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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모음/데살로니가서 설교 모음

데살로니가전서 5:16 - 18절 설교 모음

by Jessi J 2025.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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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항상 감사할 수 있는가? /살전5:16-18/ 유기성 목사

2016-08-25 10:34:22

 

지난 주일, 일본 동경에 있는 형제교회인 중앙영광교회에서 창립 20주년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교인들이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예배당이 가득차고, 목사님들은 강단 위에 올라와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주님,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나의 은혜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앙영광교회가 창립 후 20년 동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눈물로 예배드리는 교인들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크고 넘쳤다는 것을 보여주시고자 하셨다는 것입니다. “보라, 나의 은혜는 이렇게 많고 넘쳤다”.

 

우리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그 어떤 어려움 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넘칩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는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그 말씀입니다.

 

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저는 어려서부터 이 말씀을 너무나 많이 들었지만 좀처럼 납득이 안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어떻게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가? 말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간, 어느 순간 제가 이 말씀을 믿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추수감사주일이 왔는데, 올해 나에겐 무슨 감사제목이 있는가?”

 

묵상했습니다. 그런데 묵상 중에모든 것이 다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어떻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느냐?‘고 믿어지지 않던 제가 모든 것이 다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이었습니다.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려고 힘쓰다 보니 자연히 제 마음에모든 것이 다 감사하다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감사도 논리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돈 많이 벌어서 감사하다!’ ‘병 고침 받았기에 감사하다.’ ‘집을 사서 감사하다’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감사하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의 감사는 다릅니다.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이유는 너무나 엄청난 복을 받은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흔히 죽을병에 들었던 사람이 건강을 되찾아 퇴원하는 날 보이는 파란 하늘이 너무나 감사하고, 길옆의 풀들도 감사하고, 길에서 부딪힌 사람조차 감사하게 되더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 사람이 감사한 것은 죽을병에서 살았다는 엄청난 감사 때문에 모든 것이 감사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사실 그동안 얼마나 힘든 일이 많았겠으며 또 앞으로도 얼마나 힘든 일이 많겠습니까? 그러나 죽을 줄 알았는데 살게 되니 감사의 사람으로 변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이와 같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평생 열등감과 좌절감 속에 살았었는데,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자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 감사가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무거운 죄책감 속에 살았는데, 그 모든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다 용서받음을 확신하게 되었을 때 감사가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철저히 자아 중심, 죄의 종노릇하고 살았는데,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음을 알았고 이제는 주 예수님이 주인이신 삶을 살게 되었을 때 감사가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음에 계심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니 존재가 감사의 사람으로 달라진 것입니다.

 

감사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조건 때문에 감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다 감사한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언제나 감사요 범사에 감사뿐입니다. 오직 감사만 하며 사는 것입니다.

 

순교를 각오하고 중동에 나간 선교사님의 아들이 나이가 들어 학교에는 다녀야 하겠기에 지금 헤브론 원형학교에 와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떨어져 사는 것도 힘들고, 학교 안다니다가 학교 생활하는 것도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이런 저런 불평과 원망, 좌절과 낙심이 마음에 가득했는데, 한번은 영어 시간에 자살을 시도하려는 자에게 보낼 편지를 쓰라는 숙제를 받았습니다. 무엇을 쓸까 하다가나의 복음을 적었답니다.

 

그런데 그 숙제를 하면서 울었답니다. 자신을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의 사랑이 마음에 부어진 것입니다. 너무나 감사하더랍니다. 자살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불평과 원망에서 건짐을 받은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에게 하는 권면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이 순교했을 때, 아들들을 죽인 원수 공산당 청년 안재선을 양자삼고 그가 사형당할 처지에서 살려주었습니다. 그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두 아들의 장례식에서 9가지 감사를 하나님께 올려드렸던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존재가 감사의 사람으로 바뀐 것입니다.

 

매튜 헨리목사님은 길에서 강도를 만나 매를 맞고 정신을 잃어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간신히 집에 들어오니, 온 식구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피투성이가 된 몸을 이끌고 서재에 들어가 엎드려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이여, 생명만은 살아 돌아와서 가족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또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도둑이 되지 않고, 도둑맞은 사람이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것 다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영원한 천국은 잃어버리지 않음에 감사합니다"

 

이처럼 거듭난 영이 산 사람은 어떤 처지에서도 감사할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다윗은 시편 23:1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목자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에게서는부족함이 없다!” 이런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도 축복임을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다가 짐승들이 사는 광야 굴속에 피신하였습니다. 그 어두컴컴한 굴속에서 다윗은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바닥에 대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밤새 울며 기도하다가 새벽이 되었는데, 다윗의 마음에 변화가 왔습니다.

 

비록 굴 속이지만 여전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자 눈물과 한탄의 기도가 감사와 찬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른 노래가 시 57:7-11입니다.

 

57: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9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10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11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다윗만이 아닙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그랬습니다.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열린 사람은 아무 것도 거둘 것이 없어도 감사하게 됩니다. 빌립보에서 전도하다가 붙잡혀 매를 맞고 지하 감옥에 갇혔던 사도 바울과 실라는 한밤중에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지진이 일어나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가평에 있는 생명의 빛 예배당에서 중국 목회자들의 모임에 참석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중국 최고학부를 나온 엘리트들로써, 중국이 개방된 후 예수님을 믿은 이들로써 지난 30년간 목회자와 사역자들이 되어 중국 각지에서 교회를 세우고 섬기고 있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모여서 지난 30년간 교회를 섬기면서 당했던 일들을 눈물로 나누고 있었습니다.

