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22:36-38/ 유기성 목사
2016-08-25 11:58:48
오늘은 매년 건축비 상환을 위한 [교회사랑 기도의 밤]이 있는 2월 첫째 주일입니다. 우리 교회는 한국교회가 고통스러워하는 문제를 거의 다 가졌던 교회입니다. 무리한 예배당 건축, 헌금의 강조, 불투명한 재정, 지도자의 신뢰 상실, 분열의 위기 등 부끄러웠던 교회였습니다.
숨기고 싶지만 드러내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사 문제를 다루는 독일과 일본의 예에 비추어 감추는 것만 능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앞으로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도 정직한 태도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런 중에도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가졌던 대부분의 교회는 무너졌지만 저희 교회는 기적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고 오히려 더욱 부흥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습니다. 그러면서 깨닫는 것은 하나님께서 쓰실 일이 있어서 교회를 살려주셨다는 것과 교회에 허물이 있어도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저는 이 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할 때, 하나님께 약속드린 것이 있습니다. 건축을 마무리 하려면 상상할 수 없이 재정이 필요했지만, 교인들에게 결코 헌금을 강요하거나 올바르지 않은 헌금을 받지 않을 것과 헌금 많이 한 사람을 추켜세우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나아가 건축비 상환은 오직 건축헌금이라고 쓰여진 헌금으로만 지불하고 나머지 헌금은 정상적인 교회 사역인 선교비, 교육비, 구제비에 사용하며, 건축비 상환 때문에 선교와 교육과 구제에 위축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만약 일반 헌금을 건축비 상환에 사용하게 된다면 주님께서 더 이상 저를 통하여 역사하지 않으시는 사인이라 여기기로 했습니다.
또한 예배당은 크게 지었는데, 교인은 너무 적어서 힘들었지만, 교인들을 끌어 모으는 식으로 목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래서 방송설교도 중단했습니다. 증축도 하지 않고 계속 교인들을 다른 교회로 파송하며 분립개척을 하였습니다.
제가 이렇게 한 것은 이 교회를 세우실 분은 오직 주 예수님 뿐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만 바라보며 예수님만 믿으며, 주 예수님께 순종만 하며 나아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목회해온 지난 12년은 물 위를 걷는 베드로의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물 위를 걸었습니다.
저는 [교회사랑 기도의 밤]을 앞둔 오늘, 헌금을 강조하거나 한금을 구걸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담임목사로서 여러분들에게 전해야 할 메시지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시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이렇게 부흥시켜 주신 이유가 주 예수님을 인격적인 분이심을 증거 하였기 때문이며 주님과 친밀히 동행하며 살도록 가르쳤기 때문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의 위대한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죄 성 때문에 노력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겐 그런 마음이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되어 지는 일입니다.
1738년 5월 24일 웨슬리 목사님이 성령체험을 한 후에 그 마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일 듯 일어났습니다.
드와이트 엘 무디(Dwight L. Moody)도 그에게 성령의 권능이 임하기를 기도하는 중보자들로 인하여 뉴욕의 월스트리트를 거닐고 있던 어느 날,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는 체험을 했습니다.
“나는 성령의 강력한 능력에 휩싸였다. 그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내게 나타내셨으며 나는 하나님께 당신의 손을 멈추어 달라고 간청해야 할 정도로 강력한 그분의 사랑을 경험했다.”“나에게 온 세상을 다 준다 할지라도 이제는 그 축복을 경험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세상 부귀영화는 저울에 달린 조그만 먼지와 같다”
제가 성령의 역사로 십자가의 복음을 깨달았을 때는 수술을 앞두고 있던 제 오른쪽 다리를 하나님께 바치는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장애인이 되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소원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수고했다, 내 종아” 하는 말씀 한마디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도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게 되기를 원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제 고민은 하루빨리 교회 건축비를 다 상환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 교인들이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살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면서도 지치고 가슴이 답답하고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고 다 포기하고 싶다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 채 책임감, 의무감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왜 그토록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을까요? 사랑이 인생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당신을 사랑한다.” 한마디 고백했다가 그 사람과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애가 바뀌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이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면 사랑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놀라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시절, 조지라는 한 흑인 소년이 숙소인 곡식 창고 다락방에서, 하나님께서 마음 가운데 찾아오시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 후 조지는 늘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니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에 대해 너무나 알고 싶은 것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숲을 돌아다니며 온갖 종류의 식물과 곤충을 채집해서 연구했습니다. 그는 당시의 인종차별과 사회적 장벽을 깨고 조지는 노예 출신 흑인들에게 주어 지지 않는 고등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이오와 주립 농과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앨라배마 주의 터스키지 대학에서 47년간 교수로 일했습니다.
