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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모음/주제 설교

거룩 관련 설교들 - 유기성 목사

by Jessi J 2025.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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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거룩하게 살 수 있는가? /17:15-19/ 유기성 목사

2016-08-04 10:59:0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여러분, 우리가 경험하는 가장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거룩하게 변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거룩하게 만드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가장 놀라운 기적입니다.

 

(17) “저희를 거룩하게 하옵소서그래서 하나님께서

거룩함이란 많은 성도에게 가장 부담스러운 문제입니다. 도무지 이길 것 같지 않은 죄와의 싸움, 끊어 버리려고 노력할 할수록 더욱 죄에 빠지는 좌절감이 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도무지 끊어지지 않는 죄 문제 때문에 낙심하고 오늘 이 자리에 온 분들도 많으실 것입니다. ‘하나님 또 죄짓다가 왔어요. 하나님, 이 죄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요?’ 이런 심정으로 오늘 예배드리시는 분들도 실제로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갖고 있는 죄로 인한 갈등과 고민이 사실 알고 보면 가장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거룩하게 만드시는 놀라운 과정, 여러분 안에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저는 오늘 젊은이 교회에서는 온유함에 대하여, 부서장 세미나에서는 소명에 대하여, 내일 젊은이 교회 특별 새벽 기도회에서는 열방 선교에 대하여 설교를 하게 됩니다. 네 번의 설교를 준비하면서 가장 흥분되는 설교는 거룩에 대한 이 설교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몇 주 전부터 이 본문을 따로 떼어 준비시키신 설교이기 때문입니다.

 

거룩은 죄를 이기는 능력입니다.

(요일 5: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믿어지지 않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정말 범죄하지 않는 거룩함에 이를 수 있을까요? 저는 이 말씀에서 크게 실족했던 적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로 난 자가 아니구나!’ 그러나 이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낙심했던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범죄하지 않게 되는 것이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요한일서 5 18절 하반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범죄하지 않는 것은 우리 노력으로 범죄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 내 안에서 나를 지키면서 악한 자가 나를 만지지도 못하게 해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짓지 않게 하십니다. 그러니까거룩하게 되어라가 아니고 거룩하게 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거룩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거룩하게 살라고 명령하지 않고하나님께서 저들을 거룩하게 하옵소서기도하셨다는 사실을 절대 잊으면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기도하셨는지 주목해 보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우리를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은 예수님은 진리란 아버지의 말씀이라고 하였는데, 갈라디아서 2 5절에 의하면 복음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거룩하게 되는지를 잘 아셔야 됩니다. 우리가 노력하고 결심해서 절대 거룩하게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복음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 7절 말씀에 의하면 주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히브리서 9 12절 말씀에 의하면 주의 보혈은 영원한 속죄함을 주고,

로마서 5 9절 말씀에 의하면 주의 보혈은 우리를 의롭게 해 주고,

히브리서 13 12절 말씀에 의하면 주의 보혈은 우리를 거룩하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거룩함은 우리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노력해서 우리 죄가 깨끗하게 되는 것도 우리가 영원히 속죄함을 받는 것도 우리가 의로워지는 것도 우리가 거룩해 지는 것도 아니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미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진리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말씀은 놀랍지만 이 말씀만으로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지은 죄를 용서받았다고만 믿지, 실제로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리인 말씀만 아니라 진리 그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말씀으로 죄 씻음을 받는 정도까지만 알지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놀라운 것인데, 예수님이 실제로 우리 안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단순히 지식으로 알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실제 우리 안에 살아계십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주 강원도 평창에서 부흥회가 있었는데, 목이 너무 아파서 부흥회를 인도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주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제 목에 손을 대고 선포하였습니다.

 

나의 성대를 주님이 쓰신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니 목은 나을지어다!” 설교하러 강단에 올라가기 전까지만 해도 말을 하기도 쉽지 않을 만큼 쉽지 않았지만, 희한하게 시간 시간 목소리가 열렸습니다.

 

부흥회는 잘 인도하고 돌아와서 목요일 저녁에는 신학생 집회가 있었는데, 이제는 열까지 나 더 어려워졌습니다.

가는 도중에 또 목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놀랍게도 설교하기 바로 직전까지 그 교회 담임목사님과 인사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지만 신학생 앞에 서서 2시간 동안 전혀 어려움없이 말씀을 잘 전하고 돌아왔습니다.

 

또 금요 성령집회 때는 콧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래서 목과 코를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좀 듣기가 이상한 목소리이긴 했지만 말씀 끝날 때까지 전혀 지장을 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늘도 동일하게 이 목소리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오늘 너무 중요한 설교를 해야 하기 때문에. 벌써 몇 주 전부터 성령님께서 준비시키신 설교를 해야 하기 때문에

주님이 내 목소리를 쓰신다. 그러니 고침을 받을지어다!” 하고 기도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정말 놀라운 일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 17: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거룩하신 것이 어떻게 제자들이 거룩한 것이 되고, 어떻게 우리가 거룩한 것이 될 수 있습니까? 예수 믿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생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 옛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생명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거룩하시면 우리도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생명이 되시고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왜 거룩하게 되느냐? 이제부터는 죄가 고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모시고 살게 되면서는 죄가 고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전에는 죄가 즐거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모시고 살면서부터는 죄가 고통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생명이 되심으로 우리 안에 일어나는 변화는 죄가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죄는 성령님을 근심하게 만듭니다. 성령님이 근심하면 우리 마음이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로 인하여 여러분 마음이 고통스럽습니까? 성령께서 근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어떤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 때문에 여러분 마음이 고통스럽습니까? 그렇다면 기뻐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명성교회를 담임하시는 김삼환 목사님은 중학교 다닐 때 10리나 되는 학교를 다니면서도 새벽 마다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하였는데, 하나님이 회개를 시키는데 얼마나 눈물을 흘리며 회개를 했는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보다 더 슬프게 회개를 했다고 했습니다.