 

하나같이 다 고난이었고, 고생했던 이야기들이었는데, 한결 같이 감사였습니다. 고난에 대하여 감사했고 희생하게 된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것이 성경대로 였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거룩하고 너무나 은혜롭고 너무나 충만하였습니다. 한국에서 모였던 어느 목회자 모임에서도 느껴 보지 못한 감동이었습니다.

 

그 차이는 곧 고난의 차이였습니다. 한국에서 목회자들의 모임에 은혜가 부족한 것은 고난이 적은 까닭임을 깨달았습니다. 한국 목회자들도 고난을 겪었습니다. 고생도 했었고, 희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 보면 어디쯤 서게 될까요? 순교자, 초대교회 성도들, 북한교회 성도들, 중국교회 성도들, ...그들과 비교하면 고난이라 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 때 너무나 선명히 깨달아졌습니다. 주님 앞에서는 고난이 축복이구나! 남모를 희생과 눈물이 있었다면 감사한 일이구나! 주님이 아시면 됐습니다. 알아주지 않는다고 억울해 할 것이 아닙니다. 알아주시는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자신이 문제입니다.

 

고난의 교회에서는 감사주일이 감동입니다. 그러나 편안한 교회에서는 감사주일이 무덤덤합니다. 고난의 교회에서는 감사주일 설교가 쉽습니다. 그러나 편안한 교회에서는 감사주일 설교가 너무나 힘듭니다. 주님과의 친밀함의 차이입니다.

 

저는 이번 추수감사주일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 어느 해 보다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설교를 하는 것이 기뻤습니다.

 

그런데 어제 토요일,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이 설교로 마음이 힘든 교인들이 있을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검과 같다고 했는데, 교인들이 이 말씀으로 나뉘어질 것을 알았습니다. 존재론적으로 감사의 사람이 되어 범사 감사가 되는 사람과 아직 범사 감사가 이해되지도 누려지지도 않은 사람으로 말입니다. 범사 감사가 안 되는 사람에게는 이 설교가 오히려 비수같이 마음을 찌를 것입니다.

 

토마스 머턴은 󰡒감사와 배은망덕 사이의 중립적 입장은 없다. 감사하지 않는 이들은 곧 모든 것을 불평하기 시작한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거듭난 사람입니까? 그것은 목사냐 장로냐 권사냐 집사냐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기쁨과 범사 감사와 원수 사랑의 사람이냐를 묻는 것입니다.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하겠다면 큰 일 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설교를 마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감사가 안 되는 사람은 마음에 겨자씨 같은 감사라도 없는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주 예수님의 역사입니다. 그것을 붙잡아야 삽니다.

 

2:13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너희로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했습니다. 범사 감사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소원은 있습니까? 그것이 여러분 안에 주 예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증거요, 그것을 붙잡아야 사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크게 낙심하여 있을 때, 아내 카트리나가 초상집에서 입는 상복을 입고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놀라서 누가 죽었느냐고 묻는 루터에게하느님이 죽었어요.”라고 대답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무슨 예기요?”노한 표정으로 묻는 루터에게하느님이 죽었기에 당신이 그렇게 낙심하고 식사도 안하지, 하느님이 죽지 않고 살아 계시다면 당신이 그렇게 낙심할 이유가 없잖아요.“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루터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감사를 잃은 분들에게 오늘 이 설교가 그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지금은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 앞에서 갈라졌지만 주님 앞에 서는 날에는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이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다 함께 서서모든 것이 감사합니다하고 찬양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범사 감사] 믿음이 겨자씨라도 있다면 그 감사를 붙잡고 고백하고 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주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은 감사훈련이기도 합니다.

 

필립 얀시가 성공회 사제였던 존 클레이풀(John Claypool) 이야기를 했습니다. 존 클레이플 신부의 여덟 살짜리 딸 로라가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18개월 동안 딸의 치료를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써 보았습니다. 최고로 손꼽히는 의사를 찾아갔고, 유명한 신유 은사자들의 안수를 받게 했으며, 친구들과 교구의 교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딸은 결국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는 마음의 안정을 찾기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딸이 성장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웨딩마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의 손을 잡고 주례 앞으로 걸어가고 자식을 낳는 것을 보는 기쁨을 느껴볼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갈등과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그 때, 너무나 놀랍게도 감사가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딸과 함께한 시간이 너무나도 짧았지만 그것이 그의 인생 가운데 가장 큰 선물이라고 여겨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같은 아픔을 겪어본 사람이 지나온 길] (Tracks of a Fellow Struggler)이란 책을 썼는데, 거기서 말했습니다. “물론 내가 이렇게 깨달았다고 해서 모든 게 편해진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딸 로라가 내게 주어진 순수하고 티 없는 선물이었음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습니다.