그가 바로 유명한 농학자이며 발명가인 조지 워싱턴 카버 (George Washington Carver)입니다. 그는 “창조주 하나님, 왜 땅콩을 만드셨나요?" 하는 단순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무려 300가지가 넘는 제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면 삶이 놀랍게 변화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삶을 변화시키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니라 삶이 변화되어지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며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내 증인이 되리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니” “열매를 맺으리니”
한결같이 하나님께서 인생을 바꾸어 주시겠다고 하셨지, 우리 보고 인생을 바꾸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시카고 무디 성경학교 교장이었던 조지 스위팅 목사는 무디 성경 학교에 다니던 신학생 시절 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의사는 그에게 수술을 받다가 죽을 수도 있고 살아도 앞으로 아이를 낳게 될 수 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습니다. 그 때, 주일 학교 때 선생님 한 분이 조그만 책 한권을 주고 갔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주제로 한 책이었습니다.
그는 그 책을 읽으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것과 그분의 사랑이 자기 속으로 뚫고 들어오게 해야 한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이 병실 침상은 저의 산 제사의 제단입니다. 주께서 기뻐하신다면 저를 산 제물로 드리기 원합니다. 이제 주께서 주시는 능력에 따라 저 자신을 다른 사람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의 통로로 드립니다."
그 후 그는 완전히 건강을 되찾았고 아이도 넷이나 낳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평생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세미나와 설교를 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스위팅 목사는 주디(judy)라는 한 여자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랑받고 싶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과의 관계는 한 번도 육체적인 차원을 넘어서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가 넷이나 생겼지만 그녀는 여전히 만족스러운 사랑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 때, 옆집 아주머니가 주디를 자기 집의 성경 공부에 초대했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녀가 평생 동안 찾아왔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받아주신 분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삶 속에 영접하였으며 비로소 사랑이 무엇인지를 맛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자기는 새로 찾은 사랑에 기쁨이 넘쳤지만, 하나님과 떠나 살고 있는 남편을 생각하면 못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확신시킬 자신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친구가 그녀에게 한 가지 지혜를 알려주었습니다.
남편한테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하여 말해 줄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줄 수는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기로 맘을 먹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자기 삶에 바꿔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걸핏하면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고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했던 그녀에게 성령께서는 혀를 절제하는 법과 말할 때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집안일에도 더욱 신경을 썼습니다. 식사 준비를 더욱 세심하고 독창성 있게 했고, 몸도 잘 가꾸어 많이 날씬해졌습니다. 전에는 남편 만 출근하고 나면 드러누워 잤지만 이제는 자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아침도 먹고,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 시간을 이용해 함께 기도도 하고 성경도 읽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주디를 녹이고 변화시키자, 남편과 아이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도 저절로 여러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이 되었고 차츰 가정 전체를 녹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남편이 문밖으로 나섰다가 문득 돌아서서는 주디에게로 돌아와 주디를 끌어안고 키스를 해주었습니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얼마 후에는 주디가 다섯 살 난 아이를 침대에 뉘어주고 있는데 그 아이가 말했습니다“엄마, 나는 우리 집이 참 좋아. 예수님을 사랑하게 돼서 그런 것 같아. 그치?" 이 말을 듣고 주디는 너무나 감격하여 울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면, 자기 모든 것을 다 뺏겨버리고 자신은 초라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평생 거짓 사랑에 속고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고 권력을 사랑하고 성공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면 다 망합니다. 그것들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거짓 사랑에 빠져 살았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 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며, 하나님 자신 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아들도 주신 것입니다.
아들이 자기 눈 앞에서 죽는다면 그 아버지는 심장이 터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전능의 손을 스스로 묶으시고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을 견디셨습니다. 아들이 울부짖었습니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나를 어찌하여 버리시나이까”
밝은 귀를 가지셔서 우리의 신음 소리도 듣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소리를 청각 장애가 된 것처럼 듣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 비참하게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는 아들의 모습을 보실 수가 없어서 시각장애자처럼 어둠으로 온 땅을 캄캄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위해서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이 일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이루어진 것입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엄밀히 말하여 계명이 아닙니다. 사랑의 초청입니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것은 기쁘고 행복한 일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나를 사랑하세요!” 하지 못합니다, 만약 가까이 하기 싫은 사람이 여러분에게 사랑한다고 다가오면 정말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 고 하신 것은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엄청난 축복의 삶으로 우리를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초청을 받고도 “잘 모르겠어요!” “잘 안되요!” “느껴지는 것이 없어요!” “지금 제 형편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이 나오세요?” 라고 반응하면 안됩니다. 이것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행동인지, 알기는 아십니까? 1억 원 수표를 가지고 바람이 부는 한강 다리 위에서 위로 던지는 노는 것과 같이 어리석고 두려운 일입니다.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짝사랑이 되고 맙니다. 짝사랑은 사랑하는 자도 괴롭고 사랑받는 자도 괴로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오히려 불편하고 힘들게 느껴진다는 말입니다.
