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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모음/데살로니가서 설교 모음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 18절 설교 모음

by Jessi J 2025.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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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소망 /살전4:13-18/ 김진흥목사

2022-01-05 06:28:52

 

(13)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1. 어렸을 때 들은 재미난 옛날얘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웬 옛날얘기냐고요? 다 이유가 있으니 들려드리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 양반이 왜 저 얘기를 하나 생각하며 들어보십시오. 우리나라 전래동화 중에햇님 달님 얘기아십니까?

 

떡 장사였던 엄마는 길에서 만난 호랑이가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면서 떡 다 뺏어먹고 나중에는 자신까지 잡아먹히지요. 애들까지 잡아먹으려고 아이들만 있는 집에 호랑이가 가서 문열어달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목소리가 엄마 목소리가 아니고 손이 엄마 손이 아니라며 문을 안 열어줬지만 너무 엄마가 보고 싶던 여동생이 그만 문을 열어주니 호랑이가 쫓아옵니다. 황급히 달아난 남매는 뒤뜰에 있는 높은 나무 위로 피합니다.

 

호랑이가 나무 밑에서 너희들 어떻게 그 나무에 올라갔는지 알려달라고 꼬드깁니다. 오빠는 나무에 참기름을 바르면 잘 올라올 수 있다고 속였는데 자꾸 미끄러지는 호랑이를 보고 여동생이 깔깔 웃으면서 도끼로 나무를 찍으면 그거 밟고 올라오면 되는데 그것도 모른다고 말을 하니 드디어 호랑이가 그렇게 해서 막 잡아먹으려고 올라옵니다. 그때 남매는 하늘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를 살려주시려면 새 동아줄을 내려주시고 죽게 내버려두시려면 헌 동아줄을 내려주세요.’ 그랬더니 정말 튼튼한 새 동아줄이 내려옵니다.

 

남매는 그 줄을 붙잡고 하늘로 올라가는데 보고 있던 호랑이도 남매의 기도를 흉내 내서 기도하기를하나님, 나도 아이들을 따라 올라가게 하려면 헌 동아줄을 내려주시고 못 올라가게 하려면 새 동아줄을 내려주세요.’하고 거꾸로 기도했더니 썩은 헌 동아줄이 내려옵니다. 호랑이는 그 줄을 붙잡고 올라가다가 떨어져서 수수깡에 찔려 죽는 바람에 수숫대가 붉게 되었고, 하늘로 올라간 오빠는 해가 되고 동생은 달이 되었는데, 달님이 된 동생이 밤은 무섭다고 해서 결국 오빠가 대신 달님이 되고 여동생이 햇님이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힘은 세지만 우매한 호랑이와 유약하지만 지혜로운 아이들이 대비되는 이 이야기의 하이라이트는 새 동아줄과 썩은 동아줄입니다. 인생은 줄을 잘 서야 한다고 하죠? 자기는 잘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잘못 잡으면 떨어져 수수깡에 찔려죽은 호랑이 신세가 됩니다. 기왕에 얘기 꺼낸 김에 한 가지 얘기를 더 하겠습니다. 남자들의 시집살이라고 하는 군대는 특히 줄을 잘 서야 그 시집살이 수월하게 한다고 합니다. 보안대에 신병이 왔습니다. 보안대는 군대의 권력기관이거든요. 대위가 대령과 맞먹는 기관입니다.

 

그래서 거기는 거의 다 가까운 친척이 장성, 국회의원, 장관 등 빽이 든든한 사람들만 배정받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선임병이 신병에게 묻습니다. ‘, 너 무슨 빽으로 여기 왔어?’ 그랬더니 신병 대답이줄을 잘 서서 왔습니다.’ ‘뭐야? 무슨 줄?’ ‘~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배치 받기 위해 기다리던 중에 바로 제 앞과 뒤에 줄서서 있던 아이들이 둘 다 아버지가 장성이어서 중간에 낀 저도 같이 불러서 둘은 육군본부로 배정 받고 전 보안사병이 됐습니다.’

 

영상을 한 번 보시지요. 화면에 보이는 저 친구 많이 불쌍하지 않습니까? 나름대로는 요령을 부려봤는데 결국 망하고 말았네요. 선거철이 돼서 친박이니 진박이니 하며 대통령에게 줄서기를 하는 후보들 많지요. ‘나 대통령 하고 이런 사이야.’ 과시하느라 현수막, 명함에 대통령하고 같이 찍은 사진을 게재하고 있는 사람들 쫙 깔렸습니다. 그거 길어봐야 2년만 지나면 썩은 동아줄 될 줄입니다만 당장은 쓸 만하니 경쟁적으로 친박을 넘어 진박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걸 봅니다. 언제나 이 나라에서 이런 꼴 안 볼 수 있을는지, 내 죽기 전에는 한 번 보게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에도 줄서기를 잘 하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멸망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데,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고 멸망으로 들어가는 문은 크고 그 길이 평탄하니 찾는 사람이 많다는 말씀(7,13-14)입니다. 주님은 비록 좁고 험하더라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곳에 줄을 대고 있습니까?

