 땅이 다 녹는다고 합니다.

너무 두려운 말씀이 아닙니까?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그 가운데는 교만한 사람도 있고, 위대한 인물들도 있을 것이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용광로로 들어간 조그만 밀랍 인형처럼.. 다 녹아버릴 것입니다.”

 

저는 어제, 우연히 TV에서, <집을 새롭게 단장해 주는 어떤 방송 프로>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운 좋게 선택되어, 자기 집을 무상으로 단장 받게 되었는데,

카메라가 비추는 그 집 안에서,

붉은 벨벳 예수라는 인형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벼룩시장에서 그 예수 형상을 샀다고 했는데,

그 인형은, 50센티 정도 높이의 예수 조각상이었습니다.

 

인형 (예수님) 옷은 붉은 자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그런데 신성모독적인 것은, 그 위에 작은 동전 삽입구가 있는,

말하자면 예수님 저금통이었습니다.

 

아마 신상을 만들기 좋아하는 남미에서 만든 것으로 보여지는데,

돼지 저금통을 만들듯이, ‘예수님 저금통을 만들어 놓았고,

 

그 가정은, 그것을 구입해서, 자기 집 한 복판에 가져다 두었습니다.

돼지가 복을 불러오듯이,

예수님이 돈을 많이 벌게 해 달라는, 그런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가정은, 그 예수 상, 사실은 저금통을,

자기 집 아파트 거실 한 가운데 두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 스스로, 그 조각상, 즉 가정 제단 근처를 성전으로 부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TV 방송을 보면서, 신성모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연히 그들이 사는 삶의 모습을, TV를 방영하는 중에, 카메라로 잡은 것이겠지요.

그런데 누가 더 비참한 존재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예수님 형상으로 된 저금통을 만들고,

그것이 그리스도를 존중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인지..

 

아니면, TV 방송을 보면서

정말 불쌍한 사람들이군!’하며 혀를 차는 사람들인지..

여러분, 둘 중에, 누가 더 비참한 존재입니까?

 

TV를 보면서, ‘저 우상숭배, 저 무지함을 비난하는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도,

사실은, 자기 집에 예수 형상 저금통만 갖다 놓지 않았을 뿐이지,

그들과 똑같이, 자기 집 가장 중앙에, ‘물질의 우상이 자리 잡고 있지 않나요?

 

우리도, 어리석은 그 가정과 똑같은 짓을 .. 종종 하고 있지 않나요?

예수님을, 복을 불러오는 돼지 저금통과 동일시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날에는,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닌다고 하지만,

그리스도가 진정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데,

돈만 많이 벌어다 주는 하나님으로 믿고 있다면,

그 예수 저금통을 섬기는 우매한 우상숭배자들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어른들은, 아이들이 딱지치기나 공기놀이를 하는 것을 보면,

그것에 자기 목숨을 걸고, 따려고 열심히 애쓰는 것을 보면.. 어처구니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을 가지고, 똑같이 그렇게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밴스 헤브너 목사는, 신자들이 다이아몬드 공기놀이를 하면서

애를 쓰며 살고 있다고 풍자했습니다.

 

공기놀이를 하는 돌이, 다이아몬드로 바뀌었을 뿐이지,

그 탐욕과 재미란 본질은, 아이 때나 어른이나.. 똑같은 것입니다.

 

이 모든 현상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엄위하시고 두려우신 하나님,

그 앞에서 하늘과 땅이 녹아지고, 모든 인간들이 녹아질, 그 두려우신 하나님을 모르고,

 

그저 다이아몬드 공기놀이를 하면서,

하나님 도움으로.. 자기가 이 세상에서 부자되고, 성공할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부모라면,

손님이 여러분의 집에 와서, 집을 어질러 놓거나, 여러분의 옷에 때를 묻히면

그건 화가 나지만, 참을 수 있는 화입니다.

 

그런데, 어떤 낯선 손님이 우리 집에 와서,

여러분의 자녀를 때리거나 조롱하면.. 부모는 불같이 화를 내게 됩니다.

이것은 참을 수 없는 분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보세요.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돼지 저금통취급해서, ‘예수 저금통을 만들어 놓고,

 

예수 저금통을 자기 집에 들여놓지 않아도,

똑같은 심정으로,

예수가 오직 자기 집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존재로 인식하고, 그 형상 앞에서 빌고 섬긴다면..

 

예수님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불같이 진노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아들 예수를, 사람들이 엄청나게 모독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돼지 저금통따위로 취급한 사람들을,

마지막 심판 날, 밀랍인형처럼 다 녹혀 버릴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외아드님을, 함부로 건드리지 마세요.