[끝까지 사랑하라] 는 책에서 토니 캠플로가 한 부부를 상담했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느 도시에서 집회 후 젊은 부부와 상담을 하였는데, 이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외도 때문이었는데, 상담을 통해 남펀이 자신이 저지른 일을 회개하였습니다. 그는 큰소리로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였고, 아내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2년 후, 그 도시에 갔다가 그 젊은 부부를 다시 만났습니다. 캠플러 박사는 그 부부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가정생활을 꾸려가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기에 그 결과를 보는 것에 가슴이 설레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잘 지내느냐”“는 물음에 남자가 대답했습니다.”사는 게 지옥입니다”
“아니 당신은 진정 거듭난 크리스천이 되지 않았나요?”남편이 말했습니다. “네, 전 크리스천이 되었죠. 제 삶은 달라졌고, 저는 좋은 남편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내에게도 신의를 다 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제가 문제예요. 남편이 한 일을 도무지 잊을 수 없어요. 그 여자들을 잊을 수 없어요. 남편이 제게 다가올 때마다 이전에 어디에 있었고 무슨 일들을 했는지 생각하게 돼요. 그러면 온 몸이 오그라들죠."
“잊으셔야 합니다. 남편을 용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일을 잊어야합니다 잊어버리는 것이 힘들겠지만, 과거의 나쁜 기억들을 사라지게 하는 능력 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상처 난 당신의 마음과 과거의 고통을 없애실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당신을 괴롭히는 그 아름답지 못한 일 들에 대한 기억을 없애달라고 주님께 간구하는 게 어떨까요?" 그러나 그녀는 계속 ”안된다“고만 말했습니다.
그 부부는 결국 이혼했습니다. 그녀가 진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마음이 없었기에 하나님께서 그녀를 건져내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건축비 상환이라는 짐이 있습니다. 무거운 짐이지만 저는 이것이 우리 교회의 축복의 씨앗이라고 고백합니다. 건축비로 인하여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정결하기를 힘썼으며 하나 되고 순종하기를 힘썼습니까?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할 기회를 계속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축비 상환이라는 짐이 오히려 복이 된 것입니다.
“너는 어디까지 가 봤니?” 라는 광고 카피가 있습니다만 저는 여러분에게 “교회 어디까지 들어와 보셨습니까?” 하고 묻고 싶습니다.
가정이 이루어지는 일이 신비합니다. 서로 모르던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하면서, 집을 마련하고 가재도구를 마련하고 생활비를 마련하는 부담을 나누어 갖습니다. 내 것 네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과정으로 이루어집니다. 교인들은 교회의 필요에 대하여 책임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담을 나누어 가짐으로 교회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배당 건물 때문에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것이 얼마나 유익을 얻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예배당이 그저 생긴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 예배당이 건축되는 중간 단계에 부임했습니다. 제가 부임한 후에도 예배당 건축 과정에서 쉽지 않은 고비가 많았지만 그 전에는 더욱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이 많았습니다.
우리 중에는 처음부터 이 예배당 건축을 위하여 전 생애를 바치다시피 헌신한 일들이 있습니다. 예배당 건축이 마무리되지 못했을 때, 완공될지 불투명하고 부도가 날지 모른다는 예상이 되고 있을 때, 그 때, 기도하고 헌금하던 교인들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그에 비하면 이미 다 지어진 예배당에서 예배드리며 헌금하는 것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우리는 그런 점에서 빚진 자입니다. 이제는 함께 짐을 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교회를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결사적으로 교회가 세워지지 못하게 막고 깨뜨립니다. 기독교를 핍박하는 나라들마다 극력 교회가 세워지지 못하게 막습니다.
그것은 반대로 교회를 세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만약 교회가 없다면 복음은 어디서 보존하며 성도들은 어디서 믿음이 자라겠습니까?