 

 

2. 오늘 읽은 살전4,13-18 말씀은 주님의 재림과 더불어 있을 부활과 휴거에 관한 말씀입니다. 왜 이 말씀을 주셨느냐 하면 13절의 말씀에 나와 있는 것처럼몰라서 슬픔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먼저 죽은 자나 나중에 죽을 자들이나 다 다시 살아날 터인데, 마치 자다가 깨어나는 것처럼 될 것이라고 14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혹 예수님 재림 당시 죽지 않고 살아있는 자들은 육신의 죽음과는 상관없이 하늘로 들려올라가는 부활을 하게 된다는 것도 15-16절에서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말씀이 17절 끝 부분 말씀인데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라는 말씀입니다. 아멘.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고 믿어야 하는 것 한 가지는 인생은 결코 죽는 것으로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다시 살아났지만 언젠가는 다시 또 죽는 그런 몸으로 다시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죽지 않는 불멸의 몸으로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요5,28-29에는 “(28)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라고 하였고요,

 

20,11-15에는 “(11)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라고 하였습니다. 하여간 사람은 세상 살다가 죽는데 죽는 것으로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 부활, 즉 영원불멸의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에서 또 한 가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부활은 영원한 새 세상에서 살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점입니다. 부활은 영원한 새 세상에서 영원불멸의 몸으로 영원토록 사는 새로운 존재로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 부활의 몸이 어떤 몸인지에 대하여 고전15,50-54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50)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홀연히 변화되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죽는 것을 운이 없거나 재수 없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오늘 부활절 말씀을 통하여 정말 몰라서는 안 될 한 가지 진리가 더 있습니다. 18절이지요?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입니다. 무엇을 위로하란 말입니까? 부활의 소망으로 위로하라는 것입니다. 부활이 왜 위로가 됩니까? 부활은 새로운 영생의 나라에서 살 수 있는 몸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아무에게나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문과 멸망의 문 둘 중에 생명의 문에 줄을 서 있는 사람에게만 위로가 됩니다.

 

다른 줄에 서 있는 사람은 위로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오히려 지난 주일에 박효진 장로님의 간증에 등장했던 도사처럼, 비명을 지르고, 원한에 이를 갈며, 원통하여 통곡할 일입니다. 그런 이들은 부활이 소망이 아니라 비극의 시작입니다. 태워도 태워도 구더기조차 죽지 않는 천국 쓰레기장 게헨나에서 고통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제대로, 확실하게 예수님 편에 줄을 서 있습니까? 할렐루야~

 

 

3. 미국 PGA에서 뛰고 있는 최경주 선수는 아주 신실한 감리교인입니다. 한 집회에서 간증하였는데 자기가 골프선수가 된 것은 줄을 잘 섰기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역도선수 하고 싶은 사람 나오라고 해서 모두 12명이 나갔는데 6명씩 갈라세워놓더니 최경주가 있는 쪽 학생들에게는 무조건 골프선수가 되라고 하더랍니다. 처음에는 그게 불만이기도 했는데 착한 그가 그저 시키는 대로 가다가 보니까 골프선수가 되었고 믿음 좋은 아내를 만나 기도하며 선수생활을 하였더니 오늘날 같은 유명 골프선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21,10ff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성도들을 위하여 준비하여놓으신 새 세상을 보여줍니다. 그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지극히 귀한 보석같이 빛이 나고 벽옥과 수정처럼 맑더라고 했습니다. 오염되고 망가졌던 세상 대신 완벽하고 온전하여 거기 사는 사람은 누구나 마음 놓고 행복해 할 수 있는 새 세상입니다.

 

사도들의 믿음이 기둥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과 어린양의 빛이 항상 둘러 비추어 그늘진 곳이 전혀 없는 곳, 필요악이라는 부작용 걱정을 전혀 할 필요가 없는 완벽한 법과 질서의 나라입니다. 또한 거기에는 다시 새 세상을 타락시킬 위험이 있는 속된 것, 가증한 일,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들어와 살 수 없는 사랑과 평화만 가득한 곳입니다.

 

얼마나 좋은 나라입니까? 얼마나 아름다운 곳입니까? 얼마나 행복한 세상일까요? 그런데 그 나라는 생명의 부활에 연결된 줄에 서 있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이 생명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정말 복된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생명의 부활 소망은 금수저입니다. 진짜 확실한 로또번호입니다.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보물 중의 보물입니다. “예수 부활했으니 할렐루야 아멘!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아멘!” 노래하십시오.

 

 

 

그리하여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4:13-18/ 곽선희 목사

2014-11-24 22:27:10

 

이번 달 가이드 포스트지에는 특별한 보고서가 실려 있습니다. 현재 터키에 이스탄불이라고 하는 수도가 있고, 그 수도는 본래의 이름은 콘스탄티노플입니다. 이 콘스탄티노플 그 옛 도성 안에 성 소피아 사원이라고 있습니다.

 

아마 중동지구를 여행했던 분들은 한번씩 다 다녀왔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1700년 된 엄청난 성전입니다. 상상을 해보십시오.