 

그 선물은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도 아니고, 내가 받을 자격이나 권리가 있어서 받은 것도 아닙니다. 선물을 받은 사람이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는 감사가 아닙니까? 선물을 도로 가져갔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딸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게 됩니다. 아직 연단을 감당해내는 게 정말 어렵지만 그래도 잘해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딸을 생각나게 하는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딸 아이와 우리가 함께 즐겼던 것, 우리 딸이 말한 것, 그리고 그 아이가 사랑했던 것이 보입니다. 이런 것들이 계속 보이는 상황에서 내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는 딸을 잃었다는 걸 자꾸 생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애초에 그 아이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기적 같은 사실을 음미하는 것입니다.

 

전자는 딸과 함께할 수 있는 기능성이 사라졌다는 슬픔에 계속 빠져들게 만들고, 후자는 비록 짧은 십년이었지만 아이와 함께 했음에 대해 감사하도록 가르쳐줍니다. 내가 인생의 지극히 작은 것들까지도 모두선물이라는 것을 기억하도록, 그리고 그 선물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이감사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나를 도와주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들의 감사는 남보다 무엇을 많이 가졌다거나 원하는 것을 받았기 때문에 드리는 감사가 아닙니다, 살기 힘들고, 사업이 부진하고, 정치가 짜증나고, 경제가 어렵더라도 불만과 불평, 실망과 좌절, 자포포기하지 않습니다. 감사하고 찬송하며 삽니다. 언제나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언제나 은혜는 풍성하고 차고 넘침을 알게 됩니다.

 

[간증] 1 [김용희집사] 2 [이영주집사] 3 [김기순권사]

 

추수감사주일은 단지 헌금을 많이 하는 주일이 아닙니다.

 

복음의 비밀을 감사로 드러내시어서 우리 인생을 뒤집으시려는 놀라운 축복의 날입니다. 우리는 이미 범사 감사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감사로 인생이 바뀐 사람입니다.

 

또한 감사로 모든 것을 바꾸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감사가 되면 살 길이 열린 것입니다. 고난이 크다면 이제부터 진짜 감사함으로 살아 보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이 시간 마음에 감사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합시다.

 

 

 

 

365 감사! /살전5:16-18/ 김병삼 목사

2016-03-11 10:24:06

 

데살로니가전서 5 16-18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God's will for you in Christ Jesus.

thank God no matter what happens. This is the way God wants you who belong to Christ Jesus to live

 

 

수능을 보는 날이었습니다.

잠깐 기도회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엄마들의 초조한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아마도 공부를 잘하는 자녀를 둔 엄마는 아이가 수능을 망칠까 봐 걱정이고, 공부를 못하는 자녀를 둔 부모는 아이들의 성적이실력대로나올까 봐 걱정이겠죠.

결국, 우리의 삶은 이래저래 걱정의 연속입니다.

 

감사라는 관점에서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는 듯합니다.

 

첫째는,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죠. 우리는 주변에서 언제나 불평하는 사람을 봅니다.

 

둘째는, 있으므로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죠. 원하는 것이 채워지면 감사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위험하죠. 조건이 사라지면 감사할 수 없게 된다는 것.

 

셋째는, 없을지라도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온전하고 성숙한 감사라고 할 수 있죠.

하박국 3 17-18절에 나와 있는 감사가 그런 것입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 때문에 어떤 상황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

 

얼마 전에 나온 조엘 오스틴 목사의행복의 힘이란 책에 보면, “행복은 선택이다!”라는 말이 있더군요. 행복하기로 결정하는 것, 마찬가지로 감사란, 감사하기로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요?

 

성 어거스틴은 매우 중요한 명제를 남겼습니다. “우리가 올바르게 생각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다. 그리고 우리가 올바르게 살 때에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신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계시다는 증거가 무엇일까요?

감사

 

 

행복한 삶의 선택 감사!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 18절은 16, 17절과 더불어 조금만 교회를 다닌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 본 말씀입니다.

아마도 가장 짧은 구절 중의 하나겠지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사실 우리말 성경에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제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본 영어 성경에는 세 개의 동사가 나란히 나오고 있습니다.

"be joyful always"

"pray continually"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그리고 다음 문장이 나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유진 피터슨 성경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더군요.

 

This is the way God wants you who belong to Christ Jesus to live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사실 이 세 가지의 방식 모두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크리스천의 삶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이 세 개의 동사는 모두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기도할 힘은 끊임없이 기도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특권이지요.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항상 기뻐할 수 있지요. 반대로 기쁨이 없는데 어떻게 감사할 수 있나요?

그래서 이것이삶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의 삶의 방식 말입니다.

 

한 가지 예화를 들려 드리죠.

지난주에 우리 교회에서 사역을 하다 양광교회 담임으로 간 장석주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저한테 배우 것 중의 가장 인상적인 것이 늘부수고 고치고이었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역시 부수고 고치는데, 계약금 지급을 하는 날이 다가오는데 돈이 없더랍니다. 그런데 그날 예배에 참석했던 어떤 분이 헌금을 하고 갔는데, 딱 맞는 금액이었고, 그것이 동기부여가 되어 어려움 없이 공사를 했노라고,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되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있노라고.

 

가만히 듣고 있자니 부러운 생각이 들더군요. 나한테 배웠다는데 더 잘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오후에 말씀을 준비하는데삶의 방식을 생각하다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주시더군요.

 

그래, 어려운 때 기적을 베풀어 준 은혜에 감격하는 것이 더 감사하냐? 아니며 그런 어려움 없이 목회하는 것이 더 감사하냐?”