마 22: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아멘입니다. 이 말씀이 평생의 말씀기도 제목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보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 되었다. /마22:37-38/ 김승규목사
2021-05-30 14:17:45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우리는 이제 “목적이 이끄는 40일”이라는 캠페인 둘째 주일 예배에 와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다섯 가지 목적 중에 그 첫 번째 목적을 살펴 볼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창조하신 이유가 다섯 가지가 있는데 그 첫 번째 이유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우리가 계획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요한계시록 4:11b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우리 번역에는 그 뜻이 잘 안 나타나 있습니다마는 한 영어 번역에는 ”You (God) created everything, and it is for your pleasure that they exist and were created.“(NLT)라고 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들이 존재하고 창조된 것은 당신의 기쁨을 위한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이 바로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지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려고 지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오늘은 그 반대편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도 우리의 사랑을 받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두신 첫 번째 목적입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예수님께 와서 “주님,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명령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 22:37-38)
주님께서 “크고”와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란 무슨 뜻입니까? 다른 계명을 다 잊어버리더라고 절대로 잊어버리지 말고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의 본질입니다.
사람들은 예배에 대해서 오해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배”라고 하면 무슨 생각이 떠오릅니까? 기도와 찬양이 생각나지요? 주일 메시지가 생각나시지요? 헌금이 생각나시지요? 여러 가지 종교의식이 생각나시나요?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들은 예배의 한 일부이지 본질이 아닙니다.우리는 예배의 본질을 바로 이해하는 것인 중요합니다.
우리 인생이 존재하는 첫 번째 목적은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을 함께 큰 소리로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 말씀에 의하면 예배란 첫 번째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나의 반응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권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큰 자비하심,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반응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을 깨닫고 내가 거기에 반응하고 응답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당신이 어떤 남자에게 사랑한다고 했는데 그 남자가 목석같이 아무 반응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사랑은 짝사랑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큰 자비하심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이 사랑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돌려 드리고 싶어집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위해 먼저 무언가를 하십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창조 하셨고, 먼저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먼저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먼저 우리를 복 주시고, 먼저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십니다. 이 모든 것들로 인해서 우리는 감사함으로 우리의 사랑을 하나님께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두 번째로 예배는 하나님께 다시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본문에 드린다는 말이 두 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셨는데 그것을 다시 돌려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그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되돌려 드리는 예배를 기뻐 받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되돌려 드려야 합니까? 성경은 “너희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합니다. 물론 우리 몸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 몸은 우리의 전 존재를 가리킵니다. 우리 전 존재를 거룩한 산 제사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 이것이 신령한 예배입니다.
그러면 우리 전 존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예배라고 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이에 대해 예수님은 마가복음 12장 30절에서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이 말씀은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잘 말씀해 줍니다.
1.예배란 하나님께 나의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본문에 “뜻을 다해 사랑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뜻과 모든 생각을 하나님께 집중하라는 말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생각을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 이것이 예배의 근본입니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다 잊어버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예배는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주한 세상에서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께 집중시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여러분도 예배 시간에 멍하니 엉뚱한 생각을 하신 경험이 있지요?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의식적으로 모든 신경을 하나님께 집중시키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자동적으로 엉뚱한 생각이 듭니다. 어젯밤에 먹던 통닭 생각이 듭니다.