그 분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격렬하게 반응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한 번 상상해 보십시다.

누군가 당신을, 만왕의 왕 앞으로, 그 심판대 앞으로 끌고 갑니다.

그 힘은 너무나 강해서, 당신은 절대로 뿌리치고 도망갈 수 없습니다.

 

보니까, 하늘과 땅은

당신과 반대 반향으로 뒤로 물러갑니다. 피하여 없어집니다.

 

그때 하늘과 땅과 만물은, 피하여 도망가면서, 외칠 것입니다.

도망가라. 도망가라. 왕의 진노로부터 도망가라!

보좌 위에 앉으신 분의 진노 앞에서, 누가 견딜 것인가?’

 

강은 그 앞에서 마르고, 산은 밀랍(왁스)처럼 녹아내립니다.

 

개미 같은 존재인 당신은,

왕의 심판대 앞에 가서,

모든 피조물들이 두려워서 그 앞에서 도망친, 그 분을 만나야 합니다.

 

자신이 이룬 업적을 자랑하며,

지금 가슴을 펴고 떳떳하게 살아가는, 소위 성공한 사람들은, 귀담아 들으십시오.

 

당신의 업적과, 지위와, 성과와, 자랑,

또한 모은 재산을 뽐내며,

그 위대한 왕의 심판대 앞으로, 당신은 걸어 들어가면서,

 

이 세상에 속한 것 중에,

영원하지 않은 것들이

당신을 지나서, 파멸의 길로 뒷걸음질 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자동자가 주행할 때 보면,

반대편 차선으로는, 다른 차들이 역주행해서 달려갑니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최후의 심판 때,

우리 각자는, 하나님 앞으로 행진해 나아가고,

이 세상과, 또한 자기가 가진 모든 세상 것들은, 역방향으로 피해서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가르치는 바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 장면을 정확히 보게 된다면,

여러분은 불 속에서 겨우 건져진, 구원받은 자가 될 것입니다. 고전3:15.

 

여러분이,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

모든 것을 다 잃고, 여러분의 몸만 겨우 서게 된다면.. ‘불 가운데 겨우 구원 받은사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

평소에 주님을 잘 섬긴 열매와 공적을 갖고서, 그것과 함께 서게 된다면,

, 그 영생의 열매들이, 심판주 앞에서, 피하여 없어지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그 날,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12:17절입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여기서 세상이 지나간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떠밀려 사라진다입니다. pushed out 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그토록 갖고자 애쓰는 것들,

영원치 않은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심판 가운데 밀어내고, push out 하고 계십니다.

 

계속해서 사도요한은 말씀합니다.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20:12

 

사도 요한은, 환상 가운데, '죽은 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장면은, 끔찍했습니다.

 

여기서 죽은 자,

육신이 죽은 자로도 볼 수 있지만,

그런 뜻과 아울러, 영혼이 죽은 자들입니다.

 

그들의 숫자는.. 큰 자나 작은 자나.. 라고 말씀한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입니다.

 

싸이스 라이트

큰 자나 작은 자나

큰 죄인이나, 작은 죄인이나라고 해석합니다.

 

이 말을 유의해서 들으셔야 합니다.

무솔리니나 히틀러 같은 큰 죄인뿐만 아니라,

작은 죄인들.. 즉 평민, 무식한 자, 가난한 자들도.. 죄인들은 다 똑같이 심판을 받습니다.

황제나 거지나.. 심판 때는 똑같습니다.

 

그곳에는 흰옷 입은 자들도 없고,

'점도 흠도 없는 자'들도 없고, 종려나무도 없고,

벌거벗은 죄인들과

벌거벗은 전능자가 보좌에 앉아서,

영원한 저주를 선포하려고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싸이스 박사는, 자기 책에서, ‘벌거벗은이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자신의 벌거벗음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벌거벗음입니다.

이 표현은, 최후 심판에 관한, 아주 중요한 개념입니다.

 

1. 여러분, 제가 이런 묘사를 한다고 해서, 낄낄대며 웃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갑자기 이 순간에, 이 교회 안에서

당신만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얼마나 수치스럽겠습니까?

끔찍하겠지요?

 

여기서 벌거벗는다는 뜻은, 비유적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2. 그런데 하나님도 벌거벗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벌거벗는다는 뜻은,

하나님의 그 엄위하심과 두려움을 감춰줄 만한, 어떤 안전장치, 보호장치가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뵙는 것 자체가, 두려움의 극치입니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뵈었을 때,

그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한 장면을 보았을 때, 너무도 두려워했습니다.