 

어린 아이가 죄를 지었으면 얼마나 많이 지었겠습니까? 성령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어린 아이라도 통회하며 회개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목사님을 지금 그렇게 크게 쓰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을 때 죄에 대하여 무감각합니다. 그래서 죄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것입니다. 오히려 죄가 즐거움입니다. 유혹입니다. 죄가 유혹이 되고 달콤하면 결코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결심해도 노력해도 가둬 놓아도 혈서를 써도 안됩니다.

 

신내림 굿을 하려는 여인에게 귀신을 내어 쫓는 기도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멀쩡하게 앉아있던 여인이 예수님의 보혈로 덮어주시기를 기도를 시작하자, 소리를 지르고 발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살기등등한 눈으로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난 안 나가!”하며 험한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사람이 붙잡고 아무리 애를 써도 더욱 완강하여 본인의 의지가 필요다고 생각하여에수님을 부르라고 하자 입을 꼭 다물고 거부하였습니다.

 

정말 구원받기 원하느냐?” 물었는데, 대답을 안 하는 것입니다. 자꾸 확인하자 자기는 신내림 받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늦은 밤까지 애를 썼지만 그는 귀신에게서 놓임 받지 못하였습니다.

보혈의 한 방울이면 세상 모든 마귀와 귀신을 다 모아 놓아도 그들을 물리칠 수 있지만 본인의 마음이 원치 않으면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내림 문제로 기도하던 여자로 인하여 지치고 피곤한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내일 새벽에 교인들에게 물으라는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케 하는 보혈의 능력을 감사하고 찬양하는데, ‘너희들은 정말 죄를 버리기 원하느냐?‘ 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죄를 다 버리기 원하십니까?

 

저는 죄의 재미를 압니다. 신학생 때, 처음 미성년자불가 영화를 보고 너무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심을 느꼈습니다. 기숙사 채플에서 기도할 때 회개하였지만, 다시는 그런 영화를 보지 않겠다고는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면 인생이 너무 삭막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랬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성령님과 친밀함을 몰랐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너무나 다릅니다. 저에겐 죄의 즐거움이 없어졌습니다. 조그만 죄도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릅니다. 성령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방언 기도 후, 죄를 이기는 힘이 놀랍게 커졌습니다.

 

주님의 임재와 영광을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령 사역을 하면서 24시간 성령님께 민감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은밀한 시간이 더 충만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죄의 유혹은 너무나 작은 것이 되었습니다.

죄로 인한 고통은 죽는 것이 나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주의 영광이 사라지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충성스런 부하 우리야의 아내인 밧세바와 간음한 후 그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거두실까봐 엄청난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몸부림치며 기도했습니다.

( 51: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다윗이 늘 성령님의 감동을 느끼며 살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거둔다는 것은 죽음과도 같은 것임을 알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같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고 난 다음 즉각 엄청난 두려움과 고통을 느꼈습니다.

 

( 3: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그들이 바로 전까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두려움으로 바뀌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령님을 모시고 살게 되면서부터 죄가 고통스러워지기 시작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죄 짓게 되면 토해내게 하십니다. 그것은 우리를 죄에서 다시 거룩하게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죄를 결코 지어서는 안됩니다. ? 결국은 그 죄를 토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그와 같은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토해내게 만드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거룩함을 다시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라고 했습니다. 성령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죄를 토해내게 하시는.

 

( 24: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성령님께서 우리 죄를 자백하게 하십니다. 심령의 부흥이 일어날 때는 언제나 그러했습니다. 개인이든 공동체든지 성령님이 임하시면 죄를 고백하게 됩니다. 평소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고백이 이루어집니다.

 

1907년 한국 부흥의 도화선이 길선주장로의 고백이었고, 그보다 3년 전 1904년 감리교 하디영 선교사의 공개 회개 고백에서 부흥은 시작되었습니다. 한국 성도들을 무시하고 깔보았던 죄를 한국 성도들 앞에서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1904년 인도 부흥의 시작인 시알코트 부흥회도 제 1회 집회 때 존하이드 선교사의 공개 자백이 있었습니다. 자기 청년 시절에 지었던죄를 인도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도에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죄가 그만큼 고통스러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고 나면 약속대로 그는 죄에서 씻음을 받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회복했습니다.

( 5: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성령님과 친밀함이 없는 사람은 죄가 무감각해지고 유혹이 되고 즐거움이 됩니다. 이런 상태가 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러한 사람에게 복을 주실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지만, 반드시 죽을 것이라 했습니다.

(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어느 목사님께서 한 여 집사님과 상담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집사님이 뜨거운 은혜를 체험했답니다. 방언의 은사도 받았고 입신도 해서 천국도 보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 후 신앙 생활이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은 아직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저녁 마다 술이 만취한 상태로 들어옵니다. 하는 말마다 사탄이 좋아하는 말만 골라서 합니다. 같이 사는 것이 끔찍하더랍니다. 그런데 교회에 오면 목사님들이 너무 멋있더랍니다.

 

은혜를 알고 나니 대화가 통하고... 그런데 어떤 목사님 한 분이 마음에 자리를 잡게 되었답니다. 이 분과 함께 살면 얼마나 좋을까 간절한 마음이 드는데, 아무리 생각을 떨쳐버리려 해도 안된다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는 상담이었답니니다.