어제 밤 토요 명화극장의 주인공들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께 집중시키지 않으면 금방 온갖 잡생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로마서 8:7을 보면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신경을 하나님께 집중하도록 힘써야 합니다.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우리의 생각을 집중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가요? 첫째로 매일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그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루 10분이라도 좋습니다. 30분이라도 좋습니다. 아침에 하든, 점심이든, 밤에 하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이 규칙적으로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시간이 되면 하던 모든 일을 멈추어야 합니다. 그 시간에 하나님께 나아가 대화를 하십시오. 그리하면 그 시간만큼은 모든 신경을 하나님께 집중시킬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만날 장소를 정해 놓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향하는 마음 문을 닫으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골방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운전하는 자동차가 골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일하는 직장에 있는 창고도 될 수 있습니다. 옥상에 있는 장독대 옆도 될 수 있고, 거실의 한 모퉁이도 될 수 있습니다. 어느 곳이든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는 장소가 여러분의 골방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어느 한 곳을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간과 장소를 확실히 정해놓지 않으면 실천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도 만날 시간과 장소가 확실치 않으면 만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를 확보해야 합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가면 하나님께서 그곳에 살아 계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곳은 사람들을 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를 꾸밀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진실한 모습 그대로 보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생각을 철저히 중단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고 진실하게 말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은밀한 중에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는 두 번째 방법은 하루 종일 하나님과 대화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시편 105편 4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찌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찌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루 종일 딴 생각하다가 밤늦게나 새벽에 잠시 들어와 인사만 하고 가는 것보다 하루 종일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항상 나를 생각해주고 관심을 나에게 집중시키고 있는 것을 알 때 행복함을 느낍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직장에서 근무하면서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근무할 수 있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도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장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얼마에 팔까요?" "하나님, 이 사람 너무너무 가난해 보이는데 좀 깎아줄까요?" 이렇게 구체적인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삶이 청교도신앙의 근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매 30분마다 알람을 맞추어 놓고 그 알람이 울릴 때마다 하나님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방법들을 터득하고 나면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께 집중되고, 하루 종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그분께 집중해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한사람 한 사람을 아주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보살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139편 1-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하나님은 여러분께 집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한 번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시도 생각하지 않으시는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만드신 이유가 무엇이지요? 여러분을 사랑하시려고 만드셨습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입니까? 상대에게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관심은 사랑을 표현하는 놀라운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신경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의 대상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신경이 그 사람에게 집중되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잠시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떠도 그 사람 생각이 나고 밤에도 그 사람 생각하면서 잠이 들 것입니다. 하루 종일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기쁘게 해 줄까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이란 이만큼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주의를 집중하면 어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들을 얻습니까? 이사야 26장 3절은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생각을 집중시킬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강에 평강을 더하여 주십니다.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불안이나 초조함이 없어집니다. 마음을 짓누르는 죄책감이나 좌절감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감사와 희망, 자신감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예배는 하나님께 나의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예배란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 뿐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with your heart and soul)”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열정적으로 우리의 애정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사랑 고백을 정말로 기뻐하십니다. 요즘 연인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고마워요, 미안해요, 행복해요, 사랑해요, 당신이 있어서 나는 행복합니다. 옆사람과 함께 인사해보겠습니다. 기분이 어떻습니까? 좋지요? 그러면 하나님께 한번 고백해 보겠습니다. ‘하나님, 고마워요’ ‘하나님, 죄송해요.’ ‘하나님, 행복해요’ ‘하나님 사랑해요’ ‘하나님, 당신이 있어서 나는 행복합니다.’ ‘당신이 있어서 내가 든든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안 기뻐하시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호세아 6장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은 제사보다 “인애” 곧 사랑을 원하십니다.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길이요, 우리 인생의 첫 번째 목적을 달성하는 셈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할 때 가장 행복함을 느끼게 됩니다.
인간적으로 해 놓은 일이 적고, 이상하게 일이 꼬이는 날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좀 더 알게 되었거나 하나님을 좀 더 사랑하게 되었으면 그날은 목적에 합당한 삶을 산 것입니다. 그날은 승리의 날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우리를 보내신 이유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그 목적대로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잊어서는 안될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출애굽기 34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아주 열정적인(passionate) 분이 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많이 알고 싶어하시고 여러분도 하나님을 많이 알기를 원하십니다.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열정이 없이 드리는 예배를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열정”을 원하십니다. 여러분 중에는 주일 아침에 “또 예배 드리러 가야하는 시간이네. 귀찮아 죽겠네, 왜 이렇게 주일이 빨리 오지?”하면서 교회에 오는 분을 없습니까? 의무감으로 소그룹에 참여하시는 분은 없습니까? 하나님은 의무적으로 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어떤 의식이나 종교적인 규칙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관계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관계에 아주 열정적인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를 사랑하는 만큼 네가 나를 사랑하면 좋겠다. 왜냐하면 내가 너를 만들고 지었기 때문이야.”라고 하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예배는 하나님을 위해 나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예배는 첫째로 하나님께 나의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요, 둘째로 하나님께 나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위해 나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네 온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결혼하신 분들은 아내를 사랑합니다. 아내를 어떻게 사랑합니까? 모든 관심을 아내에게 두고 사랑을 고백합니다. 뽀뽀도 해 줍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부족합니다. 자기의 능력을 사용해서 생활 곳곳에서 아내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쓰레기도 버려 주어야 합니다. 설거지도 해 주어야 합니다. 자질구레한 집안 일도 해야 하고, 뭘 사오라고 하면 밤중에 뛰어나가서 사다 줘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입으로만 감사해요, 사랑해요, 당신이 있어서 행복해요라고 해서는 부족합니다. 입으로 감사하고 찬양만 하는 것으로 끝나 버리면 참 사랑이라고 할 수없습니다. 사랑한다면 힘을 다하여 구체적인 행동으로 그 사랑을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주일 예배하고, 소그룹에도 참석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생활 속에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구체적인 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해 보여야 합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영어로 worship service 라고 합니다. 예배는 곧 힘을 다하여 섬기는 것입니다.