 

여러분 생각에는 어떤 것이 더 감사한가요? 중요한 것은, 언제나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죠. “감사, 기쁨, 기도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의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 이해가 되나요?

 

해외 유학생들을 위한 집회에서 자주 만난 강사가 한 분 있습니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의 주인공 안요한 목사님입니다. 어떻게 그 연세에 앞을 보지 못하는 분이 잘 다니시는지 아니 잘 불려다니시는지,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그분의 간증이 참 감동스럽습니다.

 

그의 삶에 감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멀쩡하게 살던 사람이 시력을 잃어버리고 맹인이 된다는 것은 분명히 인생에서 큰 시련일 것입니다. 하지만 빛을 잃으므로 빛 되신 주님을 만났고, 자신의 삶의 가장 낮은 곳에서, 그곳에 임하시는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많이 잃었지만, 삶의 목표를 찾았고, 장애인들을 위한 conference에서 도우미로 참석한 지금의 사모님을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의 인생에 가장 복된 만남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결혼하면서 약속한 것을 신실하게 지켰다고 합니다.

 

결혼하는 순간부터 절대로 다른 여자에게 한눈팔지 않겠다!”

그분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그분의 인상이 늘 웃는 모습입니다.

 

시각장애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삶의 방식을 통해 살아가다 보니 늘 감사와 기쁜 삶이 된 것이죠.

 

오늘 본문 말씀 중에 우리가 주목하고 싶은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인데요. 기쁨과 기도와 감사의 생활 방식이 하나님이 뜻인데, 이 뜻은 아무에게나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리더의 7가지 언어]라는 책에 보면공감 능력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2011 12월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 결과입니다.

 

두 마리의 쥐를 함께 생활하게 하고 2주가 지난 뒤 한 마리는 우리 안에 두고, 한 마리는 자유롭게 풀어놓았습니다. 우리의 잠금장치는 바깥에 있는 쥐만 풀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쥐는 우리에 갇힌 쥐를 꺼내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자유로운 쥐 옆으로 먹음직스러운 먹이가 떨어집니다. 놀랍게도 실험한 쥐의 52%가 먹이를 포기하고 동료를 구합니다. 이제는 반대로 갇혔던 쥐를 풀어주고 자유로운 쥐를 가둬좋으면 같은 상황에서 80%가 먹이를 버리고 동료를 구했다고 합니다.

 

공감능력!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동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

엄청난 재물과 명예가 떨어졌을 때 어려움에 빠진 동료를 구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인간의 전두엽에는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거울 뉴런이 설계되어 있는데 계속해서 반응하는 습관을 지녀야만 퇴화하지 않는답니다.

 

그렇군요!

공감하는 것도 훈련이고 습관이네요.

대한민국의 정치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죠.

그저 누군가의 허물이 드러나면 끝까지 잡아 뜯고야 마는.

 

너무 이상적일지 모르지만, 누군가의 아픔을 같이 아파해주는 사람이 나오면 좋을 텐데.

우리의 정치와 사회와 삶의 자리를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누군가의 어려움과 아픔을 공감해 주는 사람들 때문에.

 

요즘 경기도 불황이고 젊은이들이 직업을 갖고 결혼하는 것도 너무나 어려운 현실입니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하지만 누군가 함께 아파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이겨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이 말씀을 준비하던 때, 한 주간 내내 요로결석으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나오지 않아 며칠 기다려 보고 돌을 깨야 하는 시술을 받아야 할 수도.

하지만 며칠 동안 옆에 붙어서 밥을 해주고 함께 해주는 아내가 있어 행복합니다. 며칠 동안, 정말 오랜만에 밥 세끼를 집에서 먹는 "삼식이 세끼!"로 보내며.

 

공감능력은 생활방식으로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의 삶의 방식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익숙해질 때, 기쁨을 누리고, 기도를 하고, 감사를 고백할 수 있습니다.

 

8월 새가족 애찬에서오만에서 온 성도의 고백을 들었습니다.

5-6년을 해외에서 떠돌며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사정이 안 좋아 한편의 설교와 배를 드리려면 보통 7시간쯤 걸리는데, 한국에 돌아와 예배를 드리니 얼마나 좋은지. 그런데 막상 한국에 와 보니 만나 교회는 집에서 너무나 멀었습니다.

 

어느 날 중국에 있는 친구와 전화를 하는데, 그 친구 역시 만나 교회 예배를 인터넷으로 드리고 있다는군요.

친구가 하는 말 "행복한 줄 알고 교회 가. 얼마나 멀다고."

그렇죠? 감사와 행복은 거리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는 참 많은 간격을 좁혀주는 것 같습니다.

 

감사의 능력

감사를 아는 삶이 행복한 것은 삶을 바꾸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7 11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열 명의 문둥병자들을 고치신 사건이 나옵니다.

 

당시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계셨고, 갈릴리와 사마리아 지방 사이를 지나실 때 환자들이 나타나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주신 것이 아니라 바로 제사장에게 가서 그들의 몸을 보이라고 하시죠.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 당시 문둥병자들은 병이 나으면 제사장에게 가서 확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을 할 수 있었죠.