 

목사님께서 그 여 성도에게이것이 유혹이 된다면 차라리 나의 영혼을 거두어가 달라고 기도하세요.”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 여 집사님이 움찔하면서 놀라더랍니다.

그것이 성도님 영혼을 위하여 차라리 낫습니다.” 그리고는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요한복음 8 24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듣고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는 바리새인들에게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죄에 대해서 단호해야 합니다. 죄 중에 사는 것은 저주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고, 그것은 멸망의 길인 것을 이제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결코 복을 주실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죄에 대한 태도가 분명하면 반드시 여러분은 거룩한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해주십니다. 여러분이 죄에 대해서 마음을 열어놓고 있기 때문에 죄가 여러분을 사로 잡고 있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서 죽어서는 안됩니다.” 늦기 전에 진정으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십자가를 붙잡고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사실상 은밀히 죄의 종노릇하는 문제가 있습니까? 그렇다면차라리 죽여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직도 제가 끊지 못하는 죄가 있습니다. 그러니 결코 복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시간에 고백합니다. 하나님, 더 이상 죄에 종노릇하느니 차라리 제 영혼을 거두어 주십시오.”

 

여러분에게 이 단호함이 있다면 반드시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거룩하게 도우십니다. 죄에 대하여 단호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렇게 해 주십니다. 이것이 가장 놀라운 기적이요 복입니다.

 

 

 

이제 같이 기도하십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거룩한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제가 거룩한 자가 되기 원합니다. 제가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거부하겠습니다. 성령님, 제 안에 죄의 고통을 주신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 저를 주님의 능하신 손에 사로잡아 주시옵소서.”

 

 

 

거룩한 성도로 사는 비밀 /99:1-9/ 유기성목사

2018-04-06 03:20:20

 

99:1 주님께서 다스리시니, 뭇 백성아, 떨어라. 주님께서 그룹 위에 앉으시니, 온 땅아, 흔들려라. 2 시온에 계시는 주님은 위대하시다. 만백성 위에 우뚝 솟은 분이시다. 3 만백성아, 그 크고 두려운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주님은 거룩하시다!

4 주님의 능력은 정의를 사랑하심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공평의 기초를 놓으시고, 야곱에게 공의와 정의를 행하셨습니다.

 

5 우리의 주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의 발 등상 아래 엎드려 절하라. 주님은 거룩하시다! 6 그의 제사장 가운데는 모세와 아론이 있으며,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 가운데는 사무엘이 있으니, 그들이 주님께 부르짖을 때마다, 그분은 응답하여 주셨다. 7 주님께서 구름기둥 속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니, 그들이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과 율례를 모두 지켰다.

8 주 우리 하나님, 주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한 대로 갚기는 하셨지만, 주님은 또한, 그들을 용서해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9 주 우리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여라. 그 거룩한 산에서 그분을 경배하여라. 주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미 하나님에 대하여 많이 들으셨을 것입니다. 온 세상의 창조자이시고, 유일하신 신이며, 위대하시고 지금도 천하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99편은 그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인 거룩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9절 밖에 안 되는 짧은 시편이지만주님은 거룩하시다!’ 라는 고백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의미는 그저 하나님께는 죄나 악이 없이 완벽하시다는 의미만 아닙니다. 99:4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하여 주목할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4 주님의 능력은 정의를 사랑하심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공평의 기초를 놓으시고, 야곱에게 공의와 정의를 행하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여기서 하나님의 능력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에 있다 하지 않았습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것에 있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능력이정의를 사랑함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상 다른 신들과 다른 차이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정의를 사랑하신다는 말은정의를 중요하게 여기신다’. ‘법을 만드시고 철저히 지키신다’. ‘옳고 그른 것을 분명히 판단하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대상은 하나 뿐입니다.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정의를 사랑하는 것 역시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거룩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공평의 기초를 놓으시고 야곱에게 공의와 정의를 행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공평, 공의, 정의를 목표로 삼으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이 정의로운 세상이 되어 억울한 사람, 소외된 사람, 멸시받는 사람이 없게 하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지만 그의 관심은 언제나 사람입니다.

 

성도들은 다 거룩해지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진정한 거룩함을 알지 못합니다. 거룩함을 그저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고, 죄인과 어울리지 않고, 성경을 더 많이 보고, 기도 많이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거룩하려고 애를 쓰면서 대부분 무서운 바리새인처럼 변해 버리고 맙니다.

 

바리새인은 당시에 가장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산다고 자타가 인정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에게 돌을 던져 죽이려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정말 무섭지 않습니까? 이것이 그들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고 그들 기준의 거룩이었습니다. 죄인과 한 동네에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거룩이 아닙니다. 그 속에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편 99편은 두 고백을 계속 반복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과하나님은 거룩하시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거룩함이 바리새인과 같았다면 이 둘은 함께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죄인인 우리가 어떻게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그 분을 찬양할 수 있겠습니까?

99:1 주님께서 다스리시니, 뭇 백성아, 떨어라. 주님께서 그룹 위에 앉으시니, 온 땅아, 흔들려라.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려 하면 하나님께서, , 됐다. 저리 꺼져. 더러운 입으로 어찌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찬양한다고 하느냐?” 할 것입니다. 세상은 벌써 심판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에게 계속 다가 오셨습니다.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성령으로 우리 안에 임하셨습니다.