 

1700년 전에 어찌 이렇게 큰 성전이 지어질 수 있을까. 그런데 세 차례나 지진을 만났습니다마는 이 집은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서 있어서 기독교문화의 그 화려했던 옛날을 우리에게 증거해 줍니다. 거기에 소장되어 있는 비밀한, 아주 소중한 보고서가 있어서 이것을 이번 가이드 포스트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제목은 <예수의 체포와 심문 및 처형에 관하여 가이사에게 보낸 빌라도의 보고서>라고 하는 문건입니다. 로마황제 티베리우스에게 보낸 빌라도 총독의 보고서로서 대단히 중요한 증거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 보고서는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각하께 문안드립니다. 제가 다스리는 지역에서 최근 수년동안에 일어난 사건은 나라의 운명까지도 변하게 할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각하께 소상히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라고 시작이 되고 그 다음 내용은 대체로 성경에 있는 기록과 비슷하게 그 내용이 전개됩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빌라도는 '원치 않았지만 폭동이 무서워서 희생양으로 예수라는 청년을 십자가에 처형했습니다. 그리고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부활했기 때문입니다.

 

무덤은 비었고 제자들은 용기를 내서 예수 부활했다고 전파하게 됩니다.' "예수의 생애는, 마치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듯이 모든 것이 그의 손에 있음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주장이 사실일 수밖에 없다고 감히 말씀을 드립니다.

 

십자가 옆에서 말커스가 말한 것처럼 이 사람은 하나님에 아들이었다고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각하, 이것은 제가 할 수 있는 한 사실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저는 각하의 가장 충실한 신하입니다. - 본디오 빌라도"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부활사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부활절을 당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야될 문제는 부활의 역사성입니다. 부활을 철학적으로 추상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설명할 문제가 아닙니다. 혹은 도덕적으로 설명할 문제도 아닙니다. 부활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 철저한 사건으로부터 기독교는 시작이 됩니다.

 

이 역사적 사실, 이것에 대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해야 될 것입니다. 사실로 인간의 인간 됨은 바로 그의 생각에 있는 것이올시다. 생명은 바로 생각입니다. 믿음은 바로 깨달음입니다. 영생은 바로 믿음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믿는 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의 말씀,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우리는 두 가지를 잊지 말아야합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생각하라. 메멘토 도미니, 주님을 생각하라. 복잡한 일이 많겠습니다마는 이 두 가지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죽습니다. 죽는다는 것을 미리 아는 것이 인간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고 그가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셨기에 우리에게는 부활이 있고 영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생각하고 믿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사는 것은 동물입니다. 알고 사는 것이 인간이요 아는 만큼의 인간은 존재합니다. 믿는 만큼에 우리의 생명의 가치는 존재하는 것이요. 거기에 영생이 있는 것이올시다.

 

여러분, 예수의 부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 부활은 예수의 부활만이 부활이요 그것만이 부활입니다. 말로 다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어떤 비사로도 어떤 논리로도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생명은 본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사실일 뿐이지 우리가 알고 모르고 믿고 안 믿고가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사실대로 실재할 뿐입니다. 부활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만이 부활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은 자연현상이 아닙니다. Immortality, 소위 영혼불멸같이 그런 이론도 아닙니다. 물론 옛 생명의 회생도 아닙니다. 특별히 윤회는 더더욱 아닙니다.

 

이것은 구속사적인 사건이며 참 생명, 영원한 생명을 설명해주는 또 증거해 주는 첫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겁니다. 부활이라는 사건이 바로 우리에게 주시는 계시요 우리에 대한 약속이요 우리의 생명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역사적인 그 어느 때 있었던 하나의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구속사적인 사건입니다. 첫 열매가 되십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건이며 우주적인 사건이며 구속 사건이며 동시에 부활에 대한, 부활 생명에 대한 증거며 우리에게 향하신 예표요 우리 생명에 향하신 약속의 증거입니다.

 

여러분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죽음이라는 것은 육체의 죽음은 동물성인 죽음이요 하나의 자연현상이올시다. 그러나 인간의 죽음은 절대로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육체의 죽음일 뿐이지 그 생명의 죽음이 아니라는 것이요.

 

오히려 자유로운 생명의 시작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생명은 여전히 신비입니다. 출생의 신비입니다. 성장의 신비입니다. 요새 뭐 DNA니 혹은 유전학이니 유전공학이니 해서 많은 연구를 합니다마는 뭐 그 '유전자를 읽었다. 해득했다' 뭐 이런 얘기들이 신문에 납니다.

 

굉장한 것처럼. 문자 그대로 해득했습니다. 그러나 어쩌라는 겁니까? 하나님의 오묘한 신비의 세계를 요만큼 해득 좀 해놓고 뭘 다 알고 문제의 해결이라도 난 것처럼 착각을 하는데요. 여러분, 여러분 생전에 죽지 않을 약이 나오리라고 착각하진 마세요. 죽어요,

 

그러니까 그런지 아세요. 그거는 아닙니다. 늙지 않는다고 해서, 안 늙어도 걱정이죠 사실은. 안 죽어도 걱정이죠. 여러분 생명은 신비로운 것이에요. 그 성장이 신비롭고 유전인자가 신비롭고 죽음이라는 그 자체가 뭐냐? 점점 더 신비로워집니다.