다음 말씀 구절을 보겠습니다. 골로새서 3:23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여러분이 이 말씀을 읽고 마음으로 받으시면 여러분의 인생에 혁명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한다면 예배의 본질을 깨달은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수도원에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주님을 영접하면 여러분의 모든 삶이 예배의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여러분의 직장 생활, 사회 생활도 예배의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이 하면 그 일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 속에 하나님을 초대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 속에 개입하시고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택시 운전수를 하든, 교사를 하든, 직장생활 하든, 사업을 하든 무엇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모든 것을 주께 하듯 하면 그 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됩니다. 번듯한 회사에 다니든, 빵집을 하든, 포장마차를 하든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제가 지금 이 일을 하는데, 하나님을 위해서 할께요.”라고 고백하면 그 일은 곧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물으십니다. “지금 그 일을 누구를 위해서 하고있느냐? 나를 위해서 하고 있느냐?” 여러분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을 위하여 하게 되면 여러분은 24시간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 전체를 예배로 받기 원하십니다.
다음 말씀을 보겠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제사 드리는 것이 예배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살아 있는 채로 드리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하나님께 드리라. 잠자는 것, 먹는 것, 일하는 것,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드리라. 하나님 앞에 그 모든 것을 드리라.”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제사로 드리는 것, 이것이 바로 예배의 핵심입니다.
진정한 목적이 이끄는 삶은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생활에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이 날마다 하는 일들 여러분이 날마다 경험하는 그런 일들 가운데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직장 상사를 주님처럼 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길에서 휴지를 주울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 손님들을 왕처럼 모실 수도 있습니다. 의사들은 환자들을 주님을 대하듯이 섬길 수 있습니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주님처럼 대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모든 일을 하든 주께 하듯 하겠습니다.”하고 마음에 결심하면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이 예배하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향을 피우고 촛불이나 특별한 의식을 행하는 것보다 여러분이 예배하는 삶을 사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그러면 왜 우리의 삶이 예배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까?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예배하는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의 유전인자 속에 예배하는 인자를 넣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왜냐하면 예배가 인간의 본질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무언가를 예배합니다. 여러분이 어느 곳, 어느 문화에 가 보셔도 사람들이 예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실 겁니다. 아주 원시시대 동굴 속에도 예배하는 그림을 그려 놓았습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 아주 빨리 다른 예배할 대상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예배하십니까? 여러분이 현재 가장 관심을 많이 쏟는 대상, 여러분이 가장 애정을 쏟는 대상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능력을 가장 많이 쏟는 대상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여러분이 섬기는 우상입니다. 어떤 분은 자신의 직장에서 하는 일을 우상으로 삼습니다. 자신의 일을 우상으로 삼고, 그 일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어떤 분들은 돈을 버는 것을 우상으로 삼고, 그 일에 모든 관심을 쏟습니다. 자나깨나 돈 벌 생각만 합니다. 어떤 분들은 쾌락을 예배하고,. 어떤 분들은 다른 사람을 우상으로 삼고, 자신의 인생을 전부 다 바칩니다. 즉, 자신의 모든 관심, 애정과 능력을 그 사람을 위해서 씁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실수하기 쉬운 큰 시험과 큰 죄는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보다 다른 어떤 것을 더 사랑한다면 여러분은 영적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진리보다 실리를 좇게 되면 올무에 빠질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자기 자아를 더욱 사랑하면 그릇된 길로 계속 가게 될 것입니다. 명성과 돈, 쾌락을 사랑하거나 하나님보다 다른 무언가를 더 사랑하면 그의 영혼이 피폐해질 것입니다. 마귀는 항상 우리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우상으로 섬기도록 유혹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우리의 모든 관심을 하나님께만 쏟고, 또 우리의 애정을 하나님께만 표현하고, 우리의 모든 능력을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면 어떤 축복을 받습니까? 성경은 시편 37편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너에게 집중하고 계시고 하나님은 우리들 삶의 구석구석에서 기뻐하신다.”(God pays attention and God delights in every detail of our lives.) 모든 면을 말입니다.