우리를 깨끗하게 만들고 거룩하게 세우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의 자체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억울한 사람, 눈물 흘리는 사람이 없도록 세상도 정의로워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많은 경건한 성도들이 품행이 좋지 않고 교양이 없는 사람들을 벌레 보듯 하며 가까이 하기를 싫어합니다. 마음으로나는 당신과 달라” “나와 당신은 어울리지 않아생각합니다. 억울한 사람,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을 돕기는 하지만 대부분 헌금하여 누군가를 통하여 돕기 원하지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은 꺼립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이 아닙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6에 보면 모세와 아론, 사무엘이 하나님을 가까이 섬기면서 무엇이든지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들도 사람인데,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나아가 기도할 수 있었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과 율례를 모두 지켰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7 주님께서 구름기둥 속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니, 그들이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과 율례를 모두 지켰다.

 

그들이 때로 죄에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징계하셨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반드시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용납하실 수 없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용서하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언제나 용서와 사랑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켜 행하는 것이 거룩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명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뿐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웃은 그저 평범한 이웃집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하고 힘이 없어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강도만난 자가 우리의 이웃입니다. 부자 나사로에게 집 앞에서 병들어 굶어 죽어가는 나사로가 이웃입니다.

 

그들을 보면서 불쌍하다 안됐다 하는데서 그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자신이 그런 억울한 처지, 비참한 처지에 빠진 것처럼 그들을 도우라, 우리 사회에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더럽습니다. 거룩하고 싶고 사랑하고 싶어도 안 됩니다.

죄와 악에서 떠나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거룩하라고만 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거룩한 자가 되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주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성격파 연기인인 김수미씨가 일곱 살 때쯤 어느 여름 날에, 아버지를 따라서 들에 나갔는데, 아버지가 송아지를 맡기시면서 "큰성 시집갈 밑천이여, 잘 먹여라!" 하시고는 개울로 멱을 감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갑자기 천둥소리가 나는데 송아지가 놀라 언덕 아래로 뛰어가더랍니다. 어린 김수미는 순간적으로 밧줄을 팔에 감았습니다.

 

그리고는 사정없이 끌려 내려갔습니다. 뒤에서 아버지의 음성이 크게 들려왔습니다. "밧줄, 놔 버려라!" 그러나 어린 김수미는, 팔뚝이며 배가 쓸려서 피를 흘리면서도 "못 놔유, 죽어도 못 놔유! 우리 성 시집 못 가유!" 라고, 소리를 지르며 끌려갔습니다. 구르다시피 뒤쫓아 온 아버지의 팔 힘에 송아지는 멈췄고, 아버지는 어린 김수미를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어릴 때부터야무진 아이'였답니다.

 

우리가 이처럼 죽어라고 붙잡아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고전 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일은 이미 끝났습니다.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이미 의로워졌고 이미 거룩해졌습니다. 우리의 거룩함은 우리의 거룩한 행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더러운 것과 접촉하면 더러워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과 연합하면 주님이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거룩해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가장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요, 거룩한 성도로 사는 비밀입니다.

 

세상 신을 믿는 사람들은 크고 웅장하여 무엇인가 신비로워 보이는 신전과 신상을 찾아 가서 어떤 신성을 경험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 반대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안에 임하신 것입니다.

성령을 우리 안에 보내 주심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이런 종교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거룩한 성도로 사는 비밀입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복음을 실제 삶에서 누려야 합니다.

그래서 영성일기를 쓰면서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과 연합한 자입니다. 주님은 우리 마음에 임하셨습니다.

그래서 매일 일기를 쓰면서 우리도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주님과 동행하기를 갈망하는 것이 소문이 많이 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처럼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려는 것에 대하여 우려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과 하나 되는 것만 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너무나 타락하고, 억울한 사람은 너무나 많은데, 그들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이 자기만 경건하고 거룩하다고 만족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가 정말 주님과 하나 되고 동행한다면 하나님처럼 정의를 사랑하게 된다고 확신합니다. 전에는 자기 자신만 생각하고 살았지만, 주님과 동행하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돕게 됩니다.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고 사모하는 주님은 소외되고 가난하고 억울한 자들의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에게서 그런 삶의 열매가 없다면 우리는 신비주의자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안에 어려운 이들을 섬기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매일 지극한 마음으로 주목자들을 섬기는 교우들이 계십니다. 그들이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이런 일이 교회 안에서 더욱 많아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박보영목사님이 39세에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는데, 자신이 목사가 되기를 오래 기도하셨던 할아버지 박용익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그 때, 늦었지만 목사가 되겠다는 손자를 기뻐하면서 해주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사랑 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시게,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시게,

겸손하게 낮은 자리로 내려가서 섬기시게, 어떤 변명도 하지 마시게,

그리고 성자가 되시게

 

그리고 1997년 경기도 안성에서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교인이 한 사람도 없던 어느 날, 밤늦게까지 교회에서 기도하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3인조 강도가 집 안에 있었습니다. 현관문을 열던 목사님의 배와 목에 강도 세 명이 칼을 들이댄 것이었습니다. 한데 이상하게도 목사님의 마음이 편안했답니다.

 

날 찌르시오. 빨리 좋은 곳으로 가게.”일순 침묵이 흘렀는데 서슬 퍼런 강도들이 하나 둘씩 칼을 내리고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목사님 교회의 첫 신도가 되었고 그들이 데리고 온 안성의 조폭, 전과자, 불량배들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박목사님이 아파서 누워있는데, 가장 사랑해 준 아이가 살며시 들어오더니, 목사님 지갑을 꺼내 돈을 몽땅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나중에 그 아이가 다시 찾아 왔을 때, 배신감이 너무 커서, 너는 같이 있을 수 없으니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면서 비상금으로 숨겨뒀던 돈까지 털어서 쥐어주고 보내 버렸답니다.