 

그래서 오히려 과학자들이 더 신앙이 좋아요. 연구해갈수록 점점 더 깊은 세계를 발견해요. 놀라운 것이에요. 더욱 부활이라는 것은 더더욱 신비로운 것입니다. 참 생명이 육체라는 옷을 잠깐 입었다가 그 어느 순간에 벗어버린다고 생각하세요. 이 사도바울이 말하고 있는 '인간론'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죽음을 "잔다." 잔다고 세 번이나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잔다. 예수님도 멀쩡하게 죽은 사람 지금 죽었다고 모두가 울고 있고 장례식까지 하고 있는데 "잔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관은 휴식이올시다.

 

'잔다.' 잔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쉰다는 말이에요. 피곤해서 좀 쉬는 겁니다. 우리가 힘써 일하고 밤에 피곤해서 잡니다. 그 잠자는 것과 똑같은 의미가 있는 것이에요. 쉬는 것이요. 그리고 잔다는 말은 그 속에 생명이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잠자는 것 가만히 보면 애들 자는 건 예쁩니다. 어른 자는 건 영 아니에요. 게다가 코를 드렁드렁 골다가 숨넘어갈 것같이 꿀꺽거리면은 아이구 이거 참 힘들어요. 그래서 내가 잠드니 말이지 깨서 그거 계속 들으라고 그러면 곤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생명이 그 안에 있으니까. 죽은 것 같으나 생명이 그 안에 있어요. 그게 자는 것이에요. '잔다'는 말은 '생명이 있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혹 여러분이 죽음이라고 하는 현상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까? '얼마나 괴롭고 얼마나 아프고 답답하면 죽었을까? 아이고 얼마나 숨이 답답할까?' 그리 생각하십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죽음은 자는 것과 꼭같습니다. 생명은 의식의 세계이기 때문에 우리가 잠들어서 의식이 몽롱해지는 것과 꼭같은 현상으로 죽을 것입니다. 그런고로 죽음 자체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지옥 갈까 걱정하세요. 그거나 걱정하세요.

 

또 주님 앞에 가서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으로 서게 될까 그런 걱정을 하더라도 죽는 자체는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고 숨막힐텐데 그거 어떡하지?' 그 걱정은 하지 마세요. 여러분 잠들 때 그 걱정했습니까? 잠자는 것은 죽는 연습입니다,

 

그게. 매일매일 우리는 죽는 연습을 하고 죽었다 살았다 하는 거예요. 그런데 잠이라는 것은 현상이야 어떻게 전개되든 예수님의 시각으로 볼 때는 '그 속에 생명 있다' 그 말이요. 또 하나는 잠이라는 말은 잠에서 깰 때가 있다. '깬다' 그 말이요.

 

지금은 자지만은 깨어날 때가 있어요. 그것을 내다보기 때문에 "잔다" 그랬어요. 예수님은 분명히 죽어서 장례식을 하는 사람을 보고도 "잠들었다." 예수님의 능력이 플러스알파로 역사할 때 그건 깨어나게 되는 거죠.

 

그 깨어날 아침을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잔다.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라고 평화롭게 말씀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게 잔다는 뜻입니다. 죽음은 잠이다. 또 하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잔다. 이게 문제올시다.

 

그리스도 안에 살던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잔다. 여기에 죽음을 넘어서는 엄청난 신비가 있는 것이올시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를 믿고 그의 능력 안에 사는 거요. 그리고 자유한 모습을 그리스도 안에 산다, 그리고 잠들었을 때 그리스도 안에 잔다고 말했습니다.

 

스텐버그라고 하는 심리학자의 The Psychology of Love 라고 하는 책에서 사랑의 3요소를 말합니다. 우리가 인격과 인격관계에서 서로 믿고 사랑한다는 게 뭘 의미하느냐? 그것은 바로 Intimacy - 친밀감을 말한다는 것이죠. 가깝게 느낍니다.

 

상대방의 행복을 증진시키고자하는 마음으로 가득 찹니다. 지시를 받으려는 마음, 지시하려는 마음으로 꽉 찹니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거요. 여러분, 어린아이들을 보세요. 그 철없는 어린 아이들, 부모님의 사랑을 가까이 느끼고 있습니다. 이 사랑이 잠깐만 떠나도 못삽니다.

 

그런데 따로 떨어져 노는 것 같이 장난감 가지고 놀고 친구와 같이 노는 것 같아도 지금 부모님이 여기 계시고 부모님의 사랑이 여기에 있고 나는 부모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하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친밀감을 가지고 있어요.

 

어머니를 떠나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어요. 그러한 그러한 느낌이 실제적으로 육체의 생활 속에도 나타나고 있어요. 이 친밀감, 마치 어머니의 젖을 빨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처럼 그러면서 어머니의 눈을 쳐다보고 있는 거와 같이 바로 그러한 관계 친밀함이 있어요.