 

스랍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서, 그 둘로는 자기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 발을 가리고, 그 둘로는 날며 찬송하며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고 했습니다.

 

그때 이사야는, 너무 두려운 나머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이사야는 흘깃하나님의 보좌를 보고도, 이렇게 두려워했습니다.

(벌거벗은.. 이 아니라) 옷으로 가려진 하나님의 신성을 보았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사야는, ‘내가 망하게 되었도다!’ 라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장차 우리가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뵙게 될 그 하나님은

(이사야가 보았듯이) 옷자락으로 가려진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벌거벗은 신성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싸이스 박사가 그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것도 이사야처럼 흘깃보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받는 시간 내내, 그 두려운 존전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사야보다, 얼마나 더 끔찍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를 감싸주지 않는 사람은) 정말 기절할 듯이 두려워할 것입니다.

 

당신하나님의 신성의 충만사이에

가려줄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둘 다 벌거벗고, 서로 마주 서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벌거벗는다는 뜻은, 당신이 행한 모든

더럽고 추한 행위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불 앞에 낱낱이 다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벌거벗는다는 뜻은,

하나님의 그 엄위하심과 두려움을 감춰줄 만한, 어떤 안전장치, 보호장치가 없다는 뜻입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20:12.

 

요한은 나는 죽은 자를 보았다고 할 때,

그것은 인간에 있어서, 가장 절망적인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영혼이 죽은 자로 서 있는 것.. 말입니다.

 

만약 구원받지 못한 자가, 성경에 나온다면,

바로 이 구절에, 죽은 자의 그룹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구원 받지 못한 당신이, 성경에 언급된 구절이 있다면, 바로 이 구절입니다.

 

사도 요한은, 환상 중에,

오늘날 당신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 있는, 죽은 자.. 본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당신의 얼굴을, 거기서 보았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그곳에 벌거벗고 서 있는 장면을.. 보았을 것입니다.

 

물론 당신뿐만 아닙니다.

인류의 수많은 무리들이, ‘죽은 자에 속하며,

당신도 그 무리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는 당신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이 계시록은, 당신의 미래를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회개하고, 주님의 자녀가 되지 않으면.. 장차 그렇게 됩니다.)

 

당신이 스크루지 영감이고,

당신이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대 앞에, 벌거벗고 서게 될 것입니다.

 

요한은 큰 자나 작은 자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큰 자.. 세상에서 크게 출세한 사람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날,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서서 보면,

큰 자, 수증기나 연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629절에,

,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이사야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여러분 이게 과장법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 코에서 숨이 한 번 푹 꺼지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는 다시 숨을 쉴 수 없습니다. 그의 코의 호흡이 멈추면, 그것으로 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이 세상에서 높은 관직에 오르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또는 물질을 어마어마하게 모았다 할지라도,

그 심판대 앞에 가면, 자신의 본질을 비로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다 연기요, 증발하는 수증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세상에서 좀 출세하고 성공했다고,

우리가 교만해서는.. 절대 안 될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나는 증기에 불과하다는 심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날에, 안전합니다.

 

요한은 또한 작은 자를 보았습니다.

여러분, 작은 자도 큰 자와 똑같은 죄인입니다.

 

작은 자,

자기 자신을, 히틀러, 스탈린과 비교해서, 그들같이 큰 죄인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큰 자나 작은 자, 그 본성은.. 똑같은 죄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최후의 심판 날에, 당신은

역사상 가장 악한 자와 비교해서 상대평가로 심판 받지 않고,

 

만약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역사상 가장 의로운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심판 받을 것입니다.

 

혹자는,

천칭 저울의 한 쪽에 율법이 있고, 다른 쪽에 인간이 놓여져서

인간이 율법과 비교해서.. 부족하다는 판결을 받는다.. 고 말합니다.

 

어쨌거나, 어떤 기준으로 보나,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이 받을 판결은,

너무나 두렵고, 어떤 사람의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두려움의 극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후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성경에서 이런 최후의 심판에 관한 말씀을 대할 때,

자세를 똑바로 앉아서, 등을 세우고, 귀담아 듣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만약 이런 말씀을 들을 때,

축 쳐져있거나, 나와 상관없다는 태도로, 뒤로 느슨히 앉아서 듣는다면,

그 자세가 벌써 최후의 심판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의 미래와 영생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인 것을.. 자기 스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날 우리는,

그렇게 구부정하게, 또는 느슨하게 무신경한 태도로,

서 있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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