여러분이 하루 중에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항상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무엇입니까? 왜냐하면 여러분이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바로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바로 그것이 여러분이 예배하는 대상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스케줄 노트, 입출금 통장, 다이어리는 여러분의 신앙고백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스케줄 노트, 은행통장, 다이어리를 보면 여러분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당장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시간을 쓰는 것, 돈을 쓰는 곳이 바로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신 목적에 합당한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시간과 여러분의 물질이 그렇게 쓰여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계획된 자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지어진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에서 다른 어느 것보다 우선적으로 인생의 제1의 목적을 하나님을 더욱 알고 사랑하는 것에 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후 5:9) 이것보다 너 나은 인생의 목적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크고 첫째 되는 계명' /마22:37-40/ 강대식목사
2023-01-26 06:10:20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물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그런데도 그 질문은 중요하기에 주님은 친히 대답하셨다.
1.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22:37)
“하셨으니”는 신명기 6:5 말씀을 인용하신 것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마가복음 12:30은 이렇게 말씀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종합하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마음은 항상 영혼의 중심을 말한다. 생명의 근원이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잠4:23)
마음에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할 때 그 마음은 영혼 중심이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마음에 믿는다고 하니까, 마음에 한 번 생각하는 것으로,
입으로 시인한다고 하니까 영접기도 따라서 하는 것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오늘날 전도가 저질르고 있는 위선과 거짓과 반역과 거역일 뿐이다.
‘마음으로 믿어’는, 마음 중심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그 마음 중심에서 나와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전도를 한다고 한다.
유사 그리스도인이 유사 그리스도인을 낳아 교인수 늘리고 바벨탑 쌓을 뿐이다.
주님은 그들이 ‘자기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사람들을 끌어모아 조직을 키우고 교회를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있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렘4:4)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누구인가?
유다인은 오늘날 현대 교인들 전체요,
예루살렘 주민들은 각 나라 수도 서울에 있는 대표적인 교회들의 교인들이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경고가 곧 오늘 우리에게 하는 경고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마음을 드릴려면,
탐욕과 방탕으로 우상들로 찌들어 있는 마음 가죽을 스스로 베어 할례를 행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 진정으로 속할 수 있다.
마음 가죽을 베어 할례를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공의의 심판을 하게 된다.
그 불의 심판은 끌 자가 없다고 하신다.
“보라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렘9:25,26)
저주를 받는 비결과 복을 받는 비결은 그 마음이 향하는 것에 좌우된다.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렘17:5)
사람의 마음은 한없이 부패하고 더러워질 수 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렘17:9)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마음 중심을 보신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겉모습만 의롭고 깨끗이 하고서는 안심하였다.
“눈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요9:3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도다’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도 하셨다.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여도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다’.
‘맹인된 인도자들은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면서 이렇게 하였다.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도 마음 속이 거룩하고 흠이 없이 깨끗하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다.
내 영혼 중심을 드리고 생명의 근원을 드림으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마음을 다할 때, 뜻도 다할 수 있고 목숨도 힘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속 마음을 비우고 탐욕과 방탕을 비울 수 있다.
회칠한 무덤에서 벗어나고 탐욕과 방탕, 위선과 불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기를 부인할 수 있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수 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크고 첫째 되는 계명,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할 때,
크고 둘째 되는 계명, 네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할 수 있다.
2.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22:39)
내 이웃을 왜 자기 자신 같이 사랑할 수 없느냐?
이웃 사랑, 만인의 사랑을 그렇게 외치고 교육하는데도 이루어지지 않느냐?
세상이 정의와 사랑을 구호처럼 외치면서도 메아리 없이 끝나고 마느냐?
다들 중심이 자기 사랑 자기 중심 자기 이익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기 마음 중심에서 자기 사랑 자기 이익 자기 향락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인간 관계의 모든 충돌과 갈등과 전쟁은 자기 중심 끼리의 충돌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부부 갈등도 부모와 자녀의 갈등도 상하관계의 갈등도 다 자기 우선 자기 사랑에서 비롯된다.
이웃 사랑이 말로는 되는데, 마음으로는 되지 않아서 문제이다.
사람은 다 자기 안경을 가지고 세상을 보면서, 남의 안경은 받아들이고 인정하기가 어렵다.
내 안경이 옳고 맞다면 남의 안경도 옳고 맞을 수 있는데, 그것을 못 받아들인다.
매사를 판단하는 자기 안경이 잘못되어 있을 수 있는데 본능적으로 인정을 안한다.
모든 인간 관계의 갈등이 자기 패러다임만 옳고 상대의 패러다임은 틀려먹었다고 하는데서 온다.
배워서 이 사실을 안다고 하더라도 실제 생활에서는 적용하지 못한다.