 

이것은 두 생명의 연합을 말하는 거죠. 또한 둘째는 정열이올시다. Passion 입니다. 관심이 있고 사랑과 사랑의 대상에 몰두합니다. 그의 사랑을 담뿍 받으면서 아무 구속이 없습니다. 자유하며 행복합니다. 이것이 믿음이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Total Commitment 올시다. 전적으로 위탁을 하고 헌신합니다. 독립되게 별도로 걱정할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에게 다 맡기었어요. 내 생명을 그에게 다 위탁해 버렸어요. 그리고 그의 뜻을 그대로 나의 행복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 이렇게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를 믿고 그리고 죽었어요. 이 사람을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 자는 사람이다. 잠깐 잠들어 있는 사람이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장차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있을 것이다. 지금도 영원히. 생명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합니다. 그것은 사랑이요 그것은 헌신이요 그것은 행복이요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엄청난 자유와 용기입니다. 그것으로 영원한 세계까지 이어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리라 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부활 생명 속에 사는 오늘의 생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마더 테레사의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아름다운 선물' 이라는 책에서 한평생 인도에서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생을 바친 이 수녀 테레사는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선교적으로 사는 모습이다. 선교적으로 산다, 선교사적으로 산다. 다시 말하면 사명을 지니고 사는 거예요. 이 부활의 증인으로 사는 거요. 내 얼굴을 보는 사람들이 생명이 무엇인지를 알아요.

 

나와 만나는 사람들이 영생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도록 그렇게 사는 거예요. 증인으로 살고 선교사적으로 사는 것이요. 엄청난 사명을 지니고 삽니다. 두 번째는 명상가로 산다 그랬어요. Meditation, 이게 무슨 말입니까?

 

명상이란 한가지만 생각하는 거요. 거기다가 사랑과 정열을 쏟는 거예요. 그 외에는 전혀 생각지 않는 거예요. 이게 명상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만을 쳐다보고 그리스도에게 집중하고 그 외에 아무 것도 상관하지 않아요. 명상가적으로 사는 것이다.

 

셋째는 보편적으로 사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의인이면서도 죄인 속에 삽니다. 선하면서도 악한 사람들 속에 보편적으로 삽니다. 그리스도인이지마는 죄악 세상에 아무 불평 없이 그대로 흡수되어 살아갑니다.

 

철저한 보편성, 여기는 높고 낮고가 없습니다. 부하건 가난하건 아무상관이 없습니다. 철저한 보편성을 지니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순성을 말합니다. Simplicity. 그렇습니다.

 

현대 의학에서도 말합니다. 심령의학에서도 말합니다. 병이 왜 생기느냐고요? 복잡성 때문에 생깁니다. 딱 한가지만 집중적으로 생각하면 사람은 엄청난, 병에 대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이 생각하고 저 생각하고 생각이 분열 분산되기 시작하면 힘이 약해집니다.

 

그러니 병균을 이기지 못합니다. 단순성, 사랑에 대하여 단순하고 믿음에 대하여 단순하고 생의 목적에 대해서 단순하고 사명감에 대해 철저하게 Simple mind, Simplicity, 집중적으로 사는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생애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독일의 젊은 신학자였던 본 회퍼, 순교자입니다. 그는 기독교 윤리라는 책에서 에케 호모(ECCE Homo)라고 하는 유명한 말의 논문을 씁니다. 에케 호모라는 말은 Behold this man, 이 사람을 보라, 하는 말이요. 예수를 빌라도 앞에선 예수를 지칭한 말입니다.

 

그런 예수를 이런 각도에서 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우상화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우상화하지 않았다. 여러분 여러분이 아직도 뭘 가졌다고 생각하십니까? 뭘 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 잘났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처럼 깨끗이 지워버리세요

 

. 자기가 우상화되는 것처럼 맹랑한 게 없어요. 별것도 아닌 것이 대단한 거처럼 착각을 하고 있어요. 잊어버리세요. 예수는 자기를 철저하게 우상화하지 않았다. 두번째는 성공을 우상화하지 않았다. 실적을 우상화하지 않았다. 내가 뭘 했노라. 예수님 병 고치고 절대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그랬어요.

 

그 많은 역사를 하고도 오히려 피했어요. 실적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했다면 뭐 했다는 얘기입니까? 여러분 자기 공적을 성공을 절대로 우상화해서는 안됩니다. 셋째는 죽음을 우상화하지 않았어요. 모든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죽음 앞에 꼼짝을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음에 대한 그늘이 전혀 없이 살았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근심이나 공포가 전혀 없이 깨끗하게 정말 영원을 지향하며 가장 임시적인 세상을 아주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어요.

 

여러분, 부활사건 역사적인 부활사건이 이 제자들을 통해서 부활 신앙으로 화합니다. 부활사건이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인하여 부활 신앙이 되고, 부활 신앙이 될 때 부활 생명이 됩니다. 이는 아무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빌라도가 이것을 긍정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인정했습니다. 막을 길이 없다고요. 부활생명은 가장 위대한 능력이요 지혜요 삶의 힘인 것입니다. 이 부활신앙의 보장을 받고 그 믿음에 살고 그 사랑으로 살고 그 감격에 살고 그 능력에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성경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 기 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가장 중요한 죽음과 생명의 문제를 때때로 외면하고 스스로 자기를 우상화하면서 허망한 일에 끌려들며 잘못한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바라며 부활 사건 앞에 정면으로 마주 서서 부활 신앙을 새롭게 함으로써 순전하고 단순하고 보편적이고 거룩한 영생으로 이어지는 귀한 생을 오늘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영원히 주와 함께 할 그날의 아침을 바라보며 오늘 승리 생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부활의 능력(Ⅳ): 잠과 부활과 재림 /고전15:20-24,살전4:13-18/ 노창영 목사