그들에게 어떤 믿음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10명이 다 함께 제사장에게로 가다가 몸이 깨끗해 졌습니다. 여기까지 동일하게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는 그 중의 한 명이 예수님께 나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를 표현합니다. 그래서 9명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예수님께서도아홉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정말 아홉 명이 감사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들의 삶에 일어난 그 일을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단지 감사의 원인을 생각하기보다는 그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하여 기쁘고 감사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들을 감사를 주님께 돌리지 못했습니다. 감사한 일을 만났으나, 감사를 누리지 못하므로 구원받지 못하게 되었죠.

 

여러분!

그렇다고 제사장에게로 달려간 아홉 사람을 잘못했다고 할 수 있나요?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제사장에게로 가라!"라고 말입니다.

 

그들은 시킨 대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에게 보이고 난 다음에 선물이라도 사 들고 예수를 찾아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사마리아 사람보다 더 신중하고 현명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제사장에게로 간 아홉 사람보다 예수에게로 돌아온 사마리아 사람의 마음이 그들과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에게로 가라고 했지만, 그는 가는 도중에 예수를 생각했습니다. 예수가 생각났습니다.

 

아무런 조건도 없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자신을 그렇게 깨끗하게 해준 예수에 대한 마음이 치솟아 올랐습니다. 그는 제사장에게 가는 것보다 먼저 예수님을 찾아보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이 경계가 보이십니까? 느껴지십니까? 제사장에게로 가는 마음과 그 순간 예수가 먼저 생각나는 그 마음의 경계 말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이 경계에서 진정한 감사를 선택했습니다. ''가 아닌 ''를 생각했습니다.

 

감사란, 이렇게 내가 아니라 너를 기억하는 행위이며 마음입니다. 이것이 온전한 감사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문둥병을 고친 아홉 사람처럼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갑니다. 모든 게 '' 중심입니다. 너에게로 건너뛰어야 하는데 사마리아 사람처럼 움직이지 못합니다.

 

감사는 이런 작은 차이에서 시작되는 거 아닙니까? 누구나 마음의 경계에서 삽니다. 제사장에게로 갈 것인지 아니면 예수에게로 먼저 갈 것인지의 경계 말입니다. 사실 그의 손에는 아무런 선물 보따리도 들려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예수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뿐입니다. 나를 건너뛰어서 너에게로 넘어가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게 아주 큰 감사였던 것입니다. 감사란 이런 거 아닙니까?

 

예수께 돌아오지 않고 제사장에게로 직행을 한 아홉 사람의 마음에는 이런 감사의 마음이 아닌 다른 감사가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몸이 깨끗해진 것을 아는 순간 매우 기쁘고 들뜨고 흥분했을 것입니다.

 

이제 돌아가 자기를 내다 버린 가족들을 만나고, 자기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던 이웃 사람들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떳떳하게 사회에 복귀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몸의 병이 나은 순간 그들은 그들 자신을 점령한 게 있었습니다. 바로 ''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는 보이지 않고 그를 고쳐준 '예수'가 보였습니다.

 

누가복음 17 17-18절을 보세요.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이례적으로 예수님은 세 마디의 질문을 쉬지 않고 쏟아놓습니다. 그만큼 긴장감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어느 특정인을 향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지금 와서 감사하며 엎드린 사람에게이 이방 사람 한 명밖에 없느냐?”하고 물을 수는 없습니다.

 

한 명밖에 없는 거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제자들에게 확인하듯이 묻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질문을 '설의법'이라고 합니다.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 질문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이 사마리아 사람 혼자 감사하러 돌아온 현실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강조하기 위한 어법입니다.

 

감사하러 돌아오지 않은 아홉 사람에 대해서 서운하시거나 책망하려는 말이 아닙니다. 만약 책망을 하려고 했다면, 예수님은 세 번째 질문 대신에, “나에게 감사를 하러 온 사람은 이 이방 사람 한 명밖에 없느냐?”라고 말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들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몸이 나았다고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몸이 깨끗해진 것은 은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진정한 선물은 모든 사람이 ''를 벗어나서 ''를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나라와 하나님을 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타인을 인식하고 함께 살아갈 마음으로 가던 길을 돌아설 때,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인간은 진정으로 깨끗해진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와 같이 인생의 가던 길을 전환한 사람을구원받았다!”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돌아와 감사하다고 인사 하지 않아서 섭섭한 게 아닙니다. 인생의 가치와 목표를 바꾸지 않고 일차원적인 문제로 끝나 버리는 것이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의 모든 사람이 전혀 다른 삶의 가치관과 목표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런 안타까움 때문에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라고 하셨던 겁니다.

 

예수는 돌아와서 감사하는 그 사람에게 ,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선언 하십니다(20). 여기서 말하는구원이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교리적이거나 이상적인 그 무엇이 아닙니다.

 

사마리아 사람에게 이 말은 아주 또렷하고 분명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너의 인생은 이전 인생과 매우 다르다!”라는 선언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이 병을 고쳤다고 세상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달라졌습니다. 그의 인생관, 가치관, 삶의 목표가 달라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혹시온 맘 다해라는 찬양을 아시나요?

주님과 함께하는 이 고요한 시간.

주님의 보좌 앞에 내 마음을 쏟네.

모든 것 아시는 주님께 감출 것 없네.

내 맘과 정성 다해 주 바라나이다.