 

그런데도 주말마다 찾아오는 그 아이를 보고, 주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도 지셨는데 나는 저 아이를 용서하지 못하나 하는 가책을 받아 그 아이를 용서하기로 하고, 잠시나마 미워했던 것을 아이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답니다.

 

의붓아버지와 그 아들에게 성폭행 당하고 버려진 여자아이를 데려다 키웠는데, 3인가 되었을 때, 군대에서 휴가 나온 그 의붓오빠 품에서 10일을 지내다가 몹쓸 성병에 걸렸습니다. 학교 양호실에 가서 상담을 하다가, 어디서 이런 일이 벌어졌느냐고 추궁을 당하자, 의붓오빠 이야기를 하면 학교에 다닐 수 없을 것 같아 목사한테 당했다고 거짓말하였습니다.

 

그로인하여 한동안 못된 목사로 누명을 쓰고 동네에서 손가락질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일은 막으려고 끝까지 자기가 했다고 하라고 신신당부하였답니다. 한데, 그 아이가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학교 가서 진실을 말하여 억울한 누명을 벗고 목사님은 오히려 존경과 신뢰를 받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부랑아들 말고는 단 하나 밖에 없는 교인인 집사 내외가 그 아이를 내보내라고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런 몹쓸 아이와 같이 교회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 내보내면 자신들이 교회를 옮기겠다고 하면서, 양자택일을 요구하였습니다. 목사님이 기도하며 고민하다가, 집사님 내외분은 갈 수 있는 다른 교회가 많겠지만, 이 아이는 이곳에서 버림받으면 갈 곳이 없으니, 이 아이를 택하겠다고 했답니다. 그 후, 교회를 떠난 집사 내외가 경영하는 중국집에 새벽기도 후 찾아가서 마지막 심방을 하며 축복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박보영목사님의 일화가 어떻게 들리십니까? 이것이 정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박목사님은 누구보다도 옳고 그른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거룩하게 살기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조폭이고 도둑질을 하고 방탕한 아이들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바로 서도록 도우라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부랑아, 노숙자, 깡패, 도둑놈들로 구성된 교인들에게 수모와 매맞음과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들을 사랑하여 신학생으로 목회자로 어엿한 대학생, 사회인으로 세워주었습니다.

박보영목사님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습니까?

그가 주님과 연합한 자였고 성령으로 살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세워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것이 고작 식사 기도하는 정도가 아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억울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고통당하는 사람, 무시당하는 사람, 버려진 사람을 구체적으로 도우며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이 기억하고 기뻐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화평함과 거룩함, 생명처럼 여겨야 합니다 /12:14-29/ 유기성 목사

2016-08-18 16:03:26

 

유명 탈렌트 김수미씨가 쓴 책에 보면, 그녀가 일곱 살 때쯤 어느 여름 날에, 아버지를 따라서 들에 나갔는데, 아버지가 송아지를 맡기시면서 "큰성 시집갈 밑천이여, 잘 먹여라!" 하시고는 개울로 멱감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갑자기 천둥소리가 나는데 송아지가 놀라 언덕 아래로 뛰어가더랍니다. 어린 김수미는 순간적으로 밧줄을 팔에 감았습니다. 그리고는 사정없이 끌려내려갔습니다. 뒤에서 아버지의 음성이 크게 들려왔습니다.

 

"밧줄, 놔 버려라!" 그러나 어린 김수미는, 팔뚝이며 배가 쓸려서 피를 흘리면서도 "못 놔유, 죽어도 못 놔유! 우리 성 시집 못 가유!"라고 소리를 지르며 끌려갔습니다. 구르다시피 뒤쫓아 온 아버지 팔 힘에 송아지는 멈췄고, 아버지는 어린 김수미를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어릴 때부터야무진 아이'였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처럼 무슨 일이 있어도 붙잡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 16절 말씀이 그렇습니다.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나 또 하나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본문 히브리서 12 14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기를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서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모든 사람과 화평하십니까? 거룩하게 사십니까? 왜 그렇게 살지 못하십니까? 분명히 붙잡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와 다툼이 생겼다고 합시다. 그러나 이 말씀을 명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계속 싸울 수 있겠습니까? 죄짓는 유혹이 왔다고 합시다. 이 말씀을 분명히 명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죄를 짓겠습니까?

 

우리가 화평함과 거룩함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는 이 말씀을 생명처럼 붙잡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노력은 해 보지만 안되면 어쩔 수 없지, 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태도가 에서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에서는 어떤 사람입니까? 팥죽 한 그릇이 장자권보다 훨씬 더 가치있게 느꼈던 사람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에서처럼 망령되게 행동합니다. 영생의 약속보다 현실의 쾌락과 물질의 부요함을 더 가치있게 여깁니다. 그래서 쉽게 화평함과 거룩함을 포기하고 다투고 부끄러운 죄로 더럽힙니다.

 

에서는 후에 장자의 축복이 중요함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께 축복을 간청했으나 이미 늦었습니다. 우리도 후회하고 회개해도 소용없을 때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었으니, 어떻게 살아도 구원은 받았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여전히 남을 미워하고 다투고 은밀한 죄에 빠져 사는 사람은 구원을 잃을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잘못된 교리로 구원받을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율법을 지켜서 선행으로 구원을 받고자 한다면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교리를 알면서도 망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나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올바른 교리입니다. 그러나 이 교리를 은밀한 죄를 지어도 구원은 받을 것이고, 사람들과 불화하고 다툼이 있어도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악용한다면 그는 올바른 교리를 안다고 하면서도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도 건성으로 믿고 형식적으로 믿고 교리적으로만 믿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들과 화평하지 않고, 거룩함을 지키지 못하면 예수님을 아무리 오래 믿어도 허사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7:26-27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주님은 교리를 잘 알면 구원받을 것이라 하지 않고, 분명히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복은 엄청난 것입니다.