2023-11-19 09:34:45

 

서론// 오래 전 미국에 알코르생명연장연구소(Alcor Life Extension Institute)가 설립되었습니다. 의학기술로 고칠 수 없는 병든 사람의 몸을 영하160도의 액화질소에 담가 냉동시킵니다. 그리고 의학이 발달되어 그 병을 고칠 수 있게 될 때 냉동된 사람을 해동시켜 살아나게 하여 병을 고치겠다는 것입니다. 초창기에 환자 27명이 이 냉동보존 프로그램에 가담을 했습니다. 그 중 10명은 전신냉동을 하였는데 당시 가격으로 12만 달러(15)를 지불했고, 17명은 머리만 냉동하는데 5만 달러(65)를 지불했습니다.

 

이 회사의 대표 스티븐 브릿지(Stephen Bridge)는 이 회사를 만들었지만 냉동보존술이 100%성공할 지는 자신도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수요자가 많았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사람이 냉동되어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냉동된 사람이 어떻게 해동될 수 있냐며 다 소용없다고 비관적으로 말하지만 50년 동안 이 회사의 고객인 토마스 도날드선(Thomas Donaldson)난 오래 살고 싶어. 죽기 싫어.”라고 말하면서 더 이상 이 일에 대해 가타 부타 말하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왜 이런 일들이 생길까요? 사람은 장생불사(長生不死)를 갈망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입니다. 이를 위해 좋은 음식을 먹고 꾸준히 운동도 합니다. 어떤 이는 줄기세포를 이식하는데 한국은 이 시술이 불법이라 일본이나 중국에 가서 줄기세포 이식를 하기도 합니다. 이집트사람들은 죽은 몸을 미이라로 보존합니다. 이는 때가 되면 몸을 떠난 영혼이 돌아와 몸과 결합하기 때문에 인간의 신체의 원형을 보존하려는 장생불사의 갈망에서 온 풍습입니다. 무당들도 장생불사를 갈망하기 때문에 금방 시들어 버리는 생화보다는 오래가는 조화를 선호합니다.

 

중국의 진시황제는 장생불사를 갈망하여 좋은 음식을 많이 먹었습니다. 진시황제가 제일 좋아했던 음식은 상어지느러미, 제비집, 곰발바닥 요리입니다. 지금도 이 요리들은 중국최고의 음식으로서 최고가의 음식들입니다. 한번은 진시황제가 한반도쪽에 먹으면 늙어 죽지 않는다는 불로초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관리 서복(徐福)이란 관리를 한반도에 보냅니다. 서복은 많은 선단과 군사를 이끌고 지금의 경주, 진주를 거쳐 제주도로 갔는데 아무리 찾아도 불로초를 구하지 못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중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서복이 중국방향인 서쪽으로 귀환했다고 해서 그 포구를 서귀포(西歸浦)라고 부르게 됩니다. 서복은 진시황에게 돌아갔는데 불로초를 구하지 못했다고 하면 목숨을 잃을까봐 거짓말을 합니다. 서복은 진시황에게 한반도쪽에 큰 바다괴물 때문에 위협을 받아 더 가지 못했으니 더 많은 선단과 군대를 주시면 가서 큰 바다괴물을 물리치고 반드시 불로초를 구해오겠다고 말합니다. 불로초를 갈망한 진시황제는 예전보다 더 큰 상단과 군사를 서복에게 내어 줍니다. 서복은 중국을 떠나 한반도로 가지 않고 일본 땅에 도착을 하여 일본민족의 한 조상이 됩니다.

 

지금도 일본에 많은 서복에 관련된 유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진시황제는 오래 살고 싶어서 말년에 수은을 많이 먹었습니다. 수은을 먹으니 처음에는 몸이 탱탱해지고 젊어지는 듯 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은 중독에 걸려 결국 죽었습니다. 지금도 중국 시안에 가면 시황제 무덤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황제의 무덤은 수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잘못 건드리면 손상의 위험이 있어서 아직도 시황제의 무덤을 발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도 장생불사를 갈망했던 진시황제는 51살에 죽었습니다.

 

냉동보존법을 사용하든지 어떤 방법을 쓰든지 인간의 죽음에 대한 우주의 대왕이신 하나님의 선언은 피해갈 수 없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입니다(9:17). 어떤 사람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현실이요 미래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부활이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시간에 사도신경의 기록대로 전능하신 성부 창조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 거룩한 교회, 성도의 교통, 죄 용서, 몸의 부활, 영원한 생명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이 모든 신앙고백 속에 나와 있는 고백들 중 여섯 번째 고백이 바로「몸의 부활(Restoration of the Body)」입니다. 우리는 몸이 다시 사는 것에 소망이 있습니다. 냉동보존법이나 수은을 사용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부활의 몸을 입을 것을 갈망하는 우리의 소망이 성경말씀에 근거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저는 부활주일을 지내면서 부활의 능력이 우리를 두려움에서 평강으로, 퇴보하는 뒷걸음질에서 회복과 전진으로, 실망과 낙담의 길에서 새힘과 소망으로 바꾸는 역사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설교했습니다. 오늘은 주어진 본문말씀을 중심으로 부활과 재림에 관련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과 몸의 부활을 확신할 수 있는 복된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Ⅰ. 부활이란 죽음이라는 긴 잠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고전15:51-52, 살전4:13-14)