우리의 마음 속에 에고가 얼마나 완고하고 편협하고 삐둘어져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설령 알더라도 못 고치는 것은 마음 속 질병과 근원은 아는 것으로는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이나 수양으로 조금 완화시킬 수는 있어도 근본적으로는 해결이 나지 않는다.
언제고 계기만 되면 용수철처럼 마음 속 질병은 튀어 나온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질병이요 타락의 죄에서 오는 것이다.
우리 인류의 조상이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타락하여 그 마음의 타락한 본성을 물려주고 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나고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씻음 받아야 마음의 본성을 고칠 수 있다.
그것을 성경과 기독교 역사가 증명하고 기독교가 들어간 나라들의 역사도 이를 증거하고 있다.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하여 평화와 화목과 행복을 누리는 방법은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사랑함으로 마음을 비우고 변화를 받는 길 밖에 없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길 밖에 없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르는 길 밖에 없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수 밖에 없다.
그래야 옛 것은 지나가고 옛 사람은 헌 옷 벗듯 벗겨지고 새 사람을 입게 된다.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게 되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닮아가게 된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이고, 새 새명이 들어옴으로 변화를 이루어가는 종교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새 생명이 없다면, 독실한 종교인이 될 수는 있어도
성경이 누누이 말씀하는 참된 생명 참된 믿음의 그리스도인은 될 수 없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고 사람이 만든 종교일 뿐이다.
하나님이 주신 새 생명으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해
주 나의 하나님을 사랑할 때,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을 지킬 때,
그와 같이 이웃을 내 자신 같이 사랑하는 크고 둘째 되는 계명을 지켜 행할 수가 있다.
하나님은 욕심이 많으셔서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나만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 속 탐욕과 방탕, 위선과 불법, 자기 이기심 자기 중심적 사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웃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롬13:10)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완성이 된다.
이웃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면 그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4:20)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위해 우리 주님께서는 하늘 보좌를 떠나서 인간의 몸을 입고
그리스도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사하시려 대속 제물 화목 제물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셨고, 승천하셔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중보하시고 위해서 기도하고 계신다.
그 주님은 심판하실 때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고,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신다.
그에 따라 의인들에게는 영생에, 악인들에게는 영벌에 들어가게 하신다.
3.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40)
강령은 으뜸 줄거리를 뜻한다. main principles.
예수님 당시 구약성경만 완성 되어 있었고, 그것은 율법과 선지자로 나뉘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해 시내산에서 주셨고, 선지자는 이 율법을 교훈하고 해석하고 적용하였다.
지금 율법은 신구약 성경 전체를 말한다.
율법은 순전하게 전파되고 가르쳐져야 하고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고 교훈하여야 한다.
오늘날에도 성경과 목회자가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율법은 그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고, 주님은 이 율법을 완전케 하시기 위해 오셨다.
이 율법의 교훈과 적용이 잘못될 때 암흑시대를 낳고 멸망에 이르렀다.
예나 지금이나 순전한 말씀에 세상 지혜를 혼잡하여 교회와 성도를 부패하게 하고 있다.
무지한 백성들은 거짓 선지자들에게 쉽게 미혹을 당하고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게 된다.
그 끝은 멸망이요 파멸인 것을 알고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지켜 행해야 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두 돌판에 새겨 십계명을 주셨다.
주님은 첫째 돌판을 크고 첫째 되는 계명, 둘째 돌판을 크고 둘째 되는 계명으로 강령화하셨다.
이 두 계명(강령)을 지키면 온 율법과 선지자를 다 지키는 것이 된다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목숨을 다해 힘을 다해 사랑할려면,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을 자신에게 두지 말아야 하며, 우상을 만들고 섬기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아야 하며,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할려면, 부모를 공경해야 하고 살인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며
도적질하지 말고 거짓 증거하지 말고, 이웃의 집을 탐하지 말아야 한다.
첫째가 없으면 둘째가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 사랑이 우선 되지 않으면 이웃 사랑이 실현될 수 없다.
또한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완성되고 증거될 수 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말씀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하나님 사랑)이 없다면 피차 복종하는 이웃 사랑도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사랑과 평안과 의를 살 수 없다.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목숨을 다해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할 수 있음을 확실히 알자.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완성되고 증거됨을 명심하자.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둘째 계명과 연결되고
둘째 계명은 크고 첫째 되는 계명 없이 이룰 수 없음을 알고 실천하자.
두 강령에 충실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되고 영광에 이르게 됨을 확실히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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