온 맘 다해 사랑합니다.

온 맘 다해 주 알기 원하네.

내모든 삶 당신 것이니.

주 만 섬기리. 온 맘 다해.

 

새로운 삶의 방식 감사하기!

연초에 존 크랠릭이 쓴 [365 thank you]라는 책을 보면서 추수감사절에 교인들과 함께 내용을 나눠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준비해 놓았던 설교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 우리가 바로 감사를 회복해야 할 때라고 말입니다.

 

계속 우리가 시리즈로 나누고 있었던 주제가회복이었습니다. 회복은 과거를 되돌려 놓을 수 없지만, 우리의 미래를 바꾸어 놓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죠. 감사를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미래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key word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감사로 삶의 혁명을 일으킨 어느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위대한 이야기보다도 위대한 한 사람이 변화된 이야기, 그리고 그 변화가 감사로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존은 2007년 겨울 최악의 날을 맞이합니다.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로펌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사무실 임대계약마저 기약 없이 끝나가는 상황이었죠. 텅 빈 통장, 그리고 비좁고 답답한 아파트에 홀로 누워 있었습니다. 아내와는 이혼소송 중이었고 딸마저 빼앗길지 모르는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식사를 먹자고 제안한 친구 앞에서 완전히 실패한 인생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일했고 성공하고 싶었지만, 그의 인생은 반대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에게는 예기치 않은 일이 많이 일어났고,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나 억울하게 망가져 버린 인생을 바라보며 손을 놓고 있었죠.

 

그렇게 그가 절망의 심연에서 괴로워할 때, 문득 어떤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네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에 감사할 줄 알기까지는.”

너는 네가 원하는 것들을 얻지 못하리라.”

 

그 순간 그에게 떠오른 것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이었습니다. 꽤 성공한 사업가였던 할아버지는 늘 골프를 치고 주식 시세를 살피며 편안한 노후를 즐기는 분이었고, 당시 12명의 손자들을 자주 감동하게 했던 분이었습니다.

 

1960년 당시 손자를 할아버지가 주는 은화 한 닢에 감동했고, 할아버지는이 은화에 감사편지를 쓴다면 은화를 한 닢 더 주마.”라고 약속했습니다. 그게 바로 감사편지의 효력이라고 말입니다.

 

어렸던 시절 할아버지는 그가 한 약속을 잘 지켰다는 사실. 그는 얼마 후에 두 개의 은화를 갖게 되었죠.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제2의 감사편지를 보내지 않았고 은화는 거기에서 그쳤다는 사실.

 

2008 1 3일 존 크랠릭의 프로젝트가 시작됩니다. 365일 감사편지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 감사편지는 먼저 이혼한 아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감사편지였습니다.

 

그 편지의 마지막에곧 만나기를 바라며, 아빠가라고 썼는데, 편지 봉투를 쓰려는 순간, 아들이 어디에 사는지 주소도 모르고, 아들이 사는 곳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주소를 묻기 위해 전화를 하게 되었고, 전화를 하며 아들과 식사 약속을 하고 만나게 되지요.

 

오랜만의 만남에서 아들은 아빠에게 서류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안에는 빳빳한 100달러 지폐 다발이 보였고, 아들은빌렸던 4000달러에요!”

그 돈에 대하여 그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첫 번째 감사편지에 대한 인스턴트 보상을 쥐고 있었습니다.

 

이제 본격으로 그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책 일부분을 소개합니다.

"물론 일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감사편지를 쓴다는 발상은 처음에는 신통치 않아 보였고 두려움마저 불러일으켰다. 만일 내가 망해가는 변호사의 힘겨운 일 속에서도 감사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적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1월에 있었던 놀라운 사건들은 모든 곳에 최소한 감사의 씨앗 심기를 시도해보라고 내면의 나를 설득했다. 설령 만일 내가 내 직무에 관해서 감사편지를 쓰는 동안 희망을 발견하지 못해도 적어도 더 나빠질 일은 없었다. 나는 일단 쓰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감사편지를 쓰는 과정을 통해, 나는 의미 있는 은총으로 축복받았다는 뚜렷한 깨달음을 얻었다. 이제 나는 이러한 은총과 축복들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수백 가지 이상의 예 가운데 몇 가지만 꼽자면 내 아들들 안에서, 딸 안에서, 친척들 안에서, 친구들 안에서, 그리고 동료 안에서, 이들 안에서 발견한 은총과 축복들을 예전의 나라면 아직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365통의 감사편지를 쓰는 데 걸린 15개월은 긴 시간이었다. 그것은 내가 삶에서 감사해야 할 필요가 있는 수많은 것을 주시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제 목록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적어도 100통 이상의 편지가 크리스마스 선물, 집들이 선물, 내 동료의 엄청난 수고, 친구들로부터 받은 특별 선물, 콘서트와 스포츠 경개 입장권, 저녁 식사와 값비싼 점심 등에 대해 줄곧 써 왔어야 했던 것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 우리가 편지를 써 보려고 합니다.

당신에게 감사를 있게 한 원인을 제공한 사람에게 말입니다.

당신이 누리는 감사보다, 그 감사를 주심으로 돌려야 할 영광이 있지 않겠습니까?