 

A. 성경이 말씀하는 죽음의 개념은 잠입니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죽음을 잠으로 봅니다. 잠이란 사람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휴식하는 시간입니다. 잠을 통해 달리고 뛰어 왔던 몸과 정신이 회복되어 새로운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아침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은 아침 때문에 존재합니다. 잠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침이 있으므로 잠이 있습니다. 생리적으로 사람은 잠이 없으면 살지 못합니다. 사람은 잠만 잘 자도 건강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잠으로 보는 성경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부활의 아침을 바라보는 소망을 줍니다.

 

마가복음5:21-43에 보면 회당장 야이로의 어린 딸이 죽은 사건이 기록됩니다. 열두살된 어린소녀가 죽은 것을 보고 사람들은 훤화하고 피리를 불고 통곡하였으나 예수님께서는 울지 말라 하시면서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달리다 굼하시며 아이의 손을 일으키자 아이가 일어났고 아이에게 음식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아이가 살아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잠으로 보셨습니다.

 

베다니의 나사로와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남매들이었습니다. 어느날 나사로가 병들어 죽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11:11). 여기서도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죽음을 잠으로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직접 돌무덤에 가셔서나사로야 나오너라말씀하셨고 나사로는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스데반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당할 때 내 영혼을 받아주시고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아 달라고 기도드렸고 이 말을 하고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7:59-60). 마태복음27:50-53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해가 빛을 잃고 하늘이 캄캄해지고 어둠이 계속됩니다. 이때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들의 몸이 많이 일어나 예수님 부활 이후에 거룩한 성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그들의 부활의 모습을 보였다고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도 죽은 자를자던 성도라고 말씀했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왕들이 죽었을 때도 열조와 함께 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솔로몬, 르호보암, 여호사밧,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까지 모든 왕들의 죽음에 대한 기록들은 죽었다는 표현보다열조와 함께 자니라라고 하는 잠에 대한 표현이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잠이라는 말속에서 부활의 소망을 보게 됩니다. 잠의 신학은 부활의 아침을 소망하도록 합니다.

 

B. 부활이란 죽음의 긴 잠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5:51에 보면 우리 모두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한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데살로니가전서4:13-14에서도 바울이 자는 자들에 대하여 말씀하면서 예수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신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도자는 자라는 말씀을 통해 죽은 자 때문에 슬퍼함이 없는 소망의 메시지를 읽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을 바라보는 절대적인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1961~1981년사이에 태어난 지금의 40~50대를 13번째 세대(The 13th Generation)이라고 부릅니다. 닐 하우(Neil Howe)와 빌 스트라우스(Bill Strauss)는「The Thirteenth Generation」이라는 책에서 40대와 50대를 가치관 혼돈의 세대라고 말했습니다. 이들 40대와 50대의 부모님 세대에 피임약이 처음 생겨 성문화가 개방되면서 잘못된 가치관이 넘치는 세상에서 태어났고, 폭발적인 이혼혁명(Divorce Revolution)이 나타나면서 가정이 깨져나가고 아이들은 한 부모 밑에서 자라거나 혼합가정(Blended Family)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가르쳤던 창조와 성경적 가르침과 기도생활 등 전통적인 예배와 커리큘럼이 무너졌기 때문에 전통적인 가치관에 혼돈이 왔다는 것입니다. 이 세대는 경쟁 심리에 사로잡혀 한 개의 낙하산을 얻기 위해 여러 사람이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세대라고 비유합니다. 낙하산은 한 사람이 붙잡아야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낙하산 하나를 여러 사람이 얻으려고 낙하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경쟁하는 세대가 13번째 세대(The 13th Generation)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관점은 사회적 분위기나 세상사를 바라보면서 너무 어둡고 비관적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사회를 이끌고 있는 핵심적 멤버들은 40대와 50, 그리고 60대 초반의 세대입니다. 이들은 무엇이 옳은 것인지 틀린지 분별 못하는 가치관의 시대를 살아갑니다. 이들 중에는 비관론자들이 많습니다. 이들의 색깔은 회색입니다. 소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적 분위가나 세상사가 아무리 비관적이라도 최고의 낙관주의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철저한 낙관론자로 살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소망, 영생, 부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의 죽음을 멸망이나 끝이 아니라 잠이라는 표현을 통해 부활의 아침을 소망하는 거룩한 낙관주의자가 되도록 격려합니다. 죽음이라는 긴 잠을 거쳐 다가오는 부활의 아침을 소망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Ⅱ.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동시에 일어납니다(고전5:23, 살전4:15-18)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구약성경에는 직간접적으로 1,845, 신약성경에서는 318회 직접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는 성육신의 초림은 재림만큼 많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더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A.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상고 합시다

 

사도행전 1:9-11에 보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의 모습을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셨고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리 하셨습니다. 그리고 흰옷 입은 천사들은 말하기를 너희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예수님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신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얼굴과 얼굴이 맞대어 보는 대면적 예수님의 재림을 정확하게 말씀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6에 보면 예수님의 재림은 대리자를 보내시지 않으시고 친히 오시는 강림으로 기록합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때 호령(A Word of Command, 명령권자인 사령관의 말, 절대군주의 명령)과 크게 외치는 천사장의 소리(A Voice of Archangel)와 하나님의 나팔(God’s Trumpet)이 울리는 가운데 직접 부활의 몸으로 강림하십니다.