 

18-2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율법이 주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 떨었다고 했습니다. 산이 불타고, 캄캄한 구름이 덮이고 우레와 번개와 큰 소리가 임하였습니다.

 

20:18-20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 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 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그 당시 백성들만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모세 자신도 "나는 두려워서 떨린다" 했습니다. 그런데 22-24절에는 같은 하나님을 바라보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시온 산,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에 모인 성도들은 22절에축하행사에 참석한다고 했습니다.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자에게 임한 축복은 말할 수 없이 놀라운 것입니다. 주 예수님을 믿고 우리는 하나님과 즐거이 교제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무서운 심판자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화평함, 하나님과의 친밀함이라는 엄청난 복을 받았지만 이 축복은 죄로 인하여 깨어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12:14 ...거룩해지지 않고서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15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또 쓴 뿌리가 돋아나서 괴롭게 하고, 그것으로 많은 사람이 더러워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16 또 음행하는 자나, 음식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넘긴 에서와 같은 속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정말 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지내며, 이 악한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까? 분명한 것은 우리 힘으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힘으로 된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화평함과 거룩함은 한마디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님을 믿어도 지식으로 믿지 않고 인격적으로 주님과 동행하면 우리는 화평함과 거룩함을 지킬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2 14절에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기를 힘써야 주님을 뵙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순서를 바꾸어 말해도 진리입니다. 우리가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면 모든 이들과 화평하게 되고, 거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는 이 은혜와 축복입니다.

 

유명한 역사학자인 플리니우스 라는 사람이 로마의 트라얀 황제에게,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가라는 상태를 보고하기 위해서 펀지를 쓰는 가운데 이런 보고서가 있습니다.

 

"그들(,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음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도둑질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약속을 어기지도 않습니다. 거짓말은 결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부채 문제에 대해서도 절대로 깨끗합니다."

 

플리니우스 당시 그리스도인들만 그런 것입니까?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사는 것은 날마다 기적을 보고 사는 것입니다.

 

기적은 죽은 자가 살아는 것, 엄청난 돈을 벌고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화평할 수도 없고 거룩할 수 없는 우리가 화평의 사람,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기적입니다.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면 이런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붙잡고 사십니까?

 

이런저런 일로 분주하다 보면 붙잡기는 붙잡았는데, 에서처럼 썩은 동아줄을 붙잡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것은 화평함과 거룩함이고 주 예수님입니다.

 

교인들의 급증으로 인하여 비전연구소에서 교회 증축이 시급한 과제임을 제안하여 기획위원회에서 본당 증축을 결의하고 공청회를 거쳤고, 성남시청으로부터 건축 허가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난 기획위원회에서 교회 공간을 늘리는 증축보다는 교회 차안가지고 오기, 분립 개척교회 등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다만 예배당 출입구 개선 공사 등 반드시 필요한 공사만 시행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큰 교회, 제일 큰 교회, 많은 교인, 큰 건물, 편리한 환경, 그러나 주님 앞에 가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유럽을 다녀보면 한국 교회 역사를 보아도 큰 교회에 연연하는 것은 미혹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친밀함에서 나오는 화평함과 거룩함을 가진 성도들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큰 예배당을 가졌다고 교인 수가 많다고 괴로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사람과 화평하고 거룩함을 지키면 너무너무 괴로워할 일입니다.

 

25절 여러분은 말씀하시는 분을 거역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화평함과 거룩함을 지키지 못하면 인생의 기초가 흔들리는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26절 그 때에는 그의 음성이 땅을 뒤흔들었지만, 이번에는 그가 약속하시기를, "내가 한 번 더, 땅뿐만 아니라 하늘까지도 흔들겠다" 하셨습니다.

 

여러분, 죄가 싫어졌습니까? 그렇게 되어야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다. 주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과 동행하면 죄가 싫어집니다. 주 예수님을 바라보면 다투고 싸울 사람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주변에 나쁜 사람, 싫은 사람이 너무 많다고 탄식하지 마십시오. 죄의 유혹이 너무나 강하다, 세상이 너무 악하다 말하지 마십시오.예수님과 교제하는 즐거움을 모르고 신앙 생활하는 것을 안타까와 해야 합니다.

 

어쩌다 한번 죄짓는 것인데, 그렇게 심각한 죄입니까?” 어쩌다 한번 바람피우는 것은 괜찮습니까?

 

예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하지 않는 사람은 한 번 짓는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천국 소망의 눈이 뜨이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28-29절 그러므로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으니, 감사를 드립시다. 그리하여,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그를 섬깁시다. 우리 하나님은 태워 없애는 불이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 메시지를 글로 읽고 귀로 듣지 않고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진정 사모하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다 끝납니다. 모든 논쟁과 의심과 갈등이 다 끝납니다.

 

여러분은 다투는 성질을 가지고, 은밀한 죄를 즐기는 마음을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히 살려고 하는 것입니까?

 

하늘의 황금 길에서도 계속해서 음탕한 말을 떠벌리고 거짓말하고 남을 헐뜯고 매정하고 성질 부리고 다닐 수 있겠습니까?