 

오늘 여러분이 드린 감사로 누군가 기뻐하고 행복할 일이 만들어지지 않겠습니까?

그 감사의 내용을 여러분이 받고 싶으면 자신의 주소를 써도 좋습니다.

 

 

 

 

크리스챤 라이프 스타일 /살전5:16-18/ 이동원목사

2014-12-01 19:34:07

 

여러 해 전의 일입니다. 전통적인 이발소가 좀 이상해지면서 어디 가서 이발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데 누군가가 저에게목사님, 미용실로 가세요라고 충고해 주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처음 미용실을 찾았을 때를 잊을 수 없습니다.

 

제가 그때 미용사 분에게 받은 첫 질문이어떤 헤어스타일을 원하십니까?” 였습니다. “아니 이발하는데도 여러 가지 스타일이 있습니까?” 반문했더니 미용하시는 분이그럼요, 커트, , 업 스타일, 컬러링 여러 가지가 있거든요하더라구요.

 

그때 제가 알아들을수 있는 말은 커트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물론 커트지요하니까, 롱 커트입니까? 미디엄입니까? 쇼트 커트입니까?”해서 얼결에쇼트입니다했더니 다음 주일 교회가니 교인들이 이구동성으로목사님, 귀순용사 헤어스타일 하셨네요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다음 미용실에 가서는 무조건롱 커트 해주세요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주일 교인들이목사님, 완전히 히피 스타일이네요하더라구요.

 

그래서 요즈음은 미용실 가면마음대로 해주세요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헤어스타일도 중요하겠지만 그것과 비교할수 없이 중요한 것이 라이프 스타일입니다.

 

헤어스타일은 한 사람의 이미지를 만들지만 라이프 스타일은 한 사람의 운명을 만드는 것입니다. 헤어스타일은 쉽게 바꿀수 있지만 라이프 스타일은 한번 형성되면 잘 바꾸어지지 않습니다.

 

헤어스타일은 스타일리스트가 만들어 줄수 있지만 라이프 스타일은 철저하게 자신이 만들어 가야 합니다.

 

라이프 스타일은 무엇입니까? 웹스터 사전은 라이프 스타일을 가르쳐한 개인의 매너와 태도로 표현되는 일관성있고 통합된 삶의 양식이라고 정의합니다.

 

한 사람이 예수를 믿으면 우선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가 생깁니다.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 곧 크리스챤 라이프 스타일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변화를 일컬어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이 변화는 나의 변화의 원인이신 내 인생의 새 주인되신 예수님과 협력하여 우리들 스스로가 만들어 가야 할 삶의 변화인 것입니다. 이 변화는 예수를 주로 영접하는 순간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주님앞에 설 때까지 날마다 지속적으로 이루어 가야 할 점진적인 변화인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의 본문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런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18)고 강조합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이 한 평생 추구해야 할 라이프 스타일은 무엇입니까?

 

1. 항상 기뻐하는 삶입니다.

 

항상 기뻐하라”-16절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수 있을까요? 우리는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기분좋은 일을 만날 때 일시적으로는 순간적으로는 기뻐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항상 기뻐할수 있단 말입니까?

 

분명한 것은 여기 성경이 가르치는 기쁨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의해 주어지는 행복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행복을 영어로는 happiness라고 합니다. 잘 아시는 대로 이 단어의 뿌리는 happen이라는 단어입니다.

 

행복은 우연히 발생하는 환경적 요인에 의하여 우리가 느끼는 감정적인 수준의 것입니다. 우리말의 요행이나 행운과 같은 수준의 것입니다. 그러나 기쁨은 환경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안에 거하게 된 선물인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초 자연적인 성령의 열매라고 가르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예수믿고 구원받음으로 우리안에 주어진 성령의 기쁨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1:5-6에 보면 바울은 복음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큰 능력으로 전파되었을 때 그들이 성령의 기쁨으로 이 도를 받아드렸다고 가르칩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6)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의 기쁨의 본질은 성령의 역사로 구원받은 기쁨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원받은 그날부터 우리가 주안에, 그리고 주께서 우리안에 거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 기쁨은 흔들릴수 없는 기쁨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기쁨의 이유이신 주께서 우리안에 계심을 알기에 바울은항상 기뻐하라고 말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기쁨은 성도에게 있어서 우리 밖에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기쁨은 우리안에 있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에 빠진 어떤 여인이 물을 긷다가 우물에서 보석을 발견합니다. 마침 그때 삶의 슬픔에 지치고 가난한 한 친구가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가 그녀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어 인생의 참 기쁨을 경험하게 된 이야기,

 

그리고 보석을 발견하게 된 이야기를 듣습니다. 보석 소리를 듣는 순간 이 친구는 나도 저런 보석만 가질수 있다면 기쁨으로 인생을 살수 있을 터인데--하고 생각하다가 미친척하고 여인에게 내 사정이 딱한데 나에게 그 보석을 줄수 없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이 여인이 그렇게 하자고 하며 보석을 건네어 줍니다.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그런데 이 친구가 보석을 받아들고 길을 떠나 한참을 여행하면서 이상한 깨달음이 찾아옵니다. 그것은 보석이 자신을 기쁘게 하기보다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는 다시 발걸음을 돌이켜 이 여인의 집으로 돌아가 보석을 되돌려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친구여, 나에게 필요한 것은 보석이 아니라 이 보석을 나에게 건네어주던 당신의 마음이었오.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그 기쁨을 내게 줄수 없겠오

 

그때 이 여인이 친구에게 성경말씀을 들려줍니다. 느헤미야8:10의 말씀이었습니다.--“--여호와를 기뻐하는 것(Joy of the Lord)이 너희의 힘이니라”(The joy of the Lord is your strength). 저는 이 감사의 계절-여러분과 제가 이 보석보다 더 존귀한 주님의 기쁨으로 인생을 살아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가 추구할 라이프 스타일 또 무엇입니까?