 

B. 성도의 재림에는 차례가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에는 차례가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그 다음에 그에게 붙은 자들입니다(고전15:23).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10여 차례 제자들에게 부활의 몸을 보여주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친히 강림하실 때에는 잠자는 자들이(죽은 성도들) 먼저 다 일어납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죽음을 맛보지 않고 직접 공중으로 올라가 구름타고 오시는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바울은 말씀합니다(살전4:16-18). 우리는 이것을 휴거의 신학(The Theology of Rapture)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죽은 자의 일어남과 산 자들의 휴거에 대한 강력하고 분명한 사실의 기록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재림과 죽은 자의 부활과 휴거의 사실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립니다.

 

일본에 주인을 사랑하는 하치(Hachi)라는 개가 있었습니다. 주인이 다른 도시에 있는 직장에 가려고 아침마다 출근할 때마다 기차역까지 따라와 꼬리를 흔들며 인사를 하고 또 주인이 퇴근할 시간에 정확하게 기차역에 나와 꼬리를 흔들며 주인을 맞이했습니다. 어느 날 기차를 타고 떠난 주인이 오지 않자 하치는 기차역에서 며칠을 주인을 기다렸습니다. 사실 주인은 옆 도시의 직장에서 근무하다가 갑자기 죽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하치는 매일 주인의 퇴근시간에 기차역에서 1시간씩 주인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하치는 10년 동안 주인을 기다리는 일을 계속하다 죽었습니다. 이런 하치를 충견으로 기념하여 국가에서 그 기차역에 하치의 동상을 만들어 교훈을 삼도록 했고, 모든 초등학교에도 하치의 이야기를 기념할 수 있도록 동상을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충견 하치는 돌아오지 않을 주인을 기약 없이 기다렸습니다. 어떤 약속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날이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는 이 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세계2차대전이 터지고 나서 한국전쟁의 영웅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은 필리핀에 있는 미국 태평양 사령부 사령관의 임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때 진주만 폭격이후에 대동아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20만 대군이 필리핀 본토로 들어왔습니다. 맥아더장군은 일본의 대군을 막아낼 힘이 없어 필리핀에 있는 미군들과 필리핀 사람들을 뒤로 하고 철수했습니다. 전쟁에서 물러난 이 사건은 백전백승의 장군이었던 맥아더 장군의 군대생활에서 치명적인 오점이었습니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은 필리핀을 떠나면서 “I Shall Return(나는 반드시 돌아온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태평양전쟁이 끝나가던 1945 2월에 맥아더 장군은 군사를 이끌고 바탄(Battan)에 상륙하여 필리핀을 점령하고 일본군을 쫓아 냈습니다. 맥아던 장군은 다시 돌아온다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사람들도 말하면 그 약속을 지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돌아오십니다.

 

Ⅲ.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을 소망하도록 자극하는 성경의 인물들이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재림과 몸의 부활을 확신해야 합니다. 흔들리면 안 됩니다.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이 말씀이 있을 때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소망이 샘솟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들이 부활과 재림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도록 여러 인물들을 주셨습니다.

 

A. 에녹(5:21-24)

 

아담의 7대손 에녹은 65세까지는 그럭저럭 적당하게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아들 므두셀라를 낳을 때 인생이 변화되었고 회심하여 하나님을 만나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365세를 향수하며 죽었습니다. 성경은 그가 죽었다는 표현 보다는 하나님께서 그를 데리고 가심으로 이 땅에 그가 있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녹은 완벽한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의 그림입니다. 그리고 아울러 함께 부활할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녹을 통해 우리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자극해주고 계십니다.

 

B. 엘리야(왕하2:11)

 

불의 선지자요 기도의 용사 엘리야가 요단강에서 죽어 승천하게 됩니다. 엘리야는 불수레와 불말들 가운데 회오리바람가운데 승천합니다. 이 같이 하늘로 올라가는 엘리야의 승천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과 재림의 모습을 완벽히 보여 주는 그림입니다.

 

에녹과 엘리야의 승천은 우리들의 눈길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우리의 부활에 관심을 돌리도록 만드는 거룩한 자극제입니다. 이 두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로 하여금 사람의 부활과 사람의 몸의 소망을 보여주고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몸의 부활을 확신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결론// 예수님의 재림을 믿으십니까? 몸의 부활을 믿으십니까? 부활의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소망의 믿음, 그리고 우리 몸의 부활의 확신을 가지고 세상속에서 승리하는 신앙인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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