 

천사가 하늘로부터 떨어진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죄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교만의 죄를 짓고 하늘에서 쫓겨나 마귀가 된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자를 자기 오른편에 두시겠습니까? 하나님은 하늘이 죄로 얼룩지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하늘을 없애버리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분은 돈 때문에 거짓말도 하고 죄도 짓고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너무나 힘들다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눈이 뜨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보면 수입 따위는 잊어버리게 됩니다.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 (profit)하리요

 

여러분은 그렇게 해서 돈을 얼마나 버셨습니까?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기는 아니었습니까? 한 쪽으로 번 것을 다른 쪽으로 쓰지 않았습니까? 하찮은 것 때문에 기꺼이 영원한 멸망을 자초할 것입니까?

 

술을 끊지 못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쾌락이나 음란 문제로 괴로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죄의 즐거움이란 것이 죄로 인한 고통과 비교할 때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죄의 즐거움이 매우 크다고 칩시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을 당신의 영혼을 잃는 것과 비교한다면,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불가능해요. 나는 여러 번 시도해 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했어요. 그것은 아무 소용 없어요. 그것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죄를 위해 고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를 지키며 악한 자가 우리를 만지지도 못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강해서 예수님께서 결코 이길 수 없는 그런 악은 없습니다. 너무나 질겨서 그가 결코 끊을 수 없는 그런 습관은 없습니다. 그는 사자를 어린 양으로, 까마귀를 비둘기로 바꿀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삭개오가 주님을 한 번 보려고 뽕나무에까지 올라갔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사모함이 있으면 됩니다.

 

어떤 사람은 꿈 속에서 주님을 만나 보았다고 자랑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는 가운데 환상 속에서 주님을 보았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눈이 내린 들판의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현상을 해보니 예수님의 모습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주님을 본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아직 주님을 본 체험이 없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 오셨고, 여러분을 여기까지 인도하지 않으셨습니까?

 

믿음으로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과 화평하고 거룩함을 지키게 해 주실 것입니다.

 

 

 

거룩한 세력이 일어나고 있다 /37:15-28/ 유기성 목사

2016-08-10 14:40:27

 

올해는 625 전쟁 60주년입니다. 독일 통일이 된지 20주년,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진 지 10주년 입니다. 역사는 서서히 통일로 접근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님이 통일이 속히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한국의 통일을 위해 하나님이 행동하실 기도의 잔이 다 차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잔이 다 채워지기 까지 기도할 중보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그 누구보다도 필요합니다.”그런데 이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통일을 위하여 기도를 많이 하는데 기도가 부족하다는 것일까?

 

하나님이 너무 지나치신 것이 아닐까? 그러다가 순간 질문이 생겼습니다. 정말 통일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많다고 생각하기 어려웠습니다.

 

여러분은 실제로 통일을 위하여 얼마나 기도하십니까? 통일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보셨습니까?

 

어려서부터통일, 통일했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꿈에도 소원은 통일/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정말 통일을 이처럼 갈망하는 이는 찾아 보기 어려웠습니다.

 

1 , 박수복 담임 선생님께서는 피난 오셔서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 선생님이셨습니다. “기성아, 이렇게 공부해서 너와 같은 또래 북한 아이들과 겨루어 남쪽으로 통일할 수 있겠니?” 말씀하시면서 얼굴을 들어 보시는데 눈에 눈물이 가득하였습니다. 철없는 중학교 1학년 때였지만 책상으로 돌아와 앉아서 공부해야 할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공부 잘하면 남쪽으로 통일 되는 것이고 공부 안하면 북쪽으로 통일되는 것입니다.

 

이 때만 해도 통일은 싸워 이기는 것으로 여겼지만 이 정도의 갈망과 열정을 가진 지도자를 보기도 어려웠습니다.

 

통일은 우리가 노력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통일에 대한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에스겔 37 15-21절 오늘 본문입니다. 솔로몬 왕이 죽은 후 이스라엘은 우리나라 처럼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 왕국으로 분열된 분단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 후 북방 이스라엘은 앗시리아 왕국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남방 유다는 바벨론 왕국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이 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에스겔이라는 젊은 선지자가 조국 유다가 완전히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엎드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에스겔로 하여금 매우 상징적인 메시지를 그 백성에게 시청각적으로 전달하게 하셨습니다. 막대기 두 개를 가져다가 한 막대기에는 유다라고 그리고 다른 막대기에는 에브라임(북이스라엘을 대표하여)이라고 쓴 다음 그 두 개의 막대기를 하나로 합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하셨습니다.

 

22그들이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

 

통일은 우리의 소원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을 향한 약속의 말씀이지만 우리 민족 한국 교회는 이 약속이 우리 민족을 향한 약속이라고 믿습니다. 성령의 감동입니다!무엇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일제 시대 때 수많은 지식인들, 지도자들이 마지막에 일본에 굴복하고 변절하였습니다. 이유는 우리나라가 해방될 것이라는 믿음, 갈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해방될 힘이 없으므로 일본의 지배가 오래갈 것이라고 오판했습니다. 그래서 천추에 한을 남길 어리석은 친일행각을 한 것입니다.

 

지금도 통일에 대하여 믿는 자는 통일을 준비합니다. 믿지 못하는 자는 반 통일 언행을 하다가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정말 두려운 것은 우리가 통일을 부담스럽고 골치 아픈 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북한 정부가 남한에 도움을 요청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축복입니다. 우리에게 북한을 도와 줄 힘이 있는 것이 우리 능력으로 된 것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남한을 잘 살게 하는 이유는 북한을 먹이고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북한을 왜 돕느냐, 통일 비용이 부담된다.” 하면 자기 복을 걷어차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통일시켜주신다는 것은 싸워서 하나되는 통일이 아니라, 평화로운 통일을 이루어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통일을 위하여 기도하되 평화 통일을 위한 운동에 앞장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주님의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 14절에서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하였습니다.