 

2.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입니다.

 

쉬지말고 기도하라”-17절의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의 본문의 크리스챤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세가지 명령이 단계적이면서 피차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가 항상 기뻐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주님 주신 내적인 기쁨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지속적인 기도생활이 뒤따라야 합니다. 쉬지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쉬지않고 기도할수 있습니까?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대부분 이 말씀을 기도의 태도로 살아가라는 권면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과거 중세기 수도자들은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기 위하여 소위숨 기도”(Breath prayer)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숨쉬는 매 순간 순간을 길게 호흡하며 기도의 제목을 주께 아뢰이고자 한 것입니다.

 

인생은 매 순간 순간 위기를 경험합니다. 스트레스는 인간 실존의 양식입니다. 별수없이 이기적인 인간은 자기를 지키기 피곤한 의식의 방어 게임으로 상처를주고 받으면서 인생의 참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중에서도 기도를 망각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주님을 찾고 주의 뜻을 붙잡고 살게 됩니다. 다시 용서하며 다시 일어나 기쁨을 회복합니다.

 

요즈음 인터넷에선 남미 우루과이의 한 교회벽에 나붙었던 일종의 주기도문 해설이 떠 돌아 다니면서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을 적지 않게 깨우치고 있습니다.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주님의 기도를 드릴 때하늘에 계신하지 말아라-세상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하지 말아라.-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하지 말아라-내 아들 딸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하지 말아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옵시며하지 말아라-물질 만능의 나라가 임하기만을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하지 말아라-내 뜻대로 되기만을 기도하면서. ”오늘날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하지 말아라-가난한 이들을 본체만체 하면서.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하지 말아라-누군가에게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하지 말아라-죄 지을 기회만을 찾아다니면서.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하지 말아라-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아멘하지 말아라-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나 그래도 우리는 아멘 하셔야 합니다. 그래도 저와 여러분은 기도하셔야 합니다. 적어도 기도하며 주님을 부른다는 것은 주님을 찾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쉬지말고 기도하십시다. 그것이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 그러면 성도가 구할 세 번째 크리스챤 라이프 스타일-무엇입니까?

 

3. 범사에 감사하는 삶입니다.

 

여기서 범사는 문자 그대로모든 일을 뜻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좋은 일만 아니라 안 좋은 일, 힘든 일, 고통스런 일, 악한 일도 포함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이 모든 일에, 범사에 감사할수 있겠습니까? 바울사도는 이미 그 해답을 로마 교회에 보내는 편지 롬8:28에서 주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든 일, 즉 범사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에 앞서 주신 명령이 무엇이었습니까? 쉬지말고 기도하라-였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당했던 기도할수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제 우리가 경험하는 일들 가운데 이미 간섭을 시작하시고 역사하시고 계시다면 모든 일들이 잘 되어가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 요셉이 경험한 삶이 아니었습니까? 자신을 죽음의 자리에 던졌던 형제들을 용서할수 있었던 까닭이 무엇이었습니까? 친히 요셉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45:5의 말씀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하나님이 간섭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요셉도 그 형제들도 함께 주의 축복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요셉이 용서할수 있었고 감사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 감사의 주일-저와 여러분은 감사의 마음으로 주앞에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계십니까? 아니면 아직도 불평의 제사를 드리고 계십니까?

 

의사였다가 기독교 작가로 변신한 분 가운데 성채, 천국의 열쇠등을 쓴 A.J.크로닌 박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본래 가난한 이웃들에 대한 연민 때문에 광산촌에서 의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광산촌에는 억울한 일로 오해를 받아 이 오지로 쫒겨온 한 그리스도인 간호사 자매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자매는 이 오지에서도 아무 불평없이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면서도 무엇이 그리 기쁜지 늘 웃으며 찬양하며 정성으로 환자를 간호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루 진료가 끝나도 제일 늦은 시각까지 남아 환자를 돌보곤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루는 크로닌 박사가 하도 보기에 안스러워 이 자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지닌 가치만큼 여기서 대우를 못받고 있어요. 그걸 자신은 알고 있나요? 하나님은 이걸 다 알고 계실터인데 말이에요그때 뜻 밖에 이 간호사 자매는 크로닌 박사에게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이 대답이 크로닌 박사의 일생을 바꾸는 말이 되었다고 합니다. “박사님, 제가 가치있는 존재라는 걸 하나님이 알고 계시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요?

 

더 이상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그분이 알고 계시고 그분이 함께 하신다면 된 것 아닌가요. 박사님, 저는 그냥 제가 살아있고 그분과 함께 있음이 감사할 따름이거든요.”

 

이것이 바로 크리스챤 라이프 스타일인 것입니다. 본문을 표준 새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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