 

우리는 통일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기도하는 한 사람이 더 필요합니다. 나 한 사람만 동참하면 기도의 잔이 넘치리라 생각해야 합니다.

 

1982년 동독 라이프지히의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 월요일 저녁마다 소수의 성도들이 모여 통일 독일을 꿈꾸며 기도한 지 7년 후 이 모임이 소문 나기 시작합니다. 기도회를 찾는 성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합니다.

 

1989 9 11일 월요일 저녁 이 교회 밖에 약 2 5천명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통일의 열망을 기도한 후 평화 침묵 행진을 위해 거리로 나섭니다. 이 평화 행진이 시작된 지 약 두달 후인 11 9일 마침내 평화적으로 베를린 분단의 장벽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중보의 잔이 다 차면, 그리고 마침내 때가 이르면 주님께서 일어나실 것입니다. 분단의 벽은 무너지고 평화 통일의 그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피 흘림이 없이 서로를 안고 통일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지만 또한 거룩한 세력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하나님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 주신 통일 조국은 그냥 단순히 하나된 조국이 아니라, 성소가 재건되어 하나님을 자유롭게 섬길 수 있는 나라였습니다.

 

23절 그들이 그 우상들과 가증한 물건과 그 모든 죄악으로 더 이상 자신들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하게 한즉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

 

28절 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 가운데에 있으리니 내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을 열국이 알리라 하셨다 하라

 

우리가 통일을 위하여 기도하지만 귀신을 섬기는 나라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공의가 강같이 흐르는 나라, 어려운 이들, 억울한 이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나라, 다른 나라를 돕는 것을 기뻐하는 나라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발리에서 현지인 가이드에게 한국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2002년 폭탄 테러가 일어나 후 미국 유럽 일본 사람들이 다 떠나가서 한 동안 오지 않았답니다. 폭탄이 무서워서.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2주 후부터 다시 왔답니다. 와서는폭탄 터졌다는 데가 어디 입니까?” 묻더랍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문 나되, 거룩한 백성으로 소문나야 합니다.

 

우리나라 통일을 위하여 애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남북한 사람들을 다 만나 보고는 통일이 되기 힘들겠다고 고백합니다. 남북한 사람들이 서로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깜짝 놀랐다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평화롭게 남북을 통일시킬 정신적인 지주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통일을 할 것입니까? 한국의 전통 문화에서 해답이 없습니다. 어떤 이념에서도 해답이 없습니다. 이 일을 교회와 성도가 해야 합니다.

 

625 전쟁이 왜 일어났습니까? 저는 한국 교회의 죄가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일제시대에 한국 교회는 신사참배라는 우상숭배의 죄를 범했습니다. 신사참배하지 않은 성도들은 해방 후에 교만하여 교회 분열의 죄를 주도했습니다.

 

전쟁이 나서 부산으로 피난가서야 깨달았습니다. 구덕 운동장에서 선교사들과 목사들과 장로들 성도들이 함께 모여 비로서 우상숭배했던 죄와 서로 분열했던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6.25 하면 기억나는 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많은 피난민들이 공산당을 피하여 흥남 부두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그 피난민들이 다 배를 탈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흥남 부두는 배를 타려는 사람들로 아비규환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 속에 기독교인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똑같았다는 것입니다. 부산 항구에서도 제주도로 가려던 많은 사람들이 미군 수송선을 타려고 몰려 들었습니다. 당시 헌병들이 질서를 잡기 위하여 몽둥이를 들고 사람들을 내리쳐야 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곳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지만, 그들에게서도 양심도 양보도 사랑도 은혜도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배가 항구를 떠나자 항구에 있던 사람들은 통곡하였습니다. 그런데 떠나가는 배 안에서 찬송 소리가 울려 퍼졌답니다. 이것이 당시 기독교인들의 수준이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떠했겠습니까? 6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얼마나 변했습니까?

 

민족을 살려낼 교회와 성도들이 되어야 통일이 와도 우리에게 복이 될 것입니다.

 

8.15 광복은 무엇이라 해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광복 후 우리 민족의 역사는 혼란과 분열의 역사였습니다. 광복을 누릴 준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대로 통일이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나라에 거룩한 세력이 일어나야 합니다. 거룩한 정신적인 지주가 정부에 있습니까? 국회에 있습니까? 학교에 있습니까?

 

거룩한 세력은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에스겔 37장 전반부에서 하나님께서 해답을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 에스겔은 죽은 뼈로 가득찬 골짜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대언되고 생기가 불어오자 죽은 뼈들이 거대한 군대가 되어 일어나는 부활의 환상을 본 것입니다.

 

생각하지도 못하였던 곳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일으키고 있습니다.북한 이탈 주민들 중에 청소년들이 그렇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고통스런 삶을 살아내야만 했고, 죽음을 무릅쓰고 이국 땅을 돌다가 한국에 들어오게 된 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고백입니다.

 

저는 학생들 앞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한 적이 많습니다. 제 자신이 충만하지 못한 날에도 그들 앞에만 서서 말씀을 나누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는 것처럼 뜨거움을 느낍니다.

 

하늘꿈 찬양팀 아이들과 전체 예배를 준비하며 같이 손 잡고 기도할 때에도 성령님이 비둘기같이 우리 가운데 오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북한 아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아직 못다한 사랑 고백이 많으실 겁니다. 또한 이들을 사랑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이들을 통해 다른 북한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아름다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하늘꿈학교 유성혁 형제(1,3) 김진명 자매(2.4) 증언해 주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잘 믿으면 우리나라는 통일 이후에 바로 서게 됩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십자가의 복음과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한 세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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